세상엔 가끔 정말 '운명의 장난' 이라고밖에 표현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곤 한다. 그건 사람의 인과에 따른 결과이거나 혹은 우연의 연속, 또는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외부적인 요소에서 발생하는 경우도 있었다.

 

 갑작스레 도심을 점거하고 총을 쏴대며 난동을 부리는 빌런 집단의 출현으로, 어벤져스가 즉시 현장에 출동했다. 전투를 거의 정리하는 막바지에 이르러 사람들을 대피시키던 와중, 마구 쏟아져내린 공격을 방패로 튕겨내다가 등 뒤에서 날아온 작은 가스형 미사일에 맞은 스티브는 그대로 바닥에 나가 떨어졌다. 급하게 도우러 온 토니도 쓰러진 스티브를 감싸고 잔당을 처리하는 와중에 수트를 직격당해 널브러졌다. 사태를 파악하고 날아온 토르와 배너가 적들을 몽땅 날려버린 다음에야 의식을 잃은 두 사람을 뉴어벤져스 훈련소로 옮길 수 있었다.

 

 제일 먼저 그들의 이상반응을 감지한 것은 헬렌 조 박사였다. 그녀는 두 사람을 재빨리 의무실의 특별 병동에 격리시켰고 그녀 자신 및 어벤져스 멤버들 이외의 출입을 엄격하게 금지시켰다. 그들은 하루 온종일 잠에 빠져 깨어나질 못했고 다음 날, 상태를 확인하러 들렀던 헬렌은 침대에 일어나 앉아 있던 스티브를 보고 차트를 그만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세상에, 캡, 스티브.. 당신 몸이.."

 "혈청을 맞기 전으로 돌아간 모양이군."

 

 밤새 고통스러운 신음을 뱉으며 침대에 누워있던 스티브가 정신을 차렸을 때엔 탄탄하고 섹시한 근육이 모두 사라지고, 예전의 마르고 볼품없는 몸으로 돌아와 있었다. 헬렌은 다시 차트를 줍고 스티브의 몸상태를 체크하면서 출입이 허가된 이들에게 알림을 보냈다. 잠시 후 샘을 위시하여 거의 쳐들어오다시피 병실에 들어온 멤버들은 왜소한 모습으로 여상히 인사를 건네는 캡틴을 보며 충격과 경악에 빠졌다. 

 

 "대체 이게, 어떻게..."

 "성분을 자세히 분석하는 중이지만, 일시적으로 혈청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가 들어 있었던 모양이네요. 닥터 배너도 도움을 주고 있으니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거에요."

 "토니는?"

 "글쎄요, 아직 반응이-"

 "왜들 이렇게 시끄러워...."

 

순간 옆의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시트가 젖혀졌다. 햇빛이 눈부신지 잔뜩 미간을 찌푸리던 토니는 차차 적응되는 시야에 온통 들어오는 건 턱이 빠질 듯한 멤버들의 표정 뿐이었기에 다시 인상을 썼다.

 

 "뭐야? 얼굴 표정이 왜 이래? 어디 개그 팀 구성이라도 새로 했나?"

 "토니, 당신, 당신 지금..."

 "내가 뭐. 그런 어설픈 공격 하나 맞았다고 어떻게 되기라도 하-"

 

 조잘거리는 입술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불쑥 거울이 눈앞에 디밀어지는 걸 보며 토니는 미간을 구겼지만 얌전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익숙하고 잘생긴, 40대의 토니 스타크가 아니라... 회사를 이어받기 전의, 젊고 어린 열아홉살 토니 스타크가 있었다. 놀란 눈을 둥그렇게 떠 봐도, 제 눈이 헛것을 보나 싶은 마음에 뺨을 꼬집고 눈을 부벼도 거기엔 탱탱하고 반짝거리기까지 하는 젊은 얼굴이 있었다.

 

 "맙소사, 내가 한창 방탕할 때의 얼굴이네."

 "몇 살 때에요? 회춘을 엄청나게 해버린 거 아니에요?"

 "열아홉일걸? 머리도 좀 짧을 때고. 흠."

 

 토니가 픽 웃으며 거울을 나타샤에게 넘겼다. 난 그렇다 치고, 캡틴은? 목소리 톤마저 약간 밝아진 그의 말에 멤버들은 말없이 뒤로 물러나서 두 사람이 서로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탁 트인 공간 사이로 푸른 눈동자와 갈색 눈동자가 허공에서 시선을 마주쳤다.

 

 "캡틴, 당신 사이즈가.. 혈청 맞기 전이야?"

 "...그렇게 된 것 같군. 열 아홉이라고, 토니?"

 "어... 어. 아마 그럴 걸."

 

 그리고 침묵. 두 사람을 걱정하며 들이닥쳤던 멤버들은 공기 중에 흐르는 묘한 기류에 강한 불길함을 느꼈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스티브와 토니는 오래 투닥거려왔던 만큼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며 동료 이상의 호감도를 착실히 쌓고 있었던 참이었으나, 아직 제 감정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 데다가 시대를 뛰어넘은 영웅이라고는 해도 겨우 서른 즈음이 된 스티브의 실수(모 요원과 데이트를 했다)로 인해 데면데면해지고 말았던 것이다. 

 

 여유를 만들어서라도 스티브와 시간을 보내던 토니는 페퍼가 부담하던 일을 가져와 떠맡으면서 브리핑 시간 외엔 코빼기도 보기 힘들어졌고, 스티브는 아닌 척 은근히 챙겨주던 토니와 제대로 된 대화를 일주일 이상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아직 어리숙한 청년이 할 법한 일이었지만 상대는 세계의 셀러브러티, 토니 스타크였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스티브는 토니의 주위를 맴돌면서 최대한 자주 만나기 위해 부던히도 노력했으나 그럴 때마다 토니는 일상적인 안부 인사만 나누고 제 할일을 하러 가버렸다. 조금 침울해진 그의 옆에서 샘이나 로디(솔직하지 못해서 그래, 라고 팁을 줬다)가 나름대로의 위로를 건넸어도 엎어진 물을 담을 순 없었다.

 

 "그러고보니 나 오늘 비전이랑 나가기로 했는데."

 "? 완다, 우리가 약속을 했던가요?"

 "아까 말했잖아. 금방 까먹네."

 "힐이 뭐 도와달라고 했었지 참... 가봐야겠어."

 "오늘 비행 훈련을 깜박했지, 안 그래?"

 "아 그렇지! 레드윙 테스트도 해야 하고. 가자고."

 "해독제를 만들기 위해 분석을 서둘러야겠어요."

 "토니, 어디 가지 말고 얌전히 지내요."

 

 결국 어색한 공기를 참지 못한 완다를 시작으로(비전은 영문도 모른 채 같이 끌려나갔다) 나타샤, 로디, 샘, 헬렌, 배너는 차례로 각자의 일을 찾아 썰물처럼 빠르게 병실에서 사라졌다. 순식간에 단 둘이 남겨진 스티브와 토니는 힐끔힐끔 서로를 쳐다보며 입술만 뻐끔거리다가 동시에 말을 꺼냈다.

 

 "저, 토니-"

 "스티브, 있잖아-"

 

 둘은 말하려던 입모양 그대로 멈추고 서로를 응시했다. 먼저 말해. 아니, 당신이 먼저. 옥신각신 실랑이 끝에 스티브가 다시 말을 이었다. "미안해. 내가 실례되는 행동을 했어." 토니는 딸꾹질이 나올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뭘?" 하지만 볼품없는 히끅소리 대신에 심술궂은 목소리가 툭 튀어나왔다.

 

 "그.. 다른 사람과 데이트한 거. 실수였어. 어리석었지."

 "........"

 "정말 미안해, 토니. 내 사과를 받아주겠나?"

 "....누가 캡틴 아니랄까봐 스트라이크로 던지네. 좀 더 로맨틱하게 안 돼?"

 

 토니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가시 돋친 말을 던졌지만 이미 눈에 띄게 풀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앳된 얼굴에 선명하게 반짝이는 옅은 미소와 다정한 갈색 눈동자는 스티브의 불안한 마음마저 따뜻하게 녹여줄 정도로 아름다웠고, 그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멍하니 토니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나 구멍 나겠어."

 "미, 미안하군. 흠. 그렇게 어린.. 모습은 처음 보니까..."

 "내 지금 미모가 끝내주긴 하지."

 "그, 토니. 잠깐 10분 정도만.. 시간을 주지 않겠나?"

 "10분? 갑자기 왜?"

 "자네가 말한 로맨틱을 찾아 오려고."

 

 덩치는 훨씬 왜소해졌지만 진중한 목소리는 그대로인 스티브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막 일어난 지 30분도 채 안 되었는데, 로맨틱을 찾으러 간다니. 토니는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스티브를 내려다 보았다. 깊고 맑은 푸른 눈동자에 일렁이는 진심은 이미 그가 잊어버린 '상대에 대한 기대감' 이라는 것을 희미하게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했다.

 

 "좋아, 정확히 10분이야. 늦으면 안 돼. 시간 잴 거니까."

 "이렇게 됐어도 병마까지 돌아오진 않았으니, 충분해."

 "그럼 지금부터...."

 

 토니가 테이블 위에 놓인 안경을 쓰고 프라이데이를 부르는 순간, 스티브가 총알같이 뛰어나갔다. 밖에서는 갑작스러운 그의 존재에 놀랐는지 몇몇이 놀란 목소리를 냈지만 상대가 캡틴 아메리카임은 알아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허공에 띄운 타이머가 째깍째깍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10, 9, 8..."

 "토니!"

 "카운트 다운 중이었는데. 당신이 찾아온 로맨틱은 뭐야?"

 

 7에 놓인 숫자가 허공에 깜빡이게 둔 채로 토니는 스티브를 돌아보았다. 그의 손에는 평범한 헤드셋과 작은 휴대용 음악기기가 들려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한 토니에게 다가온 스티브가 조심스럽게 침대 위로 올라왔다. 토니는 영문도 모른채 긴장해서 허리를 뻣뻣이 세웠다. 그대로 있어. 낮은 목소리가 달콤하게 귓가를 간지럽히나 싶더니만, 머리에 천천히 헤드셋이 씌워졌다.

 

 아, 나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토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천천히 스티브를 돌아보았다.

 

 

Met you by surprise, I didn't realize

that my life would change forever.

 Saw you standing there I didn't know I'd care

 There was something special in the air.

 

Dreams are my reality the only kind of real fantasy

illusions are a common thing.

 I try to live in dreams it seems as if it's meant to be

Dreams are my reality a different kind of reality.
I dream of loving in the night and loving seems all right.

 although it's only fantasy.

 

 

 토니는 가만히 노래를 들으면서 이제 완전히 웃는 얼굴로 스티브와 마주 앉았다. 어디로 가야할 지 방황하는 작은 손을 끌어다 꼭 쥐는 것도 물론 잊지 않았는데, 스티브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라 붐La boum, 1981년. ....당신이 어떻게 이 영화를 알아?"

 "훌륭한 취향을 가진 친구 덕분이지."

 "....10분 만에 찾은 로맨틱 치고는 훌륭했어. 당신 방에 다녀온 거야?"

 "지금은 이거밖에 떠오르질 않아서... 마음에 들었다니 다행이군."

 

 맞잡은 손을 천천히 풀고, 토니는 스티브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번엔 아예 같이 틀고 춤추면 어때?" 그의 상냥한 속삭임에 스티브가 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보았다. "춤 춰본 경험 없다면서. 이 모습으로는." 스티브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랬었지. 아무도 이런 말라깽이와 춤추고 싶어하지 않았거든." 토니가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프라이데이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그럼 당신의 처음이 내가 되는 거로군. 하나쯤은 이런 게 있어야지. 프라이데이, 음악 틀어."

 

 아직도 얼떨떨한 표정의 스티브를 병실 한가운데로 이끌어 거의 나란히 서면서 토니가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노래가 울려퍼지고, 조명이 은은하게 낮춰졌다. 정말이지, 토니. 날 언제나 꼼짝 못하게 만드는군. 스티브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활짝 미소지으며 토니와 손을 맞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형편없는 스텝에 단순한 춤이었지만 두 사람에게는 다시 없을 순간이었다. 

 

 이 로맨틱한 댄스 타임은 두 사람이 걱정되어 와 본 샘과 배너에게 발각되어 혼쭐이 난 다음에야 끝이 났다.

그리고 원래대로 돌아온 스티브가 토니에게 정식으로 교제 신청을 하면서, 다시 한 번 춤을 췄다나 뭐라나.

 

 

 

영화 La boum OST - Reality, Richard Sanderson

Met you by surprise, I didn't realize
불현듯 너와 마주쳤을때, 난 깨닫지 못했죠

that my life would change forever.

그게 나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버리게 될 줄은..

 Saw you standing there I didn't know I'd care

난 미처 알아차리기 전부터 거기에 서있는 당신을 보고 있었어요

 There was something special in the air.

그곳에선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죠

 

Dreams are my reality the only kind of real fantasy
꿈은 나의 현실이고 단하나의 실재하는 환상이에요

illusions are a common thing.

환상이란건 그리 특별하진 않아요

 I try to live in dreams it seems as if it's meant to be
난 꿈을 꾸듯이 살아가려고 해요,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Dreams are my reality a different kind of reality.
꿈은 나의 현실이고 그건 다른 종류의 현실이죠
I dream of loving in the night and loving seems all right.

난 한밤중의 사랑을 꿈꾸고 그 사랑은 모든게 완벽해 보여요

 although it's only fantasy.
그게 비록 환상일 뿐이라도.

 

If you do exist, honey don't resist.
당신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그대여 부디 저항하지 말아요.

Show me your new way of loving.

내게 당신의 새로운 사랑방식을 보여줘요

 Tell me that it's true, show me what to do.

이게 현실이라고 말해줘요,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 알려줘요

 I feel something special about you
난 당신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껴요

 

Dreams are my reality the only kind of reality
꿈은 나의 현실이고 그건 다른 종류의 현실이죠

maybe my foolishness is past and maybe now at last.

만약에 나의 어리석음으로 놓쳐버렸다면, 지금이 마지막이라면

 I'll see how the real thing can be.

난 이 현실이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볼 거예요

 Dreams are my reality a wondrous world where I like to be.

꿈은 나의 현실이고 이 놀라운 세상은 내가 원했던 대로예요

 I dream of holding you all night and holding you seems right.

난 밤새도록 당신을 끌어안고 있길 꿈꾸고, 당신과 함께 있는 것이야말로 완벽해 보이죠

 Perhaps that's my reality....
아마도 그게 나의 현실인가봐요


Met you by surprise, I didn't realize

불현듯 당신과 마주쳤을때, 난 깨닫지 못했었죠

 that my life would change forever.

그게 나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버리게 될 줄은. 

Tell me that it's true, feelings that are new

이게 현실이라고 내게 말해줘요, 모든게 새롭게 느껴져요

 I feel something special about you

 난 당신에게서 특별한 무언가를 느껴요

 

 Dreams are my reality a wondrous world where I like to be.

꿈은 나의 현실이고 이 놀라운 세상은 내가 원했던 대로예요

 illusions are a common thing.

환상이란건 그리 특별하진 않아요

 I try to live in dreams although it's only fantasy
 난 꿈을 꾸듯이 살아가려해요 그게 비록 환상일 뿐이라도

 Dreams are my reality

꿈은 나의 현실이에요

 I like to dream of you close to me

난 당신이 내게 가까워지는 꿈을 좋아해요

 I dreams of loving in the night

난 한밤중에 사랑을 꿈꾸죠

 And loving you seems right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건 완벽해 보이죠

 Perhaps that's my reality
 아마도 이게 내 현실인가봐요

 


by 치우타 2016. 4. 28. 16:52

 원래 스티브는 겨울을 딱히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타고난 지병이 많았던 탓에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금세 건강이 나빠지는 건 힘들고 괴로웠지만 어머니가 해 주는 따뜻한 스프를 먹는다거나, 작은 난로에서 타고 있는 장작의 아름다운 불꽃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가 전쟁을 겪으면서부터 크게 바뀌고 말았다. 스티브는 겨울의 추위를, 그리고 눈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날이 흐리군."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엔 눈이 온대요."

 

 훈련 계획을 정리하면서 걸음을 옮기던 스티브는 순간 발을 멈췄지만 아주 찰나였던지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화제는 자연스레 뉴 어벤져스의 현재 성취도와 앞으로 해야 할 일들로 넘어갈 수 있었다. 

 

70년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이후 스티브에게 있어서 눈이란 상실이었다. 함께 자라온 친우를 눈 속에서 잃었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이드라가 이용하던 테서렉트를 싣고 차가운 빙하 속에 처박혔다가 깨어나 보니 7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사랑하던 여인도, 친우도, 동료도 없는 세계에 깨어난 스티브는 신체가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추위를 느꼈다. 눈이 내릴 때면 밖에 나가지 않았고 가능한한 일에 매달리며 차갑게 가라앉는 마음을 애써 무시했다.

 

[오늘 몇 시에 끝나?] 

 

 스티브의 입가에 슬몃 미소가 걸렸다. 그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답장했다. [6시쯤은 끝날 것 같네] 번개같이 다음 메시지가 날아왔다. [왠일로 이렇게 빨리 보내? 연습 좀 했어?] 토니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걸 상상하니 웃음이 더욱 새어나왔다. 옆에서 나타샤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은. 자네 회의 중 아닌가?]

[뭐 어때, 지루한 탁상공론 중이야. 6시라고? OK.]

 

 스티브가 가벼운 타박을 하려던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토니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어차피 훈련을 시작할 시간이 된 데다가 둘의 사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타샤가 삐딱한 자세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기에 스티브는 별 말 없이 그냥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다음, 복장을 갖추어 훈련에 임했다.

 

 

 훈련이 막 끝나갈 즈음, 밖에서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아, 이 정도면 쌓이진 않겠는걸. 샘을 선두로 각자 눈에 대해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는 동안 스티브는 수트와 헬멧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일기예보가 빗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창 밖을 보고 싶지 않았다. 토니와의 메시지 내용은 까맣게 잊은 채 오늘은 여기에서 묵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때-

 

[나 좀 봐줘, 스티브.]

 

토니의 메시지와 함께 등 뒤에서 멤버들이 웅성거리는 걸 느끼고 스티브는 무심코 몸을 돌려 창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천천히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로 선글라스를 머리에 낀 채 손을 흔드는 토니가 서 있었다. 스티브는 아직 다른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것도 잊었는지 헐레벌떡 토니가 있는 바깥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넘어지겠어, 솔져. 나 어디 도망 안 가."

 "토니, 여긴 어떻게..."

 "흠. 글쎄.. 눈이 데려다 줬지 뭐."

 

당신 보고싶어서 끝나자마자 달려왔지. 당장 나한테 키스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뒤에 로디도 있거든. 빨리 정리하고 나와. 토니가 씩 웃으면서 속닥거리고는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검은 유리알 너머로 가려진 총명하고 반짝거리는 갈색 눈동자가 아쉬웠다. 그는 자꾸만 뻗어나가려는 손을 애써 억누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데려다 줬지.

 

생각없이 던진 말인지, 토니가 스티브의 마음까지 읽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지 상관없었다.

...어쩌면, 아주 조금은 눈이 좋아질 것도 같다고 생각하며 스티브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by 치우타 2016. 1. 28. 14:29

 어벤져스의 명실상부한 투탑인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의 연애란, 모두가 한 번쯤 상상해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일종의 '비현실적인 무언가' 였다. 치타우리의 뉴욕 습격으로 인해 처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시작부터 삐걱거렸으며 그 이후 토니의 말리부 저택 테러 사건,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거치는 동안에도 좋아지기는 커녕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벤져스 멤버들 및 소수의 관계자들(콜슨 등)은 조금 긴장한 표정이지만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가 걸려 있는 스티브와, 그의 탄탄한 팔 안에 휘감긴 채 심드렁한 얼굴을 한 토니가 공표한 교제 사실을 들으면서 입을 떡 벌리거나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 아니, 스티브 로저스와 토니 스타크? 어느 쪽도 전혀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경악하며 앞뒤에서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제법 괜찮은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늦게까지 훈련소에 남아 있던 스티브가 정확히 여섯 시에 '퇴근'을 해서 데리러 온 토니의 차에 올라탄다던지, 하이드라 기지 급습 작전 회의때는 변함없이 으르렁 컁컁 신경전을 벌여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놓고 끝난 다음에는 서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간다거나 거의 포옹할 거리로 찰싹 붙어서는 속닥거리는 모습 등이 목격되면서 사람들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이라는 세기의 커플이고 뭐고 어쨌든 커플 사이는 신경쓰지 않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둘의 연애가 핑크빛으로 각인되고 있을 즈음, 토니는 랩실에서 혼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어제는 평소처럼 스티브를 데리러 훈련소에 갔더니 나타샤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알콩달콩 귀엽게 연애해서 그런지 요새 얼굴이 확 폈네요, 스타크.' 라고 말한 것이 그 계기였다. 토니는 이도저도 아닌 표정을 지으면서 적당히 둘러대고 자리를 피했지만 옆에서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스티브가 그의 화를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연애, 그래 연애 좋지. 좋고 말고. 달달하고 알콩달콩한 것도 간질간질하고 낯설긴 하지만 괜찮아. 왜 싫겠어.

중요한 건 저 놈의 노친네가 손잡고 포옹하는 거 외엔 진도를 안 나가고 있으니까 그게 문제지!

 

 토니는 괜히 허공에 손가락을 휘두르며 프로그램을 흩었다가 제자리로 모았다. 타는 속을 달랠 길이 없어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었지만, 도리어 씁쓰름한 맛이 진하게 전달되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토니 스타크인데. 애인은 미국의 전형적인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는 끝내주는 블론디 빵빵 스티브 로저스인데.

 

아직도 키스 한 번 못해봤다니!

 

 때마침 랩실의 문이 열리며 고민의 원흉인 스티브가 편안한 차림으로 들어섰다.

 

 "토니, 여기 있었나? 곧 저녁 준비가 된다고 하네만."  

 

 환한 웃음이 걸려 있는 얼굴이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사람 속도 모르고. 토니는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곧 갈게."

 "삼십 분 후에나 말인가? 안 되네. 오늘은 나랑 같이 가야겠어."

 "정말 금방 끝날거야. 5분..."

 

 ...만 기다려, 라는 토니의 말은 채 나오지도 못하고 스티브의 입 안으로 먹혀들어갔다. 부드럽게 와 닿은 입술과는 정반대로 서투르지만 열정적인 혀가 숨소리 속에 얽혀서 녹아들었다. 되게 못할 줄 알았는데 최악은 아니네. 살짝 붉게 물든 뺨을 바라보면서 토니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래도 날 혼자 보낼 건가? 토니."

 "...노친네 약아빠져서는.. 알았어. 같이 가면 되잖아."

 

 토니는 마지못해 내밀어진 커다랗고 단단한 손을 붙잡았다. 아까보다 더 활짝 웃는 선샤인 스마일이 덤으로 따라오는 건 꽤 나쁘지 않았다. 입 안에는 스티브에게서 넘어왔는지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의 맛이 남아 있었다.  

 

 

by 치우타 2016. 1. 25. 17:33

 토니는 어릴 때부터 이미 '풍족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물론 그가 정말로 간절히 바라던 평범한 행복들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토니의 작은 투정이나 불평을 들을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너무 욕심이 많다고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토니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래서, 이게 네 로망이라고?"

 "...너무 유치한가?"


 토니는 얼굴이 적당히 가려지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에게는 좀 넉넉한 품의 자켓에 셔츠, 청바지, 운동화라는 시시한 옷차림을 한 채 불만스러운 얼굴로 다리를 흔들었다. 벤치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스티브는 안절부절하며 토니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입가에 한가득 떠오른 미소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저걸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토니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저돌적인 스티브의 고백과 적극적인 토니의 공세(라고 쓰고 지기 싫어서 되돌려주다가 코 꿰였다고 읽는다)덕분에 한 달 전부터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이었지만, 토니나 스티브나 외모든 복장이든 상당히 눈에 띄는 타입이라 학교 내에서 데이트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만 했는데 하루는 스티브가 토니에게 조심스럽게 어떤 제안을 해 왔다. 자신의 자켓을 입고 만나는 건 어떻겠냐고.


 "유치하다 못해 초등학생이 지나가다가 웃을 정도의 레벨이지."

 "으음... 역시...."

 "뭐.. 오늘은 날씨도 좋고 하니까, 저기 트럭에서 아이스크림 사 오면 봐줄게."

 "! 어떤 걸로?"


 토니의 가차없는 평가에 시무룩해서 고개를 푹 숙이던 스티브는 금방 회복해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 잘 생각해서 사와. 답을 알려주면 발전할 수 없다고, 로저스. 토니는 일부러 스티브의 성을 부르면서 윙크해 보였다. 

스티브는 바람같이 트럭 쪽을 향해 달려갔고 토니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주었다. 


 로망이라. 그것도 이런 말도 안 될 정도로 평범하고, 소박한 걸 해보고 싶다니. 바보 같이.


 하지만 토니는 스티브의 그런 점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에 자신이 잃어버린 것. 혹은, 그냥 묻어버린 것을 다시 파내어 먼지와 흙을 털어낸 다음 웃으며 내미는 듯한, 스티브의 밝은 미소나 수줍은 표정. 그런 주제에 다짜고짜 입술을 밀어붙이질 않나 사람이 울 때까지... 토니는 더 뻗어나가려던 기억의 끄트머리를 뚝 끊어냈다. 쟤랑 사귀고 나서부터 내가 아무래도 점점 이상해지는 게 틀림없어. 노려본 시선 끝에는 양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오는 스티브가 있었다.


 "뭐야?"

 "딸기맛이랑, 초코맛으로 사왔어. 하나만 먹기엔 아쉽고 또... 이걸 좋아할것 같아서."

 "....합격이야. 머리 좋네."


 아이스크림을 받아들며 토니가 피식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하게 웃는 스티브는 여전히 조금 바보 같았지만, 귀엽고, 간질간질했다. 나도 언젠가 너랑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알려 줄게. 들릴 듯 말듯 속삭이는 목소리에 스티브가 조금 더 큼직하게 미소지었다. 




by 치우타 2016. 1. 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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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일을 마치고 타워로 돌아오던 스티브는 문득 바닥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 두어 장에 시선을 두었다. 그러고보니 요즘 아직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한껏 시샘을 내긴 해도 아침 저녁으로는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벌써 계절이 바뀔 때가 온 건가. 거리를 따라 늘어선 가로수들이 붉게 물드는 광경을 상상하며 그는 슬며시 미소지었다.

 

 "어서 와, 스티브. 일은 잘 끝냈어?"

 "생각보다 수월하게 진행될 것 같네. 자네가 도와준 덕분이야."

 

 막 샤워를 하고 나왔는지 가운 한 장 차림에 커피를 마시려던 토니가 손사래를 쳤다. 당신의 인품이 그렇게 만든 거지. 촉촉하게 젖은 검은 머리를 따라 물방울이 톡, 하니 어깨에 떨어진다. 스티브는 한숨 반 웃음 반을 섞어 뱉으며 마른 수건을 손에 들었다.

 

 "또 머리를 다 말리지 않고 나왔군. 감기 걸리겠어."

 "아. 고마워."

 

 토니가 머그잔을 내려놓는것과 거의 동시에, 마른 수건을 든 스티브가 조심스레 머리의 물기를 털기 시작했다. 사실 당신이 그렇게 한 마디 하고는 머리를 말려주는 게 좋아서 자꾸 잊어버린다고 하면 화내려나. 토니는 보이지 않게 입꼬리를 올리며 얌전히 스티브의 손길을 받았다. 전투에 익숙한 투박하고 커다란 손이 머리를 도닥여오는 느낌은 늘 새롭고, 달콤했다. 가끔은 너무 어린애처럼 굴고 있는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지만 평소에 빈틈을 보이지 않는 토니가 아주 가끔씩 연인이라는 미명 하에 슬몃 기대오는 것을 스티브는 꽤 좋아하는 모양이었다(주변의 평가에 의하면).

 

 "토니."

 "...음?"

 "저건 뭔가? 못 보던 건데."

 

 기분 좋은 고양이처럼 그릉거리기 시작한 토니의 목덜미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수건을 내려놓은 스티브가 침대 머리맡을 가리켰다. 심플한 디자인의 작은 테이블 위에, 장미 모양의 장식 같은 것이 있었다.

 

 "아, 저거. 수가 준 거야. 요즘 나나 당신이나 피곤해 보인다면서. 숙면에 도움이 된대."

 "자네가 그런 걸 순순히 받아오다니. 조금 놀라운데."

 "그야 지난 사흘 정도 리드를 장기 대여했더니.. 안 받으면 맞을 것 같았거든."

 

 토니는 어깨를 으쓱이며 과장된 제스쳐를 취해 보였고 스티브는 못 말린다는 듯이 픽 웃었다. 당신도 얼른 씻고 와. 토니의 낮은 속삭임에 스티브는 정말 번개같이 샤워를 하고 뛰쳐나왔다(그런 것도 캡틴의 자질인가? 토니가 농담했다). 입술이 맞닿고, 손가락이 얽히고, 이내 방 불이 소리도 없이 꺼졌다.

 

 

 "스티브!"

 "...어.. 음? 토니?"

 "멍하니 서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나? 데이트 신청한 건 당신이었잖아."

 

 스티브는 가만히 서서 눈을 깜박였다. 방금 전에 토니랑 잠에 든 것 같았는데, 아닌가? 그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휩싸인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 쇼윈도에 진열된 스카프와 코트. 그리고 토니.

 

 "자네 옷이..."

 "이거? 평소처럼 입으면 아무리 그래도 너무 눈에 띄니까.. 이상한가?"

 

 토니는 평범한 검은색의 티에 품이 넉넉한 후드를 걸치고 있었다. 청바지에 운동화라는 완벽한 캐주얼 차림이었다. 평소에 늘 입고 있던 정장을 벗으니 조금은 더 앳된 분위기가 풍겼다. 거리를 무심히 지나는 아가씨들 몇몇과 남자들이 힐끔거리며 토니 쪽을 돌아보는 걸 본 스티브는 왠지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아주 잘 어울리네. 귀여워."

 "뭐?"

 "칭찬이니까 인상은 쓰지 말게."

 "남자에게 귀엽다는 건 매력없다는 거랑 거의 동급이라고, 스티브."

 "토니."

 

 달래듯 이름을 부르자 토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늘어뜨렸다. 당신은 오늘도 잘생겼군. 약간 아저씨 같긴 하지만. 목소리에는 심통이 담겨 있었으나 그런 주제에 더없이 진지해서 스티브는 그만 웃어버리고 말았다. 금방 마음이 풀어진 두 사람은 사이 좋게 거리의 사람들 속에 녹아 들었다.

 

 "어디 갈까? 당신이 정해봐."

 "내가 말인가?"

 "신청한 건 당신이니까 우선권이 있지."

 "그럼.. 센트럴 파크."

 

 스티브는 말을 꺼내놓은 다음에야 아차 하는 마음에 토니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토니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 이 시간이면 딱 좋군. 가자고. 그런 다음 덥석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어벤져스 멤버들 앞에서야 일부러 과시 겸 괴롭힘(?)용으로 스킨쉽을 과장되게 해올 때도 있었지만, 밖에서는 스티브의 이미지라던지 여러 가지 문제를 생각해서 최소한의 접촉만을 하곤 했었다. 이런 백주 대낮의 뉴욕 거리에서 깍지 낀 손이라니. 기쁜 마음에 가슴이 벅차오르기는 했으나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기에 차마 말은 못하고 스티브는 토니의 옆얼굴을 흘끔 넘겨보았다. 거기엔 불안이나 두려움이 아닌, 순수한 애정과 즐거움이 반짝이고 있었다.

 

 "스티브?"

 "아무것도 아닐세. 가지."

 

 스티브는 행여나 놓칠 세라 깍지 낀 손을 더욱 세게 마주잡았다. 꽉 잡힌 손이 제법 아플 법한데도 토니는 그저 씩 웃을 뿐이었다.

 

 

 "오, 이건 좀 장관이네."

 

 토니가 감탄하며 발을 앞으로 딛었다.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스티브도 약간 입을 벌린 채 눈앞의 광경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센트럴 파크 안쪽의 산책로에는 제각기 노랗고 빨갛게 물든 나뭇잎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동화 속의 그림처럼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토니는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근처에 떨어져 있던 낙엽을 슬슬 주워모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넋을 놓고 있던 스티브의 머리 위로 흩뿌렸다.

 

 "토니."

 "하하, 잘 어울리는데. 당신 파란 자켓이랑, 이 낙엽들. 그림 같아."

 "자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생각이 있지."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는 것이 스티브의 지론이었다. 물론 거기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겠지만 이 경우엔 토니가 먼저 도발해온 것이므로 그대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스티브 역시 예쁘게 모인 낙엽을 모아 토니에게 뿌려 주었다. 두 사람은 십대 어린애들마냥 낄낄거리며 한동안 그렇게 낙엽을 서로 주고받았다. 어느 순간 스티브가 토니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고, 토니가 얌전히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면서 귀여운 낙엽 전쟁은 끝이 났다.

 

 "스티브."

 "왜 부르나."

 "행복해?"

 "더할나위없이, 무척."

 

 토니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그렇다면 됐어. 솔직하고 애정어린 그 표정에 스티브 또한 이끌리듯이 환하게 웃었다. 낙엽이 바람에 춤추듯 휘날렸다. 꿈만 같은 시간이었다. 그러자 토니가 그런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속삭였다.

 

 "꿈이야, 스티브. 이제 일어나야지."

 

 

 스티브는 눈을 번쩍 떴다. 여전히 방 안은 어두웠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다 꿈이었나. 아쉬운 감정이 마음 한 구석을 덮는 것을 느끼며 그는 손을 뻗어 품 안의 토니를 확인했다. 작은 움직임에도 쉬이 잠을 깰 정도로 예민한 그가 거의 미동도 없이 숨소리만 내면서 쿨쿨 자고 있었다. 수의 선물이 효과를 본 모양이군. 스티브는 살그머니 토니를 좀 더 끌어당겨 안았다. 으음, 하는 소리를 작게 내면서도 토니는 깨지 않았다.

 

 센트럴 파크에서의 데이트는 비록 꿈이었지만, 곧 가을이 오고 나뭇잎이 물들어 낙엽이 지면 다시 한 번 데이트를 신청할 것이다. 후드를 입은 토니의 손을 잡을 수 없다고 해도 좋다. 함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스티브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래, 가을이 오면.

 

 

*놜님의 그림을 보고 충동적으로 연성한 글입니다. 정말 너무너무 예쁘고 포근한 두 사람이 좋아요.

 +허락받고 놜님 그림을 모셔왔습니다!!!! (_noirnoir) 

 

by 치우타 2015. 9. 9. 17:12

 나무 판자가 발걸음에 따라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스티브는 문득 마법 같은걸로 발소리를 죽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부질없는 소망이라는 것을 알고 빠르게 머릿속에서 지웠다. 어차피 눈치챌 거라면 입구에서부터 그 낌새를 느꼈을 터. 스티브는 허리에 찬 무기와 집 안의 구조를 차분하게 되새기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오늘은 아주 중요한 날이다. 풋내기 헌터로 시작했던 스티브가 5년이 넘도록 쫓아왔던 뱀파이어 일족의 수장- 군주의 자리에 있는 자를 드디어 찾아낸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헌터 협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추가적인 지원을 받아야 했지만 스티브는 누구에게도 이 정보를 흘리지 않고 혼자 움직였다. 닉이 알면 인상을 쓰면서 규칙에 대해 하루 종일 읊어대겠지. 콜슨도 곤란한 얼굴로 그에게 주어질 벌칙에 대해 설명할 거고. 스티브는 특별히 제작된 총을 어루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했다가는 언제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곳에 와 있건만, 뇌는 제멋대로 자기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제 슬슬 집 안쪽에 다 들어왔는데. 


 "늦었네, 스티비. 나 오래 기다렸어."


 귓가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스티브는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우당탕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나가떨어지는 그를 보며 갑자기 나타난 인영이 짧게 혀를 찼다.


 "조심해. 이 집은 낡아서 언제 부서질 지 모른다고.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네 피에서는 정말 맛있는 냄새가 난단 말이야. 어둠 속에서 남자가 낮게 웃었다. 스티브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총을 겨누었다. 방심했다. 언제든 원하는 곳에서 나타날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잊어버린 것도 아니건만, 평소보다 더 헐렁한 마음가짐으로 와 버리다니. 전부 저 남자 때문이었다. 스티브는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나타나는 게 문제라는 생각은 안 하나?"

 "오, 뱀파이어에게 지금 도리를 논하는 거야? 스티비. 귀엽기는."

 "귀엽다고 하지 마."

 "그럼 섹시하다는 건 어때?"

 "토니!"


 아, 드디어 이름을 불러 주는군. 토니가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왔다. 스티브의 총이 정확하게 심장을 겨누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태도에 오히려 스티브가 긴장하며 몸을 굳혔다. 


 "스티비, 난 너를 해치지 않아. 알고 있잖아."

 "내가 널 죽일 거라고 해도?"


 토니가 다시 기분 좋은 듯 웃었다. 그는 일부러 달빛이 비추는 곳으로 움직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금방이라도 어둠 속에 녹아들 것만 같은 검은색의 연미복, 갈색의 머리칼과 반짝이는 그린 헤이즐넛 눈동자. 창백한 피부는 달빛에 반사되어 오히려 생기가 있어 보였다. 스티브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금방이라도 쏠 것처럼 총에 손가락을 걸었다. 토니의 눈이 아주 잠깐이지만 금빛으로 번쩍거렸다.


 "영생을 살아본 적이 있어?"

 ".........."

 "스티브, 5백년 정도를 살다 보면... 누군가 내 목숨을 끝장내는 상상을 하게 되거든. 물론 당시엔 우리 일족이 워낙 개판이라서 그런 생각은 꿈도 못 꿨지만, 어쨌거나. 지저분한 일도 처리했고 인간을 죽이는 놈들도 다 잡아다 처형한 지금은.. 난 당장에라도 죽고 싶어."


 특히 너처럼 섹시하고 잘 생긴 헌터가 그렇게 해준다면 금상첨화겠지. 토니가 다시 웃었다. 


 "오늘은 사냥의 밤, 만월이지. 십년 전부터 내 후계자도 정해 뒀고, 걔도 나처럼 사람 죽여가며 피 마시는거 싫어하는 애라 괜찮을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사정없이 은 탄환을 쏴도 좋아. 스티브. 속삭이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달콤해서,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더 확실하려면 나무로 심장에 말뚝을 박아야 하겠지만.. 너무 끔찍하겠지? 토니는 품을 뒤적여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 물건의 실체에 놀란 것은 스티브 쪽이었다.


 "넌 착하니까, 이건 내가 직접 할게.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돼."


 바로 여기에. 토니는 총구를 자신의 심장에 가져다 대었다. 스티브는 흠칫하며 고리에서 손가락을 뺐지만 총을 완전히 치우지는 않았다. 상대는 뱀파이어 군주였다. 가장 오래되고, 순혈 중에서도 당해낼 자가 없으며, 사람을 죽이지 않는- 별종 뱀파이어. 스티브는 가만히 토니를 내려다보았다. 토니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생의 끝을 말하며 이렇게 웃을 수 있다니. 감히 내 앞에서. 나에게. 스티브는 으득 소리가 날 정도로 어금니를 사려물었다.


 ".......싫어."

 "스티브?"

 "당신이, 날 살려냈잖아. 당신이 나를 키웠잖아. 날 헌터로 만들었잖아! 그래놓고 이젠 죽이라고? 아무런 설명도, 말도,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으면서! 사랑한다고 했잖아. 내 옆에 있을 거라고 했잖아!"

 ".....스티브..."


 총을 아무렇게나 구석에 집어던진 스티브는 눈 앞의 토니를 품에 억지로 잡아당겨 으스러지도록 끌어안았다. 어차피 이 정도로는 아픔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정작 토니는 미약하게 신음소리를 냈지만 스티브의 팔에 더 힘이 들어가게 했을 뿐이었다. 


 내가 당신을 사냥했으니까, 이제 나한테 줘. 죽을 거라면 그 목숨은 내 거야. 


 토니의 목줄기에 자신의 피가 든 주사기를 꽂아 넣으며 스티브가 속삭였다. 송곳니를 통해 마시는 피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혈관에 파고 들어오는 피냄새에 토니가 짧게 고통어린 목소리를 냈다. 스티브, 스티브. 애처로운 부름이 몇 번 이어지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스티브는 품 안에 늘어진 몸을 고쳐 안았다. 그들에게 남겨진 밤은 아주 길었다.


by 치우타 2015. 7. 18. 22:41

 토니는 오늘도 살금살금 트레이닝 룸에 찾아왔다. 스티브는 마침 어떤 쉴드 요원과 스파링 중이었고(저런. 오늘 전신근육통 정도는 오겠구만. 토니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했다), 다들 제 일에 바빠서 토니를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토니는 지금 후드를 뒤집어쓰고 모자에 짙은 선글라스, 수염까지 감춘 채 목에는 방문자 카드를 걸고 있어서 나타샤 정도의 눈썰미가 아니면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었다. 


 스티브는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상대를 천천히 코너로 몰고 있었다. 캡틴을 상대하고 있다는 고양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친 자신감인지, 상대인 쉴드 요원은 순간 크게 헛스윙을 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스티브는 상대를 넉다운 시켰다. 링 위에 널브러진 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면서 스티브는 간단히 지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본 자세를 잡아 보이면서 팽팽하게 늘어난 흰 티셔츠에 착 붙는 회색 트레이닝 바지가 지나치게 섹시한 나머지 토니는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노친네, 운동하면서 저렇게 섹시할 필요가 있나? 운동하던 몇몇 여성 쉴드 요원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스티브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트레이닝룸 없애버릴까봐. 토니는 아주 잠깐 비이성적인 생각을 떠올렸으나 곧 고개를 저으며 날려버렸다.


 스티브는 이제 요원과 나란히 서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다부진 어깨, 넓은 등, 탄탄한 상체를 따라 내려오면 날렵하게 들어간 허리 라인이 보이고(토니가 아주 좋아하는 부분이다) 균형이 잡힌 엉덩이에 굵은 허벅지까지.. 토니는 낮게 탄식하며 손바닥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90살이나 먹은 노인네가 너무 섹시하잖아. 이건 솔직히 미국 법으로 좀 어떻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토니는 또 다시 비이성적인 생각을 하나 머리에 띄웠다. 전투를 할 때나, 저렇게 요원들 혹은 새로운 어벤져스 멤버들을 가르칠 때. 스티브의 등은 굳건하고 아주 든든해 보였다. 섹시하기도 하고. 아침에 자고 일어날 때라던지 같이 샤워할 땐 웬수같이 긁어대기도 하지만- 토니는 거기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게 다 내 애인이 너무 잘나서 그래. 


 저 등이 때론 세상의 모든 시름을 짊어진 것마냥 축 늘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토니는 안다. 눈이 많이 올 때, 그래서 지키지 못한 사람들과 약속을 떠올릴 때. 그는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로서 마치 이 드넓은 곳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굴곤 했다. 그럴 때면 토니는 말없이 다가가 그의 등을 안아주었다.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혹은, 말을 건넸을 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서. 스티브가 그를 거절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토니는 늘 가능성을 생각했다. 당신은 너무 똑똑해서 탈이야, 토니. 언젠가 토니의 코를 가볍게 꼬집으며 스티브는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보는 당신의 등은 언제나 굳건해서,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을 것처럼 느껴져.


 토니는 그게 아주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타당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스티브 로저스였다. 캡틴 아메리카였다. 살아있는 전설, 미국의 영웅, 토니 스타크의 연인인 것이다. 그게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손을 잡아 주는 게 바로 내 역할이지. 토니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쉴드 여성 요원들이 머뭇거리며 스티브에게 다가서려는 걸 본 참이었다. 


 미안하지만 아가씨들, 이 남자는 내 거라서. 아니, 사실 미안하지도 않아. 당연한 거지. 토니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후드까지 벗어제끼고 스티브에게 다가갔다. 금방 그는 놀라면서도 환하게 웃어줄 것이다. 짜릿한 순간을 기대하며 토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스티브. 금발의 남자가 돌아서며 햇살처럼 밝게 미소지었다. 

by 치우타 2015. 7. 11. 21:35

 토니는 랩실에서 한창 아머의 수리와 테스트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운동을 끝낸 다음 샤워까지 하고 올라온 스티브는 아는 체를 하려다가 자비스에게 미리 언질을 주곤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토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동그란 뒤통수, 자그마한 (평균치거든! 토니는 늘 투덜거리며 스티브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어깨와 곧게 뻗은 등. 유려한 척추 라인을 따라 내려오면 보이는 허리와 섹시한 엉덩이. 손에 꽉 잡히는 그 탄력적인 감각이란 언제고 스티브를 흥분하게 만들곤 했다. 토니는 어디서 보아도 완벽하고 멋진 남자였지만, 이렇게 프라이빗한 상황에서 몰래 훔쳐보는 뒷모습이란, 아.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작 그 장본인은 그 표현을 듣는 순간 팔을 문지르며 닭살 돋는다고 쫑알거릴게 뻔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아서 스티브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 토니. 

 내가 얼마나 당신을 욕망하는지.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에게 집착하는지. 당신을... 품 안에 가두고 싶은지. 

 아마 평생 모르겠지, 


 캡틴 아메리카라고 불리는 남자라곤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마음이 소용돌이친다는 걸 당신은 알까. 아주 가끔, 멤버들 몰래 윙크를 보내거나 대놓고 손 키스를 날릴 때. 느닷없이 키스를 해올 때. 개구쟁이처럼, 숨길 수 없는 애정으로 가득 찬 갈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때. 그런 당신을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을. 스티브 로저스가, 토니 스타크에게 미쳐 있다는 것을.


 그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스티브는 수건을 목에 걸치고 일부러 발자국 소리를 내어 걸어갔다. 고글을 쓰고 납땜질에 몰두하던 토니가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스티브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스티브! 운동 끝났어?" 드라이버를 내려놓고 먼저 다가서는 모습마저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스티브는 기쁘게 미소지었다. 당신의 등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거야. 내 사랑. 

 

by 치우타 2015. 7. 1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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