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스티브는 겨울을 딱히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다. 타고난 지병이 많았던 탓에 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금세 건강이 나빠지는 건 힘들고 괴로웠지만 어머니가 해 주는 따뜻한 스프를 먹는다거나, 작은 난로에서 타고 있는 장작의 아름다운 불꽃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모든 것은 그가 전쟁을 겪으면서부터 크게 바뀌고 말았다. 스티브는 겨울의 추위를, 그리고 눈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날이 흐리군."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엔 눈이 온대요."

 

 훈련 계획을 정리하면서 걸음을 옮기던 스티브는 순간 발을 멈췄지만 아주 찰나였던지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화제는 자연스레 뉴 어벤져스의 현재 성취도와 앞으로 해야 할 일들로 넘어갈 수 있었다. 

 

70년간 잠들어 있다가 깨어난 이후 스티브에게 있어서 눈이란 상실이었다. 함께 자라온 친우를 눈 속에서 잃었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하이드라가 이용하던 테서렉트를 싣고 차가운 빙하 속에 처박혔다가 깨어나 보니 7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사랑하던 여인도, 친우도, 동료도 없는 세계에 깨어난 스티브는 신체가 강화됐음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추위를 느꼈다. 눈이 내릴 때면 밖에 나가지 않았고 가능한한 일에 매달리며 차갑게 가라앉는 마음을 애써 무시했다.

 

[오늘 몇 시에 끝나?] 

 

 스티브의 입가에 슬몃 미소가 걸렸다. 그는 어색한 손놀림으로 답장했다. [6시쯤은 끝날 것 같네] 번개같이 다음 메시지가 날아왔다. [왠일로 이렇게 빨리 보내? 연습 좀 했어?] 토니가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걸 상상하니 웃음이 더욱 새어나왔다. 옆에서 나타샤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은. 자네 회의 중 아닌가?]

[뭐 어때, 지루한 탁상공론 중이야. 6시라고? OK.]

 

 스티브가 가벼운 타박을 하려던 것을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토니의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어차피 훈련을 시작할 시간이 된 데다가 둘의 사이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나타샤가 삐딱한 자세로 팔짱을 끼고 서 있었기에 스티브는 별 말 없이 그냥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다음, 복장을 갖추어 훈련에 임했다.

 

 

 훈련이 막 끝나갈 즈음, 밖에서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했다. 아, 이 정도면 쌓이진 않겠는걸. 샘을 선두로 각자 눈에 대해 이것저것 대화를 나누는 동안 스티브는 수트와 헬멧을 가지런히 정리했다. 일기예보가 빗나갔다면 좋았을 텐데. 그는 창 밖을 보고 싶지 않았다. 토니와의 메시지 내용은 까맣게 잊은 채 오늘은 여기에서 묵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때-

 

[나 좀 봐줘, 스티브.]

 

토니의 메시지와 함께 등 뒤에서 멤버들이 웅성거리는 걸 느끼고 스티브는 무심코 몸을 돌려 창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천천히 떨어지는 눈송이 사이로 선글라스를 머리에 낀 채 손을 흔드는 토니가 서 있었다. 스티브는 아직 다른 사람들이 남아있다는 것도 잊었는지 헐레벌떡 토니가 있는 바깥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넘어지겠어, 솔져. 나 어디 도망 안 가."

 "토니, 여긴 어떻게..."

 "흠. 글쎄.. 눈이 데려다 줬지 뭐."

 

당신 보고싶어서 끝나자마자 달려왔지. 당장 나한테 키스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뒤에 로디도 있거든. 빨리 정리하고 나와. 토니가 씩 웃으면서 속닥거리고는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검은 유리알 너머로 가려진 총명하고 반짝거리는 갈색 눈동자가 아쉬웠다. 그는 자꾸만 뻗어나가려는 손을 애써 억누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눈이 데려다 줬지.

 

생각없이 던진 말인지, 토니가 스티브의 마음까지 읽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지 상관없었다.

...어쩌면, 아주 조금은 눈이 좋아질 것도 같다고 생각하며 스티브는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by 치우타 2016. 1. 28. 1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