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dan/Shepard] Fix you 1

2015. 8. 22.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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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퍼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조종간과 비슷한 손잡이를 붙잡았을 때, 셰퍼드는 그의 온 몸이 그대로 찢겨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카탈리스트는 그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우주를, 지구를, 동료들을, 케이든을- 살릴 수 있다면 그는 기꺼이 제 목숨을 내어줄 각오가 되어 있었으나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카탈리스트 앞에 선 최초의 유기체로서,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으로서 존 셰퍼드는 끝까지 맞서 싸웠다. 그의 의지가 온 리퍼들에게 전달되고, 카탈리스트에 녹아든 다음 셰퍼드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총상을 입은 부위가 뜨끔하니 아파왔다.


 [놀라워. 살아남을 수 있다니. 넌 정말 우리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존재군.]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카탈리스트(그의 모습은 셰퍼드와 상당히 흡사했다)는 확연히 어조가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셰퍼드는 눈을 찡그리며 그를 올려다 보았다.


 [통제는 성공했어. 리퍼는 수확을 멈추고, 우리는 네 의지대로 유기체와 함께 공존해 갈 거다.]

 "그거... 다행이군. 두 번은.. 못할 것 같거든."


 셰퍼드는 힘없이 웃으며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피가 울컥 흘러내리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다리는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채로 움직일 생각이 없는 것 같았으나 그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일어나. 걸어. 돌아가. 만신창이가 된 몸은 뇌의 명령에 최선을 다해 복종하려고 노력했다. 저 쪽으로 가면 셔틀이 남아 있을거야. 카탈리스트가 친절히 방향을 일러 주었다. 셰퍼드는 고맙다는 말 조차 내뱉을 힘이 없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반 시체 상태로 비척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복도. 복도. 기나긴 복도는 끝을 모르는 것처럼 그의 앞에 펼쳐져 있었다. 분명 시타델은 리퍼에게 수확되고 카탈리스트가 변형시키면서 구조가 완전히 바뀌었으나 이 빌어먹을 복도 만큼은 그대로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셰퍼드는 감겨오는 눈과, 실 끊어진 인형처럼 꺾이기 일보직전인 다리를 애써 추스렸다. 무릎이 덜덜 떨려왔다. 조금만 더. 희미하게 붉은 색 셔틀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게 환영이라면 정말 끝장이겠지. 셰퍼드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확신을 가지고 그저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스럽게도 셔틀은 정말 남아 있었다. 손으로 셔틀을 더듬어 문을 열고 본능적으로 계기판을 조작한 다음 그는 의자에 말 그대로 완전히 널브러졌다. 멀리서 제 역할을 다 한 시타델이 서서히 닫히는 게 보였다. 아슬아슬하게 나갈 수 있겠군. 셔틀은 최고 속도로 발진하며 뛰쳐 날아갔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셔틀 안에서 셰퍼드는 속절없이 몰려오는 고통에 낮게 신음했다.


 케이든.


 셰퍼드는 눈을 감기 전 속삭이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모든 게 완전히 깜깜해졌다.




 시타델에서 튀어나온 붉은 셔틀은 운 좋게도 다시 근처를 확인하러 왔던 해켓 제독의 함선에 의해 구조될 수 있었다. 그들은 너덜너덜해진 셔틀에 한 번 놀라고, 그 안에서 거의 죽기 직전인 셰퍼드를 발견하고 두 번째로 놀랐으며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을 거라는 메디베이 닥터의 말에 세 번째로 놀랐다. 해켓은 노르망디에 연락해서 셰퍼드가 살아있음을 알렸고, 깊은 슬픔에 빠져 있던 크루들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이미 최고 속도를 뽑아내고 있는 조커에게 달려가 더 빨리 갈 수는 없냐고 닦달해서 그가 벌컥 화내도록 만들었다. 나가요! 전부 다! 조커의 신경질적인 외침에 자리에서 일어날 시간조차 아까운 그를 대신해서 EDI가 케이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을 전투정보실로 내쫓았다.


 "조커."

 "오 젠장, 케이든!"

 "그게 아니라... ....고마워."

 

 조커는 뭐라고 더 말하기 위해 입을 벌렸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툭 던졌다. "거기라도 앉아요. 좀 흔들릴 거니까." 크루시블이 발동한 덕택에 리퍼와의 전쟁은 종지부를 찍었지만 매스 릴레이가 파괴된 덕분에 드라이브 코어를 이용한 이동에도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노르망디 호는 셰퍼드가 시타델에서 살아 나올거라고 믿으며 마지막까지 기다렸던 덕분에 그다지 멀지 않은 항성계의 한 행성으로 불시착했고 곧 헤켓 제독의 함선과 만날 예정이었다. 케이든은 두 손을 꽉 쥐어 이마에 갖다 대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사랑해. 언제나.'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윙윙 울렸다. 나한테 마지막 인사는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케이든은 셰퍼드의 턱이나 명치를 후려갈기는 상상을 하다가 그만두었다. 어떤 것도 그의 얼굴을 직접 보기 전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기는 노르망디. 승선을 요청합니다. 조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리는 걸 들으며 케이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메디베이는 함선의 중심부에 있었다. 케이든은 그곳으로 향하는 내내 발걸음이 꼬여서 두 세번쯤 넘어질 뻔 했으나 다행히 함선 내의 모든 이들은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느라 그의 민망한 꼴을 목격할 수 없었다. 노르망디의 모든 크루들은 저마다 셰퍼드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어했지만 케이든에게 선두를 양보했다. 차크워스 박사는 케이든이 보고하는 대로 셰퍼드를 노르망디 호에 옮길 수 있도록 바쁘게 움직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치프 닥터가 그를 맞아 주었다.


 "그는.. 그는 어떻습니까?"

 "출혈이 심했습니다. 부분 골절도 많았고, 부서진 수트에 찔려 위험했던 상처도 여럿 있었죠. 강한 정신력이 그를 살린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군의관 노릇을 했지만, 이런 환자는 처음이에요."


 소문보다 더 지독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치프 닥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케이든이 셰퍼드와 단 둘이 있을 수 있도록 메디베이를 나서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한두시간 정도 안정을 취하고 나면 옯겨도 문제 없을 겁니다." 문이 닫혔다. 케이든은 천천히 침상에 누워있는 셰퍼드에게 다가갔다. 가벼운 상처는 치료되었는지 얼굴에는 멍자국만 군데군데 남아 있었다. 손을 들어 코와 입가에 가져다 대자 얕지만 미지근한 숨이 손가락 끝에 닿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케이든은 크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셰퍼드. ...셰퍼드. 그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구었다. 살아 있었다. 살아서, 돌아와 주었다. 이 곳으로. 자신이 기다리는 곳으로. 


케이든은 잠시 동안 제멋대로 흘러내리는 눈물 방울을 내버려 두었다.

 


 셰퍼드는 눈을 떴다. 주변이 온통 깜깜했다. 설마 내가 죽은 건가?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키다가 전신에 찌르르하니 퍼지는 격통에 끄응, 하는 소리를 뱉었다. 시야가 닿는 근처에 새까만 우주와 그 사이로 별빛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셰퍼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아름다운 우주가 보이는 넓은 창. 긴 의자. 테이블. 책장. 노르망디 호의 좌현 관측실이었다. 케이든이 자주 머무르는. 케이든은 어디 있지? 셰퍼드는 두리번거리다가 이쪽을 보고 있는 젖은 눈동자와 마주쳤다.


 "일어났습니까?"

 "....케이든." 

 "사흘 동안 잠들어 있었어요. 미동도 않더군요. 숨 쉬는거 빼고는 거의 시체나 다름 없었죠."

 "그렇게나 오래?"

 "조금만 늦었더라도 죽었을 거라고, 해켓 제독 함선의 치프 닥터가 말했습니다."

 "운이 좋았군."


 덤덤한 어조로 말하는 셰퍼드를 보고 케이든은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마치 남의 일인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을 뻔했는데도. 며칠 동안 꾹꾹 눌러담았던 감정이 팍 터져나오려는 것이 느껴졌다. 


 "겨우 그것 뿐입니까?"

 "...뭐라고?"

 "죽을 뻔했다고요. 당신이. 그게 아무렇지도 않아요?"

 "케이든, 나는.."

 "당신이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케이든의 어조가 점차 격해지려는 찰나, 셰퍼드는 두 팔을 뻗어 그를 끌어당겨 안았다. "널 다시 보고 싶었어." 셰퍼드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 끝에 약간의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러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 돌아왔어. 그러니까, 화낼 시간에 안아줬으면 좋겠는데." 셰퍼드는 애써 여유를 되찾는 척하며 덧붙였다. 네가 날 다시 한 번 안을 수 있다면 어떤 불구덩이라도 헤쳐 나올 거라고 했잖아. 


아, 당신은 그것도 잊지 않았구나. 


케이든은 셰퍼드의 등을 강하게 마주 안으며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다 낫고 나면 두고 보시죠. 반쯤 협박과 애정이 뒤섞인 말에 셰퍼드가 푸스스 웃었다. 살살 해줘. 이번엔 케이든도 진심으로 웃었다. 



by 치우타 2015. 8. 13. 22:01

 리퍼와의 기나긴 싸움이 끝난 후, 셰퍼드는 시타델 카운슬에 휴가계(라고는 해도 거의 통보였지만)를 내고 케이든과 함께 지구로 돌아왔다. 얼라이언스에서는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고 셰퍼드가 그걸 해결한 과정이라던가 향후 어떻게 될지에 대해 알고 싶어했지만, 그는 과감하게 노르망디의 비상 라인을 제외한 모든 통신을 끊어버렸고 이번엔 케이든도 말리지 않았다. 이 휴가를 떠나기 전에 셰퍼드가 했던 한 마디의 말 때문이었다.


 "이번엔 내가 원하는 대로 해줘."

 "갑자기 듣기도 전에 불안해지는데요."

 "이런. 그렇게 신뢰가 없나?"


 셰퍼드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케이든은 아직 붕대를 온 몸에 칭칭 감고 있는 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벌써 두 번이나 죽을 뻔 했잖아요. 그 중에 한 번은 진짜 죽었었고. 셰퍼드는 끄응, 하는 침음성을 낼 뿐 거기에 별다른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겠는가. 처음부터 죽자고 마음먹었던 적은 없었지만 지난 임무들은 하나같이 목숨을 내던질 각오로 임하지 않으면 도저히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무겁고 깊은 무엇이었다. 케이든 또한 그걸 알고 있기에 셰퍼드에게 그 이상의 타박이나 원망을 던지지 않았다. 병원에서의 일주일은 그렇게 흘러갔고 퇴원하는 날 셰퍼드는 휴가계를 던지고 바로 이렇게 잠적해 버렸다.



 "와, 경치 끝내주네."

 "탁 트여서 좋기는 하군요."


 제법 감격한 얼굴로 호텔 방에서 바닷가를 내려다보는 셰퍼드와 달리, 케이든은 별 감흥이 없는 얼굴이었다. 여기 와본 적 있어? 셰퍼드는 괜히 심술이 나서 케이든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안 어울리게 간지러움을 타는(특히 허리는 쥐약이었다) 그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몸을 꺾었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이랑 와봤던 것 같아요. 희미해서 잘 기억나진 않지만.."

 "하와이에 왔단 말이야? 집이 바닷가에 있었다면서."

 "일단 그래도 유명하잖아요."

 "관광지 느낌으로 왔었다는 소리로 들리는걸."


 셰퍼드는 이제 반쯤은 대놓고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래요? 케이든이 난처하게 웃었다. 셰퍼드는 군인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때엔 늘 침착하고 냉정을 유지하는 편이지만 자신과 둘이 있을 때면 어린애처럼 굴곤 했다. 처음엔 그게 적응이 안 되서 무척 어색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으나 이젠 어떤 타이밍에 달래고 어떤 타이밍에 받아쳐줘야 하는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셰퍼드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난간에 등을 기대어 섰다.


 "내가 여기 오자고 한 이유가 뭔지 아나? 알렌코."

 "갑자기 또 그렇게... 모르겠는데요. 여행? 휴양?"

 "아. 역시 전혀 눈치채지 못했군. 실망이야.. 상처받았어."


 그는 어울리지 않게도 시무룩한 팔자 눈썹을 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케이든은 이번에야말로 당황해서 셰퍼드에게 다가갔다. 왜요? 대체 뭡니까? 셰퍼드는 케이든이 완전히 방심하기를 기다렸다가, 두 팔을 뻗어 그를 품 안에 가두어 버렸다. 존! 이번엔 케이든 쪽이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탄탄하게 감겨드는 몸이 기분 좋았다.


 "우린 말이야. 허니문을 온 거라고."

 "......에?"

 "Honeymoon. 이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아니, 그야 당연히, 그렇지만 아직..."


 반지는 끼고 있으니 식은 나중에 올리는 걸로 하자고. 셰퍼드가 개구쟁이처럼 씩 미소를 짓자, 불편한 듯 몸을 꿈지럭거리던 케이든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당신은 이럴 때 보면 정말 제멋대로야. 투덜거리는 말 속엔 불만보다는 애정이 녹아 있었다. 그럼 이제 바닷가 구경 갈까? 여기 오면 해보고 싶었던 것도 있어. 



 "그래서 해보고 싶었다는 게...."


 겨우 이런 촌스러운 하와이안 티셔츠를 입고 해변을 산책하는 거였어요? 케이든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텐션이 올라간 셰퍼드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바야흐로 여기가 하와이다! 난 관광객이다! 하고 외치는 것 같은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에 약간 무릎 위로 올라오는 반바지를 입고 모래사장을 거닐고 있었다. 


 "뭐 어때. 커플 티잖아. 이래야 오히려 사람들이 신경을 안 써."

 "근데, 셰퍼드.. 그 머리에 그 옷, 엄청 수상해 보여요."

 "나같이 순박한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셰퍼드는 일부러 양쪽 입꼬리를 끌어올려 최대한 어색하게 웃어 보였고, 케이든은 그 얼굴에 그만 폭소를 터트렸다. 당신 그건 임무할 때 겁주는 용으로만 써요. 무서우니까. 웃음기 어린 케이든의 말에 셰퍼드는 짐짓 기분이 상한 것처럼 이마를 찌푸렸지만 뭐라고 말하는 대신 부드러운 동작으로 케이든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금방 거리가 좁혀지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고,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를 천천히 포옹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술이 맞닿았다. 


by 치우타 2015. 8. 3. 23:16

 우주를 구한 영웅에게도 휴식은 필요하지. 셰퍼드는 부상에서 회복되자마자 약간의 휴가를 얻었다. 하루 내내 병상을 지키던 케이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해켓 제독이 직접 방문해서 그의 상태를 체크하더니, 2주 정도 마음대로 쉬고 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늦진 말라는 당부도 짧게 붙인 제독은 무심한 걸음으로 금방 사라져 버렸다. 케이든이 마실 걸 사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셰퍼드는 멍한 얼굴로 병실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셰퍼드? 왜 그래요?"

 "아, 어... 해켓 제독이 왔다 갔어."

 "제독님께서..? 무슨 일로요."


 조건반사적으로 얼굴을 굳히며 자세까지 바로 하는 케이든의 모습에 그제야 셰퍼드는 피식 웃었다. 


 "별 거 아냐. 곧 퇴원이라고 했더니 2주 정도 마음대로 쉬고 오라더군."

 "....음, 그거 휴가라는 뜻이죠?"

 "그렇지. 포상 휴가치고는 너무 짧지만."

 "이거 시타델 카운슬에도 알려야 되는 걸까요?"

 "그건 걱정 말라던데."


 셰퍼드는 팔을 위로 쭉 뻗으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해켓 제독에게는 곧 퇴원이라는 말만 했지만 사실 내일 오전이면 여기를 나갈 계획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게 체질에 안 맞기도 했지만 워낙 케이든이 엄격하게 그의 상태를 관리한 덕분에 평소보다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셰퍼드는 몇 번 투덜거렸지만 그럴 때마다 케이든의 '커맨더' 라는 부름에 두 손을 들며 항복을 표시했다.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군. 왠지-"

 "섭섭하다고 하시면 화낼 겁니다."

 "....나 모르는 새에 독심술이라도 익혔나? 요즘 좀 무서운데."


 아니면 당신이 알기 쉬운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죠. 케이든이 부러 침대 시트를 팡팡 털었고 셰퍼드는 재채기를 하지 않기 위해 잽싸게 손으로 코를 쥐었다. 우주와는 달리 지구의 군 병원은, 그것도 셰퍼드가 묵고 있는 병실은 특 VIP급 같은 것으로 상당히 넓고 조용했으며 조금 쓸데없이 호화로웠다. 그래서 침대 또한 우주의 시설들처럼 딱딱한 철제가 아니라 최고급 매트리스에 시트, 푹신한 베개 등을 갖추고 있었다. 케이든이 잠을 청한 간병인용 (방문자용) 침대도 싱글베드 급이라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으리라. 


 슬슬 잘 시간이 다가오자(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환자니까 빨리 자요, 라고 케이든이 엄하게 말했다) 셰퍼드는 갑자기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였다. 케이든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는 것 같았다. 답지 않게 왜 저러시지. 케이든은 모르는 척 정리된 침대쪽으로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고 했다. 셰퍼드가 그의 팔목을 낚아채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왜 그래요?"

 "오늘은 여기서 같이 자자."

 "여기?"

 "내 침대."


 셰퍼드가 다른 손으로 옆자리를 토닥였다. 아까도 말했듯이 침대는 쓸데없이 고급이었기 때문에 성인 남자 두명이 누워도 충분히 공간이 남을 정도로 컸다. 그것과 별개로 케이든은 입을 벌리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왜 그래? 뭐가 문제야? 셰퍼드는 아주 태연한 얼굴이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아시죠?"

 "병원이지."

 "군 병원입니다."

 "뭐.. 그렇지. 그래서?"

 "그래서, 라뇨! 군 병원에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케이든은 얼굴을 붉히며 뒷말을 얼버무렸다. 젠장. 말을 꺼낸건 저 사람인데 왜 내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지? 정작 셰퍼드는 도대체 그게 왜 문제냐는 식으로 말을 던져왔다.


 "별로 다른 생각 한 거 없어. 그냥 같이... 잠깐, 설마. 오, 알렌코."

 "좋은 말 할때 거기서 멈추시죠."

 "내가 물론 종종 생각없이 키스하거나 포옹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병원 침대에서 섹스하자고 달려들진 않아."

 "그런 생각 한 거 아닙니다."


 귀까지 빨개졌으면서. 셰퍼드는 굳이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대신 케이든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인데 하루 쯤 같이 자도 되잖아. 간호사들이 들릴 일도 없을 거야. 셰퍼드는 조근조근 논리적으로 그를 설득했고 케이든은 그게 어디까지나 들키지 않았을 경우에나 해당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그 말에 넘어갈 것을 알았다. 알았으니까 옆으로 좀 가요. 케이든은 괜히 셰퍼드를 밀면서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셰퍼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소리 죽여 웃으며 시트를 높게 들어주었다. 이윽고, 병실의 불이 꺼졌다.


 잘 자. 잘 자요, 셰퍼드.


 마주 안은 체온이 따스했다.

by 치우타 2015. 7. 2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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