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구한 영웅에게도 휴식은 필요하지. 셰퍼드는 부상에서 회복되자마자 약간의 휴가를 얻었다. 하루 내내 병상을 지키던 케이든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해켓 제독이 직접 방문해서 그의 상태를 체크하더니, 2주 정도 마음대로 쉬고 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 너무 늦진 말라는 당부도 짧게 붙인 제독은 무심한 걸음으로 금방 사라져 버렸다. 케이든이 마실 걸 사가지고 돌아올 때까지 셰퍼드는 멍한 얼굴로 병실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셰퍼드? 왜 그래요?"

 "아, 어... 해켓 제독이 왔다 갔어."

 "제독님께서..? 무슨 일로요."


 조건반사적으로 얼굴을 굳히며 자세까지 바로 하는 케이든의 모습에 그제야 셰퍼드는 피식 웃었다. 


 "별 거 아냐. 곧 퇴원이라고 했더니 2주 정도 마음대로 쉬고 오라더군."

 "....음, 그거 휴가라는 뜻이죠?"

 "그렇지. 포상 휴가치고는 너무 짧지만."

 "이거 시타델 카운슬에도 알려야 되는 걸까요?"

 "그건 걱정 말라던데."


 셰퍼드는 팔을 위로 쭉 뻗으며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해켓 제독에게는 곧 퇴원이라는 말만 했지만 사실 내일 오전이면 여기를 나갈 계획이었다. 병상에 누워 있는게 체질에 안 맞기도 했지만 워낙 케이든이 엄격하게 그의 상태를 관리한 덕분에 평소보다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셰퍼드는 몇 번 투덜거렸지만 그럴 때마다 케이든의 '커맨더' 라는 부름에 두 손을 들며 항복을 표시했다. 


 "여기도 오늘이 마지막이군. 왠지-"

 "섭섭하다고 하시면 화낼 겁니다."

 "....나 모르는 새에 독심술이라도 익혔나? 요즘 좀 무서운데."


 아니면 당신이 알기 쉬운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르죠. 케이든이 부러 침대 시트를 팡팡 털었고 셰퍼드는 재채기를 하지 않기 위해 잽싸게 손으로 코를 쥐었다. 우주와는 달리 지구의 군 병원은, 그것도 셰퍼드가 묵고 있는 병실은 특 VIP급 같은 것으로 상당히 넓고 조용했으며 조금 쓸데없이 호화로웠다. 그래서 침대 또한 우주의 시설들처럼 딱딱한 철제가 아니라 최고급 매트리스에 시트, 푹신한 베개 등을 갖추고 있었다. 케이든이 잠을 청한 간병인용 (방문자용) 침대도 싱글베드 급이라면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으리라. 


 슬슬 잘 시간이 다가오자(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환자니까 빨리 자요, 라고 케이든이 엄하게 말했다) 셰퍼드는 갑자기 안절부절한 모습을 보였다. 케이든에게 뭔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갈등하는 것 같았다. 답지 않게 왜 저러시지. 케이든은 모르는 척 정리된 침대쪽으로 걸어갔다. 아니, 걸어가려고 했다. 셰퍼드가 그의 팔목을 낚아채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왜 그래요?"

 "오늘은 여기서 같이 자자."

 "여기?"

 "내 침대."


 셰퍼드가 다른 손으로 옆자리를 토닥였다. 아까도 말했듯이 침대는 쓸데없이 고급이었기 때문에 성인 남자 두명이 누워도 충분히 공간이 남을 정도로 컸다. 그것과 별개로 케이든은 입을 벌리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해 보였다. 왜 그래? 뭐가 문제야? 셰퍼드는 아주 태연한 얼굴이었다.


 "여기가 어딘지는 아시죠?"

 "병원이지."

 "군 병원입니다."

 "뭐.. 그렇지. 그래서?"

 "그래서, 라뇨! 군 병원에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케이든은 얼굴을 붉히며 뒷말을 얼버무렸다. 젠장. 말을 꺼낸건 저 사람인데 왜 내가 부끄러워하고 있는 거지? 정작 셰퍼드는 도대체 그게 왜 문제냐는 식으로 말을 던져왔다.


 "별로 다른 생각 한 거 없어. 그냥 같이... 잠깐, 설마. 오, 알렌코."

 "좋은 말 할때 거기서 멈추시죠."

 "내가 물론 종종 생각없이 키스하거나 포옹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병원 침대에서 섹스하자고 달려들진 않아."

 "그런 생각 한 거 아닙니다."


 귀까지 빨개졌으면서. 셰퍼드는 굳이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고 대신 케이든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어차피 오늘이 마지막인데 하루 쯤 같이 자도 되잖아. 간호사들이 들릴 일도 없을 거야. 셰퍼드는 조근조근 논리적으로 그를 설득했고 케이든은 그게 어디까지나 들키지 않았을 경우에나 해당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이 그 말에 넘어갈 것을 알았다. 알았으니까 옆으로 좀 가요. 케이든은 괜히 셰퍼드를 밀면서 침대 안으로 들어왔다. 셰퍼드는 뭐가 그리 좋은지 소리 죽여 웃으며 시트를 높게 들어주었다. 이윽고, 병실의 불이 꺼졌다.


 잘 자. 잘 자요, 셰퍼드.


 마주 안은 체온이 따스했다.

by 치우타 2015. 7. 20.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