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어릴 때부터 이미 '풍족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물론 그가 정말로 간절히 바라던 평범한 행복들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토니의 작은 투정이나 불평을 들을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너무 욕심이 많다고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토니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래서, 이게 네 로망이라고?"

 "...너무 유치한가?"


 토니는 얼굴이 적당히 가려지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에게는 좀 넉넉한 품의 자켓에 셔츠, 청바지, 운동화라는 시시한 옷차림을 한 채 불만스러운 얼굴로 다리를 흔들었다. 벤치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스티브는 안절부절하며 토니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입가에 한가득 떠오른 미소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저걸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토니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저돌적인 스티브의 고백과 적극적인 토니의 공세(라고 쓰고 지기 싫어서 되돌려주다가 코 꿰였다고 읽는다)덕분에 한 달 전부터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이었지만, 토니나 스티브나 외모든 복장이든 상당히 눈에 띄는 타입이라 학교 내에서 데이트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만 했는데 하루는 스티브가 토니에게 조심스럽게 어떤 제안을 해 왔다. 자신의 자켓을 입고 만나는 건 어떻겠냐고.


 "유치하다 못해 초등학생이 지나가다가 웃을 정도의 레벨이지."

 "으음... 역시...."

 "뭐.. 오늘은 날씨도 좋고 하니까, 저기 트럭에서 아이스크림 사 오면 봐줄게."

 "! 어떤 걸로?"


 토니의 가차없는 평가에 시무룩해서 고개를 푹 숙이던 스티브는 금방 회복해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 잘 생각해서 사와. 답을 알려주면 발전할 수 없다고, 로저스. 토니는 일부러 스티브의 성을 부르면서 윙크해 보였다. 

스티브는 바람같이 트럭 쪽을 향해 달려갔고 토니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주었다. 


 로망이라. 그것도 이런 말도 안 될 정도로 평범하고, 소박한 걸 해보고 싶다니. 바보 같이.


 하지만 토니는 스티브의 그런 점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에 자신이 잃어버린 것. 혹은, 그냥 묻어버린 것을 다시 파내어 먼지와 흙을 털어낸 다음 웃으며 내미는 듯한, 스티브의 밝은 미소나 수줍은 표정. 그런 주제에 다짜고짜 입술을 밀어붙이질 않나 사람이 울 때까지... 토니는 더 뻗어나가려던 기억의 끄트머리를 뚝 끊어냈다. 쟤랑 사귀고 나서부터 내가 아무래도 점점 이상해지는 게 틀림없어. 노려본 시선 끝에는 양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오는 스티브가 있었다.


 "뭐야?"

 "딸기맛이랑, 초코맛으로 사왔어. 하나만 먹기엔 아쉽고 또... 이걸 좋아할것 같아서."

 "....합격이야. 머리 좋네."


 아이스크림을 받아들며 토니가 피식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하게 웃는 스티브는 여전히 조금 바보 같았지만, 귀엽고, 간질간질했다. 나도 언젠가 너랑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알려 줄게. 들릴 듯 말듯 속삭이는 목소리에 스티브가 조금 더 큼직하게 미소지었다. 




by 치우타 2016. 1. 23. 2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