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오늘도 살금살금 트레이닝 룸에 찾아왔다. 스티브는 마침 어떤 쉴드 요원과 스파링 중이었고(저런. 오늘 전신근육통 정도는 오겠구만. 토니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했다), 다들 제 일에 바빠서 토니를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토니는 지금 후드를 뒤집어쓰고 모자에 짙은 선글라스, 수염까지 감춘 채 목에는 방문자 카드를 걸고 있어서 나타샤 정도의 눈썰미가 아니면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었다. 


 스티브는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상대를 천천히 코너로 몰고 있었다. 캡틴을 상대하고 있다는 고양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친 자신감인지, 상대인 쉴드 요원은 순간 크게 헛스윙을 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스티브는 상대를 넉다운 시켰다. 링 위에 널브러진 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면서 스티브는 간단히 지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본 자세를 잡아 보이면서 팽팽하게 늘어난 흰 티셔츠에 착 붙는 회색 트레이닝 바지가 지나치게 섹시한 나머지 토니는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노친네, 운동하면서 저렇게 섹시할 필요가 있나? 운동하던 몇몇 여성 쉴드 요원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스티브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트레이닝룸 없애버릴까봐. 토니는 아주 잠깐 비이성적인 생각을 떠올렸으나 곧 고개를 저으며 날려버렸다.


 스티브는 이제 요원과 나란히 서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다부진 어깨, 넓은 등, 탄탄한 상체를 따라 내려오면 날렵하게 들어간 허리 라인이 보이고(토니가 아주 좋아하는 부분이다) 균형이 잡힌 엉덩이에 굵은 허벅지까지.. 토니는 낮게 탄식하며 손바닥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90살이나 먹은 노인네가 너무 섹시하잖아. 이건 솔직히 미국 법으로 좀 어떻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토니는 또 다시 비이성적인 생각을 하나 머리에 띄웠다. 전투를 할 때나, 저렇게 요원들 혹은 새로운 어벤져스 멤버들을 가르칠 때. 스티브의 등은 굳건하고 아주 든든해 보였다. 섹시하기도 하고. 아침에 자고 일어날 때라던지 같이 샤워할 땐 웬수같이 긁어대기도 하지만- 토니는 거기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게 다 내 애인이 너무 잘나서 그래. 


 저 등이 때론 세상의 모든 시름을 짊어진 것마냥 축 늘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토니는 안다. 눈이 많이 올 때, 그래서 지키지 못한 사람들과 약속을 떠올릴 때. 그는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로서 마치 이 드넓은 곳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굴곤 했다. 그럴 때면 토니는 말없이 다가가 그의 등을 안아주었다.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혹은, 말을 건넸을 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서. 스티브가 그를 거절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토니는 늘 가능성을 생각했다. 당신은 너무 똑똑해서 탈이야, 토니. 언젠가 토니의 코를 가볍게 꼬집으며 스티브는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보는 당신의 등은 언제나 굳건해서,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을 것처럼 느껴져.


 토니는 그게 아주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타당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스티브 로저스였다. 캡틴 아메리카였다. 살아있는 전설, 미국의 영웅, 토니 스타크의 연인인 것이다. 그게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손을 잡아 주는 게 바로 내 역할이지. 토니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쉴드 여성 요원들이 머뭇거리며 스티브에게 다가서려는 걸 본 참이었다. 


 미안하지만 아가씨들, 이 남자는 내 거라서. 아니, 사실 미안하지도 않아. 당연한 거지. 토니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후드까지 벗어제끼고 스티브에게 다가갔다. 금방 그는 놀라면서도 환하게 웃어줄 것이다. 짜릿한 순간을 기대하며 토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스티브. 금발의 남자가 돌아서며 햇살처럼 밝게 미소지었다. 

by 치우타 2015. 7. 11.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