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가자."



그 제안은 너무나 갑작스럽고도 낯선 것이라, 카스티엘은 고개를 갸웃하며 딘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에 순수한 의문이 서리는 걸 보고 딘은 생각했다. 언제든 변하지 않는구만. 하지만 그 점을 좋아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다. 죽어도 자기 입으로는 말 못하겠지만.



"그냥. 가고 싶어서."

"어디의 바다가 좋은가? 딘."

"조용한 모래사장이 있는 곳이라면 상관없어."



카스티엘은 고개를 끄덕이고 딘의 이마에 손을 뻗으려다가 잠시 주춤했다. 그 동작에 오히려 놀란 것은 딘이었다. "워, 캐스. 갑자기 왜 그래?"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듯 말을 던져오는 딘에게 카스티엘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뭐야?" "전에 그렇게 이동했을 때 네가 싫어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그게 뭔데?" "손을, 딘." 잡아주기를 기다리며 내밀어진 오른손을 조금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며 조심조심 딘이 손을 얹었다. 잠깐 주위가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둘은 슬슬 해가 넘어가는 바닷가에 서 있었다.



"..와우."

"어떤가? 전에 비해서..."

"흠. 어지럽거나 하진 않네."

"그렇다니 다행이다."



둘의 손은 아직 이어져 있었다. 그걸 먼저 자각한 것은 늘 그렇듯이 딘 쪽이었고, 목까지 시뻘개져서 황급히 털어내듯이 놓은 것도 딘이었다. 그 순간 카스티엘의 눈에 언뜻 아쉬움의 빛이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잘못 본 건가 싶어서 딘은 그의 푸른 눈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언제나의 고요하고 맑은 눈이 자신을 바라볼 뿐이었다. 역시 기분 탓인가. 딘은 뭔가 켕기는 구석이 있는 사람처럼 그에게서 등을 돌려 성큼성큼 바닷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딘 본인은 쑥스러움을 꽤 잘 감추었다고 생각했겠지만 뒤에서 카스티엘은 조용히 미소짓고 있었다.


딘이 앞장서고, 카스티엘은 그 뒤를 따랐다. 둘의 발자국은 점점이 모래사장 위로 이어지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는 석양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이런 풍경을 보는 게 대체 얼마만이더라. 모르긴 몰라도 아주 먼 옛날의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언제나 쫓고 쫓기는 생활을 이어왔던 탓에 주변이 어떻게 생겼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딘은 씁쓸하게 웃으며 조금 발걸음을 늦추었다.



"이봐, 캐스. 오늘따라 너도 말이 너무 없는 거 아니야?"



농담조로 말하며 뒤를 돌아본 딘은 눈을 조금 커다랗게 떴다. 카스티엘이 파도에 휩쓸려 지워지려는 자신의 발자국 위를 그대로 밟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러운 태도로, 어떤 자그마한 것을 대하듯이 발자국을 되밟는 그의 모습에 이번엔 딘 쪽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하는 거야? 강박증이라도 있어?"

"...아니. 어쩐지 너의 흔적이 사라져가는 게... 아쉬워서."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딘은 순간적으로 뜨거운 것이 목까지 확 치받아오는 걸 느끼고 세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정신 차려, 딘 윈체스터.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입장이 아니잖아. 네가 가져도 되는 건 아무것도 없어. 마음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입술을 더욱 세게 깨물었다. 이대로는 멋대로 마음속의 감정들이 흘러넘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딘은 황급히 등을 돌렸다.



"딘?"

"나 배고픈데."

".....알았다."



목소리가 형편없이 떨려나온다. Damn it! 딘은 속으로 자신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 옆으로 카스티엘이 가만히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전해져오는 온기에 기껏 참아냈던 눈물이 왈칵 다시 차오르는 걸 느끼고 반대쪽 손을 아프도록 꽉 쥐었다. 하지만 이미 뺨으로 흘러내린 한 줄기의 눈물방울은 그도 어쩌지 못했다. 카스티엘은 그걸 못 본 척하며 그대로 딘을 끌어안았다. 캐스의 트렌치코트에서는 햇살과 바람의 내음이 났다.


딘은 두 눈을 꽉 감으며, 이대로 시간이 멈추어버린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바다는 넓다. 바다는 고요하다. 바다는 잠잠하다. 바다는 잔혹하다. 바다는......다정하다.

하나의 사물에, 아니, 자연에 이토록 여러 가지의 수식이 붙을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움을 느끼며 카스티엘은 칠흑처럼 어두워진 밤바다를 응시했다.

아까 보았던 딘의 발자국이 떠오른다. 파도에 아슬아슬하게 지워지려던 그 발자국. 마치 위태로운 그 자신을 나타내는 것 같아서 가만히 놔둘 수 없었다. 안타까운 감정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딘. 너는 이 세상을 견디지 못하겠지. 그리고 세상은 그런 널 삼켜버릴지도 몰라.

하지만 그 전에.

내가 세상을 손에 넣어 보이겠다.

by 치우타 2011. 7. 28. 00:53

 

"Damn it..... yes, Michael. yes."


딘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분노, 실망,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이 뒤섞여 있었다.

불쌍하게도, 인간들 중에서는 그나마 봐줄만한 영혼을 가지고 있던 딘 윈체스터는 거의 무너지기 일보직전이었다. 하기사 지옥에서 돌아온 다음에도 꽤나 오래 버티긴 했다. 종말을 시작한 자로서 얼마나 오랫동안 발버둥쳐 왔는지. 헛된 노력을 하고 거기에 절망했는지. 또한, 얼마나 자신들의 아버지에게 간절히 빌었는지.

미카엘은 아주 잠깐 동안 딘을 연민하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그 초록색 눈동자에 눈물이 차올라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을 가만히 응시했다.


"Rest in peace, Dean. you did your level best to please your family."



딘의 몸은 편안했다. 그렇게 상처 입은 얼굴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딘은 쓸 만한 그릇이었다. 가만히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이 점점 더워지는 여름을 알리고 있다. 천국에서 봤던 것과는 어쩐지 다른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에 공원이 있는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온다. 문득 시선을 돌리자 낡은 나무벤치가 보였다. 뭔가를 생각하기 이전에 발이 먼저 움직이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주변을 둘러본다. 티 없이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들과, 동물, 그리고 자연.

이 모든 것은 아버지가 창조한 것이다. 하늘이 열리고, 지상이 만들어지고, 동물과 자연이 완성되고, 인간이 탄생했다. 흙으로 빚어진 저 덧없고 비천한 생명체들을 아버지는 아낌없이 사랑했으며 그것은 그의 아들을 희생시켜 원죄를 대신 갚게 할 정도였다.


사람의 아들, 천주성부의 오른편에 앉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도둑과 나란히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을 거두었다. 인간의 파렴치함과 어리석음에는 진저리가 났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고 또한 그걸 이루는 것도 그리스도의 뜻이었으나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루시퍼는 반기를 들었고, 용서받지 못했고, 지옥으로 떨어졌다.


-어리석고 어리석구나. 동생아. 아버지의 뜻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것이다.

-누가 더 멍청한지는 나중에 보면 알게 될 거야. 형.


그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추락할 때 들었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것 같다. 미카엘은 그걸 털어내듯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난 걸까.

이런 감성적인 것은 천사에게 불필요한 것이다. 어떤 의심 없이 그분의 뜻에 따르는 것. 오직 그것만이 옳은 일이고 바른 일임을 자신은 안다. 감정은 항명에의 지름길이다. 그걸 천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문득 그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총과 칼을 잡아온 손에는 자잘한 상흔이 있었다.

딘 윈체스터의 손. 딘 윈체스터의 몸. 딘 윈체스터의 눈으로 바라보는 풍경. 낯설지만 안락한 느낌. 아아, 그래. 이건 딘의 마음인건가. 그제서야 납득할 수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을 누구보다도 아끼던 그 마음은 자신과 비슷했기에 더 감정이 잘 전달되었는지도 모른다.


딘이 샘을 키웠듯이 미카엘도 루시퍼를 키웠다. 그에게 천사로서의 모든 것을 가르친 것도, 누구보다도 빛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한 것도 자신이었다. 존이 샘을 아꼈던 것처럼 아버지도 루시퍼를 아꼈다. 지독할 정도로 닮은 인간과 천사 형제라니. 정해진 운명이라는 건 이토록 비참하고, 아름답고, 잔인하다.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공원으로 오던 길에 발견한 성당이 갑자기 눈에 밟힌다. 구경이나 하러 갈까. 아버지에게 드리는 제사를.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주님께서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의 힘으로 죽음을 통하여 세상에 생명을 주셨나이다. 그러므로 이 지극히 거룩한 몸과 피로 모든 죄와 온갖 악에서 저를 구하소서."


성당 안에서는 한창 영성체 예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평일 저녁미사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좌석을 메우고 있는 것에 솔직히 말해서 좀 놀라고 말았다. 종말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원래 하느님의 어린 양인 그들은 늘 신실하게 이 자리를 지켜왔던 걸까. 어느 쪽이건 아버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겠지만.

게다가 의외로 딘의 몸은 성당에 거부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평소에 해온 언행으로 보아 절대 선호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것 또한 의외였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


영성체송이 이어지고 사제가 제단에서 내려와 손에 성체를 들었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나와 성체를 받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이 연주하는 곡은, 이것 또한 재미있게도 미카엘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 그는 가만히 맨 뒷좌석의 끝부분에 걸터앉아 눈을 감았다.


Panis angelicus fit panis hominum

천사의 양식이 인간의 양식이 되며

Dat panis caeltcus figuris terminum

천상 양식은 상징에 종지부를 긋는도다

O res mirabilis manducat Dominum

오 기묘한 일이여, 가난하고 비천한 종이

Pauper, pauper, servus, et humilis

주님을 먹는도다

 

by 치우타 2011. 7. 28. 00:52

 

딘이 그 결정을 내리는 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그건 단지 허울 좋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종말이 시작되던 그 순간부터 자신에게 선택권이라는 건 존재하지도 않았다. 재커라이어의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분명 이걸 달가워할 사람은 그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딘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나뿐인 동생 샘과, 바비.

그리고.. 카스티엘.


- 난 너에게 모든 것을 주었어. 전부 널 위해서였다. 그런데 넌 고작 이런 걸 나한테 주는거냐, 딘?


그의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가 되살아난다. 용서 없이 휘둘러오던 주먹과, 발길질과, 그 와중에도 피할 수 없었던 푸른 눈동자. 차라리 그대로 그 손에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딘은 피하지도 않았고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럴 힘이 없었다고 말하는 게 맞을까.

무기력했고 허무에 젖어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더 이상 남아있는 것도 없고, 지키고 싶은 것도, 원하는 것도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의 용기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서 하루하루를 기계적으로 보냈다. 더 이상은 숨을 쉬는 행위도 힘에 겨워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있었다. 뭐, 솔직히 말해서 천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종말이 그렇게 간단히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 그렇다는 거겠지. 천사와 악마가 서로 치고 박느라 지구는 꽤 망가질 게 틀림없었고, 자신이 승낙해버리면 샘이 루시퍼에게 어떤 대답을 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들이 바라던 그대로, 천사들의 그것처럼 형제의 대결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좋아.

미안하다, 샘. 죄송하게 생각해요, 바비 아저씨. 지금까지 정말 감사했어요.



"그래서, 딘. 대답은?"

"...그 전에 조건이 있어."

"전에 이야기한 것 말고도 다른 게 있나? 말해봐. 들어주지."

"샘과 바비가 전쟁에 휩쓸리지 않는 것, 그리고 캐스..아니, 카스티엘의 안전을 보장해줘."


잠시 다른 그릇을 빌려 나타난 미카엘이 그 말에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하찮은 인간인 내가 천사를 걱정하는 게 그렇게 우스운가? 딘은 무의식적으로 표정을 구겼다. 이유를 물어보고 싶은 얼굴이니 분명...


"카스티엘을? 어째서지?"

"그런 건 상관없잖아."

"흠.... 어차피 그는 우리의 형제. 해를 가할 생각은 없다. 좋아, 전부 들어주지."


정말 약속을 지켜줄지 어떨지는 의문이었지만 지금의 딘으로서는 그저 믿는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엎으려고 하면 반항할 수 있을까? 터무니없이 긍정적인 생각을 하던 그에게 미카엘이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왔다.


"자, 딘. 이번엔 네 차례야."


딘은 잠시 눈앞의 천사와 시선을 마주하고 눈을 감았다. 이렇게 되기 전에 실은 한 번 더, 캐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또 길길이 날뛰면서 얻어맞고 갇히기나 하겠지. 이상하게도 그를 속이는 건 너무 힘들었다. 오히려 샘하고 바비는 쉬웠는데.

깊고 푸른 눈과 트렌치코트가 차례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딘은 천천히 두 눈을 떴다.


"....Yes."


미안해, 캐스.

.....I loved you.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린 순간, 눈부신 빛이 딘을 삼켰다.



***

카스티엘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있는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는 쪽이 더 정확할까. 식당 안은 얼핏 보기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단정하게 놓인 테이블과 식탁, 맛있는 음식 냄새,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거기에서 딱 한 가지 괴이한 것이 있다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악마들을 밟고 서 있는 한 청년이었다.


".....딘..?"


목소리가 멋대로 떨리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어. 마음속으로 강하게 부정해본다. 카스티엘은 절박한 심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그의 아버지에게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릴 때보다 더 절박하고, 더욱 간절한 마음이었다. 부디 온전히 그이기를. 나의 주님이시여. 제발.

청년이 천천히 뒤돌아섰다.


"안녕, 카스티엘."


그리고 카스티엘은 절망했다.




딘 윈체스터는 더 이상 그 자신이 아니었다.

칠흑처럼 새까만 정장을 차려입고 흰 트렌치코트를 걸친 채, 조용히 웃는 얼굴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수많은 감정이 섞여서 때론 흔들리고, 눈물에 젖기도 하고, 장난꾸러기처럼 빛났던 초록색 눈동자는 그저 무감각하게 가라앉아 있다. 약간 과장된- 가끔은 격정적이고 강한 어조로 말을 자아내던 목소리는 차분하고 고요하다.

여기에 있는 것은 오직, 천상의 군대를 이끄는 대천사장 미카엘.


카스티엘은 도무지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느 때고 냉철하던 그 이성조차 온데간데없이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래서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시도했다. 미카엘에게서 딘을 이끌어내는 것을.

임팔라를 가져오거나, 그의 눈동자를 보며 호소하고, 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지나간 일들에 대해 추억해보기도 했다. 함께 나누었던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도 전했다.


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무엇을 하건, 딘의 모습을 한 미카엘은 이렇다 할 반응조차 보여주지 않았다.

카스티엘은 최후의 수단으로 그에게 무릎을 꿇고 빌었다. 제발 딘을 돌려달라고, 그를 돌아오게 해 달라고. 처절하게 빌었다. 존경하는 그의 형제이자 군대의 수장에게 애원했다.


"Oh, Cas..."


이윽고 미카엘의 입술이 열렸다. 그는 애처롭다는 시선으로 자신의 형제인 카스티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목소리에는 연민이 가득했다.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딘의 음색에 카스티엘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Just give up, and forget about Dean. He...is already within me. Now, this is the only 'vessel'."

"No...."

"Yes, Cas. and you must have to face up to the fact that he would never come back again." (너는 그가 결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인정해야만 해.)


딘의 목소리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용납할 수가 없다.

인정할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무너져 내리는 카스티엘을 초록색 눈동자가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미카엘."

"아, 라파엘. 그쪽 상황은?"

"거의 다 정리되었습니다. 아스타로트와 베알제붑이 남아있긴 합니다만."

"루시는 어때? 아직도 거기에 있나?"

"그런 것 같습니다."

"흠. 샘 윈체스터... 생각보다 끈질기군. 그럼 갈까."


카스티엘은 멍하니 자리에 홀로 남겨진 채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방금 전까지 딘- 아니, 미카엘이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 제발. 지금까지의 제 기도를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딘 윈체스터가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그걸 위해서라면 제 영혼도 능력도 아깝지 않습니다. 제발, 제발. 이렇게 애원합니다. 당신 앞에 엎드려 빕니다.

그를 돌려주십시오.


"딘, 딘, 딘....."


흐느낌이 섞인 낮은 목소리는 언제까지고 하나의 이름을 부를 뿐이었다.

by 치우타 2011. 7. 28. 0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