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한 주의 시작이자 평범한 직장인들이 힘겨워하는 날.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언제든지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침대에서 한 번 더 뒤척였다.

막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도 아니고 왜 그렇게 아침형(아무리 생각해도 침대형 인간) 이냐는 샘의 놀림에 매일같이 으르렁대는 건 이미 일상.

아직도 졸음이 가시지 않는 눈을 부비며 한 차례 하품을 크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아침이 시작된다.


Tuesday. 사랑스러운 임팔라의 운전석에 앉아 느긋하게 풍경을 내다보는 걸 정말 좋아하지만, 세상은 그런 휴식조차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사건을 일으킨다.

헌터로서 살아온 삶이니 평범한 사람들처럼 사는 건 이제 무리라고는 해도 자유 시간 정도는 갖고 싶었다.

옆에 앉은 샘은 말없이 사건의 자료들을 훑어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눈치는 더럽게 없는 녀석 같으니.


Wednesday. 이번 일은 캐스의 도움을 받는 게 어떠냐는 샘의 제안을 무시하고 단독으로 처리했다가 조금 다쳤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는 샘과 어이없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는 바비.

젠장, 내가 어린애냐고?! 이 정도는 혼자서 거뜬한데! 좀 긁힌 거 가지고 애취급이나 받다니....!!

문명의 이기를 배운 캐스는 이제 핸드폰으로 통화도 할 수 있다. 에노키안 술법으로 예전만큼 쉽게 탐지할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좀 쓸모가 있어서 샀다나.

괜시리 번호를 눌렀다가 지우고, 눌렀다가 지우고를 반복하다가 침대에 폰을 던져버렸다.

사실은, 아주 조금 그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가 듣고 싶다. 아주 조금.


Thursday. 라디오를 틀어놓았는데 모든 방송이 끝나고 지직거리는 음이 들릴 때까지 멍한 얼굴로 누워있었다.

처음엔 시간도 늦었으니까 잠 잘 오는 클래식이라도 들을까 하는 생각에 켰지만 그럴수록 머리는 더 맑아질 뿐, 효과는 제로였다.

삐이- 하는 기계음을 듣고 있으려니 문득 재커라이어한테 끌려가서 천국에 올라갔던 때가 생각났다.

임팔라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캐스의 목소리. 그러고 보니 지옥에서 올라왔을 때엔 째지는 고주파로 말을 걸었더랬지....

괜히 웃음이 나왔다. 높은 목소리의 캐스라니, 상상만 해도 웃기다.


Friday. 이 망할 놈의 일기예보는 도대체 맞추는 것보다 빗나갈 확률이 더 높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비가 온다는 소리에 푹 자고 일어났더니 이게 왠걸.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이다 아주.

덕분에 샘하고 바비한테서 잔소리만 실컷 들었다. 바비는 그렇다 치고 어이 샘. 나 이틀 동안 운전했거든? 헌팅했거든?? 이걸 콱 그냥.

이미 중천에 뜬 햇살 아래에서 멍하니 하늘을 보니 시원한 푸른색이 반긴다. 에라 오늘은 조사 땡땡이쳐야지.

왜냐면, 날씨가 너무 좋으니까.


Saturday. 캐스가 새로운 소식을 가지고 만나러 왔다. 소란스러웠던 천국도 이제 좀 가라앉은 모양이다.

여전히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깊은 푸른색의 눈이 평소보다 조금 더 반짝이는 걸 보니 상황이 나아지긴 한 것 같다.

공적인 말을 다 끝내고는 뭔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계속 이쪽을 바라보길래,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그렇게 뜸들이지 말고 해버리라고, 캐스.]

나도 모르게 가시 돋친 말을 던지고 만다. 그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고개를 젓고 날아가 버렸다. Stupid jerk! 그렇게 말하려던 건 아니었는데.

사라지기 전에 보았던, 조금 쓸쓸해 보이는 표정이 자꾸만 머릿속에 되살아난다.

...실은 난 요즘 네가 할 일 없이도 불쑥불쑥 나타나던 그때가 그리워. 캐스.


Sunday. 가만히 공원 벤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해는 매일같이 뜨고 지건만 이상하게도, 이렇게 붉은 빛이 저 너머로 스러지는 광경은 볼 때마다 어쩐지 가슴 한 구석이 아려왔다.

사내자식이 다 커서 계집애처럼 감상적인 생각이나 한다고 다들 비난하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운 듯하면서도, 안타까운 느낌. 그것은 한 때 누렸던 어린 시절의 눈부셨던 기억과 그 위에 덧입혀진 상처들이 한 데 뒤엉키는 기분과도 닮아있었다.


"딘."

"...우와악!!! 아, 쫌! 그거 하지 말라고 했잖아. 캐스!"

"아. 미안하다. 그만 습관적으로.."


기척도 없이 어느새 옆에 날아와 귓가에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듣고 그만 벤치에서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

제발. 이런 식으로 가다간 안 그래도 길지 않을 것 같은 내 명줄이 더 짧아질 거라고...

작게 투덜거리면서 노려보자 캐스는 슬쩍 웃으며 손을 뻗어 뺨을 쓰다듬어왔다. 이거 봐라. 또 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있지.

평소 같으면 톡 쏘아주었겠지만 이런 시간은 오랜만이니까. 너그럽고 관대한 내가 봐준다.


"뭐 하고 있었나?"

"그냥. 석양 보고 있었어."

"거의 다 넘어갔군... 곧 어두워진다."

"알아."

"저녁은?"

"배고프다 못해 굶주린 상태지."


어린애마냥 투정부리는 말투가 되어버려서인지, 캐스가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순간 얼굴이 끌어당겨지는가 싶었더니 이마에 부드러운 감촉이 내려왔다.

오늘은 둘이서 같이 저녁이라도 먹을까, 딘. 의외의 제안에 그만 바보 같은 얼굴을 하고 말았다. 캐스가 다시 웃었다. shit.

분명 음식을 집어넣는 것은 나 혼자겠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정말, 기분 좋은 일요일이다.

by 치우타 2011. 7. 28. 00:46

 

“끄으아악!”

“크악!”


소름끼치는 단말마가 공기를 찢으며 흩어진다. 어둡게 가라앉은 밤의 정적을 깨는 것은 인간이 아닌 생물체의 비명과, 피와 살점덩어리였다. 이정도의 소란이면 누군가가 잠에서 깨어 뛰어나올 법하지만 여기는 도로에서도 마을에서도 한참 떨어져 있는 숲이다. 메아리가 더 넓은 곳까지 퍼질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꿈에도 모를 것이다. 딘은 산탄총을 재장전하며 바닥에 빈 탄피를 떨어뜨렸다. 내가 여기서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치지만 그것은 찰나에 불과했다. 잔뜩 날카로워진 맹수의 살기를 피부로 느끼고 총을 손에 든다. 어디에서 공격해올지는 뻔하다. 정면. 망설임도 없이 방아쇠를 당긴다.


“캬악!!”


오늘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좋다’. 옆에는 샘도 캐스도 없고, 세상은 여전히 멸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거기에 대한 해결책이라고는 빌어먹을 천사들의 제의를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의 양자택일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온 힘을 다해 눈을 부릅뜨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걸. 매일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고 사냥을 다니고 사건을 해결해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흘러갈 뿐이다. 그런 그의 속을 유일하게 간파해 낸 것은 ‘기근’의 기수. 드러낸 적 없는 저 밑바닥의 생각까지 끌어올려지는 기분이란 썩 유쾌하지 않다는 걸 그때에 처음 알았다. 나에겐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심지어 허무조차도.


“하하.. 하하하.”


헛웃음이 입술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걸 눈치 챘는지 두 개의 검은 그림자가 엄청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게 보였다. 그래, 와라. 아직도 탄창은 잔뜩 있으니까. 너희들을 찢어발겨줄 은구슬은 차고 넘칠 만큼 있다고. 그러고 보니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다시 생각해본다. 짐승의 냄새를 맡았고, 마침 달도 흐릿하니 떠 있었고, 제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술은 마시지 않았다. 약은 취미가 아니다. 하지만 기분은 좋다. 무언가에 취한 사람마냥 몽롱하고, 유쾌하고, 즐거웠다.


딘은 웃으며 총구를 들어 겨누었다.

by 치우타 2011. 7. 28. 00:44
2009년 6월 28일자 연성. 성당에서 성가연습 하다가 떠올랐기에 제목이 이렇습니다.

 

추락(墜落). 그것은 중죄를 범한 천사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다. 주님께서 내리신 은총을 잃고 천사로서의 지위와 모든 권한, 능력을 박탈당한 다음 지상으로 떨어진 그들에겐 ‘평범한 인간’ 으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천사였을 때의 기억은 다 잊게 된다. 설령 나중에 어떤 특별한 경험이나 사건으로 인해 기억을 되찾는다고 해도, 오히려 고통과 절망의 감정을 깊게 새기게 될 뿐이었다. 그 중에서도 모두에게 존경받고 사랑받았던 천사 루시퍼가 지옥에 떨어져 악마가 된 것은 천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 충격적인 사건 이후에도 추락한 천사들이 몇 있었지만, 그들 중 상당수는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했거나 인간의 감정에 동화되어 천사로서의 본분을 잊은 자들이었다.


그리스도의 전사로서 당연히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규칙들을 위배한 그들은 결코 다른 천사들에게서 이해받을 수 없었다. 추락자, 타락한 천사 등 마치 파문당한 신부와도 같은 대접을 받아야 했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었다. 천사들은 인간들의 기록에 나오는 것처럼 그저 신의 뜻을 행하는 사자가 아니었다.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군대’였던 것이다. 자신도 그 군대의 군인이었고 충실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천사였다. 응당 그렇게 해 왔으며 그래야만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 믿음이, 흔들리거나 바뀌는 일 따위는 없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 지옥에서 딘 윈체스터를 구해오기 전까지는.



“젠장, 캐스! 사람 궁금해서 미치게 만들어 놓고 자꾸 도망치지 말란 말이야!!!”



그는 격한 감정의 소유자였다. 기쁨과 슬픔, 분노, 절망, 괴로움을 직접적으로 부딪혀오며 상대가 천사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할 줄 알았다. 내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종종 농담을 구사하거나 화가 나면 눈을 노려보며 험한 말을 내뱉기까지 했다. 그러다가도 기쁜 일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살갑게 굴고, 무언가 켕기는 일을 저지르고 난 다음에는 눈을 절대 마주치려 하지 않는 등의 모습은 보는 쪽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런 그와 많은 일을 함께 겪고 대화를 나누고, 지내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내 안에서 무언가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굉장히 낯선, 그렇지만 굉장히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 이제까지의 자신에게는 전혀 발견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것이었다. 머릿속에서는 본능이 날카롭게 경고의 벨을 울리고 있었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그 느낌은 너무나도 포근해서 섣불리 없애버리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계속 키워나가고 싶었다. 이때의 나는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 있었다. 지금 자신의 선택이 앞길에 어떠한 운명의 그림자를 드리우게 될 지조차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의 정체는 어느 날 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서 내 세계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다.


딘 윈체스터.

신의 명령으로 지옥에서 자신이 구출해내고 또한 지켜보고 있는 존재. 인간 헌터. 종말을 시작한 자이며 종말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자.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그 고통을 포기하지 않는 약하면서도 강한 자.


........나는 그를,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게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동안 수많은 천사들의 추락을 보아왔다.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서, 감정을 느끼게 되어서,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의문을 품게 되어서, 천사에 합당하지 않아서 지상으로 추락한 자들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었고, 충실하게 명령에 따라 행동해왔다. 하지만 딘의 눈에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읽어낸 그 다음부터 시계 바늘은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



지금도 눈앞에서 잠들어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속에 불빛이 밝혀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것이 ‘감정’ 이라는 것은 알았으나 대체 어떠한 감정인지는 아직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연민과도 닮아있었지만 어딘가 다른 느낌. 왠지 이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때야말로 돌아갈 수 없는 길을 선택하게 될 거라는 걸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정하게 부정하고 잘라버리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이 앞에 보이는 길은 과연 평화인가, 고통인가.


조용히 손을 뻗어서 딘의 얼굴을 어루만져 본다.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체온이 따스했다.

이 마음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인가를 자문하며 눈을 감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나직이 읊조렸다.



-Parce, Domine.

(주여, 용서하여 주소서)

by 치우타 2011. 7. 28. 0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