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의 명실상부한 투탑인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의 연애란, 모두가 한 번쯤 상상해본 적은 있어도 실제로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일종의 '비현실적인 무언가' 였다. 치타우리의 뉴욕 습격으로 인해 처음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시작부터 삐걱거렸으며 그 이후 토니의 말리부 저택 테러 사건, 프로젝트 인사이트를 거치는 동안에도 좋아지기는 커녕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벤져스 멤버들 및 소수의 관계자들(콜슨 등)은 조금 긴장한 표정이지만 입가에 그린 듯한 미소가 걸려 있는 스티브와, 그의 탄탄한 팔 안에 휘감긴 채 심드렁한 얼굴을 한 토니가 공표한 교제 사실을 들으면서 입을 떡 벌리거나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 아니, 스티브 로저스와 토니 스타크? 어느 쪽도 전혀 어울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경악하며 앞뒤에서 수군거리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제법 괜찮은 연애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전에는 늦게까지 훈련소에 남아 있던 스티브가 정확히 여섯 시에 '퇴근'을 해서 데리러 온 토니의 차에 올라탄다던지, 하이드라 기지 급습 작전 회의때는 변함없이 으르렁 컁컁 신경전을 벌여서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들어놓고 끝난 다음에는 서로 다정하게 손을 잡고 간다거나 거의 포옹할 거리로 찰싹 붙어서는 속닥거리는 모습 등이 목격되면서 사람들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 맨이라는 세기의 커플이고 뭐고 어쨌든 커플 사이는 신경쓰지 않는 게 좋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렇게 둘의 연애가 핑크빛으로 각인되고 있을 즈음, 토니는 랩실에서 혼자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어제는 평소처럼 스티브를 데리러 훈련소에 갔더니 나타샤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알콩달콩 귀엽게 연애해서 그런지 요새 얼굴이 확 폈네요, 스타크.' 라고 말한 것이 그 계기였다. 토니는 이도저도 아닌 표정을 지으면서 적당히 둘러대고 자리를 피했지만 옆에서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스티브가 그의 화를 더 부추기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연애, 그래 연애 좋지. 좋고 말고. 달달하고 알콩달콩한 것도 간질간질하고 낯설긴 하지만 괜찮아. 왜 싫겠어.

중요한 건 저 놈의 노친네가 손잡고 포옹하는 거 외엔 진도를 안 나가고 있으니까 그게 문제지!

 

 토니는 괜히 허공에 손가락을 휘두르며 프로그램을 흩었다가 제자리로 모았다. 타는 속을 달랠 길이 없어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식은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물었지만, 도리어 씁쓰름한 맛이 진하게 전달되기만 할 뿐이었다. 내가 토니 스타크인데. 애인은 미국의 전형적인 이상형이라고 할 수 있는 끝내주는 블론디 빵빵 스티브 로저스인데.

 

아직도 키스 한 번 못해봤다니!

 

 때마침 랩실의 문이 열리며 고민의 원흉인 스티브가 편안한 차림으로 들어섰다.

 

 "토니, 여기 있었나? 곧 저녁 준비가 된다고 하네만."  

 

 환한 웃음이 걸려 있는 얼굴이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사람 속도 모르고. 토니는 대충 고개를 주억거렸다.

 

 "곧 갈게."

 "삼십 분 후에나 말인가? 안 되네. 오늘은 나랑 같이 가야겠어."

 "정말 금방 끝날거야. 5분..."

 

 ...만 기다려, 라는 토니의 말은 채 나오지도 못하고 스티브의 입 안으로 먹혀들어갔다. 부드럽게 와 닿은 입술과는 정반대로 서투르지만 열정적인 혀가 숨소리 속에 얽혀서 녹아들었다. 되게 못할 줄 알았는데 최악은 아니네. 살짝 붉게 물든 뺨을 바라보면서 토니는 멍하니 생각했다.

 

 "이래도 날 혼자 보낼 건가? 토니."

 "...노친네 약아빠져서는.. 알았어. 같이 가면 되잖아."

 

 토니는 마지못해 내밀어진 커다랗고 단단한 손을 붙잡았다. 아까보다 더 활짝 웃는 선샤인 스마일이 덤으로 따라오는 건 꽤 나쁘지 않았다. 입 안에는 스티브에게서 넘어왔는지 달콤쌉싸름한 초콜렛의 맛이 남아 있었다.  

 

 

by 치우타 2016. 1. 25. 17:33

 토니는 어릴 때부터 이미 '풍족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였다. 물론 그가 정말로 간절히 바라던 평범한 행복들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은 토니의 작은 투정이나 불평을 들을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며 너무 욕심이 많다고들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토니는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래서, 이게 네 로망이라고?"

 "...너무 유치한가?"


 토니는 얼굴이 적당히 가려지는 야구 모자를 푹 눌러쓰고, 그에게는 좀 넉넉한 품의 자켓에 셔츠, 청바지, 운동화라는 시시한 옷차림을 한 채 불만스러운 얼굴로 다리를 흔들었다. 벤치 옆자리에 나란히 앉은 스티브는 안절부절하며 토니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입가에 한가득 떠오른 미소만큼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지 싱글벙글한 얼굴이었다. 저걸 한 대 때릴 수도 없고, 쓸데없이 잘생겨서는. 토니는 속으로 투덜거렸다. 


 저돌적인 스티브의 고백과 적극적인 토니의 공세(라고 쓰고 지기 싫어서 되돌려주다가 코 꿰였다고 읽는다)덕분에 한 달 전부터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이었지만, 토니나 스티브나 외모든 복장이든 상당히 눈에 띄는 타입이라 학교 내에서 데이트를 하려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만 했는데 하루는 스티브가 토니에게 조심스럽게 어떤 제안을 해 왔다. 자신의 자켓을 입고 만나는 건 어떻겠냐고.


 "유치하다 못해 초등학생이 지나가다가 웃을 정도의 레벨이지."

 "으음... 역시...."

 "뭐.. 오늘은 날씨도 좋고 하니까, 저기 트럭에서 아이스크림 사 오면 봐줄게."

 "! 어떤 걸로?"


 토니의 가차없는 평가에 시무룩해서 고개를 푹 숙이던 스티브는 금방 회복해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무슨 맛을 좋아하는지 잘 생각해서 사와. 답을 알려주면 발전할 수 없다고, 로저스. 토니는 일부러 스티브의 성을 부르면서 윙크해 보였다. 

스티브는 바람같이 트럭 쪽을 향해 달려갔고 토니는 살랑살랑 손을 흔들어 주었다. 


 로망이라. 그것도 이런 말도 안 될 정도로 평범하고, 소박한 걸 해보고 싶다니. 바보 같이.


 하지만 토니는 스티브의 그런 점이 좋다고 생각했다. 오래 전에 자신이 잃어버린 것. 혹은, 그냥 묻어버린 것을 다시 파내어 먼지와 흙을 털어낸 다음 웃으며 내미는 듯한, 스티브의 밝은 미소나 수줍은 표정. 그런 주제에 다짜고짜 입술을 밀어붙이질 않나 사람이 울 때까지... 토니는 더 뻗어나가려던 기억의 끄트머리를 뚝 끊어냈다. 쟤랑 사귀고 나서부터 내가 아무래도 점점 이상해지는 게 틀림없어. 노려본 시선 끝에는 양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걸어오는 스티브가 있었다.


 "뭐야?"

 "딸기맛이랑, 초코맛으로 사왔어. 하나만 먹기엔 아쉽고 또... 이걸 좋아할것 같아서."

 "....합격이야. 머리 좋네."


 아이스크림을 받아들며 토니가 피식 웃었다. 그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환하게 웃는 스티브는 여전히 조금 바보 같았지만, 귀엽고, 간질간질했다. 나도 언젠가 너랑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알려 줄게. 들릴 듯 말듯 속삭이는 목소리에 스티브가 조금 더 큼직하게 미소지었다. 




by 치우타 2016. 1. 2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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