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솔로와 일리야 쿠리야킨, 냉전 시대의 각 진영을 담당하고 있는 두 스파이는 영국의 구석진 골목에서 미행과 잠입을 번갈아가며 목표물의 결정적인 순간을 잡기 위해 거의 일주일째 체류 중이었다. 웨이벌리가 알려준 대로 그들은 눈에 띄지 않은 채 점점 거리를 좁히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목표물이 워낙 조심성이 많은 탓에 접근거리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였다.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는 임무를 견디다 못한 솔로가 웨이벌리에게 보고를 겸해서 추가적인 정보를 요청한 결과 타겟이 은밀하게 남색을 즐긴다는 걸 알아냈다. 두 사람 모두 전혀, 요만큼도 내키지 않았지만 원래 스파이라는 것이 남들은 하지 못하는(하기 싫어하는) 일을 처리하는 직업이었던 탓에 어쩔 수 없이 나서서 접선을 시도했다. 

 

 "이런 파티가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니 믿을 수 없어."

 "그래도 이 정도면 젠틀한 레벨이야. 더한 것도 얼마든지 있거든."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솔로가 한 말에 일리야는 질색하는 표정을 얼굴 가득히 떠올렸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누구나 다 도망갈 걸. 커프스에 행거치프까지 완벽하게 세팅한 솔로는 평소보다 더욱 말끔하고 정돈된 모습을 한 멋진 남자로 보였다. 그에 비해 일리야는 덩치도 크고(솔로는 곰 같다고 표현했다) 미간을 잔뜩 찡그리고 있는 바람에 얼굴은 번듯해도 사람들이 슬금슬금 피해갈 상이었다. 펴질 줄 모르는 이맛살에 솔로가 한숨을 내쉬었다.

 

 "페릴."

 "왜, 카우보이."

 "안 웃어도 되니까 그.. 인상 쓴 것좀 어떻게 해 봐."

 

 한층 구겨지는 미간에 솔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손을 내밀었다. 뭐하는 짓이냐는 눈빛의 일리야에게 솔로는 그의 비뚤어진 목깃과 넥타이를 가리켰다. May I...? 보나마나 화내겠지, 아니면 손을 쳐내거나 목을 조르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온갖 부정적인 상상을 하던 것과는 달리 일리야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에 아주 잠깐 놀랐지만 침착하게 일리야의 옷을 똑바로 정돈해 주었다.

 

 "완벽하군. 자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거야."

 "너보단 아닐 텐데, 카우보이."

 "아니. 오늘 나는 주조연 역할이니까, 잘 부탁해."

 

 페릴. 하고 작게 덧붙이며 솔로가 웃었다. 일리야는 다시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별 토를 달지 않고 성큼성큼 문을 향해 걸어갔다. 웨이벌리의 수완으로 맨프롬엉클 조직에 속하게 된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아졌다거나 이전보다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적대시하지는 않게 되었다는 점에서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고는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솔로는 원래부터 일리야를 경계하기는 했어도 어쨌든 그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바다에도 뛰어들었던 전적이 있었고, 그에 비해 일리야는 첫만남부터 솔로의 목을 조르는 등 난폭하고 적대적인 행동을 보였지만 최근에는 변덕스러운 고양이마냥 굴 뿐이었다. 놀랍게도 솔로는 그걸 조금 귀엽다고 느끼기 시작했다(세상에).

 

"안 가나?"

"아니. 늦으면 안 되지."

 

문가에 기대어 서서 삐딱하니 노려보는 시선을 느낀 솔로는 그제야 발을 옮겼다. 파티가 시작된다.

 

 

 정확히 솔로의 예상대로 일리야는 신사들만의 파티에서 단연 시선을 끌었다. 커다란 덩치도 그렇지만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호감과 호기심을 갖고 접근하는 이들에게 적당히 매너있게 굴고 있다는 점이 그를 돋보이도록 만들었다. 솔로는 조금 거리를 둔 상태로 샴페인을 홀짝거리면서 그 광경을 즐겁게 지켜보았는데 점점 일리야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는 게 보였다. 이런, 서둘러야겠군. 타겟은 마침 솔로 근처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로 끼어들어갔다.


 "좋은 파티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최근엔 이런 모임이 드물어서..."

 "오늘 참석자들도 다 수준이 있는 것 같고요."


 수준이라. 솔로는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떠올렸다. 타겟은 명백히 낡은 계급주의적 사상을 가진 자였고 몰래 테러리스트들에게 협력하는 중이었다. 그런 자가 수준을 논하다니, 정말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군. 솔로는 타겟의 대화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고 귀를 기울여 듣는 척하면서 그의 환심을 사는 데에 성공했다. 따로 더 좋은 펍으로 가자는 말에 솔로는 감격한 척 하면서 승낙했고, 은밀하게 일리야에게 신호를 보냈다. 마침 사람들 사이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일리야는 보기 드물게 강한 긍정의 표현을 보여주었다(솔로는 그걸 보고 하마터면 표정이 이상해질 뻔 했다).


 옮겨간 펍에서 그들은 제법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겟은 솔로의 화술에 매료되어 요즘 세상이 얼마나 천박한지, 생각이 모자란 젊은이들이 사회를 망치고 있다는 말들을 서슴없이 늘어놓으며 푸념해대기 바빴다. 일리야가 옆에서 초조해하는 모습을 곁눈질로 확인한 솔로는 가능한한 제 몸으로 그를 가리면서 영업용 미소로 대화를 이어갔다. 타켓은 얼큰하게 취했는지 기분 좋은 웃음을 띄운 채 수염을 만지작거렸다.

 

 "여기 술도 형편없어지는데, 우리 집으로 가겠습니까?"

 "초면에 거기까지 찾아뵈는 건 실례가 아닌지.."

 "좀 더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남자의 손이 은근슬쩍 솔로의 허벅지와 뒤이어 일리야의 허리께를 쓰다듬었다. 순식간에 얼굴이 벌개지며 주먹을 꾹 쥐는 일리야를 눈짓으로 제지하면서 솔로는 거짓으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멋진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지요. 몸에 배어 있는대로 팔을 내밀자 취한 남자는 히죽거리며 덥석 붙잡아왔다. 등 뒤에서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아 솔로는 비틀거리는 남자를 거의 부축하면서 걸음을 서둘렀다. 

 타겟의 집에 도착한 다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파티에서 경계하던 모습은 어디 가고, 남자는 온통 풀어진 모습으로 그의 넓은 저택과 전리품(초판도서나 명화들)을 자랑하면서 솔로와 일리야에게 술을 권했다. 같이 마시는 척 하면서 솔로는 남자의 시덥잖은 말들에 살뜰히 맞장구를 쳤고, 일리야는 날카로운 눈으로 기밀이 숨겨져 있을 장소를 찾았다. 문득 카라바조의 명화가 걸린 액자의 귀퉁이가 다른 것들에 비해 낡아 있음을 눈치챈 그는 솔로에게 고개를 까딱여 보였다.

'시선을 끌어.'

일리야의 입모양을 읽은 솔로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타겟이 가장 자랑스러워 하는 지식에 대한 화제를 꺼냈다.

 

 "아까 이야기하셨던 키츠의 시 말입니다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어떤 거라고 하셨죠?"

 "나는 <나이팅게일에게Ode to a Nightingale>를 좋아하지. 그건..."

 

 남자는 나른한 얼굴로 더듬더듬 시를 읊기 시작했다. My heart aches, and a drowsy numbness pains 내 가슴은 쑤시고, 나른히 파고 드는 마비에.. 일리야는 그의 뒤에 서서 몇 번 손놀림을 가다듬더니 이내 빡,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귀 옆쪽을 맞은 남자는 그대로 소파 위에 나동그라졌다.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기술이야. 솔로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Fled is that music. Do I wake or sleep? 그 음악은 사라졌다- 나 지금 깨어 있는가 잠들었는가?


"자료는?"

"액자 뒤에 있어."

 

 두 사람은 카라바조의 액자를 벽에서 떼어내고 금고를 찾아 그 안의 기밀 자료를 수집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 리스트가 있으면 한동안 조직들을 찾아내고 소탕하는 데에만 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 흔적을 없애고 자리를 뜨려는 순간, 밖에서 거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둘은 얼굴을 마주보았다. 정보가 샜나? 저택의 입구는 하나 뿐이라, 지금으로서는 나가는 길이 창문 뿐이었다. 두 남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창문을 향해 달렸고 문이 부숴지는 소리와 동시에 밖으로 뛰어내렸다.

 

 "주변을 다 뒤져! 창문이 열려 있다!"  

 "이거 야단났군."

 "빨리 뛰어, 카우보이. 접선 지점은 여기서 멀지 않아."

 "애석하게도 아까 착지가 잘못되서.."

 

 정원 위로 무사히 떨어진 건 좋았지만 높은 담을 넘어 발을 디딜 때 체중을 잘못 실었는지 솔로는 왼쪽 발을 살짝 삐었던 것이다. 자료를 가지고 먼저 가. 어떻게든 뒤따라 갈게. 솔로는 여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일리야에게 필름통을 건넸다. 그들이 있는 허름한 골목까지 금세 무거운 발걸음이 들려왔다. 일리야가 오만상을 찌푸리며 솔로를 노려보았다.

 

 "그 발로 잘도 따라오겠군."

 "뛰진 못해도 위장은 가능해. 얼른 가라고, 페릿."

 

 모르는 척 쌩하니 가버릴 것 같았던 일리야는 예상 외로 망설이며 솔로의 얼굴과 삐끗했다는 발을 연신 바라보았다. 바로 앞까지 다가온 발소리에 그제야 고개를 든 그를 붙잡고 좀 참아, 라고 중얼거린 다음 입술을 겹쳤다. 일리야가 긴장해서 몸을 굳히며 솔로의 어깨를 세게 붙잡았다. 맞닿은 입술이 생각보다 부드럽고 따뜻하다는 걸 느끼는 동안, 어두운 골목길에서 겹쳐 있는 그들을 보고 발소리들은 다른 곳으로 멀어져 갔다. 주변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서로에게서 떨어졌다(정확히는 일리야가 솔로를 벽으로 밀쳤다).

 

 "윽, 좀 살살해. 부상자라고."

 "....쓸데없는 짓을 하니까 그런 거다, 카우보이. 멀쩡해 보이니 걸어 와."

 

 일리야는 울그락불그락 얼굴을 붉히며 으르렁대고는 먼저 성큼성큼 골목을 따라 접선 장소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먼저 가랬더니 말도 안 듣고. 솔로는 픽 웃으면서 욱신거리는 발의 아픔을 무시하며, 화난 것 치고는 느리게 걷고 있는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뒤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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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로기.. 생일선물을 1년지나서(드립) 주는 것이다... 12월이었는데.. 민망.. 미안.. 쏘리..

나름 달달하게 써보려고 노력했는데..... 후후.. 뒷걸음질해야지.. 파워문워크!!!

by 치우타 2016. 1. 12. 15:49
안녕하세요...!

세상에 제가 너무 바빠서.. 이번 슈와마 원고도 거의 죽음의 일정으로 소화한지라 후기도 못쓰고.

완전 티스토리가 그냥 방치되어 있었네요. 살아있습니다. 현실로그인이 넘 격렬해서 힘들긴 해요...


사실 쓸 말이 별로 없네요. 디씨마블온에는 참가신청 완료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온라인으로 진행중인 스토니 교류전에도 참가하고 있어요. 원고는 좀 더 써봐야 겠지만.

시빌워 트레일러 때문에 처음으로 쪼금 두 사람이 삽질하고 힘들어하는 내용들도 구상했는데..

이건 내용을 더 다듬어 봐야 할 것 같아요.


아무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조만간 연성으로도 찾아뵐게요.



by 치우타 2015. 12. 26. 22:35

사양에 변경이 좀 있어서...!!! 정리 다시합니당

샘플은 수량조사글을 참조해 주세요 :3


통판은 제 사정상 진행이 어려워 없을 계획이며, 선입금 기준으로 50부 인쇄 계획입니다. 




Mass Effect AU, 무비 스팁토니

A5, 150p 즈음, 날개, 무광 부분uv코팅

가격 15,000

R-19 (신분증 검사 필수)


SF게임인 Mass Effect 의 세계관에서 스티브와 토니가 다투기도 하고 연애도 하는 내용입니다. 해피엔딩.


선입금 폼 : https://docs.google.com/forms/d/1BJ5eSmiGd3axX4fksn_hZaoaarnK7Q1Ysxck1sIGNy0/viewform?usp=send_form

by 치우타 2015. 11. 8. 0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