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크리는 한숨을 푹 쉬면서 털레털레 걸어들어왔다. 오늘도 수확은 제로, 더불어서 레예스에게 실컷 깨지기나 했다. 모자를 벗고 널찍한 소파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자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젠장. 상대의 속임수는 이미 뻔하게 파악했는데, 바보같은 도발에 걸려드는 바람에 일을 망쳤다. 레예스는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고 호되게 비난한 다음 꼴도 보기 싫으니 꺼지라는 말을 던지고 뒷수습을 위해 먼저 본부로 향했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맥크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반발심을 애써 꾹 누르기 위해 입에 담배를 물어야 했다. 정말 최악이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제시? 오늘은 조금 빨랐군."

 "....잭?"


 맥크리는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이름을 불러온 탓이었다. 언제 여기 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편안한 차림의 잭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준비하고 있었는지 어설프게 앞치마를 매고 있는 모양새가 퍽 따뜻하고 다정하게 느껴져서 맥크리는 저도 모르게 풀어진 미소를 지었다.


 "그냥, 음, 아나가 알려준 걸 만들어보고 있었거든."

 "와, 세상에. 당신이 그런 것도 해요?"


 놀랍고 즐거운 마음에 던진 말이었지만 잭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그는 미간을 슬 찌푸리면서 입술을 고집스럽게 비틀었다. 아차. 저 양반 또 오해했네. 나도 간단한 것 정도는 만들 수 있어.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맥크리가 난처한 듯 웃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좋아서 그만."

 "억지로 긍정해 줄 필요 없어."

 "내가 그러는 걸로 보여요?"


 맥크리는 천천히 잭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금 움찔하며 어깨를 떨었지만,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마침내 맥크리가 팔을 벌려 포옹하자 잭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품에 안겨 주었다. 정말 좋아서 그런 거라고요. 나지막한 속삭임에 잭이 몸에서 힘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레예스랑 무슨 일 있었어? 그 녀석 심기가 불편하던데."
 "아, 오늘 좀 삽질을 해서...."

 "호오."


 맥크리는 직감적으로 이 이야기를 길게 해선 안된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잭의 어깨에 고개를 부비적거렸다. 오늘은 전에 말한 것 좀 해줘요. 반사적으로 맥크리의 등을 쓰다듬으면서도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뭔데? 


 "무릎베개."

 "벌칙으로 받았던 거 말이군."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거든. 내가 진짜 필요해요."


 해줄거죠? 맥크리는 씩 웃으며 잭의 뺨에 키스했고, 그는 못 말린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지만 한층 상냥한 손길로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소파에 앉아 허벅지를 두드리는 잭을 보고 맥크리는 묘하게 만족감과 희미한 소유욕을 느끼면서 벌렁 드러누웠다. 운동과 훈련으로 다져진 탄탄한 다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느낌이 좋고 신선해서 맥크리는 나른하게 눈을 깜박였다. 섹스할 때 잡았던 감촉과도 사뭇 달랐다. 


 "지금 음흉한 생각을 하는 중이군."

 "헉. 어떻게 알았어요?"

 "얼굴에 다 쓰여 있어. 넌 알기 쉬운 타입이거든."


 맥크리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며 잭이 웃었다. 당신은 너무 잘 생겨서 탈이야. 맥크리가 투덜거리면서 그의 턱이며 뺨을 매만지자, 그는 푸른 눈을 접으면서 눈을 흘기듯 내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주었다. 이런 점까지도 완벽하고. 두 사람의 입술이 천천히 가까워지다가 곧 맞닿았다.

by 치우타 2016. 8. 6. 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