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가 냉방병에 걸렸다.

 

 평소에 효율을 위해서라면 아낌없이 제 몸을 내던지는 토니였던지라 페퍼는 자비스로부터 이 소식을 듣자마자 그의 일과를 의심했고, 아니나다를까 최근 점점 업그레이드 중이었던 분리 장착형 수트의 새로운 테스트를 진행하던 중 그렇게 되었다는 정보를 알아낼 수 있었다.

 

 "하이테크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냉방병이라니, 어떻게 보면 사치스럽게도 느껴지는군요."

 

 페퍼는 얇은 시트를 뒤집어 쓴 채로 침대에 엎어져 있는 토니에게 신랄한 어조로 말했다. 이거 클린 에너지야, 당신도 알다시피. 흰 시트뭉치가 중얼거렸다. 어련하시겠어요. 밥이나 잘 챙겨 먹고 쉬어요. 그녀는 토니의 옆에 앉아 있는 캡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 말썽꾸러기 좀 감시해 줘. 거의 속삭이는 목소리였지만 캡틴은 뛰어난 청력을 가진 개 답게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꼬리를 몇 번 흔들었다. 구두소리가 멀어지자 그제야 토니는 시트를 걷어올려 얼굴을 쏙 내밀었다. '토니.' 멍, 하고 스티브가 꾸짖는 의미로 짧게 짖었다.

 

 "냉방병은 자고 나면 끝이야, 이런 건.. 에취! 에취! ...흐엣취!"

 "멍! 멍멍! 끄으응."

 [코 점막이 자극되어 재채기가 쉽게 멈추지 않을 겁니다. 오늘은 안정을 취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Sir.]

 

  '토니, 오늘 같은날엔 좀 쉬게.' 스티브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에서 엄격한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두 앞발로 토니의 가슴팍을 누르며 멍멍거렸다. 얼마나 통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연속으로 재채기를 한 탓인지 금세 지쳐버린 토니는 팔을 뻗어 그의 콧잔등을 가볍게 두드리고는 다시 드러누웠다.

 

 자비스가 방 안의 온도를 적당히 조절하는 동안 스티브는 부지런히 먹을 게 담긴 트레이를 머리와 앞발로 굴려 침실로 가져오고(세상에! 이런것도 할 줄 알아! 우리 캡틴 짱이다! 토니가 부산스럽게 떠들었다) 토니가 제대로 먹는지 감시했으며 그의 그릇이 다 비워진 걸 본 다음에야 제 앞에 놓인 식사를 입에 물었다. 이젠 캡틴까지 내 보모가 되려나 봐. 토니는 투덜거렸지만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피슬피슬 웃음이 나왔다. 어렸을 때는 몸이 아파도 의무적으로 오가는 사용인만 봐왔는데, 잔뜩 걱정하는 얼굴로 안절부절하며 옆을 지키는 개라니. 재채기와 두통 때문에 띵한 머리를 주무르면서 토니는 밥그릇의 고기들을 깨끗하게 해치우고 입맛을 다시는 캡틴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느꼈는지 캡틴도 고개를 들었다.

 

 "캡틴, 나랑 같이 낮잠 잘래?"

 "끄으응."

 "환자는 쉬어야 된대잖아. 너도 이리 와."

 

 토니는 제 옆자리를 두들겼다. 잠시 망설이던 스티브는 제 입에 식사의 흔적이 남았는지 혀로 확인하고는 훌쩍 침대 위로 뛰어 올랐다. Good boy. 스티브는 토니의 바로 옆자리에 몸을 둥글게 말고 앉았다. 내 캡틴 따뜻하네. 토니가 슬그머니 스티브를 껴안고 부드러운 털에 얼굴을 문질렀다. 서늘해진 그의 피부가 기분 좋았다. 이내 한 마리와 한 사람은 사이 좋게 침대에 누워 쿨쿨 단잠에 빠져들었다.  

 

 

 토니가 캡틴과 함께 꿀맛 같은 휴식을 마치고 한결 가뿐하게 눈을 뜬 저녁 즈음, 그를 제일 먼저 맞이한 것은 스티브가 연락 두절이 된 지 1주일이 넘었다는 안 좋은 소식이었다.

 

by 치우타 2015. 8. 4. 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