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어미새와 새끼새 같네요."

 

 타워 내에 어디를 가던지 꼭 같이 붙어다니는 토니와 캡틴을 보고 페퍼가 한 마디로 평했다. 그렇게 보여? 토니는 씩 웃으며 캡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쩐지 캡틴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얌전히 토니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당신이 새끼새 쪽이에요, 토니."

 "뭐? 내가 왜??"

 "멍!"

 

 그제서야 캡틴이 한결 밝아진 얼굴로 기쁘게 짖었다. 동물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던 페퍼도 생긋 미소지었다. 부루퉁해진 토니에게서 빠져나온 캡틴이 페퍼를 올려다보며 꼬리를 살랑대었고, 그녀는 기꺼이 동그란 머리통을 쓰다듬어 주었다. 애 같은 사람이지만 토니를 잘 부탁해. 캡틴. 그녀의 속삭임을 알아듣기라도 한 듯이 캡틴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멍, 하고 대답했다.

 

 확실히 캡틴은 토니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늘 몇시간이고 랩실에 처박혀서(그나마 배너가 있을때는 나았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올 생각을 않더니만, 어느 날 갑자기 개를 주워왔다며 기르기 시작했다. 토니의 일상은 캡틴에게 맞춰져서 점점 괜찮아지고 있었고 얼굴 표정도 어둡지 않았다. 어딜 가든 토니 옆엔 캡틴이 있었고 즐거움이 있었다. 정말 평온한 일상이었다.

 

 

 오랜만에 스티브는 악몽을 꾸었다. 전쟁이 끝났는데도 돌아갈 곳이 없는 자신, 잃어버린 친구, 놓쳐버린 시간들. 젊은 페기의 얼굴, 나이든 페기의 약해진 모습과 모자를 쓰고 웃는 버키, 강철 팔을 장착한 채 스티브를 노려보는 버키가 차례로 스쳐 지나갔다. 버키, 내 친구. 너를 구하지 못해서 미안해. 포기해서 미안해. 주위가 시꺼멓게 물들었다.

 

{데이트가 있었어요.}
이번엔 라디오처럼 지직거리는 노이즈 사이로, 그의 허탈한 목소리가 허공에서 들려왔다.

{스티브, 우린 집에 갈 수 있어요.}

다시 노이즈가 섞이더니 이번엔 희망과 기쁨에 찬 페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뒤를 돌아보자, 스티브 외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때 보았던 환상과 거의 완전히 똑같았다. 이건 꿈이야. 깨어날 수 있어. 깨어나야 해. 점점 어두워지는 공간 속에서 스티브는 고개를 저었다. 몸이 무거웠다. 점점 늪에라도 빠져드는 것 같았다.

 

 "끄으응..."

 

 어디선가 미약한 신음 소리 같은것이 들려와서 토니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완전히 각성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워낙 늘 예민하게 곤두서 있는 탓에 그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끙, 끄응.. 끼잉. 다시 한 번 들어보니 사람이 아니라 개가 끼잉거리는 소리였다. 이 방에는 딱 둘 뿐이다. 토니와, 캡틴. 그는 상체를 일으켜 살금살금 침대가로 다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언제나처럼 앞발에 고개를 얹고 잠든 캡틴이 무척 괴로운 듯이 신음하고 있었다. 개도 꿈 같은걸 꾸나? 토니는 작은 목소리로 그의 충실한 조수를 불러냈다.

 

 "자비스. 개도 꿈을 꿀 수 있어?"

 [연구 결과, 동물들에게서도 REM수면 상태가 나타났고 말을 배운 고릴라가 꿈과 현실을 혼동하여 말한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음.. 그렇군."

 

 소리나 표정, 몸짓으로 미루어 보아 캡틴은 악몽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자는 중에 깨워서 미안하지만 악몽은 길어질수록 더 오래 상처가 남게 된다는 걸 토니는 알고 있었기에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가서 캡틴의 몸을 흔들었다. Hey, buddy. 일어나 봐. 응? 캡틴. 이윽고 잠에서 깼는지 캡틴의 푸른 눈동자가 천천히 드러났다.

 

 "악몽이라도 꿨어? 응?"

 "...끄응.. 낑, 끄응."

 "그래그래. 이리 와. 나랑 같이 자자."

 

 토니는 팔을 벌렸다. 캡틴은 망설임 없이 그의 품으로 뛰어들더니 처음 만났을 때처럼 서럽게 낑낑거리며 고개를 부볐다. 그래, 무서웠어? 착하지. 이제 괜찮아. 나 여기 있어. 토니는 캡틴을 안고 달래며 침대 위에 올라가 그의 바로 옆에 뉘였다. 떨리던 푸른 눈동자가 다시 감기고, 고른 숨소리를 색색 낼 때까지 토니는 캡틴을 쓰다듬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캡틴은 언제 그랬냐는 듯 부산을 떨어 토니를 깨우고 하루를 시작했다. 너 어제 내가 재워줬는데.. 라며 토니가 반쯤 감긴 눈으로 항의했지만 자비스의 스케줄러 낭독을 듣고 축 처진 어깨로 욕실을 향해 걸어 들어갔다. 캡틴, 스티브는 뿌듯한 얼굴을 한 채 욕실 앞에 앉았다. 스티브는 기억하고 있었다. 자신을 흔들어 깨우던 토니의 걱정스러운 표정, 다정한 목소리, 따뜻한 손. 무언가가 울컥 솟아오르는 느낌에 스티브는 그대로 토니에게 괴로움을 토로했다. '스타크. 토니. 토니. 악몽을 꿨어. 내가 있을 곳이 없었어.' 그 내용들을 알아듣지는 못했겠지만 토니는 그저 가만히 그를 안고 달래주었다. 괜찮다고, 옆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무척 단순한 위로였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어 스티브는 토니의 옆에서 푹 잠들 수 있었다. 스티브는 아주 조금이지만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할 일이 많아서 그럴 수는 없을 터였다. 곧 자신에 대한 연락도 토니에게 닿을 것이다. 그 전까지는 이대로 느긋하게 지내도 되겠지. 가운을 두르고 나오며 씩 웃는 토니에게 스티브는 꼬리를 흔들어 주었다.

 

by 치우타 2015. 8. 3. 1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