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의 애완용품이 도착한 뒤 토니는 우선 반짝반짝 빛나는 밥그릇에(아주 비싼 브랜드품이었다) 사료를 부어 주었다. 하루에 2-3회 정도라고 했지. 왠일로 세세한 정보까지 기억해 가며 챙기려던 토니였으나, 정작 캡틴은 하루 내내 사료의 냄새만 몇 번 맡을 뿐 입도 대지 않았다. 왜 그래? 사료가 별로야? 잘 시간이 되어 방으로 돌아와 러그 위에 엎드린 캡틴에게 물어보아도 눈을 깜박이며 올려다볼 뿐 짖거나 끙끙거리지도 않았다. 며칠 간 사료의 종류를 바꿔서 주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고 결국 토니는 처음처럼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식사를 주었다. 캡틴은 꼬리를 살랑이며 맛있게 먹어치웠다.

 

 "너 입맛 까다롭구나."

 "멍!"

 "그러다 이빨 약해져. 뭐 이것저것 생식으로도 관리 가능하다고는 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름이랑은 관계가 없나보다. 토니는 캡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캡틴은 고개를 위로 들어 젖히며 토니의 손을 넘기고는 무릎께에 머리를 비볐다. 제법 친근하게 굴 줄도 알고. 역시 주인이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먹이도 맛있는 것만 먹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거기까지 생각하던 토니는 급작 마음이 짠해지는 걸 느꼈다.

 

 "캡틴, 우리 놀까? 여긴 넓어서 프리스비 던지기도 할 수 있어."

 "멍! 멍!"

 "좋아. 그럼 이걸로 하자."

 

 토니가 방패 모양 프리스비를 들고 흔들었다. 구입한 장난감들이 영 시원찮아서 그가 직접 만든 작품이었다. 캡틴이 다시 멍, 하고 짖었다.

 

 

 한편 스티브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든 사료를 먹지 않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제법 맛있는 냄새가 나서 하마터면 그대로 고개를 그릇에 처박을 뻔 했다), 토니가 환하게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거나 목을 끌어안으면 기분이 좋아졌다. 꼬리를 살랑거리는 건 기본이었다! 아니, 애초에 의견이 맞지 않을때를 제외하면 그렇게 사이가 나쁜 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반가운 느낌은 아니었는데. 게다가 그는 지금 무려 토니와 프리스비 던지고 받기(물어오기)를 하고 있었다. 토니가 랩실에서 직접 만든 방패 모양 프리스비는 쓸데없이 실제 방패와 매우 비슷해서, 날아가는 방향을 예측하기가 쉬웠고 스티브는 백발백중으로 잡아냈다.

 

 "캡틴! 굉장해! 역시 넌 보통 개들이랑은 다른 것 같아."

 "멍! 멍멍!"

 "아주 잘 했어. 착하다."

 

 스티브는 입에 물고 온 방패를 토니에게 순순히 건네주었다. 방패를 바닥에 내려놓은 토니가 뿌듯하고 행복한 얼굴로 스티브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더니 아예 와락 끌어안고 뽀뽀를 퍼부었다. '세상에, 스타크!' 스티브는 깜짝 놀라 그의 품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실제로 취한 행동은 반대였다. 토니의 품에 얌전히 고개를 부비적거리며 신나게 꼬리를 흔들었다. 그야말로 주인에게 사랑받아서 한껏 기분이 고양된 개의 모습이었다. 그가 정말 캡틴이라는 걸 알리고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을 찾는게 급선무였으나,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그는 지금 얼음 속에서 깨어난 후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인정하기 싫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스티브는 평소의 그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토니의 웃는 얼굴을 힐끔 올려다 보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밝은 모습이었다. 요 근래에 발견한 '새로운 스타크' 중에서도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군. 스티브는 좀 더 느긋하게 토니의 품에 머리를 기댔다. 토닥이며 만져오는 손길이 무척 기분 좋았다. 

 

by 치우타 2015. 8. 3. 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