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최상층에 도착하자마자 욕실로 직행했다. 개는 푹 젖은 채로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고, 이대로 놔뒀다간 팔자 사납게도 여름 감기에 걸릴 판이었다. 자비스, 따뜻한 물 좀 틀어. 토니는 욕실 문을 닫고 개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오는 내내 얌전했던 개는 기운 없는 얼굴로 바닥에 푹 퍼졌다. 


"씻고 나서 밥 먹자. 기운내, 너 그래도 운 좋은거야. 내가 누군지 알면 까무라칠걸."


 소매를 걷어붙이며 씩 웃어보이는 토니를 멀뚱멀뚱 올려다보며 스티브는 눈을 굴렸다.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다정한 미소였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나? 처음 보는군. 제 의사와는 달리 한없이 늘어지는 몸을 최대한 추스르며 스티브는 푸르르, 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 욕조에 사람 외엔 니가 처음이야. 토니는 조심스레 스티브를 안아올려 욕조에 앉혔다. 따뜻한 물에 몸이 잠기자 나른함 반, 위기감 반이 몰려왔다. 스티브는 본능적으로 발을 허우적거렸지만 처음부터 낮은 높이로 채워져 있어서 첨벙,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길 뿐이었다. 


 "아, 가만히 있어야지. 비누칠만 하면 되니까.. 응? 착하다."


 버둥거리는 스티브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토니가 속삭였다. 거기엔 숨길 수 없는 따뜻함이 녹아들어 있어서 그는 얌전히 발을 멈추고 섰다. Good boy. 칭찬하는 목소리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스티브는 토니가 비누칠을 마치고 물을 끼얹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 다 했다. 토니의 말이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그는 축축히 젖은 털을 말리기 위해 자연스레 온 몸을 힘껏 털었고, 바로 옆에 있던 토니가 고스란히 물벼락을 맞고 말았다. Hey! 꼬리까지 완벽하게 무아지경으로 털던 스티브는 토니의 짧은 외침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얼굴과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짐짓 화난 얼굴을 한 토니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사람이 아니라, 개로서 무례하게 행동해버린 것도 문제였지만 토니를 물에 빠진 새앙쥐마냥 만들어버린 것에 미안함을 느낀 스티브는 주눅든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끙끙거렸다. 


'미안해, 스타크. 나도 모르게...'

"털고 나니까 좀 시원해? "


 곧 몰아칠 토니의 분노나, 비난 등을 생각하며 잔뜩 위축되어 있던 스티브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토니가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넘기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화난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휘유, 나도 샤워를 다시 해야겠는걸. 그 전에... 네 털부터 말리자. 사료같은건 없으니 오늘은 그냥 고기로 줄게. 자비스! 얘 품종이랑.. 최근에 비슷한 개 실종신고나 뭐 그런거 없었는지 알아보고, 목록 작성해."

[그 개는 골든 리트리버 종입니다. 뉴욕 근방에는 같은 품종의 실종 신고는 없군요.]


 물을 맞은 건 제 쪽인데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 개를 보고 토니는 입맛이 썼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자비스의 말로 보아 주인이 아무렇게나 내다 버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젖은 옷을 대충 벗어 던지고 일단 샤워 가운을 주워입은 토니는 어리둥절해 있는 개를 안아다가 밖으로 나왔다. 혹시 겁을 먹을걸 대비해서 바로 옆에 앉히고 드라이기를 느릿하게 틀었다. 


"털 말릴 거니까 그대로 있어. 이거 무서운 거 아니야. 그냥 뭐, 뜨뜻한 바람이지."

"끄으응."

"뜨거워? 이 정도는 어때? 괜찮아?"


 제 손에 바람을 대어 온도를 몇 번이고 확인하는 토니를 보며 스티브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알던 그 토니 스타크가 이런 사람이었나? 제멋대로에, 틱틱거리고, 장난과 진심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남자가 아니고? 적당히 미지근하면서 따뜻한 바람과 조심스러운 손길이 털을 매만지며 말려주기 시작하자 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처음 보는 개에게 보통 이렇게까지 잘 해주는 사람이란 드물 것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자신의 삶을 살기에도 바쁜 시대에는. 스티브는 눈을 천천히 끔벅이며 제법 열중하고 있는 토니를 힐끔거렸다. 잠이 오는군. 피곤하고 지친 몸은 배고픔을 호소하고는 있었으나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먼저 쏟아져 왔다. 졸려? 토니의 말이 조금 멀게 들려온다. 식사 준비시킬 동안 나도 씻을 테니까 조금만 자. 다정한 목소리. 그는 앞발에 머리를 기대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토닥이는 손길에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든 개를 천천히 쓰다듬던 토니는 소파에서 살그머니 일어났다. 늦은 저녁과, 샤워, 약간의 일거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언제까지고 늑장을 부릴 순 없었다. 그 일거리엔 잠든 개도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앞으로 쟤를 어쩐다. 어차피 토니는 자유 재택근무라서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개를 보살펴줄 수 있었고, 기르는 비용도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었다. 어렸을 때 이후로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품에 달려들어 젖은 몸을 부비고, 애처롭게 울면서 올려다보던 푸른 눈동자를 떠올리자 토니는 급작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왜 하필 골든 리트리버여서는. 꼭 누가 생각나잖아. 토니는 투덜거리며 괜히 팔을 휘저었다. 한동안 진짜 주인이 나타나거나, 개가 떠나고 싶어한다면(그럴 지는 의문이지만) 보내줘야지. 그 전까지만 데리고 있을 거야.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토니는 욕실로 들어섰다. 밥 주면서 이름도 생각해야겠군. 쏴아- 시원한 물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by 치우타 2015. 7. 28. 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