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사실 생물공학 분야에 관심은 있었어도, 직접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거나 투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배너가 그쪽에 통달해 있는 관계로 굳이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을 본인의 일부로 편입시키길 원했다. 천체물리학을 하루만에 읽어서 이해할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진 토니였지만, 배너의 전문 분야를 속속들이 알아내서 안 그래도 부유하는 듯 불안정하게 머물러있는 그를 제 발로 나가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이유었을 것이다. 그랬는데, 토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생물학적 분야의 신규 투자를 위한 자리에 나와 있었다. 페퍼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그는 철판이 두꺼운 남자가 되지 못했다.


"우리는 새로운 공룡을 탄생시킬 것입니다. 더 진화하고, 무섭고, 커다란 것을 말이죠."


 유전자 배합을 통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주도하고 있다는 연구소의 과학자는 그의 투자자(후보들)에게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연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토니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성의없이 손에 든 책자를 펄럭이며 넘겨보았다. 거기 적혀 있는 내용조차 상투적이었던 탓에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원숭이 쇼를 보는게 더 재미있겠군. 신랄한 평가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뭘 모르는 순진한 투자자들만이 허영 넘치는 과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토니는 그렇게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거라면 스폰서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는 말을 목구멍까지 끌어올렸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여기 랩터 사육장이 있다던데. 구경할 수 있습니까?"


 토니는 마치 그 질문이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특권이라는 양 뻔뻔한 얼굴로 근처에 서 있던 파크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클레어, 라는 여자에게 물었다. 그녀는 다른 투자자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토니의 질문에 한 템포 늦게 반응했지만, 곧 그가 '토니 스타크' 라는 걸 깨닫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안팀을 통해 연락을 취해 그가 즉시 랩터 사육장으로 향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고마워요, 클레어." 당신 덕분에 투자할 마음이 드는군요. 토니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씩 웃었고, 클레어는 장차 큰 고객이 될 수 있는 그에게 마주 활짝 웃어보였다. 거짓이든 아니든, 둘 다 비즈니스에 충실하기 위한 미소를 가장한 것은 틀림없었다. 토니는 친절한 무전 안내를 받으며 지루한 연구소를 뒤로 했다.



 토니가 사육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창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랩터들의 사육 및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는 해군 출신의 오웬 그래디라는 남자가 사나운 랩터들을 간단한 소리와 명령어로 길들이고 있었다. 토니는 그를 알아본 관계자들의 친절로 무척 가까운 위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진정해, 블루. 기다려. ......좋아, 잘 했어. 이게 네 먹이야."


 그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위협하는 랩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그들을 충분히 기다리게 하고, 신호를 주면서 먹이를 건네고 있었다. 짐승의 본능조차 다스리기 어려운 판에, 공룡이라니. 토니는 사육사를 자처하고 있는 남자 쪽에 더 흥미를 느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 공룡이 말을 듣는다고? 팔짱을 낀 채 남자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모든 랩터들과 이야기할 때 눈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동료라는 남자들도 그걸 엄숙하고, 또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유대라고? 공룡이랑 인간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토니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좋아. 다들 정말 잘 했다. 착하지."


 오웬이 랩터들을 달래어 원래 있던 우리로 돌려보내는 걸 보고 토니는 형식적인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좀처럼 듣기 힘든 소리에 오웬이 눈살을 찌푸리며 두리번거리다가 이윽고 토니를 발견했다. 선글라스를 낀 채 토니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오웬은 잠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살피는 것 같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해군이라더니 날래네. 토니는 파란 쫄쫄이의 누군가를 몇 초간 떠올렸다가 이내 지웠다.


 "여긴 제한구역인데, 어떻게 온 겁니까?"

 "난 특별 대우라서. 지루한 연구소 말고 랩터 사육장을 보고 싶었거든. 당신이 그러니까-"

 "오웬 그래디. 그냥 오웬이라고 불러요."


 토니가 미스터 그래디, 라고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자 오웬은 씩 웃었다. 기선제압을 아는 남자의 여유로운 미소였다. 어쭈, 제법 하는데. 토니는 이 새파란 애송이에게 한 발 밀렸다는 걸 느끼고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토니 스타크."

 "아, 아이언맨! 당신이군요. 어쩐지 이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오웬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토니의 밤톨머리와 수염을 가리켰고 토니는 아까보다 좀 더 기분이 나빠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 놀림당하고 있는거 맞지? 그것도 처음 보는 해군 나부랭이 사육사한테? 토니의 눈썹이 실룩댔다. 오웬은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캐치했는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토니에게 악수를 청했다.


 "기분이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유명인을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라 긴장했네요."

 "흠. 날 상대로 제법 배짱이 좋은데, 미안하면 밥이라도 사는 건 어때?"


 토니는 선글라스를 벗어 머리 위에 끼면서 도발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가 기분이 나쁘거나, 주위 사람들을 쫓아버릴 때 쓰는 방법 중 하나였다. 재수없는 표정으로 재수없게 말하는 것.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도 꽤 도움이 되는 기술이었지만 페퍼는 제발 비즈니스에선 좀 더 자제하라고 토니에게 충고하곤 했다. 


 "좋습니다. 여기 밥은 대체로 별로지만. 그나마 괜찮은 곳을 알아요."

 "거기가 어딘데?"


 내 집이죠. 오웬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토니의 선글라스를 뺏어서 제 얼굴에 씌웠다. 장난스러운 눈동자가 순식간에 검은 렌즈 뒤로 감춰졌다. 어쭈? 지금 해보자는 거야? 토니는 잊고 있었던 승부욕에 기름이 끼얹어지는 걸 느끼며 기가 찬 듯이 웃었다. 도발에는 도발로 응해 줘야지. 어차피 지루했던 투어였는데 시간을 죽일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토니는 오웬의 얼굴에서 선글라스를 다시 뺏어서 제 가슴의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당신이 얼마나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지 볼까?"

 "너무 놀라지나 마시죠, 스타크 씨."


 내 요리에 넘어오지 않은 사람이란 없었으니까. 오웬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토니에게 헬멧을 씌웠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오토바이에서는 제법 좋은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오토바이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겠는걸. 토니는 순순히 헬멧을 고쳐 쓰며 탄탄한 남자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래서는 떨어져요, 오웬이 억지로 토니의 팔을 더 가까이 두르고는 예고도 없이 출발했고 토니는 짧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별 수 없이 오웬에게 밀착했다. 가면서 좋은 경치도 구경시켜줄게요! 오웬이 즐거운 듯이 웃었다. 플레이보이 잘못 건드린 댓가를 어떻게 선사해 줄 지 고민하면서도, 토니는 남자의 웃음에 전염된 것처럼 따라서 피식 미소지었다. 경쾌한 배기음이 숲 속을 가로질렀다.


 

by 치우타 2015. 6. 13. 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