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린."

"무슨 일이십니까."

"이 서류, 어딘가 잘못된 것 같은데."

"? 이건 오리가 조금 전 제출하지 않았습니까? 어디가 잘못되었다는 거죠?"


"글자가..... 이상한데."



소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종이를 발린의 코 앞에 내밀었다. 발린은 코에 안경을 끼고 내용을 세밀히 살펴보았다. 최근 도서관 파악 현황, 장서들과 고서들의 배치, 인력부족, 기타 에레보르의 도서관과 관련된 시시콜콜하지만 필요한 보고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글자에는 오자나 탈자가 몇 개 있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멀쩡한데요. 오자가 좀 있긴 해도."


"멀쩡해? 다시 잘 봐, 글자가 움직이고 있어."


"전하, 글자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발린은 고개를 저으며 서류뭉치를 다시 정리해서 한 덩이로 만들어두었다. 분명 글자가 이렇게 춤을 추고 있었는데. 소린은 작게 중얼거리고는 이번엔 다른 문서를 집어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이번에도 글자가 제멋대로 종이 위에서 별 난리를 치고 있었다. 발린, 아무래도 이거 무슨- 소린이 말하며 고개를 들었을 땐 아무도 없었다. 그는 멍한 표정으로 눈을 몇 번 깜박이다 한숨을 내쉬었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한가, 아침부터 영 이상하군. 소린은 어깨를 가볍게 움직이며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쉬어주고 나면 이상한 현상이 좀 없어질까 싶어 그는 손으로 아예 시야를 덮어버렸다.



"소린, 여기 있...... 오."



집무실의 문을 노크하려고 했으나 워낙 단단한 돌인 탓에 포기하고 낑낑거리며 열어젖힌 빌보는, 눈 앞에 펼쳐진 뜻밖의 광경에 입을 다물었다. 소린이 서류뭉치들 사이에서 엎드려 잠에 빠져 있었다. 세상에, 누가 봐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소린이 일하다 말고 잠들다니! 그것도 누가 언제 찾아올 줄 모르는 집무실 안에서! 빌보는 잽싸게 복도를 둘러보고는 집무실의 문고리에 근처에 '방해하지 말 것' 팻말을 조심스레 걸어두었다(에레보르에서 하도 노크없이 들이닥치는 드워프들의 습관 때문에 반쯤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던 빌보가 고안해냈다).


빌보는 살금살금 소린에게 다가갔다. 잠깐 물어볼 것도 있었고, 쉴 겸 해서 티타임이나 하자고 찾아왔는데 애써 끓인 맛있는 차가 보람도 없이 식어버릴 판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실망스러운 기분은 아니었다. 그건 아마도, 구불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잠든 소린의 얼굴이 모처럼 평온해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빌보는 소린의 겉옷을 내려 그에게 덮어준 다음, 보기 드문 광경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조용한 티 타임을 갖기로 했다.



by 치우타 2014. 1. 30. 2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