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차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평소같았다면 파티에 대해서, 혹은 다른 것에 대해 즐거운 듯이 찰스가 이야기하면 에릭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조용히 웃거나 같이 대화를 나누곤 했지만 오늘은 서로 뭔가를 피하는 것처럼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러웠다. 차가 주차장에 멈춰서고, 시동이 꺼지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찰스는 참았던 숨을 내뱉으며 차문을 열었다. 침묵은 에릭의 집에 들어와 술을 꺼내고 잔에 따라 둘이 마주하는 동안에도 계속 자리를 지켰다.


"....좀 옛날 이야기인데... 괜찮아?"
"나는 상관없어."
"....그래."


찰스는 브랜디가 담긴 잔을 빙글빙글 돌리며 흔들리는 액체를 잠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10살때.... 유괴를 당한 적이 있었어. 한 때 아동 연쇄납치 살해사건으로 들썩였었는데.. 기억해?"
"물론 기억하지. 생존자가 적었.... 잠깐, 찰스. 설마...."
"그래, 맞아."


내가 바로 그 생존자들 중 하나였어. 브랜디를 쭉 들이키며 대답하는 얼굴은 지나치게 담담해서, 오히려 당황한 것은 에릭 쪽이었다. 그도 어렸던 시절이었기에 상당 부분 흐릿했지만 거의 매일같이 TV에서는 유괴당한 아이의 부모들이 눈물로 호소하고, 경찰이 굳은 얼굴로 범인의 몽타주를 뿌리거나 수사협조를 요청하고, 영화처럼 FBI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기억에 남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아이를 상대로 한 범죄 치고는 상당히 잔인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어서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된것은 물론이고 사이코패스의 또 다른 유형으로 프로파일링 되기도 했었다. 에릭이 과거의 기억을 더듬고 있는 동안, 찰스는 빈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내쉬었다.


"거긴 시골 오두막이었어. 정신이 들었을 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지. 정확히는 기억 안나지만.. 열댓명 정도였던 것 같아. 처음 이틀간은 아무 일도 없었지. 아이들은 엄마 아빠를 찾으며 울었고.. 그러다 지쳐 잠들곤 했어. 나도 첫날에는 조금 울었는데 약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꾹 참았지만."


에릭은 말없이 찰스의 빈 잔에 이번엔 위스키를 따라주었다. 브랜디와는 전혀 다른 그 향기에 잠깐 푸른 눈을 동그랗게 뜨던 찰스는, 이내 빙긋 웃으며 새로운 술로 입술을 축이고는 말을 이었다.


"3일째 되는 날, 이유는 모르겠지만 화가 난 범인이 오두막에 들어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여자아이를 질질 끌고 나갔지. 날카로운 비명이 울렸고 아이들은 덜덜 떨면서 어쩔줄을 몰랐어. 열려있는 문을 통해 끔찍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비명이 멎었을 때, 짧은 정적이 지나간 다음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지. 범인이 그걸 듣고 신경질적으로 시끄럽다고 소리쳤어. 난 그때 본능적으로 이러단 누가 또 끌려갈 거라는 걸 알고 근처에 있던 아이들을 달랬는데... 그러다 범인하고 눈이 마주치고 말았어. 그리고....."


찰스가 말을 멈추고 아랫입술을 세게 꾹 깨물자 에릭은 가만히 그의 등을 쓸어주었다. 가늘게 떨리던 몸이 조금씩 진정되는 걸 느끼고 에릭이 어색하지 않게 손을 떼었다. 순간 찰스의 몸이 움찔했지만, 이내 이야기를 계속 풀어나가는 찰스의 목소리에 에릭은 금방 그것을 잊어버렸다.


"다음날부터 범인은 하루에 한 명씩, 죽이기 시작했어. 그것도 내 눈 앞에서.... 움직일 수 없게 날 묶어두고 아이들이 범인의 손에 죽어가는 걸 지켜보게 했지. 살해 방법은... 언제나 넥타이로 목을 졸라 질식시키는 거였고..... 아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면 내게로 와서 그 넥타이로.. 내 목을 졸랐어. 죽기 일보 직전까지만 압박하고 다시 놓아주는 거였지. 그게... 나는, 당시엔 몰랐지만... 자료에 의하면 5일... 동안이었다고 해."


납치 10일만에 구출. 살해당한 아이들은 6명. 생존자는 나를 포함해서 5명이었어. 약간 목소리가 떨리긴 했지만, 담담한 어조로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마치 신문을 읽듯 읊어내는 찰스를 보며 에릭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입을 통해 들은 사실은 신문이나 뉴스, 혹은 가십용 잡지에서 읽었던 것보다 더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것이었다. 게다가 찰스는,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걸 며칠동안 강제로 목격한 것으로도 모자라 죽기 직전까지 목이 졸리는 경험을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예전에 정신을 놓아버리고도 남았을 터였다. 그러나 찰스는 이렇게 술을 마시며 멀쩡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니, 멀쩡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보통 사람과 다를바가 없어보였다. 진한 알코올을 목 너머로 넘기고 난 찰스가 다시 툭 던지듯 말했다. 


"....그 때 넥타이에 강한 트라우마가 남았던 모양이야. 보기만 해도 벌벌 떨면서 발작을 일으키던 시절이 있었고..... 치료 받으면서 나아졌지만 여전히 목에 맬 수는 없어. 아마 평생... 그럴지도 모르지."


그리고... 사과하지 않아도 돼. 몰랐잖아. 따스한 손이 천천히 에릭의 뺨을 어루만졌다. 입가에 걸린 잔잔한 미소는 평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움이 있었다. 이럴 때에 어떤 행동을 하면 좋을지, 무슨 반응을 보여주면 좋을지 확실하게 판단하기에는 에릭이 가진 정보가 너무 적었다. 그래서 그는 알고 있는 답을 꺼내들었다. 입술이 겹쳐지던 순간, 에릭은 언뜻 찰스의 눈에 맺힌 물방울을 본 것 같았다.

 

by 치우타 2012. 2. 3. 0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