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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달에 한 번 정도 얼굴은 보는 걸로 할까. 딱 좋을것 같은데, 어때?


 토니의 제안은 퀼에게도 아주 반가운 것이었다. 둘 사이에 있는 거라곤 가벼운 농담과 성적인 대화, 그리고 섹스였다(가끔 우주와 지구 사이에 관계가 생기면 진지한 이야기도 필요했지만). 그들은 하루이틀 안 본다고 해서 안달이 나는 뜨거운 연인사이도 아니고, 주말엔 뜨거운 시간을 보내는 부부도 아니었다. 그냥 만나서 대화하고, 웃고, 섹스를 나누면 그만이었다. 어떠한 연결고리도 없는 쿨한 사이. 토니는 이걸 파트너쉽이라고 칭했으나 퀼은 그것보단 더 좋은 호칭이 있지 않겠냐면서 30분 정도 고민했다. 기다리다 지친 토니가 셔츠 단추를 풀지만 않았어도 아마 계속 고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시일이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던 토니로부터 통신이 들어온 건 조금 전이었다.


 [미안한데 여기가 너무 바빠서 말이야. 손을 뗄 수가 없군. 한동안 못 볼것 같아.]

 "자기야, 그럼 연락이라도 했었어야지. 보고 싶어서 목 빠지는 줄 알았어."

 [어디까지 빠졌는지 보여주면 당장 날아갈게.]

  

 짐짓 심각한 얼굴로 엄살을 피우는 퀼에게 토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둘 다 마음에도 없는 소리라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언제나의 일이었다. 퀼이 바빠서 시간이 안 날때도 간혹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토니가 무척 바쁜 사람이다 보니 약속이 깨어지거나 미뤄지는 건 흔한 경우였다. 퀼은 그때마다 애처럼 칭얼대며 아쉬워했지만 뒤로는 다른 여자를 꼬셔내어 뒹굴었고, 토니는 그걸 눈치채고도 삐진 것마냥 말다리를 걸곤 했다. 섹스 한두번이면 잊어버릴 만한 것들로.


 "시간 될 때 연락해. 지구가 위급해도 연락하고."

 [오, 네 도움을 받을 정도면 이미 늦은 다음일걸. 그리고 콘돔은 꼭 쓰고 다녀.]

 "와우, 마미. 아들은 다 컸으니 걱정 마세요."

 [엄마는 늘 걱정이란다, 아들. 다음에 봐.]


 화면이 툭 꺼지자 퀼은 크게 기지개를 켰다. 얼마 전에 들렀던 행성의 바에서 아주 섹시한 여자 하나를 꼬셨었는데, 전화번호가 어디 있더라. 로켓이 정말 내 방을 날려버릴 기세였으니 우주선엔 데려오지 말아야지.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옷을 뒤적여 물에 번져 엉망이 된 종이조각 하나를 찾아냈다. 망할. 퀼은 미련없이 그것을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또 찾지 뭐. 



 토니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은 지 세 달째가 되어서야, 퀼은 스스로가 이상하게 굴고 있다는 걸 드디어 인정하기로 했다. 이미 오래전에 우주선의 다른 멤버들은 그가 또라이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몇 번이나 지적했지만(가모라는 식사를 하다 말고 다리를 떨며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는 그를 보며 말했다. "너 정말 머저리 같아."), 정작 당사자는 난 멀쩡하다며 바락바락 우기고 있었던 것이다. 퀼이 인정하자 우주선에는 약간의 평화가 돌아왔다. 아주 약간이었지만.


 말했다시피, 퀼은 지금 무척 기분이 안 좋았다. 그게 언제부터였는가 생각해보면 빌어먹게도 토니 스타크와 연락이 끊긴 다음부터였다. 도대체 왜? 퀼은 방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며 침대위를 굴러다녔다. 그들 사이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 것도! 그게 지금 퀼을 초조하고 화나게 하고 있었다. 이유라도 알면 해결이나 하지. 그는 아랫입술을 질겅거리며 천장을 노려보았다. 난 지금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 그가 중얼거렸다. 


 토니와 연락이 되지 않는 동안에도 여자들을 만나러 몇 번이나 나갔지만 거의 다 꼬실 즈음이 되면 일이 터지거나 퀼 자신이 흥이 식어버려서 분위기를 망치곤 했다. 이게 욕구불만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섹스를 한 번도 안한건 아니었다. 재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쾌함, 초조함이 잔뜩 쌓여서 배 안에 꼬인 듯한 느낌이었다. 평소에 원만한 성격으로 멤버들의 트러블을 조정할 만큼 여유로운 퀼이었지만, 지금 그는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라 작은 것에도 짜증을 내고 화를 내고 이상한 노래를 틀어댔다. 이 미친 또라이자식아, 그만 좀 해! 참다못한 로켓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직접 개량한 레이저 건을 꺼내들자, 퀼은 흉흉한 얼굴로 헬멧을 뒤집어썼다. 일촉즉발의 사태를 말린 건 그루트였고, 이 일을 계기로 멤버들은 퀼이 정말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에겐 해결책이 필요했다.


 바로, 토니 스타크가.



 토니는 마지막 서류철을 꼼꼼히 읽어보고 사인을 마친 다음, 의자에 푹 기대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어벤져스 일부터 시작해서 회사 일에, 도무지 손을 뗄 수 없는 것들이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바람에 그는 오늘 하루종일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그나마 토니의 안 좋은 습관을 알고 있는 페퍼나 스티브가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반강제로 뭔가를 먹인 덕분에 잠도 자지 않고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셔츠의 단추를 두어 개 푸르며 토니는 불현듯 우주에 떠 있을 금발의 철 없는 양아치 파트너를 머리에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벌써 세 달째 목소리도 못 들었군. 여자들하고 잘 놀고 있겠지. 마지막으로 봤던 진지한 얼굴을 생각하니 웃음부터 나왔다. 순간, 여러 개의 발소리가 문 근처에 다가왔다. 토니는 반사적으로 몸을 긴장시키며 수트를 부르기 위해 손을 뻗었다. 콰앙! 문이 거칠게 열리고 나타난 얼굴들은... 맙소사. 우주의 친구들이었다.


 "로켓? 그루트에, 드랙스까지? 뭐야, 왜 갑자기..."

 "설명할 시간 없어, 스타크. 우린 아주 급하거든. 잠이나 자둬."

 "무슨.... 윽."


 로켓은 토니에게 마취총을 쏘았고 허를 찔린 그는 그대로 책상에 무너졌다. 이게 다 공공선을 위해서야, 스타크. 너도 휴가가는 셈 쳐. 의식을 잃어가던 토니에게 뭔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꿈인지 진짜인지 알 수 없었다. 토니는 그대로 짐짝처럼 그루트에게 들려져서 우주로 향했다. 



 ".....으으..."

 

 토니는 묘하게 불편한 자세라고 생각하며 잠에서 깨어났다. 뭔가 단단한 것이 그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몸을 조금씩 뒤척이듯 움직이려고 해 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몇 번 눈을 깜박이며 수마를 쫓아내고 나서야, 그를 안고 있는 건 금발머리의 무언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퀼?" 가라앉은 목소리로 토니가 말했다. 미동도 않던 몸이 움찔 떨렸다.


 "토니."

 "이게 뭐야... 여기 우주야? 무슨 일이라도 났어?"

 "난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어디 행성이 멸망하기라도 한대? 왜 갑자기 납치같은 걸..."

 "나한테 절대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다고. 아무리 상대가 우주 최고의 섹시미녀라고 해도."


 토니는 눈썹을 찡그리며 퀼의 동그란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얘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내가 잠이 덜 깼나? 아니면 이게 꿈 속인가? 토니는 살짝 입술을 씹어보았다. 치아의 감촉이 생생했다. 꿈이 아닌 것 같은데. 토니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기로 했다.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봐, 피터 제이슨 퀼. 잠꼬대 그만 하고." 퀼이 그 말에 고개를 번쩍 들어 토니를 올려다보았다. 푸른 눈에는 원망과 애정, 혼란스러움이 뒤섞여 일렁이고 있었다. 덩달아 토니도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다 당신 때문이잖아."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때문이라니?"

 "지금 말하면 제대로 안 나올 것 같아서 싫어."

 

 기실 토니의 인내심이란 아주 얇은 종이조각에 비유되곤 했다. 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잖아, 피터. 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지금도-" "보고 싶었어." 말 끝을 잘라먹고 튀어나온 대답에 토니의 입이 경악으로 쩍 벌어졌다.


 "....뭐라고?"

 "보고 싶었어, 토니 스타크. 빌어먹을. 당신이 보고 싶었단 말이야. 나도 이해가 안 되지만, 그랬다고. 이제 시원해?"

 

  퀼은 말을 마치고 숫제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잔뜩 억울하고 분한 얼굴로 토니를 바라보았다.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에 토니는 비틀거리고 싶었으나 허리를 꽉 끌어안고 있는 퀼의 팔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늘상 둘이 주고받는 그런 보고싶었다는 단어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언론에 노출되어온 천재는 사람의 말 속에 숨겨진 거짓을 파악하는 기술에 능통한 만큼, 감정이나 어떠한 변화에도 무척 민감했다. 언제나 온 우주를 돌며 하반신을 휘두르고 다니던 이 나이 어린 난봉꾼이 진심을 던진 것이었다. 토니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당장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금발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퀼이 한숨을 내쉬었다.


 "....할래?"

 

 평소의 토니라면 절대 내뱉지 않을 지리멸렬한 대사였지만 지금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지치고, 피곤하고, 또 반쯤 정상이 아닌 상태였다. 특히나 퀼은 토니의 온도와 체향에 잔뜩 파묻혀서 이제야 마음의 평화를 되찾고 있었다. 대답 대신 입술이 찾아들어오는 걸 느끼며 토니는 푸스스 웃었다. 이 강아지를 어떻게 할 지는 좀 나중에 생각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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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Lady Gaga - Bad Romance 에서 따왔습니다. 이 노래 토니가 부르면 어울리지 않나요? 딱인듯

그리고 소재는 탱고님으로부터. 원고하느라 바쁘신 탱고님께 바칩니다. 흐흑 넘 모자란 연성이라 죄송할따름..

여러분 퀼토니 파세요 (찡긋찡긋

by 치우타 2015. 2. 19. 23:29

 사실 퀼은 우주로 납치된 이후로 자기 생일을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었다. 라바저들이 그런걸 신경써줄 리가 만무했고 (게다가 퀼은 잡아먹느니 어쩌니 하던 그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어렸던 퀼이 생존과 적응을 목표로 잡은 다음부터는 생일이란 그저 추억 속의 따스한 기억으로 남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퀼은 자신이 서운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토니의 프라이빗 룸 소파에 앉아 있었다. 토니는 바쁜 사람이었고 가능하면 늘 자신을 위해 시간을 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서 고개를 드는 섭섭한 감정마저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순 없었다. 


 "미안해, 대신 내일은 하루종일 비울게."


 거기다 토니는 보기 드물게도 진심으로 눈썹을 늘어뜨리며 사과해왔다. 먼저 데이트 약속을 정해놓고도, 제 쪽에서 바람을 맞히게 된 상황에 토니는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토니 스타크가! 처음 사귈때만 해도 퀼이 먼저 적극적으로 들이대며 우주 무법자(그것도 연하)를 사귀는 것에 회의적이고 시큰둥했던 토니에게 정말, 열정적으로 어필한 덕분에 축 연인 탄생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퀼은 아주 조금 마음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내 층에서 조금만 기다려. 저녁엔 갈게. 아니, 자정 전까진 꼭 들어가 볼테니까."

 "알았어요, 토니. 나도 한동안 우주에 일정은 없으니 무리하지 않아도 되는데....."

 "윽, 정말 가봐야겠군. 키스나 해."


 타박하는 듯한 명령조에 퀼은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토니의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했다. "얌전히 있어야 돼, 자비스 말 잘 듣고." 무슨 어린애라도 하나 두고간다는 듯이 잔소리를 덧붙이던 토니가 금세 멀어졌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퀼은 축 처진 강아지마냥 풀이 죽은 얼굴로 그대로 주저앉아 멍하니 자비스가 틀어주는 영상을 바라보았다. 생일 같은 건 역시 별 의미 없는 날이지. 그는 천천히 눈이 감기거나 말거나 내버려두었다.



 "맙소사, 얘 지금 자고 있는 거야?"

 [중력 적응이 잘 안된다는 식으로 중얼거리신 것 같긴 합니다만.]

 "누군 기다리게 한 것도 미안해서 수트 입고 날아왔더니... 일어나, 퀼."

 "....으으음..."


 몸을 뒤척이며 눈살을 찌푸릴 뿐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퀼을 내려다보며 토니가 한숨을 쉬곤 넥타이를 헐겁게 풀었다. 자정이 되기 1분 전인데, 이 태평한 연하 꼬맹이는 세상 모르고 자고 있군. 지구 플레이보이의 기술이라도 보여 줄까? 토니는 잠깐 목을 다듬더니 이젠 엎드린 퀼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일어나, 피터."

 

 달콤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 퀼은 잠이 남아있던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완전히 정신을 일으켜 세웠다. 지금 뭐라고 한 거지? 그는 눈을 몇 번 깜박이며 자신이 깨어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토니..?"


 "그래, 잠꾸러기씨. 이제 정신이 좀 들어? 일어나. 자정 넘어버렸다고."

 "벌써 시간이 그렇게.. 잠깐, 내가 계속 잤어요?"

 "자비스 말로는 그랬다던데.. 영상 보다가 잠들고는 몇 번 뒤척이기만 했다고."

 "와.... 세상에. 어쩐지 배가 너무 고프더라."


 토니는 질렸다는 듯 피식 웃으며 퀼의 머리칼을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무슨 겨울잠 자는 곰도 아니고, 사람이 시간 맞춰서 왔더니 말이야. 뭐 어쨌든 시간이 넘었어도 할 건 해야지." "침대로 가자고요?" 천진한 물음과 함께 자연스레 허리를 감싸오는 손을 토니가 찰싹 때렸다. "넌 그거 생각밖에 없어? 그 전에 다른 게 있잖아." 다른 거라니, 자신을 만나기 위해 헐레벌떡 귀가한 연인과 할 일이 섹스 말고 또 뭐가 있단 말인가? 퀼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 있군. 아직 신선하네, 주문 제작한 보람이 있어. 자.. 불을 켜고."

 "어? 케이크?"

 "바보 같긴, 네 생일이잖아? 고마운 줄 알라고. 이런거 챙겨준 적 없었어. 난 내 생일도 가끔 잊어버리거든."


 토니는 허리에 단단히 감긴 퀼의 팔을 풀기 위해 무던히 애썼으나, 곧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나란히 옆에 앉아 생일 축하곡을 불러 주었다.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to you~ Happy birthday dear.. Peter. Happy birthday to you!"

 

 퀼은 토니의 약간 덤덤한 노랫말 속에 숨겨진 것을 놓치지 않았다. 피터. 한 번도, 심지어 침대에서 몸을 섞을 때도 불러준 적 없던 제 이름이었다. 지금까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는데 막상 토니의 입을 통해 듣고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간지럽고, 몸이 배배 꼬이고, 낯설지만 익숙한.. 그리고 따뜻한 느낌. 이제껏 다른 사람이 불렀을 때엔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각이었다. 이게 뭐지. 퀼은 초가 녹아가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채 멍하니 토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케이크 망치겠다, 빨리 꺼! 내가 불면....읍."


 토니의 뒷 말은 이어지지 못한 채 그대로 퀼의 입 안으로 먹혀 들어갔다. 평소보다 더 뜨겁고, 열렬한 입맞춤이었다. 이 꼬맹이가 갑자기 왜 이러지? 토니는 널찍한 등을 슬슬 쓰다듬으며 급한 키스에 얌전히 응해 주었다. 그게 더 불을 붙였는지, 퀼은 아예 토니를 소파에 눕히고 한동안 입술을 떼지 않았다. (결국 숨이 막힌 토니가 등을 후려칠 때까지 말이다)


 "후아, 하아... 하아.. 맙소사, 초가 거의 다 녹았잖아! 너 갑자기 왜..."

 "사랑해요."

 "....허어?"


 토니는 이번에야말로 이게 미쳤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퀼을 올려다 보았다. 촛불의 빛이 일렁이는 얼굴에는 평소에 찾아보기 힘든 진중함이 어려 있었다. 아, 이거 위험하군. 토니는 이런 얼굴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랑에 빠진 청년의 얼굴이었다. 그것도 제법 진지하게. 여러 가지 이유로 속내를 감추는 것에 능했던 토니가 결코 퀼에게 들킨 적 없는 또 다른 얼굴이기도 했다. 너까지 이러면 우리는 이제 정말 큰일나는 건데. 토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서서히 차오르는 기쁨에 미소를 지었다. 퀼이 다시 한 번, 입술을 가볍게 부딪치며 속삭였다.


 "....사랑해요."

 "...생일 축하해, 피터 제이슨 퀼. ...나도 그래."


 퀼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토니를 와락 끌어안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반사적으로 그의 목에 팔을 감던 토니가 불안한 예감을 느끼며 말했다. "잠깐, 너 촛불도 안 끄고.. 설마 아니겠지?" "난 그것보다 당신이 더 급해요. 지금 당장." 그러고는 바로 등을 돌려 침실로 척척 걸어가버리는 것이다. 토니는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야, 너 저게 얼마짜리인 줄 알아? 이 날을 위해서 특별히...!"

 "케이크가 그렇게 먹고 싶으면 이따가 먹여줄게요. 물론 나도 먹을 거지만."

 "너 지금 야한 생각 했지? 아, 타임! 나 피곤하단 말이야!"

 "걱정 마요. 아침에 실컷 재워줄게요."

 "사람이 말하면 좀 들어!!"


 토니가 몸을 버둥거리며 외치거나 말거나, 퀼은 멈추는 일 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잠시 후 침실의 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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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그러니까 2월 4일이 코믹스 기준이긴 해도 퀼 생일이라기에 원래는 어제 쓰려고 했지만

제 최애가수 마이클 부블레 공연에 다녀오느라 ㅋㅋㅋㅋ 끝나고 집에오니 시간도 넘고 졸리고 해서

결국 이렇게 되었습니다만 어쨌든 썼으니 된거겠죠!!!! 하하 생일 축하해 피터~~


by 치우타 2015. 2. 5. 14:24

 퀼은 잔뜩 구겨진 얼굴로 스타크 타워 옥상에 서 있었다. 방해꾼들(이라고 쓰고 어벤져스 멤버들이라고 읽는다)이 뜸해져서 한창 토니와 깨소금을 뿌리고 있었는데, 가모라로부터 급하게 연락이 들어온 것이다. 타노스의 부하들이 또 뭔가 벌이고 있다는 증거를 잡았으니 가능한한 빨리 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노련한 연상 애인과 즐기는 시간은 무척 중요했지만, 그가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의 부름도 마찬가지로 중요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
"그러면-"
"무슨 일 없어도 연락하고, 물론. 당연한 거 아니야?"
"이래서 당신이 좋아요. 토니."

 바보처럼 헤실거리며 다시 꽉 끌어안아오는 퀼의 등을 토니가 부드럽게 토닥였다. 토니도 이런 식의 짤막한 이별에 익숙한 타입은 아니었으나 이 연하 애인은 더 그랬다. 처음엔 쿨이니 뭐니 센 척도 하고 온동네 휘젓고 다니는 어설픈 플레이보이였지만, 막상 사귀기 시작하자 넘치는 애교에 스킨쉽에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특히 퀼은 이런 식으로 잠깐 우주에 돌아가야 할 때, 탑승 직전까지 토니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애정을 갈구하고 사람의 체온을 좋아하는 모습이 어쩐지 예전의 자신을 떠올리게 했다. 씁쓸함 반 사랑스러움 반으로 가만히 안아 달래면 도리어 더 품에 파고들어오는데 도무지 당할 도리가 없었다. 넌 나보다 훨씬 솔직해. 그래서 귀여워. 토니는 퀼의 뺨에 키스했다.

"저기 왔네. 이제 가야지, ."
"가끔 이럴땐 매정한 것 같기도 하고..."
"매정하다는 말의 사전적인 의미가 알고 싶다면 돌아왔을 때를 기대해 봐."
"아니, 아니, 잘못했어요. 취소. 다녀올게요, 토니."

 바람 피우지 마요. 장난스럽게 덧붙이며 윙크를 날린 퀼이 우주선에 올라탔다. 저게 진짜 귀엽게 노네. 토니는 피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우주선이 빠르게 멀어졌다. 


 이틀 후, 토니는 갑작스럽게 스티브의 방문을 받았다. 마침 그는 회사 일정도 없어서 오래된 연구 자료를 정리하거나 새로운 방화벽 프로그램을 구상 중이었다. 랩실의 문이 열리고 가죽 자켓에 면 티셔츠, 청바지를 걸친 스티브가 들어오는 걸 보며 토니는 휘파람을 불었다.

"와우, 캡틴. 복장이 제법 괜찮아졌네. 이제 적응 좀 됐나봐."
".. 어울리나? 잠복근무를 몇 번 하다보니 편안하고 눈에 띄지 않는 옷을 입게 됐거든."
"그 가죽자켓이 정말 좋군. 색도 그렇고, 딱이야. 그런데 무슨 일로?"

 토니는 띄워두었던 창을 옆으로 치우며 스티브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자 어쩐지 묘한 기분에 시선을 스윽 위로 굴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고개를 돌리진 않았다. 스티브는 희미하게 미소짓더니 뭔가 쑥스러운 듯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이 노친네가 왜 이러지?

", .. 혹시 오늘 자네 시간이 있나?"
"시간? 무슨 시간?"
"사실은... 나타샤에게서 이런 걸 받았는데. 적응 훈련의 일환이라고."
"....미술관 티켓?"
"고리타분한 박물관 말고, 현대 미술도 좀 보고 오라더군. 칙칙하게 혼자 가진 말라면서 두 장을 받았네만.. 같이 갈 만한 사람이 없어서."

 스티브는 멋쩍은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고개를 들었다. 자네는 아주 바쁜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혹시 괜찮다면.. 덧붙이는 말은 캡틴 아메리카 답지 않게 작은 목소리라서 하마터면 내용을 놓칠 뻔했다. 토니는 습관적으로 팔짱을 끼며 스티브의 손에 들린 티켓과 어쩔줄 모르고 서 있는 스티브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 괜찮겠지. 미술관 정도야.


by 치우타 2015. 1. 19. 21:57

 스티브를 포함한 어벤져스 멤버들이 타워로 입주한 이후, 퀼은 어쩐지 알게모르게 토니와의 시간을 방해받는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의외로 첫 스타트는 배너 박사였는데 토니와 연구니 뭐니 대화를 나누더니만 둘이 랩실에 콕 틀어박혀서 도무지 나올 줄을 몰랐다. 

 직접 찾아가서 은근히 나 외롭다는 뉘앙스의 말을 던져도 보았지만(배너는 다행히도 남 일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토니는 "착하게 기다리고 있어, 퀼. 오래 안 걸릴 거야." 라는 말과 함께 그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고는 다시 홀로그램 화면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대실패였다! 

 보통 퀼은 여유를 가질 줄 아는 쾌남이지만, 이렇게 진심으로 대하는 상대로부터 이틀 이상 떨어져 있는 건 제법 괴로운 경험이었다. 그것도 같은 집에 있으면서. 사흘째 되는 저녁에 맛있는 샴페인과 음식을 가지고 마침내 토니가 그에게 돌아왔을 때, 퀼은 반쯤 풀죽은 얼굴을 한 채 시무룩한 상태로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헤이, 스위티. 왜 그렇게 널부러져 있어?"
"버림받은 강아지의 기분을 느껴보는 중이에요."
"음, 그래서 어떤데?"
"쓸쓸하고 외롭고.... 혼자인 기분이 드네요."
"그 동안 일을 다 미루고 있어서 그랬어. 이틀 반만에 끝낸 것도 너 때문이고."
".....진짜로?"
"정말로."

 토니가 웃으며 퀼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렸다. 부드럽게 호선을 그리는 눈가엔 애정이 담겨 있어서, 퀼은 며칠간의 서운함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오늘밤은 안 놔줄건데." 팔을 잡아 끌어당기며 속삭이자 토니는 푸스스 웃었다. "언제는 놔 줬었나 뭐. 살살해. 내 나이를 생각하라고."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입술이 맞딯았다.

 그렇게 다시 달콤한 시간을 보내나 했더니 이번엔 나타샤가 토니를 찾아왔다. 정보를 우회해서 빼낼 때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달라는 거였는데, 토니는몇 가지 쓸모있는 기술을 그녀에게 가르쳤다. 예전같았다면 붉은 머리에 섹시한 스파이인 그녀가 퀼의 취향에 스트라이크 존이었겠지만, 지금은 토니 말곤 아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거와 별개로 눈은 즐거웠지만. (헤실대는 퀼을 토니가 매섭게 째려보았다)

"고마워요, 스타크. 이건 정말 유용하겠어."
"내 뒤통수 치는데엔 쓰지 마. 당신은 너무 똑똑해서 더 이상 안 가르쳐 줄 거야."

 토니가 농담 반 진담 반을 섞어 유쾌하게 던지자, 나타샤는 의미심장하게 씩 웃어보였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네요. 퀼은 토니 근처를 맴돌며 대화를 엿들었지만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음 날에는 호크아이, 바튼 요원이 무기 제작에 관한 요청을 하러 찾아왔다. 매서운 눈매를 가진 그가 처음 홀에 들어섰을 때 퀼은 무척 긴장했지만(이사할 당시 그는 임무 중이라 자리에 없었다), 토니를 보자마자 반갑게 풀어지는 걸 보며 안도함과 동시에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인지를 바쁘게 계산해 보았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로마노프 요원이랑 둘이 사귀는 사이일걸."
"어? 그래요?"
"둘 다 아닌 척 하지만 말이야."

 퀼은 어깨에 힘을 빼며 토니의 허리에 매달렸다. "난 또 뭔가 했어요. 그 사람이 당신한테 너무 호의적이라.." 토니가 즐거운 듯이 낄낄 웃었다. "매 요원은 내 오랜 팬이거든." 

 희안하게도 퀼이 가장 경계하며 걱정하던 도전자이자 방해자인 스티브는 일주일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내 기우였나? 그는 간지럽다며 밀어내는 토니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잡생각을 떨쳐냈다.

by 치우타 2015. 1. 16. 01:18

 파티는 소박한 규모에 비해 제법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아스가르드에 있는 토르를 제외한 전 어벤져스 멤버가 타워로 이사온 걸 축하하며, 겸사겸사 우주에서 온 퀼(스타로드라는 호칭을 듣고 다들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말했으며, 스티브만이 애매한 표정으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과 인사를 나눴다. 파티 내내 퀼은 토니 옆에서 떠날줄을 몰랐고, 적당한 너스레와 유치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웠다. 자정이 조금 못 되어 파티가 끝나자 다들 각자의 층으로 돌아갔다. 스티브는 퀼이 잠시 로켓의 연락을 받는 사이에 토니와 뭔가 대화를 나누고는 돌아갔다.

"무슨 이야기 했어요?"
"음? 아. 요새 하고 있다는 임무가 있대서."
"쉴드 기밀?"
"거긴 늘 그렇지."

 흐으음. 약간 불만스럽다는 듯 흥흥거리자 토니는 퀼의 콧잔둥을 가볍게 잡아당겼다. 토니이. 코맹맹이 소리로 칭얼거리는 연하 애인은 요즘 들어 부쩍 질투도 심해지는 게 제법 귀여웠지만, 미리 컨트롤해두지 않으면 나중에 귀찮은 일이 될 터였다. 

"쓸데없는 생각 자꾸 하면 난 잘거야."
"! 안 돼, 우리 일주일 만이잖아, 못 자요."
"그럼 빨리 와. 누구 때문에 술도 마음껏 안 마셨는데.."

 토니는 약간 비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퀼의 포옹을 풀고 침실로 먼저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른하면서도 섹시한 그 표정에 퀼은 등이 뜨끈하니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허둥지둥 쫓아가 다시 끌어안았다. 

"...밤 샐수 있어요?"
"언제는 안 새게 만든 것처럼 말한다, 너. ..흐응..아.."
"그럼 사정 안 봐줘도 되겠네."
"전처럼 온통 물어뜯진 마, 아프니까... 아, 사람 말 좀 들어! 이 바보가.. 윽, 흣..."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덥석 목덜미를 물어오는 이빨의 감촉에 토니가 타박하며 퀼의 등짝을 때렸다. 내 거야. 토니. 스티브에 대한 건 잊어버린 모양이지만 엉뚱하게 소유욕을 불태우는 모습에 토니는 픽 웃어버렸다. 내가 봐 주는 건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네. 

by 치우타 2015. 1. 16. 01:16

"속도 좀 더 내봐. 이것밖에 안 돼?"
"몇 번을 말했지만 이거 니 비행기야, 이 얼간아! 최고 속도로 가는 중이거든? 눈은 장식이냐?"

 로켓의 폭언을 듣고서도 퀼은 쉽사리 조종간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일이 길어지는 바람에 사흘은 무슨, 거의 일주일 가량을 지구에서 떨어져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토니와 어떻게든 음성으로 연락을 주고받는건 가능했으나 묘하게 가슴 한 구석에서 기분 나쁜 예감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게다가 어젯밤 대화를 나눌 때 주위가 제법 시끄러웠기에 물어봤더니 '새 식구들이 올 것 같다' 고 토니가 말했던 점이 특히 신경 쓰였다. 새 식구라니? 타워에 누가 또 온다는 뜻인가? 설마 캡틴은 아니겠지. 

"도착 예정 시간은?"
"20분 남았어. 이제 그만 엉덩이 붙이고 내릴 준비 하던지, 아니면 꼴사납게 구르던가!"
"타워 위에 세워. 알아서 내려갈 테니까!"

 뭐라고 궁시렁거리며 욕을 주워섬기는 로켓에게 퀼은 활짝 웃어보였다. 저렇게 좋을까. 지구에 애인이 생겼다면서 우주보다 지구에 눌러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퀼은 바람둥이 생활도 싹 청산해서, 동료들에게 놀라움과 경악을 선사했다. (설마 너 죽을때가 된 건 아니지? 가모라가 의심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게다가 상대는 무려 지구 최고의 셀렙- 그것도 남자라고 했다. 인간들 취향은 알다가도 모르겠어. 로켓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퀼이 내려간 걸 확인하자마자 쌩 하니 우주선을 돌려 날아가 버렸다.

"토니! 토니! 나 왔어요! 토니!"
"억, 퀼.. 으윽. 숨막혀, 네 덩치로 그렇게 달려와서 껴안으면 어떡해?"
"보고싶었어요, 정말 죽는 줄 알았어... 빨리 뽀뽀, 아니 키스. 아니 침대부터-"

 돌아오자마자 바디 어택을 선사하는 것도 모자라 다짜고짜 침대 운운하는 퀼의 옆구리를 토니가 세게 꼬집었다. 아야! 토니! 엄살이 반쯤 섞인 비명을 한 귀로 흘리며 토니는 엄격한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했다.

"어제 말했잖아. 새 식구들이 들어오고 있단 말이지. 밤엔 몰라도, 지금은 절대로 안 돼."
"여긴 당신 전용층인데도요?"
"그건-"
"토니, 잠깐 이것 좀 봐 주겠나?"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려던 퀼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대로 딱딱하게 굳었다. 도저히 착각할 수 없는 목소리, 진중한 톤. 소리없는 발걸음. 설마. 기름칠 덜 된 기계마냥 끼기긱 소리를 내며 퀼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갔다. 편안한 트레이닝복을 입은 스티브가 투명 패드를 들고 서 있었다. 그는 퀼과 눈이 마주치자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뭔데? 줘 봐. ....흠. 여긴 전용 트레이닝 룸이야. 아까 말한대로 침실은 여기고."
"아, 어쩐지 평수가 조금 다른 느낌이더군. 알려줘서 고맙네."
"별것도 아닌데 뭘. 다들 이사 끝나면 홀로 모이라고 해. 저녁에 파티나 하자고."
"좋아. 그때쯤이면 정리도 마칠 수 있을 것 같고."

 이게 무슨 상황이지? 퀼은 자신의 신체적 성능을 의심해 본 적이라곤 단 한번도 없지만, 지금만큼은 어디 한 군데가 이상해져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사? 파티? 다들? 그리고 스티브 로저스? 퀼은 뭔가 말하고 싶은 사람처럼 입을 뻐끔거렸으나 토니는 나중에, 라고 속삭일 뿐이었다.

"이제부터 같이 살게 될 테니 다시 인사해야겠군. 잘 부탁하네."

 그리고 스티브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해왔다. 퀼은 직감적으로 그가 독점하고 있던 링 위에, 강력한 도전자가 발을 들이려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싸움은 안 하는게 좋다는 주의지만 거기에 사랑이 걸려 있다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고 만다. 퀼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씩 웃으며 손을 마주 잡았다. 아주 세게.

"나야말로 잘 부탁해요, 캡틴."

by 치우타 2015. 1. 16. 01:15

 스티브는 십여분째 꽃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수줍게 피어난 핑크빛 장미꽃은 싱싱하고 아름다웠다. 사가지고 갈까? 상대는 많은 걸 가진 남자였지만(게다가 이젠 애인도 있다) 의외로 소박하고 단순한 것들에 약했다. 뭐 이런걸 사왔느냐고 농을 던지면서도 살짝 미소지을 옆얼굴을 떠올리자, 마음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캡틴? 왠일이야? 오늘은 숙제도 없는데."
"지나가다 들렀네. 커피나 한 잔 얻어먹을까 하고.."
"그거.. 좀 의외인걸. 들어와. ....장미꽃은 왜 사왔어?"
"커피값, 이라고 하면 이상한가?"

 그 자신이 놀랄 정도로 말이 쉽게 미끄러져 나왔다. 토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몇 번 깜박이더니, 곧 부드럽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스티브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흠, 당신이 점점 21세기 남자가 되어가는 건 알겠어. 여전히 클래식하지만 그게 매력이기도 하고. 땡큐."
"칭찬 고맙네."
"뭐 마실래? 캡틴 아메리카노?"
"새로 나온 커피인가? ...농담이야. 그걸로 주게."

 스티브는 토니가 피식 웃으며 커피 머신을 작동시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에 거슬리는 덩치가 없으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토니는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양 시종일관 들러붙어서 노려보는 꼴이 우스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승부욕 또한 끓어오르고 있었다. 전에도, 이번에도 늦어버렸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동그란 뒤통수를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스티브의 시야에 토니의 목덜미가 들어왔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 커피... 헤이, 스티브? 캡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금."

 토니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이름에 스티브는 어깨에서 힘을 뺐다. 그래. 기회가 있건 없건 해보지 않고서는 결과도 알 수 없다.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는 토니에게 스티브는 그저 말없이 웃어보였다.

by 치우타 2015. 1. 1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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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는 요즘 약간의 스트레스와 흥미로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좋은 일이 안 좋은 일이기도 하다는 뜻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시커먼 남자들사이에 끼어 있다는 게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토니! 뭐 해요. 숙제? 연구?"
"잘 아네. 숙제 중이야. 오늘 캡틴이 가지러 올 거거든."

음흠? 캡틴이라는 말에 퀼의 고개가 조금 신경질적으로 기울어졌다. 아, 안 좋은 예감이 드는데. 토니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담는 건 불가능했다. 게다가 캡틴- 스티브는 한 시간 이내로 도착할 것 같다는 연락을 준 상태라, 말을 안 하는 쪽이 나중에 더 괴로웠다. (내가 너같이 한창때인 줄 알아? 그만 좀, 아, 너 진짜... 흐응!) 

"요즘 너무 자주오는 거 아닌가? 거긴 뭐 할일도 없대요?"
"안 도와주면 쳐들어오겠다는데 어쩌겠어."
"흐음. 의외로 쉴드라는 집단이 무능한 모양이네."
"부정하긴 힘들군. 그런데.. 왜 이렇게 달라붙어?"
"좋아서 그래요. 뭐 이유가 있나."

질투하는건 아니고? 토니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삼켰다. 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할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오늘은 스티브를 최대한 빨리 돌려보낸 다음 트레이닝 스케줄을 잡아서 퀼을 잠시 떨어뜨려 놓을 것이다. 안 그러면 그의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 같았다. [Mr. Rogers의 방문입니다.] 자비스의 알림과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바쁜데 미안하군, 토니.. ....그리고 스타로드."
"헤이 캡틴, 좋은 오후죠? 자주 보니 반갑네요."

퀼은 사람좋은 미소를 지으며 스티브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손으로는 토니의 허리를 붙든 채로. 스티브는 잠시 미간에 깊은 주름을 만들었지만 곧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걸 깨닫고 애써 평온을 유지하며 손을 마주 잡았다. 두 남자의 손이 굳은 악수를 나눴다. 다 좋은데 난 빼고 해. 토니는 속으로 뻐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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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윗롱거로 쓴 단문입니다.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아저씨랑 프랫 포옹짤보고 퀼토니 뻐렁...

by 치우타 2015. 1. 12. 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