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는 십여분째 꽃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있었다. 수줍게 피어난 핑크빛 장미꽃은 싱싱하고 아름다웠다. 사가지고 갈까? 상대는 많은 걸 가진 남자였지만(게다가 이젠 애인도 있다) 의외로 소박하고 단순한 것들에 약했다. 뭐 이런걸 사왔느냐고 농을 던지면서도 살짝 미소지을 옆얼굴을 떠올리자, 마음보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캡틴? 왠일이야? 오늘은 숙제도 없는데."
"지나가다 들렀네. 커피나 한 잔 얻어먹을까 하고.."
"그거.. 좀 의외인걸. 들어와. ....장미꽃은 왜 사왔어?"
"커피값, 이라고 하면 이상한가?"

 그 자신이 놀랄 정도로 말이 쉽게 미끄러져 나왔다. 토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몇 번 깜박이더니, 곧 부드럽게 웃으며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스티브의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흠, 당신이 점점 21세기 남자가 되어가는 건 알겠어. 여전히 클래식하지만 그게 매력이기도 하고. 땡큐."
"칭찬 고맙네."
"뭐 마실래? 캡틴 아메리카노?"
"새로 나온 커피인가? ...농담이야. 그걸로 주게."

 스티브는 토니가 피식 웃으며 커피 머신을 작동시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에 거슬리는 덩치가 없으니 이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토니는 제 것이라고 주장하는 양 시종일관 들러붙어서 노려보는 꼴이 우스웠던 것도 사실이었지만, 승부욕 또한 끓어오르고 있었다. 전에도, 이번에도 늦어버렸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동그란 뒤통수를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스티브의 시야에 토니의 목덜미가 들어왔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여기 커피... 헤이, 스티브? 캡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조금."

 토니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이름에 스티브는 어깨에서 힘을 뺐다. 그래. 기회가 있건 없건 해보지 않고서는 결과도 알 수 없다. 약간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는 토니에게 스티브는 그저 말없이 웃어보였다.

by 치우타 2015. 1. 16. 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