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vel Cinematic Universe 

Steve/Tony

Alternative Universe

Writing material by 귤자님


Lion, Man, and Love.



나무 위에서 선잠을 자고, 때론 목숨을 걸고 반쯤 자란 풀숲을 보호책 삼아 침낭에서 겨우겨우 잠을 청하며 사자 무리들과 함께 지낸 지 일주일 째. 드디어 사자들은 토니에 대한 경계를 어느 정도 푼 것처럼 보였다. 물론 이건 겉으로 보기에 그랬다는 의미로, 실제 그 무서운 맹수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프로젝트 팀은 토니가 자연스럽게 무리 속에 녹아 있는 모습을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토니도 지친 얼굴로,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래, 작업은 제법 순조로웠다. 더운 날씨에도 그럭저럭 적응했고 마른 먼지나 동물들의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딱 한 가지만 제외한다면.



"넌 대체.... 니네 엄마가 이번에야말로 날 죽일거야. 제발, 저리 좀 가. 응?" 



토니는 반쯤 행복한, 나머지 반쯤은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발치에서 뒹굴고 있는 것을 내려다 보았다. 저 혼자 신이 난 듯 바지 밑단에 온통 털을 발라대며 갸르릉대고 있는 것은 얼마 전 토니가 물을 먹여준 새끼 사자였다. 다른 또래들에 비해 몸이 조금 말랐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 이 녀석은 언제부터인가 토니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내리 사흘 정도를 시달리던 토니는 일부러 어제와 다른 자리, 또 다른 자리, 아예 냄새를 맡기 힘든 곳 등에 숨어 있어도 귀신같이 찾아내서는 바짓가랑이를 물어뜯으며 칭얼대는 바람에 토니는 다른 사자들이 쫓아올까봐 기함하며 도망가는 걸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이 새끼 사자는 토니가 옆에 있으면 만족한듯 갸릉거리며 한껏 애교를 피웠다.


눈 앞에 귀여운 새끼 사자가 나랑 놀아달라고 온갖 묘기를 선보이는데도 놀아줄 수 없다니, 이 얼마나 가혹한 일인가!


토니는 괴짜에다 기본적으로 마이웨이 스타일이라, 누가 뭐라고 해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성미였지만 여기는 야생의 법칙이 적용되는 곳, 남아프리카의 사바나였다. 좀 귀엽다고 이성을 잃고 새끼 사자를 만지작거렸다가 어미의 손에 처참하게... 토니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휘휘 내젓고 카메라를 바로 잡았다. 오늘은 새끼 사자 무리와, 사냥을 다녀오는 어미 사자 무리를 각각 몇장씩 더 찍어야 했다. 


가릉가릉. 셔터를 몇 번 누르지도 않았는데 새끼 사자가 불만스러운 소리를 내며 토니의 운동화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아 제발. 토니는 애써 그 울음소리를 무시하고 눈 앞의 광경에 집중했다. 새끼 사자들이 저마다 구르고 쫓으며 재미나게 노는 모습이 보였다. 찰칵 찰칵 찰칵, 셔터 소리가 경쾌하게 울리고 토니는 점차 찍는 일에 빠져들어 갔다.



"갸오옹-"



새끼 사자는 몇 번 울어도 토니가 거들떠보지 않자, 좀 더 대담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토니는 자세를 고정하고 사진을 찍느라 무릎을 땅에 딛은 채 반쯤 꿇고 있었다. 새끼 사자는 토니를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하며 발톱을 세워 옷을 타고 무릎 위로 기어올라갔다. 아무리 어린 새끼라지만 애완 고양이들처럼 깎은 발톱이 아니기에, 토니는 뜨끔한 아픔을 느끼고 짧게 신음을 흘렸다.



"아얏, 어.. 어어..! 끙......너 정말....."

"갸옹, 그르릉...."



괜찮은 샷을 건졌다고 좋아하던 기쁨도 잠시, 아예 무릎 위로 올라온 새끼 사자 때문에 토니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나무라듯 쳐다보자 새끼 사자는 슬금슬금 눈치를 보더니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리고는, 토니를 올려다 보며 가냘프게 끙끙거렸다. 이거 다 알고 그러는 거 같은데. 동그란 눈망울이 화내지 말라는 듯이 쳐다보는데, 누가 화를 낼 수 있을까. 물론 날 때도 있겠지만. 토니는 그대로 카메라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너 지금 나한테 이러는 거 완전 고문이야. 알아? 모르겠지, 귀여운데 널 만지면 내 목숨은 이거라고 이거, 훅 간다니까?

 .....아 그렇게 머리 들이대지 마! 안 만져줘! 못 만져줘! 에비!"



토니가 화를 못 낸다는 걸 알아채기라도 했는지 새끼 사자는 금세 기세등등해져선 숫제 토니의 품에 머리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건 어느 동네의 신종 괴롭힘이지? 사바나인가? 이 녀석만인가? 토니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애써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리며 외면했다. 부모, 안되면 어미 사자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 새끼에게 손을 대는 건 그야말로 자살 행위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지고 싶다. 배 간지럽히고 싶다. 토니는 손이 근질거렸지만 마음 속으로 라이언 킹 주제곡을 부르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러다 보니 사냥 갔던 암사자들이 돌아왔고, 새끼 사자의 어미는 식사를 하고 온 다음인지 입가에 피칠을 하고 자기 새끼를 데리러 토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그 모습이 가히 호러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토니는 숨도 멈추고 가만히 있었다). 



"나 네 새끼 안 만졌어."

"...."

"진짜야. 손도 안 댔다고! 얘가 나한테 일방적으로 들이댄거야!"

"........"



이번엔 용감하게 자기 변호를 시도한 토니를 무감각한 표정으로 보던 어미 사자는 토니 무릎위에 있던 새끼 사자를 입으로 물어 데리고 갔다(이 과정에서 토니는 반쯤 졸도할 뻔 했고 새끼 사자는 토니 바지에 발톱으로 매달렸으나 결국 끌려갔다). 돌아가기 전에 어미 사자는 토니의 무릎에 머리를 한번 슥 부벼주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 버렸고, 남겨진 토니는 한참 동안 패닉에 빠져 있다가 멀리서 들려오는 하이에나 울음 소리에 퍼뜩 깨어 캠프로 허둥지둥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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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허락이 떨어졌다!

토니가 스티브를 만질 수 있게 되었다! (띠링띠링)

휴 저렇게 귀여운 생물이 애교 떨고 있는데 못 만지는 것도 진짜 고문이겠죠. 힘내라 토니.

사자 주제에 너무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것 같지만 원래 동물은 귀신같이 알아요. 누가 해꼬지할지 아닌지.

이제 좀 더 보들보들 귀여운 장면도 많이 쓰고.... 빨리 스티브 키워서 토니랑 살게 해주고 싶네요 으아아아아아아아

by 치우타 2014. 6. 9.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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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material by 귤자님


Lion, Man, and Love.



"....젠장, 사자들하고 친해지기 전에 더위에 쪄 죽겠네."



토니는 목에 걸친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랴부랴 제출했던 사진이 운좋게 뽑혀서 메인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 건 무척 기쁜 일이었지만, 팀원들과 함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토니는 시원한 자신의 저택이 그리워졌다. 물론, 그들이 토니를 속인건 아니었다. 계약 초반에 프로젝트의 내용과 장소에 대해 설명했고 토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말해 주었고 토니는 흔쾌히 승낙했다(사바나라니! 끝내주네, 거기가 자연 동물원이라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상상과 현실에는 제법 큰 차이가 있는 법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팀원들은 장기 프로젝트며 야생 동물들에는 초보인 토니에게 가장 중요한 수칙을 가르쳐 주었다.

'절대 그들을 자극하지 말고, 같은 무리처럼 자연스럽게 친해질 것'.

생김새도 냄새도 다른 토니를 모두 경계할 것이며, 조금이라도 위협이 느껴질 경우 바로 공격해 올 거라는 베테랑의 주의 및 조언에 토니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죽기밖에 더 하겠어. 정글에서 살아남은 적도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그리고 지금, 한 사자무리의 근처에서 토니는 위험한 맹수보다는 더위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쟤네들은 저렇게 털을 잔뜩 두르고 덥지도 않나... 보호수단이면서 생존전략이겠지만, 어우.."



사진기는 늘 손에 들고 만일을 대비한 마취총과 조명탄, 기타 구급물품을 상비한 채 사자들과 익숙해지기 놀이를 한 지 벌써 사흘째였지만 여전히 사자들은 그를 경계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옷도 자연색에 맞추었고 숨도 눈치 봐가면서 쉬었으며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갈 수 없었건만 저 빌어먹을 동물들은 수틀리면 토니를 물어제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원한 게 내 인생의 실수였던건 아닐까? 토니는 이제와서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는 카메라 렌즈로 사자들을 살피며, 끈적하게 흘러내리는 땀을 무시하려고 노력했다. 



".....?"



토니는 문득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선가 무척 갸날픈 울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그 순간 다시 한 번 같은 소리가 들렸고, 환청이 아님을 확인한 토니는 근처 덤불을 천천히 헤치며 작은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보았다. 사자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1m 정도 주위를 쑤석거리자 드디어 자그마한 털뭉치가 시선에 들어왔다. 아직 어린 새끼가 몸을 떨며 울고 있었다. 



"너.... 아직 어린데, 엄마는 어디 있어? ....굉장히 마르고, 맙소사. 물이라도 마실래?"



알아들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입이 멋대로 움직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토니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새끼의 입에 천천히 물을 흘려넣어 주었고,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끙끙거리던 새끼 사자는 혀를 내밀어 물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새끼들과 만나면 섣불리 손대지 말라던 팀장의 엄중한 경고를 떠올리면서 토니는 약간 거리를 두었다. 더운 날씨에 지치기라도 한 건지, 새끼 사자는 토니의 소중한 물통을 다 비우고 나자 그제야 정신을 조금 차리는 것 같았다.



"이게 오늘 최대 비축분이었는데.... 다시 돌아가서 가져와야겠군. 너 나중에 신세 갚아라."



토니는 투덜거리며 물병을 품에 갈무리했다. 어쩐지 옆 얼굴이 따가운 느낌이 들어 돌아보자, 새끼 사자가 토니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젠장, 귀여워 죽겠네. 만지고 싶은데 그랬다간 오늘로 내 인생 종치겠지. 참자 토니 스타크... 괜히 움찔거리는 두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토니는 애써 새끼로부터 눈을 돌렸다. 아예 여길 뜨는 게 낫지 않을까? 진작 그랬어야지! 하지만 그가 천천히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하나 떼자마자, 새끼가 처량맞게 울부짖었다. 갸오오옹. 



"야, 난 느이 엄마 아냐. 왜 그렇게 울어? 누가 꼭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용히 해."



토니가 황급히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며 새끼를 바라보자 언제 그랬냐는 듯 새끼는 얌전해졌다. 뭐야 이거? 토니는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어 약간 실험을 해 보기로 했다. 얼굴을 보면서 발을 뒤로 빼서 물러났더니, 새끼는 숫제 하소연하듯 울어댔다. 이거 지금 나더러 가지 말라고 이러는 거지? 난 죽었다. 토니는 새하얗게 질렸다. [토니 스타크, 새끼 사자와 접촉하는 바람에 물어 뜯겨] [토니 스타크, 어이없는 죽음] [사바나의 안전, 이대로 좋은가?] 상상할 수 있는 몇 가지의 헤드라인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런 걸 아는지 모르는지, 새끼 사자는 이제 아예 토니의 발치로 다가와서 머리를 부비적대고 있었다. 하하... 인생이란 이렇게 허무한 거였군. 자비스 말이나 잘 들을걸. 석상처럼 굳어가는 토니의 등 뒤에서 이번엔 낮게 그르릉거리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유언장 갱신하고 올 걸 그랬어. 토니는 신호탄이니 뭐니 하는 안전 수칙을 전부 새까맣게 잊어버린 채 고개를 돌렸다.


제법 덩치가 큰 암사자가 토니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토니와 발치의 새끼 사자를. 토니는 항복의 표시로 두 손을 들어보일까 싶었지만, 그랬다간 위협적인 행동으로 보일까봐 닥치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이봐, 내가 그런거 아냐. 네 새끼야? 얘가 나한테 먼저 들이댔다고. 가지말라고 크게 울어대고. 내가 뭘 어쩔 수 있었겠어? 응?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하는 말은 목구멍 속으로 시시각각 사라져 갔다. 암사자는 잠시 코를 킁킁대더니 느릿하게 토니에게 걸어왔다.


아, 죽었구나.


눈을 질끈 감은 토니의 옆을 암사자는 가볍게 스쳐가더니 발치의 새끼를 입으로 물어 올렸다. 그러고는 꼬리로 토니를 툭툭 치고는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 버렸다. 새끼가 끙끙댔지만 암사자는 신경도 안 쓰는 것 같았다.



"......살았어?"



토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기도 했지만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온 몸을 감싸왔다. 암사자가 꼬리로 자신을 쳤을 때 이러다 공격당하는건가 하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안중에도 없다는 듯 가 버린 것이다. 자비스한테 전화라도 해야겠어. 몇 분간의 안정을 취한 후, 토니는 비틀거리며 일어나 캠프 쪽으로 발을 옮겼다. 텅 빈 물통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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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지지리도 안 나가네요 드디어 스티브와의 첫 만남! 새끼 사자 스티브 ㅋㅋㅋㅋㅋㅋ 헤헤

by 치우타 2014. 6. 6. 02:22

그 어떤 운명적이고 불꽃처럼 타오르는 사랑도, 아무런 시련 없이 조용하게 싹트는 법이란 없다. 생과 사라는 극단적인 경계에 선 채 서로에게 잔뜩 날이 선 말들을 던지며 부딪치는 사이에 쌓인 미운정 고운정도, 몇 시간만 떨어져 있는 것만으로도 안달이 나는 뜨거운 연인들도, 결국 한 두번쯤은 꽤나 어려운 고비를 맞닥뜨리곤 하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의 스티브 로저스와 토니 스타크가- 딱 그 시점에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스티브쪽에서 여러모로 동요하고 있었다는 점이 더 맞았을 것이다. 뉴욕 사건을 거치며 토니와 조금 더 가까워지고, 몇 번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다 정신을 차려보니 침대 위에서 몸을 섞고 있었다는 게 그들의 뻔한 것 같으면서도 황당한 로맨스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은밀한 연애를 알게 된 몇 안되는 사람들은 으레 그렇듯이 방탕하기로 이름난 토니가 현대에 적응하느라 바쁜 싱싱한 젊은이 (실은 97세의 노인이지만)를 살살 꼬셔서 냉큼 꿰어찬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반대였다. 스티브와 자신의 성격이라거나, 여러가지 면모를 고려했을 때 이 관계가 지나치게 깊어지면 필시 곤란할 것임을 알아차린 토니는 미리부터 거리를 두었다. 애매하게 섹슈얼 텐션이 고조될 때면 과장된 농담이나 오만한 웃음으로 상황을 모면하곤 했다. 


그러나 상대는 백전노장, 40년대의 영웅, Living legend- Captain America였다. 토니가 특정한 분위기가 될 때면 잽싸게 꽁무니를 빼고 달아난다는 걸 퍼뜩 깨달은 스티브는 노련하게 그 뒷덜미를 붙잡았고, 왜 그랬는지 추궁한 다음,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았다. 늘 가볍고 헤픈 것 같아도 진심어린 애정에 약한 토니에게 신실한 40년대 남자의 사랑고백은 지나치게 스트라이크 존이었으며 결국 토니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하고 말았다.


막 시작한 연인 치고는 심심한 사이였지만 스티브와 토니는 자주 만났고 몰래 데이트했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티브의 과거에 대한 그리움마저 완전히 지워버릴 순 없었다. 토니는 그걸 진작부터 알고 있었고, 스티브가 종종 말 한마디 없이 훌쩍 나갔다가 돌아와도 거기에 대해 섭섭함을 내비치지 않았다. 물론 서운하고 쓸쓸했으나 말한다고 해서 해소되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님을 본인 스스로가 누구보다도 더 잘 알았기에 그랬을 뿐이었다. 



"요새 그렇게 로마노프 요원이 당신한테 여자 소개시켜주려고 안달이라면서?"


"소문이 거기까지 났나? 한 번도 수락한 적은 없어."


"그래, 대답도 멋지게 했다고 들었지. 바빠서 안 된다고 그랬다던데."



토니는 짐짓 태연한 척 말하며 입술을 비죽였다. 어벤져스 때와는 다른 스텔스 수트를 입은 스티브는 누가 봐도 위압적이며 매력적이었고, 복도를 지나갈 때면 여성들의 시선도 함께 따라왔다. 물론 그 중엔 토니에게 관심을 가진 이들도 있었겠지만 평생을 사람들 시선 속에 살아온 토니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의 흥미 대상은 스티브 로저스였다. 아무래도 여기 직원 복지예산을 깎으라고 해야겠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리고 있자, 단단한 손이 다가와 뺨을 어루만졌다. 가죽장갑과 뜨끈한 체온이 닿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젠장, 몇 달 못봤다고 이지경이라니. 토니 스타크 다 죽었군.



"얼굴이 좀 상한 것 같은데, 토니."


"...그냥 좀, 말리부도 부서지고 뭐... 나도 바빴잖아."


"도우러 못 가서.. 미안하네. 아주 나중에야 들었어."


"괜찮아. 쉴드가 개입한다고 해서 어떻게 될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그치들은 정보수집이나 하고 있었겠지."



토니는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스티브는 그 모습을 보고 아릿한 아픔을 느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동정이나 연민을 싫어하는 남자였다. 그 자신도 마찬가지였고. 쉴드 본부가 아니었다면 팔을 뻗어 안아주고 싶었으나 보는 눈도 많았고 무엇보다, 둘에겐 그럴만한 시간도 없었다. 토니가 컨설팅을 하러 온 타이밍과 스티브의 휴식시간이 우연히 겹치지 않았다면 얼굴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요즘 두 사람은 거의 그런 식으로 지내고 있었다. 스티브의 방황과, 토니의 기다림, 묵인.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아. 적은 언제나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노리지."


"오, 미국의 영웅께서 걱정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는걸. 알았어, 주의하지. 당신이야말로 조심해."



쉴드는 스파이 집단이라 언제 어디서 뭘 해도 놀랍지 않거든. 토니가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놀랍게도 스티브는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닉 퓨리 저격, 쉴드 수배, 새로운 동료, 윈터 솔져,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버키의 등장으로 인해 무척 복잡하고 위험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스티브를 뒤흔든 건 오랜 친우이자 가족같은 존재인 버키였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지만 스티브는 그의 친구가 살아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위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제쯤 시작할 거야?"


"....그 전에, 들러야 할 곳이 있어. 뭐하면 나중에 합류해도 되고."


"어딜 가느냐에 따라 다르지. 아까 그 간호사 아가씨 만나러 가는 거면 빠지겠지만-"


"아니, 그쪽은 그냥 예의상 물어본 거야. 관심 없어."


"그렇게 안 생겼는데, 현대적 가치관은 다 배운거 아니야? 캡틴."


"그랬다면 연락해서 만나자고 했겠지. 어쨌든, 따라올 생각 만만인 것 같으니 그냥 같이 가는게 좋겠군."



쉴드에서 지급한 건 이미 부서진 지 오래였으나, 토니가 생일때 선물한 클래식한 40년대 디자인의 끝내주는 야마하가 남아 있었다. 묘지를 벗어나 몇 블록을 건너 도착한 창고의 문을 열자, 과연 샘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휘파람을 불었고 스티브는 기분 좋게 미소지었다. 때론 받기 곤란할 정도의 고가 선물들을 안기는 통에 엄격하게 제지한 적도 있었지만 이 오토바이만큼은 토니에게서 받은 것들 중에서도 상당히 아끼는 것이었다. 뉴욕의 또 다른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는 A타워의 뒤쪽으로 돌아간 스티브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지문과 음성을 인식시켰다. 



"타워 최상층."


[스티브 로저스, 인가되었습니다.]


"워, 여기 스타크 타워 아니야? 이런 곳에도 출입문이 있었다니.. 놀라운데."


"아무래도 거리 쪽은 소란스러우니까, 여긴 소수의 관계자들만 출입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고 하더군."


"그런데 여기 최상층엔 무슨 일로..."


[문이 열립니다.]



샘이 뭔가를 말하기도 전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스티브는 마치 제 집인 양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들어갔고 샘은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그의 뒤를 따라 내렸다. 탁 트인 시야와 널찍한 공간, 한쪽에는 미니 바가 자리하고 있는 광경에 그는 좀 질리고 말았다. 세상에, 이거 어쩐지 프라이빗한 공간이라는 느낌인데. 스티브가 여상히 공중에 말을 거는 순간 하마터면 샘은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뻔 했다.



"자비스. 토니는 어디에 있지?"


-잠시 산책 나가셨습니다만, 지금 곧... 저기 오시는 군요.



바람을 가르는 엔진 소리와 함께 금빛의 수트- 아이언맨이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이윽고 둥그런 발판에 가볍게 내려섰고, 기다렸다는 듯 기계들이 움직이며 수트를 벗겨내기 시작했다. 걸음을 옮기는 것에 맞추어 파츠가 하나 둘씩 제거되는 모습은 비현실적이면서도 꽤나 섹시했으며, 매력적이었기에 스티브도 샘도 한동안 말을 잊고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덕분에 토니는 덩치 큰 군인 둘이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보고 있다는 걸 손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거기, 둘. 그러다 턱 떨어지겠어."


"....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넋을 놓은 모양이군."


"토니 스타크?"


"You know who I am, 스티브의 새로운 친구 씨."


"소개하지. 이쪽은 샘 윌슨. 이번 일에 많은 도움을 준 동료야. 이쪽은.. 말 안해도 알겠지만, 토니 스타크. 아이언맨."


"만나서 반가워요. 설마 캡이 친구를 데려올줄은 몰랐네."



토니는 샘과 악수를 나누며 씩 웃어보였다. 거기엔 요만큼의 사적인 감정도 들어가있지 않았지만 스티브는 괜시리 혼자 찔리는 마음에 시선을 피해 천장을 훑어보고 있었다. 몇 달만에 만나러 온 것도 모자라 친구를 달고 오다니, 연인 실격은 아닐까. 사실 그렇게 따지자면 제대로 이유를 말해주지도 않은 채 오랫동안 방황했던 최근의 자신이 가장 문제였으리라. 스티브는 낡은 파일을 꾹 움켜쥐며 짧게 숨을 내쉬었다.



"토니, 그동안.. 미안했네. 제대로 된 설명도 안 하고, 내가 하고싶은대로만 행동했지. 방황했었어. 꽤 오랫동안, 과거와 현재를 어떻게 이어야 할지도 몰랐고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지. 그 중 유일하게 아는 건 오래된 것들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아니야. 난 멍청했었어. 여기에, 내가 돌아올 장소가 있었는데.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


"그래서 늦었지만 만나러 왔어. 쉴드는 해체됐지만 나는 개인적인 일 때문에 자주 자리를 비울 것 같아. 내 친구, 버키가 살아있었고..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거야. 난 반드시 그를 찾아야 하고, 그러려면 저번보다 더 오래 떠나있게 될 지도 몰라. 그 전에 꼭 만나러 와야겠다고 생각했어. 당신한테 설명하고, 사과하고... 그런다음 기다려 달라고 하고 싶었지."


"..........."



스티브가 진심어린 얼굴로 토니에게 지난 일들에 대해 털어놓는 동안, 샘은 뒤로 물러나서 팔짱을 낀 채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캡틴 아메리카랑 아이언맨이, 그러니까 지금 저건 아무리 봐도 사귀는 사람 사이에나 오갈 법한.. 아니아니 어떻게 캡틴 아메리카하고 아이언맨이?? 스티브 로저스하고 토니 스타크가, 사.... (샘은 완성되려는 단어를 황급히 지워버렸다)



"당신을 많이 좋아해, 토니. 이제야 알았어. 난 여기에 돌아올 거고,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야."


"......스티브."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마음을 정리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지만, 이젠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거야. 바로 여기,

 당신이 기다리는 곳으로... 돌아올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줄 수 있겠나? ...너무, 염치없는 소리긴 하지만..."


"흠. 당신도 알겠지만 난 성격이 급한 편이야. 솔직히 이런 거 자체가 기적에 가깝기도 하고."


"그거야... 그렇긴 하지."


"한 달에 한 번정도는 돌아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연락하고, 어디 있는지 정도는 간략하게 알려줬으면 좋겠군."


"토니, 그러면...."


"내가 쫓아가서 미주알 고주알 참견하는 건 당신도 별로 원하지 않을 테니까, 먼저 알려달라는 뜻이야. 어때? 솔져."


"Fair enough."


"No doubt."



그제야 스티브는 몇 달만에 환한 미소를 입가에 띄웠고, 토니를 품에 끌어당겨 안았다. 자세로 보면 토니쪽이 스티브에게 파묻힌 격이었으나 이상하게도 스티브가 토니에게 기대어 어리광을 부리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샘은 너무 많은 비현실과 놀라움, 경악 사이에서 대체 어느 쪽을 먼저 수용해야 할 지 갈팡질팡했다. 한 명의 애꿎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스티브와 토니는 키득거리며 웃었다. 이제야 겨우, 타워 위에 드리워져 있던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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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Denver - How can I leave again 을 듣다가 생각나서 쓴 글. 

윈터솔져를 보고 나니 만약 스티브랑 토니가 어벤져스 이후 썸타고 사귀고 있었다면.. 하는 생각에서 써보게 됐다.

영화 내에서 과거에 매달리는 듯한 모습도 많이 나와서 그런것도 보여주고 싶었고....

노래 가사 중에 보면 some answers are no longer true 라거나 Lost in a storm I've gone blind 라는 내용이 있어서

결국 방황 끝에 자기가 돌아올 곳은 토니 옆이라는 걸 깨닫는 스티브가... 보고싶었음. 노래 좋아요. 정말 좋아하는 곡임. 


by 치우타 2014. 4. 22. 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