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최근에 일이 너무 바빠서 마음만큼 글을 못 쓰고 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운 좋게도, 3/25 세계최초 IMAX 시사회에 당첨되어 캡틴 아메리카2 윈터 솔져를 보고 왔네요.

너무 희미해지기 전에 리뷰를 좀 정리하고자 적어봅니다.


스포일러 주의해주세요! 아직 안 보셨다면 열지 말아주세요.



by 치우타 2014. 3. 26. 17:30

*초능력자 AU (원설정자 : 조나쁨)

*스티브 : 바람 / 토니 : 독



 토니는 담배를 입에 물고 깊게 빨아들였다. 유독한 니코틴과 타르 성분이 온 몸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는 이 순간을 위해 그는 가장 독한 담배들만을 하루에도 몇 갑씩 피워대곤 했다. 타고난 능력 덕분에 세상의 온갖 독성물질을 접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기호식품에 해당하는 담배에는 도통 질리지가 않았다. 짧고 강렬한 효과를 위해서는 시거를 피우는 쪽이 더 좋지만, 그건 내킬 때가 아니고서는 굳이 손대질 않았다. 토니는 의외로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강한 독성을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닥치는대로 섭취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독들을 마음껏 취했다.



"여기 있었군, 토니. 한참 찾았네."



나른한 표정으로 희미하게 연기를 뱉어내던 토니의 얼굴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 목소리, 어쩐지 헐레벌떡 뛰어왔지만 아닌 척하려고 노력하는 기색, 이쪽의 분위기를 살피는 듯한 시선까지. 가능하면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의 현 파트너이자 리더- 스티브 로저스임이 틀림없었다. 토니는 자꾸만 삐뚤어지려는 눈썹을 애써 억누르며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채 몸을 돌렸다. 금발의 푸른 눈,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진해 보이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나를 왜 찾아? 임무도 없는데."


"그건...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랬네."



심드렁하게 던진 말에 돌아온 것은 글러브 한 가운데를 파고들 정도의 완벽한 스트라이크였다. 토니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몇 번을 들어도 저 솔직함에는 정말이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원체 사람이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순히 착해빠져서 거짓말을 못하는 건지, 어느쪽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이 강직한 '리더' 씨께서 토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졸졸 말이다.



"아까 아침에도 얼굴 봤잖아."


"자네가 바쁘다며 휑하니 나가는 바람에 이야기도 못했....."


"할 이야기 있어? 그럼 해봐, 들어줄테니까. 5분. 자 시작."


"뭐? 잠깐, 그렇게 갑작스럽게 말하면 어떡하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준비 씩이나 해야 할 정도로 거창해? 5분이면 되잖아. 초 단위까지 셀거야. 시간은 가고 있어, 캡틴."



냉랭한 토니의 말에 스티브는 금세 풀죽은 얼굴이 되어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다른 약속이 없다면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려고 했네... 마지막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소리에 가까워서 토니는 본의 아니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만 했다. 아니,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이런 벽창호 쑥맥 상대로! 자신의 행동에 화가 난 토니는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던져 세게 짓밟았다. 그 난폭한 행동에 스티브는 약간 움찔했지만, 푸른 눈을 신실하게 반짝이며 여전히 토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지 강아지를 연상케 하는 눈빛에 토니는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그렇다. 토니는 금발에 푸른 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고 (특히 얼굴이 미형이라면 더욱) 스티브 로저스는 비록 그와 성격이든 뭐든 정반대지만 외모만큼은 아주 정확하게 과녁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10점 만점에 100점짜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성별따위 관계 없이, 토니는 보기에 괜찮은 외모를 선호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안 되나...?"


"....어디로 갈 건데?"


"...! 전에 자네가 먹고 싶다던 가게에서 얼마전부터 런치를 시작했네. 9번가 골목 중간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일세."


"그래? 런치를 시작했다고? 당신치곤 상당한 정보력인걸."



별 것 아닌 칭찬에 스티브의 얼굴이 온통 기쁨의 빛으로 물들었다. 거의 반짝이기까지 할 기세로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은 충분히 토니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고, 그는 속으로 험한 말을 뇌까렸다. 젠장, 왜 나는 이딴 취향을 가지고 있는거야!



"뭐... 좋아. 점심 정도 같이 먹는건 어렵지 않을 것 같군. 앞장서, 캡틴."


"! 정말인가? 그럼 이쪽으로 가세. 조금 빠른 길을 알고 있어."



처음 말을 걸었을 때와는 달리 신이 난 스티브는 앞장서서 걷다가 문득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토니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눈으로 대답했다. 왜? 대답보다 빨리 약간 큰 손이 눈 앞에 내밀어졌다. 



"자네를 에스코트할 영광을 주겠나?"


"...정말 가지가지 하네, 당신.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 좀 하지마! 독 나올것 같으니까!"



자연스럽게 가시돋친 말을 퍼부어주려던 토니는 아까보다 더 처량한(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할지도 모르겠지만) 스티브의 눈을 보고 짜증을 내며 손을 맞잡아 주었다. 그제서야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스티브의 등을 보며, 토니는 어쩐지 요즘 이 멍멍이 같은 남자의 요청을 꽤 자주 수락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도 주변을 맴돌기에 귀찮아서, 혹은 별 생각 없이 응낙하곤 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촤라락 필름마냥 머릿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고, 특히 토니는 스티브에 대한 호감도가 요만큼도 올라간 것 같지가 않았다. 기분 탓이겠지. 남아있는 한 손으로 다시 담배를 입에 물면서 그는 잡생각을 털어냈다.



-조금 나중의 일이지만 토니는 이 때가 자신의 야생의 감각이 살아있을 때였다고 회상하게 된다.

by 치우타 2014. 3. 12. 01:37

첫 번째 : 토니의 경우


헬리케리어에 올라탄 토니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회의실로 향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그 토니 스타크도 세상이 다 꺼져버릴 것 같은 한숨을 쉴 만한 일도 있냐며 놀라워하거나 혹은 쉴드 내의 사소한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요사이 토니의 고민은 딱 한 가지였다. 캡틴 아메리카, aka 스티브 로저스.


시작부터 견원지간마냥 아웅다웅 다퉜던 둘이었지만 어벤져스 활동을 통해서 약간 변화가 생기는가 싶더니... 그 이후로는 이렇다할 진전이 전혀 없었다. 여전히 둘은 의견차로 말다툼을 했고, 주로 스티브의 의견대로 일이 진행되었으며(물론 토니가 거기에 순순히 따르지만은 않았다) 많은 확률로 스티브가 옳았지만 토니의 주장이 훨씬 효율적이고 피해가 적었던 경우도 있었다. 몇 번 그런일이 반복되자 토니는 화가 났고, 지쳤지만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거나 그만두진 않았다. 스티브에겐 그런 모습이 플러스가 되었던 모양인지 일이 마무리된 후에 먼저 토니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기도 했다. 사실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성격 말고는 외모고 뭐고 완전히 토니의 스트라이크존이었던 스티브였기에, 토니로선 거절하거나 허세를 부리며 내칠 이유가 요만큼도 없었다. 대신 점잔을 빼기는 했다.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있고 솔직히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는 건 어쩐지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신뢰와 동료로서의 애정 비슷한 걸 쌓아가면서 점점 스티브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 토니였으나, 문제는 그 상대인 스티브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토니 혼자서 썸을 타고 있다고나 할까. 분명 이건 공통적인 분위기이며 감정이 맞는 것 같은데(적어도 플레이보이 경력이 상당한 토니의 눈으로 봤을땐) 종종 스티브가 인사를 먼저 건네거나 하는 일은 있어도 식사 제안이나 가벼운 대화를 걸어오는 적은 거의 없었다. 주로 대화도 토니가 주도했으며 식사 제안도 토니쪽에서 꺼냈다. 그리고 이건 단 둘도 아니라 어벤져스 멤버들이 다 낀 그런 공적인 자리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분명 토니는 스티브에게 제안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멤버 집합이 되어있더라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이 90년산 얼음덩이 캡틴이 분위기 파악을 못 해도 너무 못 하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토니는 머리를 짚으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바른 생활이 일상인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다 보니, 파티에서 멀어진 생활로 일찌감치 방향을 바꿨던 토니였지만 한층 더 자기 관리에 매진하게 되었다. 최대한 덜 방탕하게 보이려고 노력했고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말을 던지지 않도록 조심했다(물론 이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게 왠걸, 스티브는 눈치도 못 채고 엉뚱하게 다른 사람들이나 만나며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토니의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쓸쓸하기도 했고,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 멍하니 삼십분 가량을 앉아있기도 했다. 


그냥 때려치울까. 토니는 몇백번이고 했던 생각을 프로그래밍하듯 머릿속에 띄워올렸다. 가망도 없어 보이는데 관둬버리는게 낫다고 이성은 차분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고, 감성은 사람 마음이라는 건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며 달래고 있었다. 그런 정신나간 듯한 자신과의 싸움도 시야에 스티브가 들어오면 깨끗이 자취를 감추어버리니, 미칠 노릇이었다.



"좋은 아침이군, 토니."


"아.. 좋은 아침, 스티브."



사람 좋은 미소를 앞에 두고 최대한 입술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어낸 토니는 속으로 한숨을 재차 삼키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 긴가민가한 사이를 어쩌면 좋을까. 스티브의 옆얼굴을 힐끔거리며 회의 내용은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토니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평소보다 좀 더 묘한 얼굴을 한 닉 퓨리가 걸어왔고 그 뒤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금발에.... 덩치가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토니는 기시감이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노려보았다.



"토니!"


".....퀼?"



스티브 못지 않게 훌륭한 외모를 지닌 남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리더- '스타로드' 피터 퀼이 그에게 기쁜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토니는 그의 푸른 눈동자에 깃든 반짝임을 보는 순간, 왠지는 모르겠지만 앞날이 그닥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감하며 허허로이 웃음을 지었다.


by 치우타 2014. 3. 10.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