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능력자 AU (원설정자 : 조나쁨)

*스티브 : 바람 / 토니 : 독



 토니는 담배를 입에 물고 깊게 빨아들였다. 유독한 니코틴과 타르 성분이 온 몸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는 이 순간을 위해 그는 가장 독한 담배들만을 하루에도 몇 갑씩 피워대곤 했다. 타고난 능력 덕분에 세상의 온갖 독성물질을 접해왔는데 그 중에서도 기호식품에 해당하는 담배에는 도통 질리지가 않았다. 짧고 강렬한 효과를 위해서는 시거를 피우는 쪽이 더 좋지만, 그건 내킬 때가 아니고서는 굳이 손대질 않았다. 토니는 의외로 까다로운 입맛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강한 독성을 가졌다고 해서 무조건 닥치는대로 섭취하지 않는 것처럼, 그는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독들을 마음껏 취했다.



"여기 있었군, 토니. 한참 찾았네."



나른한 표정으로 희미하게 연기를 뱉어내던 토니의 얼굴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 목소리, 어쩐지 헐레벌떡 뛰어왔지만 아닌 척하려고 노력하는 기색, 이쪽의 분위기를 살피는 듯한 시선까지. 가능하면 오래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의 현 파트너이자 리더- 스티브 로저스임이 틀림없었다. 토니는 자꾸만 삐뚤어지려는 눈썹을 애써 억누르며 최대한 태연함을 가장한 채 몸을 돌렸다. 금발의 푸른 눈,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진해 보이는 얼굴이 거기 있었다.



"나를 왜 찾아? 임무도 없는데."


"그건... 그냥 보고 싶어서.. 그랬네."



심드렁하게 던진 말에 돌아온 것은 글러브 한 가운데를 파고들 정도의 완벽한 스트라이크였다. 토니의 미간이 팍 구겨졌다. 몇 번을 들어도 저 솔직함에는 정말이지 익숙해질래야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원체 사람이 좋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단순히 착해빠져서 거짓말을 못하는 건지, 어느쪽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문제는 이 강직한 '리더' 씨께서 토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졸졸 말이다.



"아까 아침에도 얼굴 봤잖아."


"자네가 바쁘다며 휑하니 나가는 바람에 이야기도 못했....."


"할 이야기 있어? 그럼 해봐, 들어줄테니까. 5분. 자 시작."


"뭐? 잠깐, 그렇게 갑작스럽게 말하면 어떡하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준비 씩이나 해야 할 정도로 거창해? 5분이면 되잖아. 초 단위까지 셀거야. 시간은 가고 있어, 캡틴."



냉랭한 토니의 말에 스티브는 금세 풀죽은 얼굴이 되어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 다른 약속이 없다면 점심이라도 같이 먹자고 하려고 했네... 마지막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소리에 가까워서 토니는 본의 아니게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만 했다. 아니, 내가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거야? 이런 벽창호 쑥맥 상대로! 자신의 행동에 화가 난 토니는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바닥에 던져 세게 짓밟았다. 그 난폭한 행동에 스티브는 약간 움찔했지만, 푸른 눈을 신실하게 반짝이며 여전히 토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딘지 강아지를 연상케 하는 눈빛에 토니는 아주 조금이지만 마음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그렇다. 토니는 금발에 푸른 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고 (특히 얼굴이 미형이라면 더욱) 스티브 로저스는 비록 그와 성격이든 뭐든 정반대지만 외모만큼은 아주 정확하게 과녁의 정중앙을 관통하는 10점 만점에 100점짜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성별따위 관계 없이, 토니는 보기에 괜찮은 외모를 선호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안 되나...?"


"....어디로 갈 건데?"


"...! 전에 자네가 먹고 싶다던 가게에서 얼마전부터 런치를 시작했네. 9번가 골목 중간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일세."


"그래? 런치를 시작했다고? 당신치곤 상당한 정보력인걸."



별 것 아닌 칭찬에 스티브의 얼굴이 온통 기쁨의 빛으로 물들었다. 거의 반짝이기까지 할 기세로 환하게 웃는 그 모습은 충분히 토니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고, 그는 속으로 험한 말을 뇌까렸다. 젠장, 왜 나는 이딴 취향을 가지고 있는거야!



"뭐... 좋아. 점심 정도 같이 먹는건 어렵지 않을 것 같군. 앞장서, 캡틴."


"! 정말인가? 그럼 이쪽으로 가세. 조금 빠른 길을 알고 있어."



처음 말을 걸었을 때와는 달리 신이 난 스티브는 앞장서서 걷다가 문득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토니는 새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선에 눈으로 대답했다. 왜? 대답보다 빨리 약간 큰 손이 눈 앞에 내밀어졌다. 



"자네를 에스코트할 영광을 주겠나?"


"...정말 가지가지 하네, 당신. ....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렇게 버려진 강아지 같은 눈 좀 하지마! 독 나올것 같으니까!"



자연스럽게 가시돋친 말을 퍼부어주려던 토니는 아까보다 더 처량한(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할지도 모르겠지만) 스티브의 눈을 보고 짜증을 내며 손을 맞잡아 주었다. 그제서야 다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스티브의 등을 보며, 토니는 어쩐지 요즘 이 멍멍이 같은 남자의 요청을 꽤 자주 수락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도 주변을 맴돌기에 귀찮아서, 혹은 별 생각 없이 응낙하곤 했던 여러가지 일들이 촤라락 필름마냥 머릿속을 지나갔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었고, 특히 토니는 스티브에 대한 호감도가 요만큼도 올라간 것 같지가 않았다. 기분 탓이겠지. 남아있는 한 손으로 다시 담배를 입에 물면서 그는 잡생각을 털어냈다.



-조금 나중의 일이지만 토니는 이 때가 자신의 야생의 감각이 살아있을 때였다고 회상하게 된다.

by 치우타 2014. 3. 12. 0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