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 토니의 경우


헬리케리어에 올라탄 토니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을 회의실로 향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옆에 누군가 있었다면, 그 토니 스타크도 세상이 다 꺼져버릴 것 같은 한숨을 쉴 만한 일도 있냐며 놀라워하거나 혹은 쉴드 내의 사소한 가십거리로 만들어 버렸을지도 모를 정도였다. 요사이 토니의 고민은 딱 한 가지였다. 캡틴 아메리카, aka 스티브 로저스.


시작부터 견원지간마냥 아웅다웅 다퉜던 둘이었지만 어벤져스 활동을 통해서 약간 변화가 생기는가 싶더니... 그 이후로는 이렇다할 진전이 전혀 없었다. 여전히 둘은 의견차로 말다툼을 했고, 주로 스티브의 의견대로 일이 진행되었으며(물론 토니가 거기에 순순히 따르지만은 않았다) 많은 확률로 스티브가 옳았지만 토니의 주장이 훨씬 효율적이고 피해가 적었던 경우도 있었다. 몇 번 그런일이 반복되자 토니는 화가 났고, 지쳤지만 해야 할 일을 내팽개치거나 그만두진 않았다. 스티브에겐 그런 모습이 플러스가 되었던 모양인지 일이 마무리된 후에 먼저 토니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기도 했다. 사실 고리타분하고 꽉 막힌 성격 말고는 외모고 뭐고 완전히 토니의 스트라이크존이었던 스티브였기에, 토니로선 거절하거나 허세를 부리며 내칠 이유가 요만큼도 없었다. 대신 점잔을 빼기는 했다. 남자로서의 자존심도 있고 솔직히 좋아하는 티를 너무 내는 건 어쩐지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조금씩 신뢰와 동료로서의 애정 비슷한 걸 쌓아가면서 점점 스티브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 토니였으나, 문제는 그 상대인 스티브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토니 혼자서 썸을 타고 있다고나 할까. 분명 이건 공통적인 분위기이며 감정이 맞는 것 같은데(적어도 플레이보이 경력이 상당한 토니의 눈으로 봤을땐) 종종 스티브가 인사를 먼저 건네거나 하는 일은 있어도 식사 제안이나 가벼운 대화를 걸어오는 적은 거의 없었다. 주로 대화도 토니가 주도했으며 식사 제안도 토니쪽에서 꺼냈다. 그리고 이건 단 둘도 아니라 어벤져스 멤버들이 다 낀 그런 공적인 자리로만 이루어지고 있었다. 분명 토니는 스티브에게 제안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멤버 집합이 되어있더라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이 90년산 얼음덩이 캡틴이 분위기 파악을 못 해도 너무 못 하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토니는 머리를 짚으며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바른 생활이 일상인 남자에게 호감을 갖게 되다 보니, 파티에서 멀어진 생활로 일찌감치 방향을 바꿨던 토니였지만 한층 더 자기 관리에 매진하게 되었다. 최대한 덜 방탕하게 보이려고 노력했고 사람들에게 공격적인 말을 던지지 않도록 조심했다(물론 이건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게 왠걸, 스티브는 눈치도 못 채고 엉뚱하게 다른 사람들이나 만나며 다니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토니의 속이 편할 리가 없었다. 쓸쓸하기도 했고,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져 멍하니 삼십분 가량을 앉아있기도 했다. 


그냥 때려치울까. 토니는 몇백번이고 했던 생각을 프로그래밍하듯 머릿속에 띄워올렸다. 가망도 없어 보이는데 관둬버리는게 낫다고 이성은 차분하게 말을 건네고 있었고, 감성은 사람 마음이라는 건 시간이 걸리는 법이라며 달래고 있었다. 그런 정신나간 듯한 자신과의 싸움도 시야에 스티브가 들어오면 깨끗이 자취를 감추어버리니, 미칠 노릇이었다.



"좋은 아침이군, 토니."


"아.. 좋은 아침, 스티브."



사람 좋은 미소를 앞에 두고 최대한 입술을 끌어올려 웃는 얼굴을 만들어낸 토니는 속으로 한숨을 재차 삼키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이 긴가민가한 사이를 어쩌면 좋을까. 스티브의 옆얼굴을 힐끔거리며 회의 내용은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토니였다.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평소보다 좀 더 묘한 얼굴을 한 닉 퓨리가 걸어왔고 그 뒤에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금발에.... 덩치가 어쩐지 익숙한 느낌이었다. 토니는 기시감이 들어 눈을 가늘게 뜨고 그쪽을 노려보았다.



"토니!"


".....퀼?"



스티브 못지 않게 훌륭한 외모를 지닌 남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리더- '스타로드' 피터 퀼이 그에게 기쁜 듯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토니는 그의 푸른 눈동자에 깃든 반짝임을 보는 순간, 왠지는 모르겠지만 앞날이 그닥 순탄치 않을 것임을 예감하며 허허로이 웃음을 지었다.


by 치우타 2014. 3. 10.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