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는 긴장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서서 몇 번이고 옷을 가다듬었다. 그렇게까지 중요한 자리는 아냐, 스티브. 지금 당신이 입은 옷도 정말 끝내준다고. 토니가 옆에서 진심을 담아 칭찬했지만 (평소 스티브의 옷차림에 까다로운 토니를 생각해 보면 이건 굉장히 드문 일이었다) 아닐세, 넥타이가 좀 비뚤어진 것 같아, 정말 괜찮나? 여기가 자꾸 접혀. 자켓이 조금 끼는 것 같아. 머리가 어색하진 않나? 토니는 대체 왜 그가 이렇게 정성을 들여 단장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물론 기왕 같이 참석하는 파티 자리이고, 스티브는 토니의 경호원 역이지만 바로 옆에 서서 파트너를 겸할 예정이었다. 아직 공식적으로 둘의 교제를 인정하기엔 사회의 관심이 지나쳤기에, 토니가 스티브에게 연인으로서의 자리를 내어줄 수 있는 건 이런 자리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는 눈에 띄게 기뻐하며 수줍은 듯 미소지었고 토니는 그 미소에 사르르 녹아버렸다.


"스티브, 시간 거의 다 됐어."


"나도 이제... 다 된 것 같네. ....어떤가? 보기에 괜찮은가? 이상하진 않나?"


"흠, 어디 봐. 와우, 누구 애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잘생긴데다 섹시하기까지 한걸? 오늘 밤 시간 있어? 허니."


"장난 치지 마, 토니. 물론 자네를 위해서라면 내 시간은 언제나 비어 있네."


눈을 흘기면서도 다정하게 대답해오는 목소리에 토니는 목을 움츠렸다. 파티는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몸이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처음 사귈때만 해도 군인 아니랄까봐 서툴고, 딱딱하고, 자기 생각에 많이 빠져 있는 느낌이었지만 이 70년 묵은 캡틴 아이스는 쉴드 해체 사건을 겪고 나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토니에게 자주 말을 걸었고, 최대한 그를 존중하려고 노력했으며, 토니가 버릇대로 비아냥거릴때도 한 발자국 물러서서 왜 그러냐고 물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그냥도 누가 채갈까 걱정되는 미국의 이상형인데, 이제는 세계의 이상형이 될 모양이지. 토니는 절대로 그렇게 두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조용히 마음 속으로 불꽃을 이글이글 태워올렸다.


 토니와 스티브를 태운 차는 천천히 어느 저택 입구에 멈추어섰다. 이미 번호판으로도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다니는 토니였기에 파티장에 있던 사람들도 토니 스타크가 왔다면서 그를 보기 위해 문 근처로 몰려들었다. 먼저 스티브가 내리고, 바깥에서는 숨을 들이키는 소리와 수근거리는 소리가 잇따랐다. 내 애인이 좀 끝내주기는 하지. 토니는 속으로 마음껏 으쓱거리며 이내 눈 앞으로 내밀어진 스티브의 손을 잡고 차 밖으로 내려섰다. 터지는 스포트라이트와, 토니! 스타크! 그를 연호하는 목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토니는 그 부름들에 환한 미소로 답하며 손을 가볍게 흔들어보였다. 스티브는 그 모습이 플래시보다 더 눈부시다고 생각하면서도, 선망과 욕망의 시선으로 토니를 바라보고 있을 사람들 생각에 불쑥 심술이 솟아올랐다. 미안하지만 내 거라서. 스티브는 짐짓 카메라 불빛때문에 그런 양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토니의 손을 꽉 잡은 채 파티장으로 이끌었다.


"워, 스티비. 좀 천천히 걸어. 나 넘어지겠어."


"엄살 부리지 말게. 자네 걸음으로 들어왔다간 저 인파에 잡혀서 아무것도 안 돼."


"그야 늘상 있는 일- ...알았어 알았어, 화내지 마. 당신밖에 안 보인다고."


내 눈부신 블론디 글래머가 세계 제일이거든. 토니가 눈을 찡긋하며 웃어보이자 스티브는 플레이보이 혀에는 기름칠이라도 했냐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내심 기분 좋은 눈치였다. 경호원 겸 파트너라고는 해도 이 파티의 주요 귀빈은 토니였기에 그를 앞세우고 스티브는 바로 뒤에 붙어서 넓은 홀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모두 돌아보며 토니에게 인사를 건넸고, 토니는 적당히 받아넘기거나 눈웃음으로 대신하며 오늘 초대장을 보낸 호스트에게 직접 축하 인사를 했다. 그 동안 사람들은 토니의 옆에 바짝 붙어있는 스티브를 힐끔거리면서 저마다 수군댔다. (잘 생겼다. 몸도 좋네. 경호원이라던데? 세상에, 그림 같은 남자들이야..) 청력이 남들에 비해 4배나 좋은 수퍼솔져인 그에게 들려오는 말들은 때론 노골적이고, 때론 무례했다. 토니는 매일 이런 말들을 들어왔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까 금세 머리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지만, 인사를 빠르게 끝냈는지 어느새 토니가 샴페인 잔을 가져와 그에게 내밀었다. 발코니로 나갈까? 내가 너무 여기 있으면 호스트가 외면당하거든. 스티브는 흔쾌히 승낙했다.


"저, 토니...."


"음? 왜 그래, 스티비."


"자네 기분은 어떤가?"


"내 기분? 그건 갑자기 왜?"


스티브는 의아한 듯 물어오는 토니의 목소리에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듣고 있었던 그런, 저질적인 언사들을 말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미 오랫동안 이런 것들에 시달려왔을 그의 소중한 연인에게 굳이 중요하지도 않은 지껄임을 전해서 모처럼 괜찮은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약간 허둥거렸으나 최대한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일 수 있었다.


"그냥, 한동안 이런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잖나. 내 부탁 때문에 오기도 했고, 그래서 혹시나...."


"스티비, 달링, 스티브. 싫었다면 당신의 부탁이라도 거절했을거야. 내 성격 알잖아?"


"...그건, 그렇네만..."


"솔직히 말해서 난 지금 정말 끝내주는 기분이야. 오늘 밤은, 당신이 옆에 있어서 그렇겠지만.. 정말 좋아."


"정말로?"


"그래. 이런 거라면 얼마든지 당신이랑 파티에 나오고 싶을 정도로."


"내가 싫은데."


"푸흐, 그럴 줄 알았어. 인사는 다 했으니까 이것만 마시고 돌아가도 돼. 사실..."


아까부터 당신한테 키스하고 싶어 죽겠거든. 토니가 목소리를 낮추어 소근거렸다. 스티브는 흥분으로 몸이 확 치달아 오르는 걸 느끼며 손에 쥔 잔을 깨뜨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가볍게 잔이 부딪치고, 옅은 황금색 액체가 두 사람의 목울대 너머로 사라졌다. 마지막 한 방울이 전부 넘어가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스티브는 토니를 품에 끌어당겨 입을 맞추었다. 사람 없는 발코니이긴 했으나 언제 누가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척이나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토니 또한 스티브의 허리에 팔을 감고 입술을 되돌려 주었다. 평소의 능란한 테크닉이 아닌, 솜털같이 부드러운 입맞춤에 스티브는 간신히 이성의 끄트머리를 붙들고 아쉬운 듯 토니를 품에서 떼어냈다.


"후우, 세상에... 어지러워, 스티비. 나 좀... 부축해줘. 이대로 나가면 핑계도 딱 좋겠어..."


"괜찮나, 토니? 내가 너무 갑자기, 키스하는 바람에..."


"세기의 플레이보이를 뭘로 보는 거야? 그냥 좀, 당신 샴페인에 취한 것 같아서 그래. 별 거 아니니까 빨리... 가자고."


하고 싶어.... 귓가에 속살대는 음성은 아까보다 한층 열에 들떠 있었다. 스티브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뭐든지 보통 사람의 4배라서 참 다행이었다) 그를 덮치려는 욕구를 눌러내리며 토니를 부축한 채 파티장을 나섰다. 이제 더 이상 천박한 말소리들은 그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눈 앞의 연인만이 오직 그의 관심사였다. 차 문이 닫히고, 프라이빗 창문이 올라가는 걸 확인한 토니는 뭐가 그리 좋은지 키득키득 웃고는 상냥하고 섹시한 그의 연인에게 바싹 달라붙었다. 이제 해도 돼. 토니의 허락을 신호로 스티브는 기다렸다는 듯 시트를 조작해서 토니를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금발의 맹수가 이빨을 드러내는 걸 감상하며, 토니는 기분 좋은 얼굴로 웃었다.


"Come on, soldier. let's play."


"What I always win, d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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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님이 원고를 하셔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하시고.... 전 뭔가 해드리고 싶고..!

해서 마감을 응원하는 연성입니다. 와인도 맛있고 노래도 좋고 해서 후딱 썼네요!! 하하 뭔가 더 있을것 같지만 없습니다

저도 이런거 해보고 싶었어.... 물론 이러다가 제풀에 낚여서 이어지는 어덜트 어쩌구를 쓸지도 모릅니다.

스토니는 왜 이렇게 좋을까요? 죽을 것 같습니다. 정말 좋다. 둘이 걍 콩깍지나 씌여서 평생 살았으면....

by 치우타 2014. 7. 10. 23:23

"토니! 잠깐, 여기 좀 와 보게." 


토니는 스티브의 황급한 목소리에 삼 초 정도 고민했으나, 이어지는 목소리에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할 시간에 일어나서 오면 되잖나, 빨리. 이번엔 또 뭔지, 요즘따라 현대문물을 열심히 배워가던 스티브는 궁금한 게 있으면 토니를 찾았고 듣다못한 토니는 '내가 바쁠 땐 자비스한테 말해, 허니, 라며 달래두었더랬다.


그런데 이렇게 찾는 걸 보면 또 뭔가 발견이라도 한 모양이지, 노친네. 토니는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좀 더 서두르게, 이러다 지나가 버리겠어." 스티브가 급한 손길로 토니를 끌어당겼다. 


"대체 뭔데? 뭐길래 이렇게 난리를..." 


"저것 좀 보게나."


토니는 스티브의 성화에 귀찮은 얼굴을 하며 고개를 들어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석양이 깔린 하늘 위로, 얇은 구름과 그 위에 또 층층이 두꺼운 구름들이 쌓여 있었다. 과연, 이건 소리쳐 부를만한 광경이로군. 토니도 말을 잃고 스티브의 팔에 기대어 가만히 풍경을 바라보았다.


"어때, 멋지지 않은가?"

"....흠, 당신이 최근 날 불러댄 이유들 중에서 가장 괜찮은 것 같기는 해."


토니가 이죽거리며 가볍게 빈정댔다. 그 으스대는 모습이 또 귀여워서, 스티브는 푸스스 웃어버리고 말았다. 예고없이 떨어지는 입술에 토니는 기다렸다는 듯 팔을 뻗어 스티브의 목에 감았다. 창 밖의 석양이 아쉬운 듯 두 사람의 그림자에 길게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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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 위에 구름이 층층이 쌓였다며 살다보면 별걸 다 본다고 멋지고 신기하다는 한량님 트윗을 보고 

불현듯 쓰고 싶어서 설렁탕 먹다 말고 부랴부랴 써내려간 트위터 단문연성. 

140자 기준으로 끊어서 쓰다 보니 아무래도 매끄러운 느낌이 덜하긴 하지만 고칠 생각은 들지 않는다.

스티브가 군인출신의 딱딱한 남자긴 해도 좋아하는 사람과 이것저것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다르지 않을것 같아서.

난 사실 스토니의 일상적인 모습이 좋더라. 특별하고 놀라운 사건도 좋지만. 평범하게 이쁘게 달달하게 연애하는 거.

투닥거리는 것도 좋고. 서로 오해하고 싸웠다가도 잠시 생각하고 돌아서서 상대방을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거. 

by 치우타 2014. 7. 9. 22:05

 토니는 필사적으로 이게 무슨 상황인지에 대해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22세기를 사는 남자, 퓨처리스트, 세계적인 천재이자 조만장자인 그의 책상 위엔 어울리지 않은 서류더미가 몇 더미 쌓여 있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침착하게 같은 물음을 머릿 속에 띄워 올리며 토니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쩌면 꿈이 아닐까. 몇 번 눈을 감았다 뜨면 아무것도 없을거야. 그렇고 말고. 하지만 눈을 아무리 깜박여도, 뺨을 꼬집어 봐도 서류더미는 도통 사라지질 않았다. 이 모든 게, 약 30분 전 타워의 쿨링 시스템이 원인모를 오작동을 일으켜 정지된 덕분이었다.


 타워는 100%에 가깝게 자비스를 메인으로 하여 디지털로 움직이는 장소였으며, 만일을 대비한 아날로그적 장치가 있다고는 해도 거의 쓰이질 않고 있었다. 시스템 업그레이드나 점검 등은 늘상 존재하는 해킹이나 기타 위협에 대비하여 매일같이, 시간대별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토니는 그걸 자비스를 통해 강박적으로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설마 한창 후덥지근한 저녁날에 쿨링 시스템이 급작스레 멈춰버릴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딱, 그 프로그램만 말이다.


"자비스, 상태는?"


[여전히 오작동의 원인을 찾는 중입니다. 보안상 외부에 의한 수리는 불가능하므로 진단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은데?"


[지금 기준으로는 약 20시간 정도입니다.]


"맙소사! 그 동안 여기에서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쪄 죽을지도 모르겠어! 더 빨리는 안 돼?"


[저것도 단축된 시간입니다만, 진단 시스템의 속도를 높이면 다른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돌아버리겠군...."


토니는 아예 바닥에 널부러지듯 벌렁 누웠다. 내일까지 검토를 마쳐야 하는 서류가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증스럽고 괴로운 마당에, 이젠 더위에 숨막혀서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 쿨링 시스템 고장으로 더위에 시달리다니! 모르긴 몰라도 타블로이드지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정도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아까부터 울려대던 전화는 쓸데없는 열을 발산하기에 배터리를 분리해서 내던진 지 오래였고, 처음에 시원하던 소파는 점차 체온을 머금으며 끈적하고 기분 나쁜 느낌만이 남아서 결국 그나마 가장 시원한 바닥이 토니의 유일한 현 안식처였다.


"더워..... 선풍기 같은 건 여기 없다고..."


[Sir, 로저스 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응? 뭐? ....왠일이래? 열어줘."


토니는 여전히 시체처럼 널부러진 채로 손을 휘저었다. 이윽고 단정한 걸음걸이가 들려오더니, 토니의 근처에 우뚝 멈추었다. 기척으로 보아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토니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Hello, sunshine.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연락이라면 아까부터 계속 했었네. 전원이 꺼져 있다기에 찾아왔는데.. 지금 뭐 하는 건가?"


"자비스, 설명."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로저스. 약 한 시간 전부터 타워의 쿨링 시스템이 원인모를 오작동으로 멈추는 바람에 주인님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전화기의 배터리를 분리해서 내던진 것은 약 30분쯤 전이었습니다.]


"그런것까지 말 안해도 돼!"


"오작동? 어쩐지 공기가 후텁지근하다 했더니...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모양이군."


"나도 원래 안 이랬는데, 옛날 생각이 가끔 나거든. 그래서 더운 건 질색이야. 추운것도 별로긴 하지만."


"그럼 일어나게."


스티브는 그다지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손을 뻗어 토니를 일으켜 세웠다. 바닥과 거의 합체할 기세로 널부러져 있던 토니는 엉겁결에 뜨거운 스티브의 손을 잡고 웁스, 하며 몸을 움츠렸지만 뿌리치지는 않았다.


"일어나서, 그 다음은?"


"우리 집에 가지. 여기보단 훨씬 괜찮은 환경일거야."


"오... 그 말 후회하지 않아야 할 텐데, 허니."


"속고만 살았나? 빨리 오게. 저녁도 같이 해결하면 되겠군. 어서."

스티브는 토니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걸었다. 잠깐만, 나 옷 좀 입고. 아무리 내가 언론에 늘 노출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 모습으로 당신이랑 나가면 장난 아닐걸? 토니는 순순히 따라 걸어가면서도 뭐라 종알대었고, 스티브는 소파에 걸쳐져 있던 옷을 토니의 머리 위로 씌워주었다. 평소에 즐겨 입는 수수한 디자인의 셔츠였다. 이건 또 너무 막 입는 것 같은데. 꽁시랑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스티브는 토니를 재촉하듯 손을 끌어당겼고, 토니는 알았어 알았어 하고 못 이기는 척 그 뒤를 따랐다.



"맙소사..... 천국이 따로 없군..."


"내가 말했잖나."


스티브는 부드럽게 웃으며 천천히 토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성인 남자 둘이 앉아도 넉넉한 소파 위에 다리를 쭉 편 채로, 토니는 스티브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실에는 쾌적하고 시원한 공기가 가득했다. 얼마 전 샘의 도움으로 신형 에어컨을 설치했었는데, 빠르게도 토니가 첫 시연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당신은 최고야, 스티브. 고양이가 기분 좋게 가르릉대듯이 토니의 목소리에도 나른함이 묻어나왔다. 별 거 아닌 칭찬인데도 괜시리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스티브는 입술을 내려 토니의 이마에 부볐다. 


정말이지, 심플한 천국이었다.

by 치우타 2014. 7. 8. 2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