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필사적으로 이게 무슨 상황인지에 대해 생각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22세기를 사는 남자, 퓨처리스트, 세계적인 천재이자 조만장자인 그의 책상 위엔 어울리지 않은 서류더미가 몇 더미 쌓여 있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침착하게 같은 물음을 머릿 속에 띄워 올리며 토니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어쩌면 꿈이 아닐까. 몇 번 눈을 감았다 뜨면 아무것도 없을거야. 그렇고 말고. 하지만 눈을 아무리 깜박여도, 뺨을 꼬집어 봐도 서류더미는 도통 사라지질 않았다. 이 모든 게, 약 30분 전 타워의 쿨링 시스템이 원인모를 오작동을 일으켜 정지된 덕분이었다.


 타워는 100%에 가깝게 자비스를 메인으로 하여 디지털로 움직이는 장소였으며, 만일을 대비한 아날로그적 장치가 있다고는 해도 거의 쓰이질 않고 있었다. 시스템 업그레이드나 점검 등은 늘상 존재하는 해킹이나 기타 위협에 대비하여 매일같이, 시간대별로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토니는 그걸 자비스를 통해 강박적으로 확인하곤 했다. 그러나, 설마 한창 후덥지근한 저녁날에 쿨링 시스템이 급작스레 멈춰버릴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것도 딱, 그 프로그램만 말이다.


"자비스, 상태는?"


[여전히 오작동의 원인을 찾는 중입니다. 보안상 외부에 의한 수리는 불가능하므로 진단 결과를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은데?"


[지금 기준으로는 약 20시간 정도입니다.]


"맙소사! 그 동안 여기에서 서류를 만지작거리며 쪄 죽을지도 모르겠어! 더 빨리는 안 돼?"


[저것도 단축된 시간입니다만, 진단 시스템의 속도를 높이면 다른 프로그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돌아버리겠군...."


토니는 아예 바닥에 널부러지듯 벌렁 누웠다. 내일까지 검토를 마쳐야 하는 서류가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짜증스럽고 괴로운 마당에, 이젠 더위에 숨막혀서 제대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천하의 토니 스타크가, 쿨링 시스템 고장으로 더위에 시달리다니! 모르긴 몰라도 타블로이드지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정도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임은 틀림없었다. 아까부터 울려대던 전화는 쓸데없는 열을 발산하기에 배터리를 분리해서 내던진 지 오래였고, 처음에 시원하던 소파는 점차 체온을 머금으며 끈적하고 기분 나쁜 느낌만이 남아서 결국 그나마 가장 시원한 바닥이 토니의 유일한 현 안식처였다.


"더워..... 선풍기 같은 건 여기 없다고..."


[Sir, 로저스 씨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응? 뭐? ....왠일이래? 열어줘."


토니는 여전히 시체처럼 널부러진 채로 손을 휘저었다. 이윽고 단정한 걸음걸이가 들려오더니, 토니의 근처에 우뚝 멈추었다. 기척으로 보아 꽤나 놀란 모양이었다. 토니는 감고 있던 눈을 뜨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Hello, sunshine.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연락도 없이."


"연락이라면 아까부터 계속 했었네. 전원이 꺼져 있다기에 찾아왔는데.. 지금 뭐 하는 건가?"


"자비스, 설명."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로저스. 약 한 시간 전부터 타워의 쿨링 시스템이 원인모를 오작동으로 멈추는 바람에 주인님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전화기의 배터리를 분리해서 내던진 것은 약 30분쯤 전이었습니다.]


"그런것까지 말 안해도 돼!"


"오작동? 어쩐지 공기가 후텁지근하다 했더니... 더위를 많이 타는 편인 모양이군."


"나도 원래 안 이랬는데, 옛날 생각이 가끔 나거든. 그래서 더운 건 질색이야. 추운것도 별로긴 하지만."


"그럼 일어나게."


스티브는 그다지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손을 뻗어 토니를 일으켜 세웠다. 바닥과 거의 합체할 기세로 널부러져 있던 토니는 엉겁결에 뜨거운 스티브의 손을 잡고 웁스, 하며 몸을 움츠렸지만 뿌리치지는 않았다.


"일어나서, 그 다음은?"


"우리 집에 가지. 여기보단 훨씬 괜찮은 환경일거야."


"오... 그 말 후회하지 않아야 할 텐데, 허니."


"속고만 살았나? 빨리 오게. 저녁도 같이 해결하면 되겠군. 어서."

스티브는 토니의 손을 잡고 성큼성큼 걸었다. 잠깐만, 나 옷 좀 입고. 아무리 내가 언론에 늘 노출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 모습으로 당신이랑 나가면 장난 아닐걸? 토니는 순순히 따라 걸어가면서도 뭐라 종알대었고, 스티브는 소파에 걸쳐져 있던 옷을 토니의 머리 위로 씌워주었다. 평소에 즐겨 입는 수수한 디자인의 셔츠였다. 이건 또 너무 막 입는 것 같은데. 꽁시랑거리는 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스티브는 토니를 재촉하듯 손을 끌어당겼고, 토니는 알았어 알았어 하고 못 이기는 척 그 뒤를 따랐다.



"맙소사..... 천국이 따로 없군..."


"내가 말했잖나."


스티브는 부드럽게 웃으며 천천히 토니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성인 남자 둘이 앉아도 넉넉한 소파 위에 다리를 쭉 편 채로, 토니는 스티브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거실에는 쾌적하고 시원한 공기가 가득했다. 얼마 전 샘의 도움으로 신형 에어컨을 설치했었는데, 빠르게도 토니가 첫 시연의 주인공이 된 것이었다. 당신은 최고야, 스티브. 고양이가 기분 좋게 가르릉대듯이 토니의 목소리에도 나른함이 묻어나왔다. 별 거 아닌 칭찬인데도 괜시리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지울 수가 없었다. 스티브는 입술을 내려 토니의 이마에 부볐다. 


정말이지, 심플한 천국이었다.

by 치우타 2014. 7. 8. 2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