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오늘도 살금살금 트레이닝 룸에 찾아왔다. 스티브는 마침 어떤 쉴드 요원과 스파링 중이었고(저런. 오늘 전신근육통 정도는 오겠구만. 토니는 상대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했다), 다들 제 일에 바빠서 토니를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토니는 지금 후드를 뒤집어쓰고 모자에 짙은 선글라스, 수염까지 감춘 채 목에는 방문자 카드를 걸고 있어서 나타샤 정도의 눈썰미가 아니면 아무도 알아볼 수 없을 것이었다. 


 스티브는 날렵하게 움직이면서 상대를 천천히 코너로 몰고 있었다. 캡틴을 상대하고 있다는 고양감 때문인지 아니면 지나친 자신감인지, 상대인 쉴드 요원은 순간 크게 헛스윙을 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스티브는 상대를 넉다운 시켰다. 링 위에 널브러진 그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세우면서 스티브는 간단히 지도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기본 자세를 잡아 보이면서 팽팽하게 늘어난 흰 티셔츠에 착 붙는 회색 트레이닝 바지가 지나치게 섹시한 나머지 토니는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노친네, 운동하면서 저렇게 섹시할 필요가 있나? 운동하던 몇몇 여성 쉴드 요원들은 아예 노골적으로 스티브 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트레이닝룸 없애버릴까봐. 토니는 아주 잠깐 비이성적인 생각을 떠올렸으나 곧 고개를 저으며 날려버렸다.


 스티브는 이제 요원과 나란히 서서 본격적으로 무언가를 가르치는 모양이었다. 다부진 어깨, 넓은 등, 탄탄한 상체를 따라 내려오면 날렵하게 들어간 허리 라인이 보이고(토니가 아주 좋아하는 부분이다) 균형이 잡힌 엉덩이에 굵은 허벅지까지.. 토니는 낮게 탄식하며 손바닥으로 입가를 문질렀다. 90살이나 먹은 노인네가 너무 섹시하잖아. 이건 솔직히 미국 법으로 좀 어떻게 해야 하는거 아닌가 몰라. 토니는 또 다시 비이성적인 생각을 하나 머리에 띄웠다. 전투를 할 때나, 저렇게 요원들 혹은 새로운 어벤져스 멤버들을 가르칠 때. 스티브의 등은 굳건하고 아주 든든해 보였다. 섹시하기도 하고. 아침에 자고 일어날 때라던지 같이 샤워할 땐 웬수같이 긁어대기도 하지만- 토니는 거기에서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게 다 내 애인이 너무 잘나서 그래. 


 저 등이 때론 세상의 모든 시름을 짊어진 것마냥 축 늘어지기도 한다는 것을 토니는 안다. 눈이 많이 올 때, 그래서 지키지 못한 사람들과 약속을 떠올릴 때. 그는 캡틴 아메리카가 아니라 스티브 로저스로서 마치 이 드넓은 곳에 홀로 떨어진 것처럼 굴곤 했다. 그럴 때면 토니는 말없이 다가가 그의 등을 안아주었다. 어떤 위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혹은, 말을 건넸을 때 거절당할 것이 두려워서. 스티브가 그를 거절할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토니는 늘 가능성을 생각했다. 당신은 너무 똑똑해서 탈이야, 토니. 언젠가 토니의 코를 가볍게 꼬집으며 스티브는 그런 말을 했었다.


 내가 보는 당신의 등은 언제나 굳건해서, 무슨 일이 생겨도 괜찮을 것처럼 느껴져.


 토니는 그게 아주 바보 같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타당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스티브 로저스였다. 캡틴 아메리카였다. 살아있는 전설, 미국의 영웅, 토니 스타크의 연인인 것이다. 그게 무너지지 않도록 옆에서 손을 잡아 주는 게 바로 내 역할이지. 토니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쉴드 여성 요원들이 머뭇거리며 스티브에게 다가서려는 걸 본 참이었다. 


 미안하지만 아가씨들, 이 남자는 내 거라서. 아니, 사실 미안하지도 않아. 당연한 거지. 토니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후드까지 벗어제끼고 스티브에게 다가갔다. 금방 그는 놀라면서도 환하게 웃어줄 것이다. 짜릿한 순간을 기대하며 토니는 그의 이름을 불렀다. 스티브. 금발의 남자가 돌아서며 햇살처럼 밝게 미소지었다. 

by 치우타 2015. 7. 11. 21:35

 토니는 랩실에서 한창 아머의 수리와 테스트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운동을 끝낸 다음 샤워까지 하고 올라온 스티브는 아는 체를 하려다가 자비스에게 미리 언질을 주곤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토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동그란 뒤통수, 자그마한 (평균치거든! 토니는 늘 투덜거리며 스티브에게 주먹을 흔들어 보였다) 어깨와 곧게 뻗은 등. 유려한 척추 라인을 따라 내려오면 보이는 허리와 섹시한 엉덩이. 손에 꽉 잡히는 그 탄력적인 감각이란 언제고 스티브를 흥분하게 만들곤 했다. 토니는 어디서 보아도 완벽하고 멋진 남자였지만, 이렇게 프라이빗한 상황에서 몰래 훔쳐보는 뒷모습이란, 아. 아찔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정작 그 장본인은 그 표현을 듣는 순간 팔을 문지르며 닭살 돋는다고 쫑알거릴게 뻔했다. 그 모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새어나올 것 같아서 스티브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아직은,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 토니. 

 내가 얼마나 당신을 욕망하는지. 당신을 사랑하는지. 당신에게 집착하는지. 당신을... 품 안에 가두고 싶은지. 

 아마 평생 모르겠지, 


 캡틴 아메리카라고 불리는 남자라곤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두운 마음이 소용돌이친다는 걸 당신은 알까. 아주 가끔, 멤버들 몰래 윙크를 보내거나 대놓고 손 키스를 날릴 때. 느닷없이 키스를 해올 때. 개구쟁이처럼, 숨길 수 없는 애정으로 가득 찬 갈색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때. 그런 당신을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을. 스티브 로저스가, 토니 스타크에게 미쳐 있다는 것을.


 그만큼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


 스티브는 수건을 목에 걸치고 일부러 발자국 소리를 내어 걸어갔다. 고글을 쓰고 납땜질에 몰두하던 토니가 고개를 들어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스티브를 발견하고 환하게 웃었다. "스티브! 운동 끝났어?" 드라이버를 내려놓고 먼저 다가서는 모습마저 지나치게 사랑스럽다. 스티브는 기쁘게 미소지었다. 당신의 등 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앞으로도 영영 알 수 없을거야. 내 사랑. 

 

by 치우타 2015. 7. 11. 21:12

 퀼은 원래 이 파티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그의 이름 앞으로 도착한 수많은 초청장(이라고 쓰고 추파라고 읽는다)에는 하나같이 아닌 척 속내를 감추면서도 어떻게든 퀼과 하룻밤을 지새우고자 하는 천박한 욕망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인기가 많은 것도 가끔은 죄라고 생각하는데. 퀼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것들을 쓸어다 쓰레기통에 골인시켰다가, 왠 변덕이 발동했는지 그 중 아무거나 주워들고 눈에 띄지 않게 파티의 구석자리를 차지했다.


 페로몬을 갈무리하고 있어도 준수한 용모때문에 사람들은 언제나 그에게 먼저 접근해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애석하게도 파티장의 관심은 다른 사람에게 쏠려 있었다. 퀼은 샴페인을 홀짝거리며 여러 명의 무리에 둘러싸인 채 눈썹을 찡그리면서도 자신만만하게 웃고 있는, 그보다 체구가 작은 브루넷의 매력적인 남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퀼은 수많은 시선들 사이에 제 시선도 함께 섞어 주목받고 있는 남자를 관찰했다. 짙은 갈색의 머리칼에 반짝이는 눈동자, 몸에 딱 맞는 최고급 수제 정장(와우, 저거 진짜 비싼 브랜드인데!). 적당히 사람들을 상대하면서도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치밀한 몸짓. 퀼은 샴페인을 단숨에 비우고 새 잔을 집어들었다. 저거 괜찮네. 말 한번 걸어보고 싶어. 


 하지만 그 남자는 아무래도 파티의 주빈이었던 모양인지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사람들에게서 좀처럼 놓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남자 쪽에서 자리를 떠나 화장실로 향하는 시점에서야, 팽팽한 그물 같던 인파가 느슨하게 풀렸고 퀼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날랜 몸놀림으로 남자의 뒤를 따라간 그는 슬그머니 여기 저기에 페로몬을 흘려 두었다. 어지간한 애송이는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할 걸. 


 그리고, 마주한 남자는 생각보다.... 귀여웠고, 잘생겼으며, 섹시했다.


 토니 스타크. 그게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는 퀼이 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는 반응을 보이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해 보였지만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었는데, 그 미소마저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았다. 내가 미쳤나? 너무 오랜만에 지구에 왔더니 그런가? 퀼은 복잡해지려는 머리를 억누르며 토니의 손을 잡아 품에 가두었다. 


 아까 나던 냄새가 취향이었지... 손에 잡히는 적당히 살집과 근육이 짜여진 몸매도 감촉이 좋았다. 퀼은 속으로 점수를 매겼다. 좋아, 합격. 남자랑은 거의 안 하는데 이건 놀랍군. 토니는 놓으라며 퍼덕거렸지만 퀼에게는 저항은 커녕 귀여운 몸짓으로 보일 정도였다. 토니의 머리카락, 목덜미에서 나는 향은 처음에 퀼을 동하게 하던 것보다 훨씬 더 달콤하고 좋았다. 이게 무슨 향이지. 맡을 수록 알쏭달쏭했지만 그에 비례해서 기분은 점점 좋아졌다. 히트사이클을 맞이한 오메가와는 다르지만 오히려 이쪽이 더 자극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토니가 내내 고소니 뭐니 화를 내며 벗어나기 위해 끙끙거리는 동안, 퀼은 토니의 향기에 한껏 취해있다가 문득 제 신체에 변화가 왔음을 알아차렸다.


 아. 예상밖의 전개잖아. 


 "저리 좀, 가... 네가 러트거나.. 말거나.. 힉!"

 "당신도 반응하는 것 같은데.. 토니. 나 잘해요. 응?"

 "이런, 미친.. 아...."


 토니는 남아있는 힘을 최대한 쥐어짜서 퀼에게 주먹을 휘두르려고 시도했지만, 다리가 풀려 있는 상태에서는 그저 허공에 헛손질만 할 뿐이었다. 기가 센 것도 귀여워. 퀼은 낮게 웃으며 토니를 번쩍 안아들었다. 이거 안 놔? 숨을 반쯤 헐떡이면서도 토니는 죽일 듯이 퀼을 노려보았다. 아, 안 되는데. 그는 지금 알파의 가장 민감한 본능을 건드리고 있었다. 지배욕. 정복욕. 역시 오메가도 알파도 아니로군. 둘 중 하나라면 절대로 이렇게 할 수가 없지.


 "쉿.. 토니. 여기서 뒷문이 가까운데, 당신 차는 어디에 있어요?"

 "....빌어먹을. 정원 근처에, 붉은 색.. 제일 비싸보이는 거."

 "아, 저기 보이는 차에요? 끝내주네. 조금만 참아요."


 사실 내가 죽을 것 같지만, 러트를 차 안에서 보내는 건 당신한테 못할 짓이라서. 퀼은 이제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그의 품 안에 늘어져 있는 토니를 보며 장난꾸처기처럼 씩 웃어보였다.



by 치우타 2015. 7. 1. 02:19

 "토니. 오늘은 아침에 일정 없나? 일어나야지."

 

 스티브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불을 살짝 들어올리며 곤히 잠든 토니의 둥그런 이마에 입술을 부볐다. 으응, 오늘 나 쉴 거야.. 잔뜩 잠긴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토니가 몸을 뒤척거렸다. 그런 움직임조차도 너무 사랑스러워서 스티브는 못 견디겠다는 듯 토니를 팔 안에 가둔 채 콧잔등을 부비고, 온 얼굴에 키스를 쪽쪽 해댔다.

 

 "아, 진짜... 어제 그렇게 괴롭혀 놓고.."

 

 결국 토니는 불만을 터트리며 팔을 버둥거렸다. 스티브의 단단한 근육은 꼼짝도 하지 않아서 해 봤자 무의미한 저항이었지만 몸에 걸쳐져 있던 이불이 벗겨지고 나신이 드러나자 이번엔 맑은 푸른 눈에 작은 불꽃이 튀었다. 나 저거 알아. 하지 말라고 해도 정줄 놓고 달려들 때 몇 번 봤었어. 토니는 애써 웃으며 스티브의 팔을 어깨로부터 치웠다.

 

"허니, 달링, 스티비. 우리 정말 늦게까지 했던 거 알지? 더는 안 돼. 나 죽어. 그러니까.. 으악!"

"당신은 메카닉이잖아. 뭐든 고칠 수 있는. 그러니까 날 좀 고쳐 줘, 토니."

"아니, 아니 이거 안 고쳐지던데...."

"그럼 이대로 사랑해 줄래?"

 

 이젠 거의 능글맞아보이는 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스티브는 토니의 얼굴을 가까이 끌어당겼다. 입술이 닿고, 숨결이 섞이고, 방 안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는 게 느껴진다. 누가 젊은 애인이 좋댔어? 토니는 속으로 비명을 삼켰다. 아침의 키스와 포옹 그리고 더 뜨거운 섹스는 최근의 토니를 달콤한 꿀단지에 퐁당 빠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스티브 또한 기꺼이 꿀단지 속으로 뛰어들어 토니를 안고 깊게 잠수했다. 내 사랑. 내 귀염둥이. 눈부신 햇살만이 어쩔 줄 모르며 창가를 배회했다.

 

by 치우타 2015. 6. 27. 22:30

 토니는 소코비아 사태 이후 조금 쉬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런 것 치고는 꽤나 자주- 1주일에 한 번은 꼭 어벤져스의 새로운 뉴욕 지부에 들렀다. 그렇다고 해서 닉 퓨리나 스티브를 만났다는 건 아니었다. 그의 친우인 제임스 로드 중령을 만난 것도 아니고, 토니가 만나러 온 상대는 바로 비전이었다. 이 사실을 아는 건 비전과 토니를 포함한 아주 소수의 인원들 뿐이었다. 방문 이유도 목적도 밝히지 않은 채 토니는 불규칙적인 일정으로 비전을 찾아와 잠시 머물다 가곤 했다.


 비전은 스티브가 훈련시키고 있는 어벤져스의 새로운 멤버 중 한 명이었으므로, 토니는 늘 훈련 스케줄을 어떻게든 알아내서 비전이 혼자 있을 때를 노려 찾아왔다. 토니는 처음엔 비전에게 겉치레뿐인 인사나 그 특유의 호기심 넘치는 화법을 사용했지만 당사자인 비전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반응 자체가 무척 재미없다는) 걸 알아챈 다음부터는 그냥 혼자서 뭐라고 떠들다가 가곤 했다. 돌아가기 전에, 토니는 꼭 비전의 눈을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갔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사람처럼 약간은 절박한 얼굴로. 때로는 서글픈 얼굴로. 또 언젠가는 체념한 얼굴로.


 비전은 토니의 방문에 익숙해지면서 그가 짓는 표정들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토니 스타크,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만든 사람. 과연 그는 비전에게서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인피니티 젬에 관심이 있을 거라는 게 가장 현실적이고 가까운 이론이었지만 정작 토니는 비전의 이마 정중앙에 박혀 있는 보석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망토를 만지작대거나, 조잘거리거나, 말 없이 비전의 눈을 바라보는 것 외엔 특별한 게 없었다. 언젠가 한 번은 토니가 예의 그 아이 컨택 타임을 가졌을 때 그의 눈은 갑작스러운 슬픔으로 크게 흔들렸다. 비전이 거기에 의문을 떠올리기도 전에, 짙은 선글라스가 그린 헤이즐넛의 눈동자를 가린 탓에 그는 한동안 토니의 표정에 대해 생각했다.



 "제게서, 무얼 찾고 있는 겁니까?"


 하루는 비전이 드디어 질문을 던졌다. 토니는 허를 찔린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떠 보이더니, 이내 씩 웃었다.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


 나 갈게. 나오지 마. 토니는 선글라스를 빙글빙글 돌리며 빠르게 등을 보이고 걸어가 버렸다. 차가 출발하는 소리에 비전은 문 앞으로 날아가 보았지만 이미 그 자리엔 흙먼지가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토니의 방문은 거짓말처럼 끊어졌다. 비전은 일주일을 변함없이 보내면서 규칙적인 일과 하나가 빠졌다고 생각했고 그게 바로 토니의 장난스러운 얼굴과 매력적인 목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왜 오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1주일, 2주일이 흘러갔다. 비전은 토니가 여전히 타워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스티브에게 간략히 외출을 보고하고 (장소가 어벤져스 타워라는 것에 스티브는 눈썹을 찡그리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직접 토니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토니는 글래스를 들고 미니바에 기대서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대뜸 정면에서 날아들어온 비전을 보고 깜짝 놀란 나머지 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맙소사,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여긴 어떻게 왔어? 왜 왔어?"

 "무언가를 찾으러 왔습니다."

 "......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뭐야, 토니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2주만에 보는 미소였다. 비전은 이제야 제 일상이 제대로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말 없이 토니의 반짝이는 그린 헤이즐넛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그가 그랬듯이,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



by 치우타 2015. 6. 25. 00:12

 스티브와 토니는 실로 오랜만에 데이트를 즐기고 있었다. 거의 2주 만의 일이었다. 스티브는 새로운 어벤져스를 훈련시키느라, 토니는 소코비아 사태가 끝난 뒤 남은 일거리를 수습하고 앞으로의 계획 등에 대해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또한 해명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본의 아니게 떨어져 있어야 했던 연인들은 문자와 화상 통화로 아쉬움을 달래며 서로를 그리워해야 했다. 


스티브, 일 끝났어? 나도 이제 퇴근이야. 

얼굴이 많이 상했군. 

괜찮아, 그래도 밥은 잘 먹어. 당신이야말로 눈 밑이 시커매. 


 둘은 뭐가 그리 좋은지 고등학생마냥 키득거리면서 시덥잖은 이야기들을 나누곤 했었다. 누가 보면 스타크가 어디 외국에라도 나가 있는 줄 알겠네. 헤죽거리는 스티브 옆을 지나가며 나타샤가 조금 가시돋힌 말을 던졌다. 스티브는 그녀의 심술에 놀라지도 않고 도리어 엽서 하나를 내밀었다. "토니가 전해주라더군. 배너가 쉴드 주소는 못 외웠대." 누가 봐도 관광지에서 팔고 있다는 게 엄청 티 나는 디자인이었지만 나타샤는 눈썹을 움찔거리며 받아들고 쌩하니 사라졌다. (이후 그녀는 스티브의 눈꼴신 연애에 대해 그닥 말하지 않게 되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 겨우 맞이한, 그것도 희귀한 바깥 데이트였건만.


 "이렇게 비가 올 줄 누가 알았겠어."


 토니가 투덜거리며 차양 안쪽으로 몸을 붙였다. 스티브는 토니가 젖을세라 조금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 안았다.


 삼십 분쯤 전에 두 사람은 스티브가 좋아하는 작은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와서 근처를 산책하던 참이었다. 주위의 눈치를 살피면서 손을 잡고, 누가 볼세라 후드며 선글라스를 잔뜩 뒤집어쓴 채 스티브와 토니는 설레는 마음으로 보통의 연인들처럼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걸었다. 새로운 감각이었다. 언제고 한 번은 이러고 싶었어. 낮게 중얼거리는 스티브의 목소리에 토니는 코웃음을 치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우리 영감 귀여운 데가 있는 줄은 진작에 알았지. 장난기 섞인 말투였지만 거기에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담겨 있음을 스티브는 알았다. 재빨리 토니의 뺨에 입술을 대었다가 뗀 스티브 덕분에 토니는 바보처럼 입을 쩍 벌렸다가 황급히 닫았다. 그러던 그들의 머리 위에 툭, 투둑 하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채 오 분도 되기 전에 세찬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여기서 타워까지.. 얼마나 걸리나?"

 "음, 우린 지금 걷고 있으니까. 한 25분 정도? 뛰면.. 당신 기준으로 10분. 나는 17분쯤일지도."

 "내가 안고 뛰면?"

 "워, 난 대답 안 할거야. 비 오는 거리를 그 스피드로 날 안고 뛰면 어떻게 되겠어? 누군가한테 찍힐걸. 타워랑 같이."

 ".....아. 그래도 지금은 어두워서-"

 "요즘엔 별 게 다 보정되는 시대야. 천천히 걸어가면 모를까, 아니면 같이 뛰던지."


 어차피 뛴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맞는 비의 양이 달라지는 건 아니라 생쥐꼴이 되겠지만. 토니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잠시 둘러본 주위엔 비 때문인지 사람들이 적어진 느낌이었다. 스티브는 토니에게 후드를 더 단단히 씌웠다. 왜 그래? 비장한 얼굴인데. 토니가 스티브를 올려다 보았다. 선글라스 너머로 보이는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거렸다. 


 "같이 타워까지 뛰어가지."

 "뭐? 이 빗속을 뚫고?"

 "기다리는 것 보다 빠를 것 같거든. 그리고.."


 돌아가서 같이 샤워하고 싶군. 스티브는 일부러 입술을 토니의 귀에 바짝 붙이고 나지막히 속삭였다. 토니가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씩 웃었다. 섹시한 제안은 언제고 대환영이야. 둘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대로 손을 잡고 비가 쏟아지는 거리에 나섰다. 토니는 이게 바보같은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 없었고, 스티브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타워에 돌아가면 샤워를 하고 토니와 함께 그 영화를 봐야지. 


 비 오는 뉴욕의 밤거리 사이로, 두 남자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한 데 섞이어 공기를 가로질렀다.




*스티브가 생각한 영화는 Singing in the rain. 진 켈리가 집으로 돌아가며 부르는 노래를 떠올렸음.


by 치우타 2015. 6. 21. 02:05

 오웬의 집- 어딘가 산 속에나 있을 법한 산장과도 같은 비주얼도 집이라고 할 수 있다면- 은 랩터 사육장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니었다. 가깝지도 않았으나 만일의 사태가 생겼을 때 빠르게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거리라고 하는게 알맞을 것 같았다. 토니가 심드렁한 얼굴로 주변을 휘휘 둘러보고 있자 오웬이 앞장서서 문을 열고 토니를 안내했다. 


 "누추하지만 들어오시죠."

 "많이 누추하지만 실례하지."


 반 농담을 섞은 말과 순수한 진심이 섞인 말이 허공에서 부딪쳤지만, 오웬은 별다른 반응 없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씩 웃었을 뿐이었다. 토니는 그게 제법 흥미롭다고 생각했고 오웬은 이 월드 셀러브러티가 소문보다 조금 더 심술궂고 조금 더 귀여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신문 기사나 텔레비전을 통해 보아오던 토니 스타크는 머나먼 별 같은 사람이었으나 직접 만나고 대화를 나누고 보니 점섬 더 상대로 하여금 호기심을 동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비장의 로스트 치킨 요리와 그 외의 깜짝 아이템을 준비하며 오웬은 토니에게 시원한 맥주 캔을 건넸다.


 "전기가 들어와?"

 "당연하죠. 이런 날씨엔 시원한 맥주가 꼭 필요하거든요."

 "흠. 뭘 좀 아는군."


 그런 점은 마음에 들어. 캔을 따는 경쾌한 소리를 뒤로 하며 두 사람은 잔 대신 캔을 맞댔다. 사실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최근 유전자 배합으로 만들어지는 공룡에 대한 이슈는 제법 이목을 끌고 있었고, 오늘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토니가 직접 참여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루하지만 상쾌했던 연구소를 떠나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작은 집으로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자켓을 벗어 대충 의자에 걸치며 토니는 맥주를 목 너머로 넘겼다. 


 "군인이었다던데, 왜 굳이 이 일에 자원한 건지 물어봐도 되나?"

 "정확히는 해군이죠. 난 어렸을 때부터 동물이 좋았거든요."

 "공룡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데."


 동물은 동물이니까요. 오웬이 어깨를 으쓱하며 눈을 깜박였다. 요리가 거의 다 되어가는지 오븐에서는 아주 맛있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본의아니게 아침을 거르고 쥬라기 월드 테마 파크에 도착한 토니는 제법 몸을 불린 허기를 느끼며 뱃속에서 소리가 나진 않는지 신경을 곤두세웠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섬세한 동작으로 알맞게 익은 치킨을 꺼내 접시에 담던 오웬은 토니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피식 웃었다. 진짜 귀여운 아저씨네.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어요."

 "아, 뜨거!"

 "내 요리가 끝내준다는 건 알지만, 그렇게 흥분하진 말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기를 입에 가져가다가 뜨거움에 놀라 입술을 움츠리는 토니에게 오웬이 얼음물을 건넸다. 생판 남 앞에서 무방비한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였다는 게 싫었는지 토니가 제법 날쌘 동작으로 컵을 가로채서 급하게 들이켰다. 저런, 그러다 목에 걸릴 텐데. 오웬의 예언 반 희망사항 반은 아쉽게도 빗나갔지만 토니는 아까보다 침착한 태도로 치킨을 썰어 먹기 위해 노력했다. 마치 포크와 나이프를 처음 써보는 사람 같았다.


 "...오. 이거 괜찮은데, 닭고기는 아닌 것 같고. 혹시.."

 "아. 공룡 고기에요."

 "농담이지?"

 "그것도 엄청 귀한 랩터 고기죠. 운 좋은 줄 알아요, 당신이 귀한 손님이라 대접한 거니까."


 오웬은 싱글벙글 웃으며 토니의 접시에 예의 그 '랩터 고기' 요리를 좀 더 덜어주었다. 토니는 포크를 든 채 얼어붙은 표정으로 접시와 오웬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입은 꽤 장난스러운 모양으로 실룩대고 있었지만,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이 자식 이거 진짠가? 토니는 날카롭게 울부짖던 랩터들의 모습을 떠올리다가 그만두었다.


 "....푸핫! 농담이에요, 그거 그냥 소 창자구이."

 "뭐? 소 창자?"

 "이게 얼마나 맛있는데. 모르고 먹을 땐 괜찮았잖아요? 아니면 공룡 쪽이 더 나았나?"


 이번엔 경악한 얼굴을 한 채 입을 떡 벌리고 쳐다보는 토니를 내려다보며 오웬은 윙크를 해 보였다. 얼른 더 먹어요. 다 먹고 나면 근처 구경이라도 시켜줄게요. 



by 치우타 2015. 6. 14. 01:19

 토니는 사실 생물공학 분야에 관심은 있었어도, 직접 시간을 들여서 공부하거나 투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배너가 그쪽에 통달해 있는 관계로 굳이 찾아볼 필요가 없었다는 점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잘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을 본인의 일부로 편입시키길 원했다. 천체물리학을 하루만에 읽어서 이해할 정도로 뛰어난 지능을 가진 토니였지만, 배너의 전문 분야를 속속들이 알아내서 안 그래도 부유하는 듯 불안정하게 머물러있는 그를 제 발로 나가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 어쩌면 가장 큰 이유었을 것이다. 그랬는데, 토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생물학적 분야의 신규 투자를 위한 자리에 나와 있었다. 페퍼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정도로 그는 철판이 두꺼운 남자가 되지 못했다.


"우리는 새로운 공룡을 탄생시킬 것입니다. 더 진화하고, 무섭고, 커다란 것을 말이죠."


 유전자 배합을 통한 새로운 종의 탄생을 주도하고 있다는 연구소의 과학자는 그의 투자자(후보들)에게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자신들이 얼마나 훌륭한 연구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토니는 지루하다고 생각하며 성의없이 손에 든 책자를 펄럭이며 넘겨보았다. 거기 적혀 있는 내용조차 상투적이었던 탓에 별로 도움은 되지 않았다. 차라리 원숭이 쇼를 보는게 더 재미있겠군. 신랄한 평가였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뭘 모르는 순진한 투자자들만이 허영 넘치는 과학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토니는 그렇게 뻔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거라면 스폰서고 뭐고 다 집어치우겠다는 말을 목구멍까지 끌어올렸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다른 방법을 택했다.


 "여기 랩터 사육장이 있다던데. 구경할 수 있습니까?"


 토니는 마치 그 질문이 자신에게 이미 주어진 특권이라는 양 뻔뻔한 얼굴로 근처에 서 있던 파크의 책임자를 맡고 있는 클레어, 라는 여자에게 물었다. 그녀는 다른 투자자들의 반응을 살피느라 토니의 질문에 한 템포 늦게 반응했지만, 곧 그가 '토니 스타크' 라는 걸 깨닫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보안팀을 통해 연락을 취해 그가 즉시 랩터 사육장으로 향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고마워요, 클레어." 당신 덕분에 투자할 마음이 드는군요. 토니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며 씩 웃었고, 클레어는 장차 큰 고객이 될 수 있는 그에게 마주 활짝 웃어보였다. 거짓이든 아니든, 둘 다 비즈니스에 충실하기 위한 미소를 가장한 것은 틀림없었다. 토니는 친절한 무전 안내를 받으며 지루한 연구소를 뒤로 했다.



 토니가 사육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창 흥미로운 광경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랩터들의 사육 및 교육을 전담하고 있다는 해군 출신의 오웬 그래디라는 남자가 사나운 랩터들을 간단한 소리와 명령어로 길들이고 있었다. 토니는 그를 알아본 관계자들의 친절로 무척 가까운 위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볼 수 있었다.


 "진정해, 블루. 기다려. ......좋아, 잘 했어. 이게 네 먹이야."


 그는 날카로운 표정으로 위협하는 랩터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그들을 충분히 기다리게 하고, 신호를 주면서 먹이를 건네고 있었다. 짐승의 본능조차 다스리기 어려운 판에, 공룡이라니. 토니는 사육사를 자처하고 있는 남자 쪽에 더 흥미를 느꼈다. 그냥 평범해 보이는데, 공룡이 말을 듣는다고? 팔짱을 낀 채 남자가 하는 양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는 모든 랩터들과 이야기할 때 눈을 마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동료라는 남자들도 그걸 엄숙하고, 또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유대라고? 공룡이랑 인간이? 말도 안 되는 소리. 토니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래, 좋아. 다들 정말 잘 했다. 착하지."


 오웬이 랩터들을 달래어 원래 있던 우리로 돌려보내는 걸 보고 토니는 형식적인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좀처럼 듣기 힘든 소리에 오웬이 눈살을 찌푸리며 두리번거리다가 이윽고 토니를 발견했다. 선글라스를 낀 채 토니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오웬은 잠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살피는 것 같더니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해군이라더니 날래네. 토니는 파란 쫄쫄이의 누군가를 몇 초간 떠올렸다가 이내 지웠다.


 "여긴 제한구역인데, 어떻게 온 겁니까?"

 "난 특별 대우라서. 지루한 연구소 말고 랩터 사육장을 보고 싶었거든. 당신이 그러니까-"

 "오웬 그래디. 그냥 오웬이라고 불러요."


 토니가 미스터 그래디, 라고 부르려다가 입을 다물자 오웬은 씩 웃었다. 기선제압을 아는 남자의 여유로운 미소였다. 어쭈, 제법 하는데. 토니는 이 새파란 애송이에게 한 발 밀렸다는 걸 느끼고 약간 기분이 나빠졌다.


 "토니 스타크."

 "아, 아이언맨! 당신이군요. 어쩐지 이 부분이 닮았다고 생각했어요."


 오웬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토니의 밤톨머리와 수염을 가리켰고 토니는 아까보다 좀 더 기분이 나빠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나 놀림당하고 있는거 맞지? 그것도 처음 보는 해군 나부랭이 사육사한테? 토니의 눈썹이 실룩댔다. 오웬은 눈치 빠르게 분위기를 캐치했는지 두 손을 앞으로 내밀며 토니에게 악수를 청했다.


 "기분이 나빴다면 죄송합니다. 유명인을 실제로 만나는 건 처음이라 긴장했네요."

 "흠. 날 상대로 제법 배짱이 좋은데, 미안하면 밥이라도 사는 건 어때?"


 토니는 선글라스를 벗어 머리 위에 끼면서 도발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건 그가 기분이 나쁘거나, 주위 사람들을 쫓아버릴 때 쓰는 방법 중 하나였다. 재수없는 표정으로 재수없게 말하는 것. 상대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에도 꽤 도움이 되는 기술이었지만 페퍼는 제발 비즈니스에선 좀 더 자제하라고 토니에게 충고하곤 했다. 


 "좋습니다. 여기 밥은 대체로 별로지만. 그나마 괜찮은 곳을 알아요."

 "거기가 어딘데?"


 내 집이죠. 오웬은 한쪽 눈을 찡긋하며 토니의 선글라스를 뺏어서 제 얼굴에 씌웠다. 장난스러운 눈동자가 순식간에 검은 렌즈 뒤로 감춰졌다. 어쭈? 지금 해보자는 거야? 토니는 잊고 있었던 승부욕에 기름이 끼얹어지는 걸 느끼며 기가 찬 듯이 웃었다. 도발에는 도발로 응해 줘야지. 어차피 지루했던 투어였는데 시간을 죽일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토니는 오웬의 얼굴에서 선글라스를 다시 뺏어서 제 가슴의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당신이 얼마나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지 볼까?"

 "너무 놀라지나 마시죠, 스타크 씨."


 내 요리에 넘어오지 않은 사람이란 없었으니까. 오웬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토니에게 헬멧을 씌웠다. 클래식한 디자인의 오토바이에서는 제법 좋은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오토바이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겠는걸. 토니는 순순히 헬멧을 고쳐 쓰며 탄탄한 남자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그래서는 떨어져요, 오웬이 억지로 토니의 팔을 더 가까이 두르고는 예고도 없이 출발했고 토니는 짧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별 수 없이 오웬에게 밀착했다. 가면서 좋은 경치도 구경시켜줄게요! 오웬이 즐거운 듯이 웃었다. 플레이보이 잘못 건드린 댓가를 어떻게 선사해 줄 지 고민하면서도, 토니는 남자의 웃음에 전염된 것처럼 따라서 피식 미소지었다. 경쾌한 배기음이 숲 속을 가로질렀다.


 

by 치우타 2015. 6. 13. 01:02

안녕하세요! 치우 또는 치우타입니다. 

제가 벌써 스토니로 개인지가 두 권째네요...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각설하고, 6/6 (토) KBS 제 2스포츠월드 체육관에서 열리는 마블통합 온리전에 신간을 냅니다!

관련 정보는 아래를 확인해 주세요~~~


1. 부스정보, 사양

부스 : T6  [DAMN U, MARVEL]  - 페르님 부스에서 감사히 자리를 빌려 나옵니다!

B6, 110P. 인쇄본. 가격 10,000원

616 스티브 x MCU 토니 19금, Dom-Sub 형질이 존재.


글   치우타

삽화 이한량

표지 청사과



2. 선입금 안내 (현장에서 신분증 확인 필수) - 선입금 예약을 조금 빠르게 종료합니다! ㅠㅠ 

문의사항은 gereinte@naver.com 이나 트위터 @dearstony 로 부탁드립니다.


3. 기타

50부 인쇄 예정이며 통판은 제 사정상 어려운 관계로 ㅠㅠ 진행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메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추가 : 문의를 받아서 우선 이쪽에도 적어둡니다. 블랙버드는 마통온에서 완판되었고

향후 재판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8_8 수요가 많지 않은것도 있어서 ㅠㅠㅠ 죄송합니다....

이렇게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7월 와인선반 / 11월 슈와마에서 또 다른 책으로 찾아뵐 예정이에요.



by 치우타 2015. 5. 30. 02:23

 토니는 언제나 선글라스를 가지고 다녔다. 그걸 얼굴에 쓰거나, 가슴의 주머니에 꽂거나, 셔츠에 걸어놓거나 하는 등 위치는 제멋대로였지만 어쨌든 일종의 소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스티브는 처음에 그걸 건방지고 오만하다고 생각했지만 토니와 사귀게 된 다음부터는, 귀여운 허세 혹은 섹시한 매력 포인트로 느끼게 되었다. 그래, 특히 지금 같은 때에 말이다.


 "실내에서도 쓰고 있는 거야?"

 "오늘은 얼굴이 좀 초췌하거든. 아무리 애인 앞이라지만 팬더마냥 시꺼먼 눈을 보여주긴 싫어서."


 토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슬쩍 늘어뜨렸다. 그 귀엽고 솔직한 동작에 거의 넘어가고 있었던 스티브였으나, 전에 토니가 뭔가를 개발한답시고 랩에 틀어박혀서 일주일간 자는둥 마는둥하더니 하루는 샤워실에서 나오던 스티브에게 달려들어 아로마 테라피를 하겠다며 퀭한 얼굴로 킁킁거리던 것을 기억해 냈다. 정말 깜찍하군. 스티브는 짐짓 토니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척 하면서 잽싸게 선글라스를 벗겨 들었다. 불의의 습격에 토니가 소리를 꽥 질렀다


 "맙소사, 스티브 로저스! 비겁하게 사람이 방심한 틈을 노리다니!"

 "거짓말을 하는 당신은 어떻고? 멀쩡하잖아."


 스티브는 선글라스를 뒷주머니에 꽂으며 팔짱을 꼈다. 그거 비싼 거야, 달링. 제발 부수지 마. 토니가 애원하듯 투덜거리면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흔들었다. 이유 말이야, 토니. 어물쩡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엄격한 표정을 한 스티브가 푸른 눈으로 재촉했다. 저거 분명 자기 외모가 먹히는 걸 알고 있다니까. 틀림없어.


 "알았어. 그냥 좀, 억울해서. 당신은 정말 금욕적인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거침없이 손을 셔츠 안으로 집어넣고 그러잖아! 나는 눈에 자꾸 감정이 드러나니까 들키는데... 윽. 말해버리다니. 미쳤군."

 "오, 토니. 그렇다면 말을 하지 그랬나."

 "이런 걸 어떻게 말해? 지금 내 나이가 몇인줄 알긴 해?"

 "나보다 어리다는 건 알지."


 스티브가 짐짓 웃어른처럼 말하며 선글라스를 대신 썼다. 이러면 어떤가? 푸른 눈동자가 선글라스 너머로 감춰진 모습은 제법 색다르고 섹시했지만, 토니는 어쩐지 아쉬움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저 뒤에 얼마나 아름답고 단호하고 반짝이는 보석 같은 눈동자가 숨겨져 있는지- 금세 안절부절하는 토니를 보고 스티브는 씩 미소지었다. 토니, 토니. 요즘 자네가 너무 귀여워서 못 살겠어. 


 "이래서 내가 자네 선글라스를 매일 벗기는 거야."

 "정말 치사해...."


 스티브는 토니의 허리를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우물거리는 입술이 불만을 토해내려고 몇 번 움찔댔지만 모르는 척 살을 맞대고 부비며 한 마디도 꺼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결국 항복한 토니가 스티브의 등을 끌어안았다. 키스와 숨소리,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 사이로 어느새 벗겨진 선글라스가 근처 테이블 위를 헤매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침실 저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by 치우타 2015. 5. 23.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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