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언제나 선글라스를 가지고 다녔다. 그걸 얼굴에 쓰거나, 가슴의 주머니에 꽂거나, 셔츠에 걸어놓거나 하는 등 위치는 제멋대로였지만 어쨌든 일종의 소품과도 같은 것이었다. 스티브는 처음에 그걸 건방지고 오만하다고 생각했지만 토니와 사귀게 된 다음부터는, 귀여운 허세 혹은 섹시한 매력 포인트로 느끼게 되었다. 그래, 특히 지금 같은 때에 말이다.


 "실내에서도 쓰고 있는 거야?"

 "오늘은 얼굴이 좀 초췌하거든. 아무리 애인 앞이라지만 팬더마냥 시꺼먼 눈을 보여주긴 싫어서."


 토니는 어깨를 으쓱하며 미안하다는 듯 눈썹을 슬쩍 늘어뜨렸다. 그 귀엽고 솔직한 동작에 거의 넘어가고 있었던 스티브였으나, 전에 토니가 뭔가를 개발한답시고 랩에 틀어박혀서 일주일간 자는둥 마는둥하더니 하루는 샤워실에서 나오던 스티브에게 달려들어 아로마 테라피를 하겠다며 퀭한 얼굴로 킁킁거리던 것을 기억해 냈다. 정말 깜찍하군. 스티브는 짐짓 토니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척 하면서 잽싸게 선글라스를 벗겨 들었다. 불의의 습격에 토니가 소리를 꽥 질렀다


 "맙소사, 스티브 로저스! 비겁하게 사람이 방심한 틈을 노리다니!"

 "거짓말을 하는 당신은 어떻고? 멀쩡하잖아."


 스티브는 선글라스를 뒷주머니에 꽂으며 팔짱을 꼈다. 그거 비싼 거야, 달링. 제발 부수지 마. 토니가 애원하듯 투덜거리면서 두 손을 앞으로 모아 흔들었다. 이유 말이야, 토니. 어물쩡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 엄격한 표정을 한 스티브가 푸른 눈으로 재촉했다. 저거 분명 자기 외모가 먹히는 걸 알고 있다니까. 틀림없어.


 "알았어. 그냥 좀, 억울해서. 당신은 정말 금욕적인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거침없이 손을 셔츠 안으로 집어넣고 그러잖아! 나는 눈에 자꾸 감정이 드러나니까 들키는데... 윽. 말해버리다니. 미쳤군."

 "오, 토니. 그렇다면 말을 하지 그랬나."

 "이런 걸 어떻게 말해? 지금 내 나이가 몇인줄 알긴 해?"

 "나보다 어리다는 건 알지."


 스티브가 짐짓 웃어른처럼 말하며 선글라스를 대신 썼다. 이러면 어떤가? 푸른 눈동자가 선글라스 너머로 감춰진 모습은 제법 색다르고 섹시했지만, 토니는 어쩐지 아쉬움이 몰려오는 걸 느꼈다. 저 뒤에 얼마나 아름답고 단호하고 반짝이는 보석 같은 눈동자가 숨겨져 있는지- 금세 안절부절하는 토니를 보고 스티브는 씩 미소지었다. 토니, 토니. 요즘 자네가 너무 귀여워서 못 살겠어. 


 "이래서 내가 자네 선글라스를 매일 벗기는 거야."

 "정말 치사해...."


 스티브는 토니의 허리를 끌어당겨 가볍게 입을 맞췄다. 우물거리는 입술이 불만을 토해내려고 몇 번 움찔댔지만 모르는 척 살을 맞대고 부비며 한 마디도 꺼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결국 항복한 토니가 스티브의 등을 끌어안았다. 키스와 숨소리, 키득거리는 웃음 소리 사이로 어느새 벗겨진 선글라스가 근처 테이블 위를 헤매거나 말거나 두 사람은 침실 저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by 치우타 2015. 5. 23.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