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가 의외로 단것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그와 사귀고 조금 후의 일이었다. 타워 여기저기에 놓아둔, 가끔 두뇌회전을 위해 섭취하는 초콜렛이나 사탕, 캐러맬 같은 주전부리에서 쉽게 손을 떼지 못하는 모습에 토니가 피식 웃었다. 


 "이 썩는다고 이런건 싫어할 줄 알았는데, 우리 노친네가 귀여운 데가 있군."

 "내가 어릴 땐 설탕이 귀했거든. 그 당시엔 뭐든 그랬지만, 아주 가끔 한 스푼 정도는 맛볼 수 있었어. 정말 좋았지."


 스티브가 쑥스러운 듯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푸른 셔츠에 짙은 색 바지를 입은 모습은 무척 섹시하고, 잘생겼고, 또.. 그를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스티브 로저스로 보이게 만들었다. 토니는 그게 아주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다. 물론 리더로서 명령을 내릴 때도 섹시하지만 캡틴일때는 꼬박꼬박 스타크 운운하는 것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아마 토니는 죽어도 인정하지 않겠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하고 중얼거리며 작은 초콜렛을 까먹는 스티브를 흐뭇한 얼굴로 보던 토니가 턱수염을 매만졌다. 그러고보니 얼마 전 자주 들르는 가게에서 아주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들여놓았다고 한 걸 들었던 것도 같았다.  바닐라였나 딸기였나, 기억은 잘 안나는데 아무튼 뭐 생과일을 넣었다던가. "자비스? 우리 타워 근처에 거기 있잖아. 애들이 바글거리는 가게. 신메뉴 나왔지?" 아쉬운 듯 입술을 핥는 스티브를 곁눈질하며 토니가 빠르게 손을 움직였다. [오늘 막 개시하는 것 같군요. 손님이 많이 모일 것 같습니다.] 오, 안 되지. 토니는 전화를 돌려 가게 주인에게 갤런 사이즈로 서둘러 주문을 마치고는 아이언맨 수트를 배달에 이용했다. (토니, 직권 남용이야! 스티브가 투덜거렸다)


 "자, 스티브."

 "이게 뭔가? ....아이스크림?"

 "그래. 이 근처에서 제일 맛이 괜찮은 곳이야. 오늘 신메뉴 개시! 라길래 사봤어. 별로 당신 먹으라고 그런건 아니고."


 스푼을 내밀며 어깨를 으쓱하는 토니에게 스티브는 못 말린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지만, 다시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뭐든 솔직하지 못한 것이 토니의 단점이긴 했으나 이런 게 그의 애정표현이었고, 관심이었으며, 최대한의 노력임을 알게 된 덕분이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싸운 나날이 제법 길었는데. 스티브는 질릴 정도로 커다란 아이스크림 통에 스푼을 가져가 한 입 먹어보았다. "어때?" 토니가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아이스크림을 샀다는 사람치곤 꽤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답 대신 스티브는 몸을 돌려 토니의 몸을 끌어당겼다. 겹쳐진 입술 사이로 웅얼거리는 신음이 새었지만 스티브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자 조용해졌다.


 "아주 맛있어. 토니."

 "노친네, 어디서 이런 거만 배워와서는...." 

 "뻐기는 걸 좋아하는 애인이 잘 가르쳐 주거든."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는 토니의 입에 이번엔 스푼이 들어왔다. 뜨뜻미지근했던 딸기 아이스크림은 무척 달콤하고, 부드럽고, 시원하고 맛있었지만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었다. 토니는 막 진리를 깨달은 사람처럼, 이번엔 스티브의 목에 팔을 감았다. 다시 입술이 겹쳐졌다. 이 맛이야. 토니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고 스티브는 속으로 웃음을 삼키며 앙큼한 연인의 허리를 단단히 안았다.






by 치우타 2015. 4. 25.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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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날 스티브는 아무 일정이 없었기에 느긋하게 타워 내의 체력 단련실에서 운동을 즐겼다. 70년 만에 깨어나 많은 변화를 겪었고 또 새로운 친구와 적을 만나는 동안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로가 쌓여 있었는지, 아무 생각없이 몸을 한참 움직이고 나자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샤워를 마친 스티브는 토니가 타워에 돌아왔다는 자비스의 알림을 듣고 인사나 할 요량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엘리베이터는 최상층에 도착했다.


 "응? 캡틴? 왠일이야? 오늘 타워에 다 있고."

 "일정이 없어서 쉬고 있었지. 자네는.. 일하고 왔나?"

 "난 우리 회사의 간판이거든. 열심히 번쩍번쩍 빛을 뿌리고 왔지. 아이고, 힘들어."


 토니가 어깨를 두드리며 짐짓 엄살을 떨었다. 스티브는 좀처럼 보기 힘든 토니의 평범한 표정에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그 때 어디선가 몹시 좋은 꽃향기 같은 것이 스티브의 코를 간지럽혔고 그는 무의식중에 숨을 들이마셨다. 좋은 냄새. 시선으로 무심코 꽃병이 있는지 둘러보았지만 비슷한 물건조차 없었다. 스티브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나는 거지?


 "캡틴?"


 스티브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토니가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볼일이라도? 그는 짧게 덧붙이며 넥타이를 풀러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던졌다. 정리해 두라는 충고가 목 언저리까지 올라왔지만 스티브는 애써 눌러 참았다. 타워의 주인은 토니였고, 여긴 그의 프라이빗 플로어였기에 아무도 간섭할 권리 따윈 없었던 것이다. 대신 스티브는 인사나 하러 왔다는 말을 던지며 다시 한 번 공기 중의 향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아. 정말 좋은 냄새로군. 꽃이 아니면 향수인가? 스티브는 피곤한 얼굴로 조끼를 벗어 의자에 걸쳐두는 토니를 응시했다.


 "스타크."

 "응? 왜, 무슨일이야?"

 "향수 쓰나?"

 "어... 뭐 쓰기도 하지. 오늘은 아니었지만."


 그런건 갑자기 왜? 라고 물으려던 토니는 흠칫 몸을 움츠렸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스티브가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고 있었다. "되게 좋은 냄새가 나는데.. 꽃은 아닌 것 같고. 자네한테서..." 그는 약간 꿈꾸는 듯한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내 바디로션이 좀 비싼거긴 한데..워! 잠깐, 캡..." 


 이제 스티브는 숫제 토니의 목에 코를 묻고 숨을 쉬고 있었다. 뜨거운 숨결이 간지러우면서도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헤이, 캡, 캡틴, 스티브! 이게 무슨...!" 토니는 황급히 그를 떼어내려고 했지만 스티브의 팔이 토니의 몸을 단단히 끌어안고 있는 바람에 헛된 시도로 돌아갔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토니는 덜컥 허리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토니... 좋은 냄새......"

 "잠깐, 맙, 소사... 당신... 알파야....?"

 "알파..? 그게 뭐지.. 모르겠군, 아무래도 좋아..."


 반쯤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스티브는 무척 섹시했다. 토니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이 알파의 그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젠장, 제기랄! 어떻게 몰랐을까, 수퍼 솔져 혈청을 맞은 남자는 그 형질이 드러나지 않았으나 어딜 봐도 알파의 성향에 속한다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처음 만나던 순간부터, 언제나. 조금씩 스티브의 숨소리가 거칠어지는 것을 들으며, 토니는 제 몸이 멋대로 알파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는 걸 속수무책으로 느껴야만 했다. 이제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인 거야.


 "자비스, 플로어 잠가. 아무도 들여보내지 마. 연락도 차단해, 내가 바쁘다고.. 흑, 해....."

 [보안 등급 변경. 플로어 락 설정되었습니다.]

 "스티브, 캡틴.. 당신이 먼저 들이댄 거니까 나중에 딴 소리 하지 마."

 "토니.... 토니. 만지고 싶어."

 

 토니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상기된 얼굴의 혈기왕성한 젊은 알파가 바로 앞에서 자신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 까짓거 이왕 망했으니 제대로 즐겨 보자고. 천천히 다가오는 입술에 기꺼이 제 것을 겹치며 토니는 스티브의 목에 팔을 감았다.



by 치우타 2015. 4. 8. 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