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캡틴을 자기 방에서 재웠다. 곧 도착할 개 용품들도 있고 해서 처음엔 가장 가까운 옆방을 줄까 싶었지만, 이 녀석은 토니가 랩실에서 일하는 동안 꿋꿋이 옆에 앉아 있다가 늦게사 방으로 돌아가려고 일어나니 부리나케 뒤를 따라왔다. 혼자 있는게 싫은가? 기본적으로 혼자 자유롭게 지내는 걸 선호하는 편인(이라기보다 익숙한) 토니로서는 잠깐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그 낌새를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인지 캡틴은 토니의 무릎에 고개를 부비며 작게 끄응거리는 소리를 냈고, 날 떼어놓을 거냐는 애처로운 눈빛에 패배한 토니는 에라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래! 내 방에 가자!" 고 외쳤다.

 

 그리고 그는 다음 문제에 봉착했는데, 그것은 바로 캡틴을 침대에서 재울 것이냐 바닥에서 재울것이냐 하는 거였다. 어차피 방에 데려왔으니 까짓거 침대에서 재워도 상관없겠지만 최근 자신이 가끔 악몽을 꾸곤 하는걸 생각하면 쉬이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동물들은 기본적으로 낌새나 기척에 민감하니까 같이 잠에서 깨어나 버리겠지.

 

 "어디서 잘래?"

 

 토니의 물음에 캡틴은 타박타박 걸어서 침대 옆 러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거기가 좋아? 토니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자 긍정하는 듯 앞발에 고개를 내리며 푸른 눈으로 조용히 토니를 올려다 보는 것이었다. 얌전하고 의젓한 그 모습에 마음이 간질간질해진 토니는 양 손으로 캡틴을 쓰다듬고 토닥이며 거의 뽀뽀할 듯이 귀여워해주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괜히 들썩이며 침대로 올라가 누웠다. 잘 자, 캡틴. 토니의 목소리에 방 불이 꺼졌다.

 

 다음 날 아침, 스티브는 일찍 일어나서 토니 방의 창가를 서성거렸다. 해가 떠오르고 주위가 밝아진 시간인데도 토니는 도통 침대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방 안은 블라인드와 커튼으로 가려져 여전히 어두웠다. 그는 허공을 향해 짖으려다가 자비스가 알아들을 리 없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레 침대 위로 올라갔다.

 

"끄으응."

"..........."

"멍!"

 

 '일어나게, 스타크. 아침이야.' 스티브는 코로 토니의 팔을 밀며 그를 깨우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장본인은 이불을 둘러쓴 채(답답하지도 않은가?) 미동도 없이 쿨쿨 잠들어 있는 모양이었다. '스타크!' 스티브는 한번 더 멍, 하고 짖었다. 그러자 나지막한 신음소리가 끊어질 듯 말듯 울리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그를 깨우려면 조금 더 부산스럽게 굴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스티브는 결심하고 이불을 입에 물어 슬슬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저항 없이 딸려온 이불 너머로 피곤한 얼굴을 한 토니가 숨소리도 거의 내지 않고 눈을 감고 있었다. 가슴이 작게 오르락내리락 하지 않았다면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스티브는 갑자기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걸 느끼며 토니의 몸을 본격적으로 흔들었다.

 

"멍멍! 멍!"

"....으으... 뭐야..."

"멍! 멍! 끄으응, 끙."

 

 토니가 괴로운 듯 신음하며 작게 뒤척거리더니, 이내 게슴츠레하니 눈을 떴다. 아침부터 왠 개 짖는 소리가... 그는 아직도 멍한 머리로 금빛 털뭉치를 바라보았다. 저게 뭐더라. 멍! 다시 개가 짖었고, 토니는 흠칫 놀라며 눈을 두어 번 깜박였다. 아, 그래. 내가 개를 주워왔었던 것 같은데 이름은 캡틴이고.. 토니가 깨어난 걸 알아차렸는지 캡틴은 코를 킁킁거리며 앞발로 토니의 가슴을 툭툭 두들겼다.

 

"너 지금 아침이라고 나 깨운 거야...?"

"멍!"

"....이름을 잘못 지었나.."

 

 토니는 끙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새벽에 두 번 정도 잠을 설치는 바람에 아직도 머릿속은 안개가 낀 것처럼 부옇게 흐려져 있었다. 캡틴이 그를 깨우지 않았다면 아마 낮까지는 그대로 기절해 있었을 것이다. 토니는 잠시동안 정말 개의 이름에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지만 꼬리를 흔들며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는 캡틴의 얼굴에 약간의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그냥 부지런한 개인가보지 뭐. 종도 리트리버고. 그는 팔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켠 다음 캡틴과 함께 침대를 빠져나왔다. 아침 먹을래? 배고파? 멍! 토니의 물음에 캡틴은 기뻐하며 앞장서 달려나갔다. 아무래도 밥 때문에 깨웠나 보다. 토니는 실없이 웃으면서 자비스에게 식사를 준비시키고 애견용품 도착 시간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by 치우타 2015. 7. 30. 15:13

 토니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뒤에도 개는 여전히 소파 위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주인에게 버려져서(이미 토니의 머릿속에는 그런 시나리오가 완성되어 있었다) 정처없이 헤메이다가, 혹은 주인을 기다리다가 세찬 비를 맞고 비틀거리고 있었으니, 지쳤을만도 하겠지. 오늘 저녁은 사이좋게 스테이크로 할까? 토니는 자비스에게 자신의 저녁식사와 하나는 개에게 줄 양으로 아무 조미료 없이 레어로 구워진 소고기를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잘 자네, 숨소리도 잘 안 내고. ....자비스, 얘 몇 살쯤 되어 보여?"

 [사람 나이로 치면 20대 후반쯤인 것 같습니다.]

 "다 컸다는 거군. 어릴때만 귀여워하다가 버렸다는 건가.. 완전 쓰레기같은 놈이네."


 토니는 혀를 차며 숨을 쉬느라 들썩이는 개의 몸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털도 부드럽고, 관리가 잘 되어 있는것으로 보아 홀대를 받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토니는 가능하면 전 주인의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해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결론은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귀여운 개를 버리다니 인간 실격' 으로 돌아왔다. 사람이란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누군가를 상처입히고, 때론 죽이기도 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애정을 퍼부어주던 애완동물을 질렸다는 이유로 내다 버릴 수 있는게 바로 인간이었다. 정말 자기 편할대로 사는 생물이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음식이 준비되었다는 자비스의 알림에 그는 잠들어 있는 개를 토닥였다.


 "Hey, buddy. 저녁 먹어야지. 잠은 이따가 더 자."

 "....끙..."

 "배고프잖아. 자, 이리 와. 맛있는 거 준비했어."


 스티브는 무거운 눈을 끔벅이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 여기가 어디지. 그는 멍한 머리로 눈 앞에 흐릿하게 보이는 실루엣과, 익숙한 목소리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이내 그것이 브루넷의 동그란 머리와 토니의 목소리라는 걸 깨닫고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래, 갑자기 개가 되는 바람에 무작정 그를 찾아와서- 스티브는 고개를 털듯 흔들었다.


 "이제 깼어? 테이블은 이쪽이야."

 "멍!"


 '스타크, 내 말 좀 들어 봐.' 스티브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 번 짖었지만 토니는 그것이 저녁식사를 반기는 소리로 알아들은 모양인지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할 뿐이었다. 어떡하면 좋지. 그는 소파 위에서 안절부절하다가 코를 자극하는 음식 냄새, 정확히는 환상적인 고기 냄새에 이끌려 토니가 있는 곳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게 아닌데! 스티브는 순간 본능에 따라 행동한 자신을 보고 경악했지만 토니가 웃는 얼굴로 접시에 담아 내민 음식을 보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수긍했다. 넓은 접시엔 보기에도 훌륭한, 겉만 살짝 익은 소고기 스테이크가 고급진 자태를 뽐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한테 줄 만한 음식은 지금 고기밖에 없더라고. 사료는 내일 도착할 것 같거든." 

 "멍! 멍!"


 '아니, 사료를 준비할 것까진 없는데.' 스티브는 그런 뜻으로 짖은 다음에야 본인이 개로 변해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닫고 조금 시무룩해졌다. 일반적으로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은 사료를 먹는다. 사람이 먹는 것으로는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고, 영양 균형에 맞추어 요즘은 좋은 사료들도 많이 나오는 모양이었다(가끔 지나가는 펫샵을 구경한 적이 있다). 스티브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기 접시를 쳐다보거나 말거나, 토니는 긍정의 신호로 알아듣고는 자비스와 의견을 교환하고 있었다.


 "오, 마음에 들어? 실컷 먹어. 또 있으니까. 잠깐만, 자비스, 개도 먹는 양을 스스로는 조절 못하던가?"

 [보통은 그렇습니다. 견종이나 각자의 특성에 따라 적게는 하루 1회~3회 정도 준다고 하는군요.]

 "골든 리트리버는 어떤데?"

 [저 정도의 나이라면 2-3회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흠. 좋아. 관련 정보는 카테고리로 묶어놨으니까.. 어서 먹어, 멍멍아. 살짝 익히기만 해서 뜨겁지도 않아."


 스티브는 그제야 접시에 고개를 들이밀고 식사를 시작했다. 토니의 말대로 겉만 약간 익힌 고기는 부드럽고 신선했으며, 끝내주는 맛이 났다. 사람일 때 먹어본 어떤 종류의 스테이크도 이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군. 스티브는 거의 전투적으로 커다란 고기를 공격했다. 토니는 아주 잘 먹는다며 기뻐하더니 두어 덩이를 더 덜어 주었고 그는 사양않고 맛있게 먹어치웠다. 배가 채워지고 나자 갑작스레 하품이 나오는 바람에 스티브는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이런.


 "그러고보니 네 이름을 지어줄까 하는데."


 스티브는 입맛을 다시다가 토니를 올려다보았다. 뭐가 좋을까. 토니는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며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개를 잠시 말없이 응시했다. 푸른 눈. 금빛 털. 이건 뭐 이름 후보를 고민하는 것 자체가 약간 바보처럼 느껴지는걸. 토니는 허공에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를 홀로그램으로 띄웠다. 스티브가 눈을 크게 뜨며 짖었다. 


 '스타크! 설마!'

 "너도 알아? 캡틴 아메리카의 상징이지. 비브라늄 방패. 널 보고 있으니 생각나더라고."

 "멍! 멍멍! 멍!"

 "안다고? 왠지 그렇게 들리는데. 아무튼 그래서 이제부터는 널- 캡틴이라고 부를거야. 어때? 캡틴."

 '내가 그 캡틴이야! 스티브 로저스라고!'

 

 이름이 마음에 들었는지 멍멍 짖으며 빙글빙글 도는 개를 바라보고 토니가 씩 웃었다. 나중에 진짜 캡틴이 알면 화내려나? 하지만 당신이랑 똑같이 생겼잖아. 보라고. 개도 마음에 드는 이름이랬어. 그는 변명, 아니 설명할 이유를 몇 가지 떠올리며 여전히 토니의 발치를 빙빙 도는 캡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by 치우타 2015. 7. 29. 21:09

 토니는 최상층에 도착하자마자 욕실로 직행했다. 개는 푹 젖은 채로 오들오들 떨기 시작했고, 이대로 놔뒀다간 팔자 사납게도 여름 감기에 걸릴 판이었다. 자비스, 따뜻한 물 좀 틀어. 토니는 욕실 문을 닫고 개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오는 내내 얌전했던 개는 기운 없는 얼굴로 바닥에 푹 퍼졌다. 


"씻고 나서 밥 먹자. 기운내, 너 그래도 운 좋은거야. 내가 누군지 알면 까무라칠걸."


 소매를 걷어붙이며 씩 웃어보이는 토니를 멀뚱멀뚱 올려다보며 스티브는 눈을 굴렸다. 개구쟁이 같으면서도 다정한 미소였다. 저렇게 웃을 줄도 아나? 처음 보는군. 제 의사와는 달리 한없이 늘어지는 몸을 최대한 추스르며 스티브는 푸르르, 하고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 욕조에 사람 외엔 니가 처음이야. 토니는 조심스레 스티브를 안아올려 욕조에 앉혔다. 따뜻한 물에 몸이 잠기자 나른함 반, 위기감 반이 몰려왔다. 스티브는 본능적으로 발을 허우적거렸지만 처음부터 낮은 높이로 채워져 있어서 첨벙, 첨벙하는 소리와 함께 물이 튀길 뿐이었다. 


 "아, 가만히 있어야지. 비누칠만 하면 되니까.. 응? 착하다."


 버둥거리는 스티브의 등을 천천히 쓰다듬으며 토니가 속삭였다. 거기엔 숨길 수 없는 따뜻함이 녹아들어 있어서 그는 얌전히 발을 멈추고 섰다. Good boy. 칭찬하는 목소리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스티브는 토니가 비누칠을 마치고 물을 끼얹을 때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자, 다 했다. 토니의 말이 제대로 끝나기도 전에 그는 축축히 젖은 털을 말리기 위해 자연스레 온 몸을 힘껏 털었고, 바로 옆에 있던 토니가 고스란히 물벼락을 맞고 말았다. Hey! 꼬리까지 완벽하게 무아지경으로 털던 스티브는 토니의 짧은 외침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얼굴과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짐짓 화난 얼굴을 한 토니가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사람이 아니라, 개로서 무례하게 행동해버린 것도 문제였지만 토니를 물에 빠진 새앙쥐마냥 만들어버린 것에 미안함을 느낀 스티브는 주눅든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끙끙거렸다. 


'미안해, 스타크. 나도 모르게...'

"털고 나니까 좀 시원해? "


 곧 몰아칠 토니의 분노나, 비난 등을 생각하며 잔뜩 위축되어 있던 스티브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토니가 젖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어넘기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화난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째서?


"휘유, 나도 샤워를 다시 해야겠는걸. 그 전에... 네 털부터 말리자. 사료같은건 없으니 오늘은 그냥 고기로 줄게. 자비스! 얘 품종이랑.. 최근에 비슷한 개 실종신고나 뭐 그런거 없었는지 알아보고, 목록 작성해."

[그 개는 골든 리트리버 종입니다. 뉴욕 근방에는 같은 품종의 실종 신고는 없군요.]


 물을 맞은 건 제 쪽인데 어지간히도 놀랐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는 개를 보고 토니는 입맛이 썼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자비스의 말로 보아 주인이 아무렇게나 내다 버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젖은 옷을 대충 벗어 던지고 일단 샤워 가운을 주워입은 토니는 어리둥절해 있는 개를 안아다가 밖으로 나왔다. 혹시 겁을 먹을걸 대비해서 바로 옆에 앉히고 드라이기를 느릿하게 틀었다. 


"털 말릴 거니까 그대로 있어. 이거 무서운 거 아니야. 그냥 뭐, 뜨뜻한 바람이지."

"끄으응."

"뜨거워? 이 정도는 어때? 괜찮아?"


 제 손에 바람을 대어 온도를 몇 번이고 확인하는 토니를 보며 스티브는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내가 알던 그 토니 스타크가 이런 사람이었나? 제멋대로에, 틱틱거리고, 장난과 진심을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인 남자가 아니고? 적당히 미지근하면서 따뜻한 바람과 조심스러운 손길이 털을 매만지며 말려주기 시작하자 그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처음 보는 개에게 보통 이렇게까지 잘 해주는 사람이란 드물 것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자신의 삶을 살기에도 바쁜 시대에는. 스티브는 눈을 천천히 끔벅이며 제법 열중하고 있는 토니를 힐끔거렸다. 잠이 오는군. 피곤하고 지친 몸은 배고픔을 호소하고는 있었으나 긴장이 풀렸는지 졸음이 먼저 쏟아져 왔다. 졸려? 토니의 말이 조금 멀게 들려온다. 식사 준비시킬 동안 나도 씻을 테니까 조금만 자. 다정한 목소리. 그는 앞발에 머리를 기대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토닥이는 손길에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잠든 개를 천천히 쓰다듬던 토니는 소파에서 살그머니 일어났다. 늦은 저녁과, 샤워, 약간의 일거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언제까지고 늑장을 부릴 순 없었다. 그 일거리엔 잠든 개도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앞으로 쟤를 어쩐다. 어차피 토니는 자유 재택근무라서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한 개를 보살펴줄 수 있었고, 기르는 비용도 전혀 문제되지 않을 것이었다. 어렸을 때 이후로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품에 달려들어 젖은 몸을 부비고, 애처롭게 울면서 올려다보던 푸른 눈동자를 떠올리자 토니는 급작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왜 하필 골든 리트리버여서는. 꼭 누가 생각나잖아. 토니는 투덜거리며 괜히 팔을 휘저었다. 한동안 진짜 주인이 나타나거나, 개가 떠나고 싶어한다면(그럴 지는 의문이지만) 보내줘야지. 그 전까지만 데리고 있을 거야. 자신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리며 토니는 욕실로 들어섰다. 밥 주면서 이름도 생각해야겠군. 쏴아- 시원한 물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by 치우타 2015. 7. 28. 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