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독점 공개] ‘알콩달콩’ 세기의 히어로 커플과 만나다
치우타 기자
*편의상 두 히어로는 간단히 이름으로만 표기하였습니다.
지난 23일, 본 기자는 세기의 히어로 커플인 캡틴 아메리카-아이언맨의 하루를 독점 취재하기 위해 찾아갔다.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어벤져스 최상층은 무척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홀의 소파에 앉아 두 사람을 기다리는데 주위가 조용했다. 약속 시간은 8월 23일 오전 10시.
나는 정확하게 9시 50분에 도착한 참이었고 취재 내용은 어제 다시 한 번 확인을 받아낸 상태였는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생각하는 동안 갑자기 어디선가 사람의 말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고개를 내밀어 살펴보니, 저 안쪽에서 헝클어진 머리를 한 채로 토니가 잠이 덜 깼는지 뭐라 웅얼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에는 그림자처럼 역시 살짝 까치집을 지은 금발 머리의 스티브가 따르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수첩에 속기를 시작했다. 거의 홀에 가까워진 두 사람은 나를 발견했는지 입을 크게 벌리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경실색했다.
토니 : 으악! 뭐야! 누구야!
스티브 : 어떻게 여길 들어온 거지?
나 : 저, 월간 스토니에서 나온 기자에요. 어제 전화 드렸던...
토니는 여전히 뜨악한 표정이었지만 그제야 스티브가 뭔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취재 건이 잠시 잊혀져있던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하다. 어제 뉴욕엔 사건이 있었던 참이었다(타이밍 한번 끝내주기는).
스티브 : 미안합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겠습니까? 토니, 빨리 씻고 나오자.
토니 : 월간 스토니?
스티브 : 당신이 수락한 독점 취재 있잖아.
토니 : 아.. 기억났어. 오케이.
나 : 천천히 하세요. 많이 피곤하시죠?
토니 : 죽을 것 같아. 어제 이 양반이-
다음 순간 스티브는 날렵하게 토니를 옆구리에 끼고 다시 방 안으로 사라졌다. 뭔가 좋은 취재거리를 놓친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평소처럼 말끔해진 두 사람은 어딘가 머쓱한 얼굴로 미술관에 가자고 했다. 근처에 인상파 화가의 전시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은근슬쩍 깍지를 껴 얽어매듯 맞잡는 두 손을 훔쳐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술관은 제법 한산했다. 처음 30분은 토니도 스티브가 해 주는 설명을 들으며 눈을 반짝거리고 있었지만 곧 움직이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림에 흥미를 잃었는지 쉼터용 벤치에 가서 털썩 앉았다. 그대로 스티브와 그림을 보기에도 어쩐지 어색해서 나는 토니의 옆자리를 차지했다. 그는 손에 자그마한 패드를 들고 뭔가를 바쁘게 두드리다가 날 눈치 채고는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나 : 그림 보는 건 별로 안 좋아 하시나 봐요.
토니 : 어차피 다 옛날 거잖아. 나름 희소가치가 있지만 관심 없어.
나 : 그러면 왜 여기로 오신 거예요?
토니 : 난 스티브가 좋으면 뭐든 상관없어. 원래는 다 내가 빌리려고 했는데 그러지 말라고 뜯어 말리잖아. 이걸 보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면서. 하여간 꼬장한 노친네.
토니는 투덜거리면서 다리를 덜렁거렸지만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림에 열중하고 있는 스티브의 모습을 보고 있기만 해도 좋다는 것처럼, 간질간질하고 따스한 웃음이었다. 왠지 그런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해서 취재용 질문도 잊고 그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금방 가죽 재킷이 시야를 가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넋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스티브가 어느새 걸어와 나와 토니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스티브 :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까?
나 : 아, 그게-
토니 : 당신이 꼬장하다고.
스티브 : 토니.
스티브는 곤란하다는 듯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한 손으로 토니의 허리에 팔을 감고 뺨에 키스를 떨어뜨렸다. 아무리 사람들이 없다고는 해도 미술관에서 이래도 괜찮은가? 오히려 내 쪽이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이 이상한 조합(찰싹 달라붙은 남자 둘과 어정쩡한 여자 하나)에 관심 따위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두 사람과 나는 미술관에 딸려 있는 레스토랑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여기는 문자 그대로 우리 외에 아무도 없었는데, 아예 가게 입구에 작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오늘은 점심시간에 휴무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들여보내주는 거지? 나는 토니를 바라보았고 그는 손가락을 입가에 붙이며 쉿, 이라고 중얼거렸다. 스티브는 토니에게 방금 본 전시가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해 감상을 피력하느라 보지 못했다. 나도 손가락으로 입술을 누르며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토니 : 여기 브런치는 신선하고 아주 괜찮아. 커피도 수준급이지.
스티브 : 와 본 적이 있나?
토니 : 그야 당연하지. 유명한 곳이거든. 봄가을엔 여기 자리 없어서 난리 나.
스티브 : 누구랑.. 아니야. 신경 쓰지 말게.
토니 : 질투해? 스티비? 당신 이럴 때마다 귀엽더라.
나는 이번 취재를 위해 열심히 준비했던 질문 리스트를 조용히 접어 넣었다. 두 사람은 내가 옆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손을 잡고 눈을 맞추며 그저 좋다며 웃었고, 이미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어쩐지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아 조금 미묘한 기분이었지만 행복한 연인의 한때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날 행복하게 해 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토니는 급한 이사회 일정 때문에, 스티브는 뉴 쉴드의 업무 때문에 이동해야 해서 나를 잡지사 근처까지 바래다주었다. 입구에 들어가는 척 하며 고개를 슬쩍 내밀었더니 두 사람이 입을 맞추고 있었다. 잠시라도 떨어진다는 사실이 무척 아쉬운 것 같았다. 스티브와 토니는 영문 모를 수신호를 몇 개 나누고는 각자 다른 길로 급히 뛰었다(토니는 금세 차가 와서 태우고 갔다).
이번 취재로 알게 된 것이 있다면 그들은 세간에서 부풀리고 경솔하게 떠드는 것처럼 뭔가 엄청나게 다르거나 특별하지 않다는 거였다.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데이트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고, 눈만 마주쳐도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처럼 웃고, 뜨거운 입맞춤을 나눈다. 잠시간의 헤어짐도 아쉬워하며 한참 손을 놓지 못한다.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지만, 평범한 커플이기도 한 두 사람이 앞으로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으면 한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준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