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처음 보았을 때, 그곳은 마치 외따로 떨어진 작은 성채 같았다.
건물의 풍채가 훌륭하다거나 고풍스러운 건 아니었지만 그 주위를 둘러싼 자연 경관이나
보이지 않는 삼엄한 경계가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것이다.
스티브는 몇 겹으로 보안이 되어 있는 문을 지나쳐 가장 깊숙한 방으로 들어갔다.
규칙적인 기계음과, 끊어질 듯 가냘프게 이어지는 숨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곳.
병적일 정도로 새하얀 침대 위에는 약간 초췌한 모습의 남자가 산소 호흡기로 생명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었다.
그에게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기계들이 익히 그 병세를 짐작하게 만들었다.
천천히 그 곁으로 다가간 스티브가 조심스럽게 누운 남자의 손을 들어올려 손등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나 왔네..... 토니."
토니 스타크가 혼수상태에 빠진 것은 바로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외계 빌런을 격퇴하고, 피해를 복구하면서 떨어진 어벤져스의 명예를 되돌리고,
오해와 잘못된 기사들을 바로잡느라 24시간은 터무니없이 부족할 정도로 바빴던 그는
어느 자선 행사에서 무차별적인 공격에 노출되었다.
민간인들을 보호하던 과정에서 크게 중상을 입고 곧바로 병원에 후송되었지만 그대로 손쓸 틈도 없이 혼수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현장을 정리하고 부상자들을 옮기던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리드 리처드로부터 연락을 받자마자 혼비백산하여 토니에게 달려갔다.
전체적으로 토니의 몸이 입은 크고 작은 부상들도 문제였지만 워낙 공격 당시의 상황이 급작스럽고 처참했던 탓에
뇌 쪽에도 손상이 갔을지도 모른다는 리드의 조심스러운 의견을 들은 스티브는 할 말을 잃고 주저앉았다.
그들은 막 그날 아침 사소한 문제로 크게 다툰 참이었다. 토니가 조금 자기멋대로 말한 것이 원인이었으나 스티브 또한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기에 가벼운 농담은 큰 언쟁으로 번졌던 것이다.
'토니, 자네는 너무 자네밖에 몰라. 어떻게 그런식으로 말할 수가 있나? 그래서 늘 팀을 위험하게 만들지 않나.'
'.....내가 내 생각만 한다고? 결국 캡틴도 모두와 같은 말을 하는군. 토니 스타크는 구제 불능이라고 말이야.'
'그런 말이 아니지 않나! 자네는 왜 꼭....!'
'이건 옳고 그름이 아니야, 스티브. 다른 거지. 그저 다를 뿐이라고.'
스티브는 그 말에 대해 뭐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마침 토니의 핸드폰이 울리는 바람에
둘의 다툼은 거기에서 어정쩡하게 종료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만에 그의 오래된 친우이자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숨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얼마나 잔인하고.... 무자비한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토니. 자네의 말을 제대로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은 내가... 잘못했네. 그러니까...... 부디.."
-돌아와 주게.
이 방에 들어올 때마다, 옆에서 밤을 지새우고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몇 번이고 기도처럼 되뇌었는지 모른다.
스티브는 절실히 바라고 있었다.
토니가 여기에서 더 멀어지지 않기를. 그에게 닿는 모든 길이 끊어지지 않기를.
그의 사과와 진실한 애정이, 마음이, 너무 늦지 않았기를.
"사랑하네..... 토니..."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칠어진 손등에 이마를 부비던 스티브는
문득 귓가에 미세하지만 기계음이 약간 다른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반신반의하며 화면을 바라보자, 천천히 맥박 그래프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의식이 돌아올지는 보장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긍정적인 방향이라는 것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는 급하게 리드와 스타크 가 주치의측에 연락을 넣었다. 곧 그들이 달려올 것이었다.
여전히 피로한 얼굴을 한 채 잠들어있는 토니를 바라보며 스티브는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손을 두번 다시는 놓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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