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로저스와 토니 스타크가 진지하게 교제하는 사이라는 것이 어벤져스 멤버들과 쉴드 내에 퍼지기까지는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다. 어떻게든 세간에 퍼지는 건 조심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두 사람은 같이 있을 때보다 오히려 따로 있을 때, 더 연애하는 티를 내고 수줍어하고 행복한 얼굴을 했다.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이? '그' 토니 스타크가 고지식한 스티브 로저스랑?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은 보통 다 이런 것들이었다. 너무 안 어울리는데. 특히 상대적으로 언론에 많이 노출되어 있고, 특유의 천재 기질과 괴팍한 성격, 자기중심적이고 제멋대로인 토니를 아는 사람들은 스티브의 안위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과연 캡이 버틸 수 있을까?
잊어버릴 만 하면 스캔들 기사가 나고(물론 다 뻥이었지만), 파티에는 이제 안 나가더라도 가끔 얼굴을 비추는 자선행사에서 여자들이 그렇게 달라붙고(토니는 최대한 가드하고 있었지만)...
보다 못한 콜슨은 티나지 않는 방법으로 토니를 은근히 괴롭히기도 했으며 쉴드의 몇몇 요원들도 쑥덕거리기에 바빴다. 저래서야 캡틴이 가여운걸. 역시 안어울려. 

그렇지만 모두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정작 그들이 걱정하는 스티브는 토니를 둘러싼 오해와 소문들에 대해 전혀 요만큼도 신경쓰지 않고 있다는 거였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스티브와 토니뿐이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나서는 적어도 어벤져스 멤버들은 어느 정도 그 점을 대강 짐작할 수는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둘에게도 초반에는 꽤나 시련의 나날들이 있었다. 

특히나, 토니가 스스로를 견디지 못한다는 점이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스티브, 이것 봐. 나는 너무.. 노출되어 있는 사람이야. 매일같이 당신을 실망시키지. 임무든, 다른 것에서든-"
".....토니."
"저런 말도 안 되는 기사들이 나고, 여자들이 끊임없이 유혹해대고, 전투에서는 효율을 위해 내 마음대로 행동해. 그래, 매일 지적받는 대로."
"토니."
"나는 이런 사람이야. 올곧은 당신과 너무 다르지, 달라도 너무... 달라. 이래서는 내가, 당신을 언제고...."

망쳐버릴지도 몰라, 하는 말은 채 나오지 못한 채로 스티브의 목 너머로 삼켜졌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토니는 당황했지만, 플레이보이의 연륜이 금세 어딘가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기에 능숙한 움직임으로 너른 등에 팔을 둘러 몸을 지탱했다. 잡아먹을듯한 키스는 천천히 부드러워지고, 이내 토니에게서 나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부드럽게 멀어지는 입술을 바라보며 토니는 아쉬운듯 입맛을 다셨다.

"토니. 내가 자네에게 교제를 신청할 때 뭐라고 했는지 기억하나?"
"........음, 어느 정도는...?"

시선을 피하면서 우물쭈물하는 토니를 보고 스티브가 다정하게 웃었다. 솔직해서 좋군.

"언제고 말해주겠네. 자네가 잊어버릴 때마다 몇 번이고. 나는 있는 그대로의 토니 스타크가 좋아서 여기에 있는 거라고."
"............"
"자네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야. 천재인것도 그렇지만, 포기할 줄을 모르지. 끝까지 맞설줄 알고, 두려움을 똑바로 볼 줄 아는 용감한 사람이고."
".....스티브.."
"자네가 웃을 때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된다네. 자랑하고 싶을 정도야. 이 사람이 내 사람이라는 걸, 누구나 

알고 부러워했으면 하네."

스티브는 손을 뻗어 토니의 머리칼을 매만지고는 그대로 미끄러뜨려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까끌한 수염자국이 만져지는 이 순간이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즐거운 한 때였다. 이런 소프트한 스킨십은 질리게 해 봤을 만하건만,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어쩔 줄 몰라하는 토니의 얼굴은 처음 연애하는 고등학생처럼 풋풋하고 귀여웠다.


"오, 토니 스타크의 커밍아웃이라니. 모두가 신나할 기삿거리가 될 것 같군."
"걱정 말게. 자네가 원할 때가 아니고서는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사실 난 지금이 더 좋기도 하네. 독점하기에도 편하고...."
"....알고 보니 무서운 군인이었군? 우리 캡틴은."
"이제서야 알아도 너무 늦었네. 나는 자네를 놔주지 않을 거라서."
"...스티브."
"사랑하네, 토니. 자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전부를.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쭉."
"....젠장. 나도 사랑해, 스티브 로저스. 그러니까 당장 따라와. 오늘 아주 죽여줄 테니까."

잇새로 으르릉거리듯 고백을 마주 던져오며 토니는 스티브의 손을 잡아끌었다. 

스티브는 즐거운 듯 웃으며 얌전히 토니의 손에 끌려 들어갔다.
결국 이러나 저러나, 오늘 밤의 승자도 수퍼솔져의 몫일 것이었으므로. 


by 치우타 2013. 10. 14. 23: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