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보르를 눈 앞에 두고 원정대는 잠시 지친 몸을 쉬어가기로 결정했다.바로 코 앞까지 다가온 두린의 날과, 금방에라도 닿을것 같은 거리의 왕국을 두고 쉬이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으나 고블린 동굴에서의 일과 더불어 뒤쫓아온 아조그 무리와의 사투 덕분인지 다들 금세 코를 골며 잠에 빠져들었다. 불침번은 가장 기운이 남아도는 킬리가 담당했고, 부상을 입은 소린은 불가 근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빌보는 어디 있는가 하면- 조금 놀랍게도 소린의 바로 근처였다. 소린의 목숨을 구했으며, 원정대의 일원으로 훌륭하게 자신의 몫을 다 해낸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몇 번 뒤척이던 빌보가 드디어 숨을 색색 내쉬며 잠에 빠져들자, 소린은 감았던 눈을 뜨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킬리는 이쪽을 등진 채 주위를 경계하고 있으니 눈치채진 못한 것 같았다



"....빌보."



시험삼아 나직하니 이름을 불러 보았더니, .. 하는 작은 신음만 들려오고 여전히 잠에 빠져들어 있다

소린은 안도의 한숨을 뱉으며 조심스럽게 팔을 뻗어 빌보를 약간 일으키고는, 부상당한 사람답지 않은 빠른 손놀림으로 조끼를 벗겨냈다. 잠깐이라고는 하나 손이 와 닿았으니 깨어날 법도 한데, 평생 인연이라곤 없었을 칼도 쓰고 용기도 낸 탓인지 미동도 하지 않고 쿨쿨 잠들어 있기만 했다. 소린에게는 무척 다행이었다벗겨낸 조끼는 단추가 온통 뜯겨져 나가 있었다


늘 잠그고 있던 옷이 어째 영 헐렁해 보인다 했더니, 아무래도 고블린 동굴에서 탈출할 때 떨어진 모양이었다. 이래서야 보온 효과도 별로 없겠군. 짐도 거의 빼앗기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건 별로 없었지만, 새 단추를 달아줄 정도의 여유는 충분히 있었다소린은 바위에 등을 기대어 앉아 천천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으, 등에서 소리가 난 것 같아.."



다음날 아침 누구보다도 일찍 잠에서 깨어난 빌보는 기지개를 켜며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시선을 부드럽게 움직이자 등을 돌린 채 불침번을 서고 있는 킬리가 보였고, 근처에 팔짱을 끼고 잠든 필리, 바닥에 누워서 코를 골고 있는 봄부르, 옆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보푸르와 비푸르, 대자로 뻗어있는 노리와 도리, 그에 비에 얌전하게 잠든 오리, 자는 모습조차 와일드한 드왈린, 엎드려서 기절하듯 자고 있는 오인과 글로인, 잘 안 보이는 발린, 그리고 자신의 조끼를 손에 쥔 채 약간 불편하게 잠든 소린이 보였다. 모두 그대로였다. 빌보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다가 홱 돌렸다


내 조끼를 든 소린? 불편한 자세로? 빌보는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두 눈을 아무리 깜박여 봐도 눈 앞에 있는 소린의 모습은 틀림이 없었으며 그 손 끝에 들려있는 조끼 또한 자신의 것이었다. 상황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일단 소린의 눈 앞에 손을 흔들어 보았다. 깨어나지 않는다. 빌보는 조심스레 조끼를 소린의 손 안에서 빼내고 살펴보았다. 그리고 응당 없어야 할 것이, 있는 것을 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섬세한 세공이 들어간 단추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양 가지런히 달려 있었다. 몸도 성치 않은 상태에서, 에레보르를 앞에 두고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을 텐데. 그는 늦게까지 이 작업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것도, 옷이 벗겨질 때 아무것도 모른 채 쿨쿨 자고 있던 자신을 앞에 두고. 빌보는 조끼를 꽈악 쥐었다. 어제의 일들이 다시 되살아나며 괜히 뺨이 홧홧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또 어떤 것이 있을까. 빌보는 잠든 소린을 내려다보며 뭉클한 감정에 휩싸였다. 당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러자면, 일단..아침식사부터 준비해 볼까?"



호빗인 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들 중 하나이면서, 또한 가장 자신있는 일들 중 한 가지. 현재로서는 그게 최선이었고 또 아침식사 중에 분명히 소린에게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감사와, 신뢰, 그리고.. 그리고 또 다른 고마움의 표시를. 빌보는 다른 드워프들이 잠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살금살금 걸어가 킬리에게 인사를 건네고, 먹을 것을 찾으러 나섰다. 아껴두었던 허브잎으로 놀래켜 주면 다들 좋아하겠지


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걸친 조끼에서 단추가 햇살에 비쳐 반짝반짝 빛이 났다




by 치우타 2014. 1. 4.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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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를 쓰는 데 너무 오래 걸리는 바람에....원래 생각했던 포스팅이 더 늦어졌네요.

결국 이렇게 해의 마지막에 와서야 쓰게 되다니 ㅋㅋㅋㅋㅋ 사람은 부지런해야 합니다... 아니 근데 안써져서....


소린빌보 커플링 잡담과 포인트 감상 접어둡니다. 그냥 내용 자체가 스포일러 주의.



by 치우타 2014. 1. 1. 19: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