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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watch에 해당되는 글 4건
- 2016.08.06 [맥솔] 무릎베개
- 2016.08.05 [맥솔] 수영장에서
- 2016.07.25 [Overwatch/한조솔져] 진부한 고백
- 2016.07.25 [Overwatch/맥솔] 해프닝
맥크리는 한숨을 푹 쉬면서 털레털레 걸어들어왔다. 오늘도 수확은 제로, 더불어서 레예스에게 실컷 깨지기나 했다. 모자를 벗고 널찍한 소파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자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게 느껴졌다. 젠장. 상대의 속임수는 이미 뻔하게 파악했는데, 바보같은 도발에 걸려드는 바람에 일을 망쳤다. 레예스는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냐고 호되게 비난한 다음 꼴도 보기 싫으니 꺼지라는 말을 던지고 뒷수습을 위해 먼저 본부로 향했다.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요. 맥크리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반발심을 애써 꾹 누르기 위해 입에 담배를 물어야 했다. 정말 최악이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제시? 오늘은 조금 빨랐군."
"....잭?"
맥크리는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났다. 들릴 리 없는 목소리가 이름을 불러온 탓이었다. 언제 여기 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편안한 차림의 잭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뭘 준비하고 있었는지 어설프게 앞치마를 매고 있는 모양새가 퍽 따뜻하고 다정하게 느껴져서 맥크리는 저도 모르게 풀어진 미소를 지었다.
"그냥, 음, 아나가 알려준 걸 만들어보고 있었거든."
"와, 세상에. 당신이 그런 것도 해요?"
놀랍고 즐거운 마음에 던진 말이었지만 잭에게는 그렇게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그는 미간을 슬 찌푸리면서 입술을 고집스럽게 비틀었다. 아차. 저 양반 또 오해했네. 나도 간단한 것 정도는 만들 수 있어.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맥크리가 난처한 듯 웃었다.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좋아서 그만."
"억지로 긍정해 줄 필요 없어."
"내가 그러는 걸로 보여요?"
맥크리는 천천히 잭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금 움찔하며 어깨를 떨었지만, 뒤로 물러나지는 않았다. 마침내 맥크리가 팔을 벌려 포옹하자 잭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품에 안겨 주었다. 정말 좋아서 그런 거라고요. 나지막한 속삭임에 잭이 몸에서 힘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레예스랑 무슨 일 있었어? 그 녀석 심기가 불편하던데."
"아, 오늘 좀 삽질을 해서...."
"호오."
맥크리는 직감적으로 이 이야기를 길게 해선 안된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잭의 어깨에 고개를 부비적거렸다. 오늘은 전에 말한 것 좀 해줘요. 반사적으로 맥크리의 등을 쓰다듬으면서도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뭔데?
"무릎베개."
"벌칙으로 받았던 거 말이군."
"지금이 딱 그 타이밍이거든. 내가 진짜 필요해요."
해줄거죠? 맥크리는 씩 웃으며 잭의 뺨에 키스했고, 그는 못 말린다는 듯 작게 한숨을 쉬었지만 한층 상냥한 손길로 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소파에 앉아 허벅지를 두드리는 잭을 보고 맥크리는 묘하게 만족감과 희미한 소유욕을 느끼면서 벌렁 드러누웠다. 운동과 훈련으로 다져진 탄탄한 다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느낌이 좋고 신선해서 맥크리는 나른하게 눈을 깜박였다. 섹스할 때 잡았던 감촉과도 사뭇 달랐다.
"지금 음흉한 생각을 하는 중이군."
"헉. 어떻게 알았어요?"
"얼굴에 다 쓰여 있어. 넌 알기 쉬운 타입이거든."
맥크리의 머리칼을 헝클어트리며 잭이 웃었다. 당신은 너무 잘 생겨서 탈이야. 맥크리가 투덜거리면서 그의 턱이며 뺨을 매만지자, 그는 푸른 눈을 접으면서 눈을 흘기듯 내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숙여 주었다. 이런 점까지도 완벽하고. 두 사람의 입술이 천천히 가까워지다가 곧 맞닿았다.
날이 너무 무더웠던 탓에, 수색도 잠입도 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판단한 맥크리는 여즉 땡볕에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던 솔져의 팔을 낚아채 질질 끌다시피 데려왔다. 붉은 바이저 너머로 무슨 짓이냐고 심기불편한 목소리를 내는 솔져를 보며 맥크리는 거의 다 타들어간 시가를 솜씨 좋게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었다.
"이런 날에 그러고 돌아다니면 쓰러져요."
"난 강화인간이다. 이 정도로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는 나도 덥고, 어차피 수확도 없잖아요. 내 말 들어요."
일부러 한 걸음 더 다가서면서 슬그머니 어깨를 쓸어내리자 솔져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긍정의 표시다. 아니나다를까 그럼 네가 앞장서, 라는 말이 들려왔고 맥크리는 기다렸다는 듯 모자를 푹 눌러쓰며 그늘진 건물의 뒷쪽을 골라 발을 내딛었다.
"그래서 네가 고른 곳이..."
"뭐든 확실해야 된다고 가르친 건 당신이었죠, 사령관님. 쉴 땐 쉬고, 일할 땐 일하고."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작은 호텔의 수영장이었다. 호텔의 위치가 안 좋았는지 아니면 날씨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호텔에는 숙박객이 매우 적었다. 프론트에 있던 컨시어지는 복장이 수상하지만 꽤 후한 값을 지불하며 트윈베드 룸에 묵는 두 사람을 환영하고 전용 수영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근처에 수배지 정보가 보이지 않았던 걸 생각하면 안심하고 며칠 정도는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는데."
"그런다고 해서 그 놈들이 목이라도 내밀 것 같아요? 일단 쉬기나 해요."
"안내하라고 한 건 나였으니, 알았다."
네 말대로 쉴 땐 쉬는 것도 좋겠지. 희미하게 미소를 덧그리는 입술을 바라보며 맥크리는 괜히 헛기침을 했다. 이렇게 긴장할 사이도 아니거니와 그런 시기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나버렸는데. 거추장스러운 바이저며 자켓을 벗은 솔져는 맥크리의 성화를 견디지 못하고 샵에서 구입한 푸른 색의 심플한 수영복을 걸쳤다. 늘 꽁꽁 싸매고 다녀서인지 햇볕에 잘 타지 않은 피부가 눈부실 정도로 섹시하고, 또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거의 노골적으로 솔져의 온몸을 스캔하던 맥크리는 문득 툭 던지듯 말했다.
"당신은 위에도 뭔가 입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더워 죽겠다면서."
"아니, 그러니까."
솔져는 무슨 소리하냐는 듯 눈썹을 위로 치켜올리면서 맥크리를 돌아보다가, 그의 시선이 가슴에 머물러 있는 걸 본 순간 반사적으로 명치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나름 손속을 둔 약한 공격이었지만 당한 사람은 워낙 기습적으로 맞은 탓에 어윽 소리를 내며 수영장으로 풍덩 빠지고 말았다. 자업자득이군. 솔져는 일부러 맥크리가 빠진 곳을 지나쳐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발을 담그고 들어갔다.
"푸하, 세상에. 제가 수영을 못 하면 어쩔 뻔 했어요?"
"두 번 정도는 그래도 고개를 내밀었겠지. 죽기 전엔 건졌을 거고."
"세상에. 무서운 분이시네."
맥크리가 혀를 내두르며 천천히 솔져가 있는 쪽으로 헤엄쳐 왔다. 수영장은 그닥 깊지 않아서 두 사람 다 발이 닿고도 어깨 부근까지 드러날 정도였지만 더운 오후를 시원하게 보낼 만큼은 딱 좋았다. 늘 전장에서 긴장하거나 지친 얼굴을 하고 있던 솔져도 지금만큼은 풀어진 얼굴로 느긋하게 물의 감촉을 즐기고 있었다. 맥크리는 슬그머니 다가가 솔져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는 손길이로군."
"이런, 들켰습니까?"
애초에 감출 생각도 없었잖나. 짐짓 엄한 목소리였지만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맥크리가 용기를 내어 살짝 젖은 입술에 제 것을 가져다 대었고 놀랍게도 솔져는 순순히 받아들이며 입을 벌려 혀를 내밀기까지 했다. 맥크리는 머리가 핑 돌 것만 같은 강렬한 현기증을 느꼈다. 젠장.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지려던 입맞춤은 순식간에 짙어져 수영장의 물 소리 사이로 다급한 숨소리가 몇 번 오갔다. 중간에 호흡이 모자랐는지 솔져가 맥크리의 등을 투닥거리며 때리지 않았더라면 더 오래 붙어 있었을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맞은 건 억울하네요."
"더 맞고 싶은 모양, 흐..."
"여기, 이렇게 됐잖아요. 너무 야한데."
차가운 의수와 따스한 손이 가슴을 만져오는 손길에 솔져는 낮은 신음을 토하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간지럽히는 듯 살살 매만지다가도 강하게 주무르고, 특히 유륜 근처를 지분거리는 손가락이 말도 못하게 생생했다. 나 이대로 여기서 해도 돼요? 말로는 의문형이지만 이미 여기저기를 주무르고 더듬는 손길에 솔져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대답이 필요한 질문인가? 푸른 눈에 담긴 긍정의 뜻을 보고 맥크리가 다시 달려들었다.
그는 눈부신 남자였다. 햇살 같은 금발머리에 올곧은 푸른 눈동자.
언제고 밝은 빛 아래에서 사람들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것이 어울리는,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이었다. 한조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남자, 잭 모리슨과 스치듯이 만났던 순간을.
아마 그게 첫사랑이었던 것도 같았다. 대대로 이어온 가문의 일 외엔 언제고 그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만날 수 없는 상대였고,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이나 일말의 기대조차 품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오히려 외따로 떨어진 마음을 부풀렸는지도 모른다. 하나뿐인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일족을 떠난 후에도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림자처럼 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 명예와 구원을 찾아 어디든지 닿는 대로 발을 옮기다 새벽의 찬 이슬을 맞이할 때면 오버워치의 해체와 얽혀 어딘가에서 죽었다던 잭을 떠올리곤 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만약 제 앞에 상처투성이인 채로, 모습은 약간 달라졌지만 여전히 푸른 눈을 형형히 빛내며 표적을 끝까지 따라가 맞추는 잭이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면 애매모호한 추억의 편린에 그저 기대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한조는 시야에 들어온 전 영웅- 현 지명수배자의 존재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적들을 활로 쏘아 쓰러뜨렸다. 그 중엔 잭을 뒤에서 공격하려던 녀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 한조는 오랫동안 녹슬고 낡아 있었던 감정의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전장이 정리되자마자 잭은 한조가 있던 곳을 찾아 용케 올라왔다.
하얗게 센 머리, 얼굴에 새겨진 커다란 흉터들.
“도와줘서 고맙군, 아슬아슬했어.”
“...그렇다니 다행이야.”
“어딘가 낯이 익은 것도 같은데, 어디서 본 적 있었나?”
“그건 당신 쪽이겠지, 잭 모리슨. ...살아있었나.”
“질긴 목숨이라서 쉽게 끊어지진 않더군.”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 것 같고. 잭이 덧붙였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오버워치에서의 일은? 당신의 흉터는 어쩌다가 생긴 건가? 왜 여기 있지? 수많은 물음들이 생겨났다가 이내 연기처럼 사라졌다. 기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물음을 던질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이미 지나간 것들을 끄집어낼 생각도 없었다. 한조는 무심코 내뱉었다.
“첫 눈에 반했어.”
“....뭐?”
“이런 말은, 너무 진부한가?”
잭의 푸른 눈동자가 경악한 채 크게 뜨여 있었다. 시선은 그로부터 떨어질 줄을 몰랐고, 한조는 왜인지 그게 무척 만족스러웠다. 전장 외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남자를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오롯이 붙잡아두고 있다는 충족감이란 생각보다 크게 그를 지배했다.
여기 옛 영웅이 있다. 그리고 그의 첫사랑이 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주변에 색채가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한조는 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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