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는 눈부신 남자였다. 햇살 같은 금발머리에 올곧은 푸른 눈동자.
언제고 밝은 빛 아래에서 사람들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것이 어울리는, 마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인물이었다. 한조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남자, 잭 모리슨과 스치듯이 만났던 순간을.
아마 그게 첫사랑이었던 것도 같았다. 대대로 이어온 가문의 일 외엔 언제고 그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만날 수 없는 상대였고, 이루어질 거라는 희망이나 일말의 기대조차 품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게 오히려 외따로 떨어진 마음을 부풀렸는지도 모른다. 하나뿐인 동생을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일족을 떠난 후에도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그림자처럼 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제 명예와 구원을 찾아 어디든지 닿는 대로 발을 옮기다 새벽의 찬 이슬을 맞이할 때면 오버워치의 해체와 얽혀 어딘가에서 죽었다던 잭을 떠올리곤 했다.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만약 제 앞에 상처투성이인 채로, 모습은 약간 달라졌지만 여전히 푸른 눈을 형형히 빛내며 표적을 끝까지 따라가 맞추는 잭이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면 애매모호한 추억의 편린에 그저 기대어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한조는 시야에 들어온 전 영웅- 현 지명수배자의 존재에 깜짝 놀랐지만 이내 침착하게 적들을 활로 쏘아 쓰러뜨렸다. 그 중엔 잭을 뒤에서 공격하려던 녀석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놀란 얼굴로 뒤를 돌아보더니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 한조는 오랫동안 녹슬고 낡아 있었던 감정의 톱니바퀴가 삐걱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전장이 정리되자마자 잭은 한조가 있던 곳을 찾아 용케 올라왔다.
하얗게 센 머리, 얼굴에 새겨진 커다란 흉터들.
“도와줘서 고맙군, 아슬아슬했어.”
“...그렇다니 다행이야.”
“어딘가 낯이 익은 것도 같은데, 어디서 본 적 있었나?”
“그건 당신 쪽이겠지, 잭 모리슨. ...살아있었나.”
“질긴 목숨이라서 쉽게 끊어지진 않더군.”
앞으로도 그럴 예정인 것 같고. 잭이 덧붙였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오버워치에서의 일은? 당신의 흉터는 어쩌다가 생긴 건가? 왜 여기 있지? 수많은 물음들이 생겨났다가 이내 연기처럼 사라졌다. 기실 자신이 누군가에게 물음을 던질만한 자격이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이미 지나간 것들을 끄집어낼 생각도 없었다. 한조는 무심코 내뱉었다.
“첫 눈에 반했어.”
“....뭐?”
“이런 말은, 너무 진부한가?”
잭의 푸른 눈동자가 경악한 채 크게 뜨여 있었다. 시선은 그로부터 떨어질 줄을 몰랐고, 한조는 왜인지 그게 무척 만족스러웠다. 전장 외에는 관심이 없을 것 같은 남자를 지금 이 순간, 자신이 오롯이 붙잡아두고 있다는 충족감이란 생각보다 크게 그를 지배했다.
여기 옛 영웅이 있다. 그리고 그의 첫사랑이 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주변에 색채가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어서 한조는 느릿하게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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