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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비의 경우


 스티브와 토니가 썸을 탄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다. 정보를 다루는 쉴드 답게 그 화제는 비밀리에 몇몇 요원들 사이에서만 전파되었고 물론 어벤져스 멤버들은 애저녁에 다 눈치채서 누가 먼저 고백하나, 언제 사귀나로 내기까지 하고 있는 상태였다(토르는 아스가르드에 있다가 온 탓에 바튼의 귀뜸으로 알게 되었다). 그럼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은 어떤고 하니, 사실 토니는 오랜 플레이보이 생활의 감으로 이게 연애 전의 그 비스무리한 뭔가의 번데기 같은 거라고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지만 설마 천하의 캡시클이 날 상대로 그럴리가 있겠어 하고 생각하며 애써 부정하는 중이었다. 또한 스티브는 버키 건을 계기로 예전보다 훨씬 토니랑 가깝게 지내며 이야기도 자주 할 수 있어서 좋은데 그 좋다는 감정이 호감을 넘어서서 연애감정에 가까운 무언가가 되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의 가쉽거리 혹은 사행성(?) 내기로 화제에 오르던 두 사람은 그날도 별 일 없이 스타크 타워의 토니 전용층에서 만나 버키의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토니의 현란한 손짓과 자비스의 홀로그램에 온통 시선을 빼앗기며 반쯤 입을 벌린 채 감탄만 하던 스티브가 문득 생각난 듯이 고개를 돌려 토니와 시선을 맞췄다.


"그러고보니 요즘 유행하는 벽쿵이라는 거 아나?"

"벽쿵? 그게 뭐야, 젊은 애들 신조어 같은데."

"어느 정도 마음이 있는 상대에게 당하면 두근거린다고 하더군."

"뭐? 말도 안 돼. 고작 그런걸로 요즘 시대에 누가 그렇게 되겠어?"


 제법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스티브를 보고 토니가 코웃음치며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스티브 자신도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순수한 어린 애들사이에나 통할 법한 소리라곤 생각했지만, 막상 토니에게 강력하게 부정당하고 보니 어쩐지 오기가 생겼다. 스티브는 조금 약이 오른 얼굴로 성큼 다가섰다. "그래? 이렇게 하는 건데...."  길쭉한 팔이 뻗어오자 토니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치다가 등이 벽에 닿는 걸 느꼈다. 스티브가 지척에 있었다. 군인 치고는 흰 피부, 햇살에 반짝이는 금발, 언제나 올곧은 푸른 눈동자. 완벽하게 토니의 취향에 부합하는 외모를 갑작스레 코앞에 들이대는 일은 이 성격 나쁜 천재를 꽤 당황하게 만들었다. 플레이보이 타이틀이 무색하게, 토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있었다. 그 얼굴이 제법 귀여워서 스티브도 뺨이 발갛게 물들었다.


"어... 어라, 이상한데... 아크리액터.. 아니.. 아니 심장에 문제가 있나...?"

"그..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사람이 말할 땐 좀 들어, 토니..."


 이젠 없는 아크리액터 타령을 하며 말을 더듬는 토니가 자꾸만 시선을 피했다. 스티브는 그 떨리는 눈동자를 자기 앞에 붙들어두고 싶었다. 문득 벼락같은 깨달음이 찾아왔고, 그는 충실하게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토니는 무언가 결심한 듯 가까이 다가오는 스티브를 보며 본능적으로 키스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토니의 눈이 감겼고, 마침내 두 개의 입술이 하나로 포개졌다.



2. 원작(616)의 경우 


 스티브와 토니는 최근 아주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코 고백하지 않을 토니의 짝사랑이야 몇몇 사람만 알고 있었지만 아주 가끔 토니는 동료들(그 중에서 특히 스티브)로 하여금 이해하기 어려운 사고를 치거나 일을 벌리곤 했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앞으로도 쭉 평행선을 그릴 것 같았다. 며칠 전 스티브가 폭탄 터트리듯 토니에게 고백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렇게 친우이자 악우인 채로 지냈을 지도 모른다. 물론 반쯤 혼비백산한 토니가 간신히 이성의 끝자락을 붙들고 힘겨운 목소리로 "지금 착각하는 거야, 내가 자네에게 늘 헌신적이니까. 아니야... 나에게 또 실망할거야. 그럼 난 견딜 수 없을 거고. 미안해, 스티브." 라고 떠듬떠듬 내뱉고는 후다닥 자리를 피해 도망쳤다. 


 그러나 상대는 미국 대장, 백전 노장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였다. 토니를 오랫동안 봐 왔고 감정을 자각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고민했다. 그런 인내와 고뇌의 과정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이 앞으로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으므로 스티브는 장기전에 돌입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토니에게 애정어린 말을 건넸고, 표정과 몸짓, 말투와 행동으로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 진심임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토니는 그럴 때마다 발을 돌려 다른 곳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부단히 스스로를 다스려야 했다. 오랫동안 짝사랑해온 상대가 진실한 얼굴로 고백해오는데 어떻게 도망갈 수 있단 말인가. 마음 같아서는 뛸듯이 기뻐하며 수줍은 여고생마냥 스티브를 받아들이고 싶지만 자신은 언제가 됐든 '사고'를 칠 것이고, 이기적인 개자식처럼 구는 걸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스티브는 친구일 때보다 연인일 때 더욱 그에게 실망하고 상처입을 것이며 그건 절대로, 절대로 토니가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었다.


 스티브가 토니에게 꾸준히 고백하기 시작한 지 거의 한 달이 되었을 무렵, 두 사람은 언제나와 같이 어벤져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 조직의 예산, 피해 복구상황, 여론과 팀 내의 분위기 등등 주거니 받거니 평범하게 말이 오고가던 그 때, 스티브가 지나가는 듯한 말투로 툭 던졌다.


"그러고보니 벽에 상대를 가두면 당한 상대방이 두근거린다고 하더군. 들은 적 있나? 토니."

"아, 요새 떠들썩한 그거 말이지.. 다 과장이야. 감정의 문제일 뿐 행위는 그냥 일종의 수단 같은 거고."

"그래? 그런가?"

"그렇고 말고. 어차피 관심도 없으면 아무리......"


토니는 그 이상 말을 잇질 못했다. 스티브의 길고 튼튼한 팔뚝이 어느새 다가와 그를 부드럽고도 단호하게 벽에 가두어 버린 채였다. 오후의 햇살이 커텐 아래로 스며들어와 발치에 머무르는 걸 꿈처럼 바라보며 토니는 아랫입술을 꾹 물었다.


"이래도 말인가?"

"하하, 왜 이래... 스티브. 자네도 이런 걸 믿을 정도로 순진한 남자는 아니잖아."

"토니."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어색하게 웃던 토니는 문득 정수리가 뜨거운 느낌에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스티브의 푸른 눈동자 속엔 애틋함과 애정이 가득 담긴 채 넘실거리고 있었다. 저 시선을 견디기가 힘들어서 한 달 내내 간신히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한 번 마주하고 나니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아... 난 정말 당신을 당해낼 수 없구나. 그렇게 오랫동안 잘 감춰왔다고 생각했는데. 평생 그렇게 살 수 있었는데. 이젠 백기를 들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았다. 토니는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당신을 실망시킬거야.... 견딜 수 없을 거야, 스티브....자신이 없어. 난 못할 거라고..."

"토니, 사람은 누구나 멋대로 기대하고 실망하는 생물이야. 나도 그렇고, 자네도 마찬가지지. 당연한 걸세."

"하지만- 스티브. 난 형편없는 남자라는 걸 알잖아. 당신은 너무 과분해."

"누가 그런 소릴 하던가? 내가 사랑에 빠진 사람을 멋대로 평가하는 건 자네라도 용서하지 않겠네. 그런 말 말게."


토니는 뭔가 더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찔거렸지만 이내 다가온 스티브의 손가락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굳은살이 박힌 군인의 손가락이 느릿하게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쓰다듬었고 토니는 그런 접촉만으로도 허리가 떨려오는 걸 느꼈다. 맙소사, 내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제정신이 아니야. 


"또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군. ....키스해도 되나?"

"어.... 음..."

"사실 자네의 허락은 필요 없네. 할 거니까."


앗 하는 사이에 다가온 입술은 뜨겁고, 부드럽고, 또 사랑스러웠다. 토니는 저항을 포기하고 스티브의 목에 팔을 둘렀다. 스티브에게서 웃는 기척이 나더니 입맞춤이 더욱 깊어졌다. 등 뒤로 닿아오는 햇살이 따스했다.



3. EMH의 경우


 서류가 산더미같이 쌓여있는 책상을 앞에 두고 토니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동안 어벤져스 콜에 내내 불려다녔더니, 회사 일이 이모양으로 잔뜩 밀리게 된 것이다. 최대한 페퍼가 도와주기는 했으나 토니의 결제가 필요한 중요건들이 하필이면 이번 주에 한꺼번에 날아온 탓에 그는 며칠 째 쪽잠을 자고 있었다. 


"아무래도 카페인을 공급해야겠어."
 

토니는 머그잔에 새 커피를 가득 담고 바깥의 야경을 감상하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뜨거운 커피를 음미하고 있는데 등 뒤로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 시간에 누구지, 싶은 생각에 자비스를 부르려던 토니는 이윽고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췄다. 


"토니? 잠깐 시간 괜찮은가?" 

"캡틴? 들어와."

"늦은 시간에 미안하네. 일하고 일하고 있었나?"

"아냐, 괜찮아. 뭐 내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어? 무슨 일이야?"

"실은... 내가 알고 싶은게 있어서 왔네."


 스티브는 뭔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으나, 이내 결심한 듯 성큼성큼 토니에게 다가왔다. 그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을 가능성에 대해서 계산을 시작한 토니는 그에게서 커피 머그를 건네받고 책상 위에 내려놓는 커다란 손을 나중에서야 눈치챘다. 토니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캡틴? 스티브...? 그리고 다음 순간, 토니는 야경이 보이는 유리에 등을 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 거야?


"기분이 어떤가? 토니."

"어떠냐니... 캡틴, 이게 대체....."


 두근. 그의 심장박동이 한차례 세게 뛰었다. 어라? 토니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신의 반응을 탐색하듯이 기다리는 스티브를 바라보았다. 좋은 비누향이 코에 닿았고, 내려다보는 맑은 푸른 눈빛에는 평소와 다른 진지함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어라? 응? 두근, 두근. 심장이 다시 한 번 펄떡거렸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토니는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 보려고 애를 썼다. 스티브는 토니가 고민에 휩싸이거나 말거나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토니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토니는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그대로 펄쩍 뛰어오를 뻔 했다. 


"두근거리는군."

"어... 어? 어어.... 그러게...말이야."


스티브는 잘생긴 얼굴로 갑자기 씨익 웃어보이고는, 천천히 토니를 가둔 팔을 풀었다. "알았네. 그럼 또 오지. 자네 일이 끝나면 알려주게." 토니가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스티브는 들어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성큼성큼 걸어서 나가버렸다. 토니는 방금 전 스티브가 손을 댄 심장 부근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두근. 두근. 아까처럼 급격한 박동은 아니었지만 심장은 규칙적으로, 조금 다르게 뛰고 있었다. 방금 전 그건 대체 뭐였을까? 캡틴의 장난? 40년대엔 그런 장난이 유행이기라도 했나? 토니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다시 머그잔에 손을 뻗었다.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러고 나서, 스티브에게 연락을 할 것이다. 아마 식사를 할 수도 있겠지. 토니는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4. AA의 경우


 요즘 토니에겐 고민이 한 가지 있었다. 스티브가 외출도 거의 하지 않고 어벤져스 일과 운동, 책, 그리고 세상 적응(자비스가 도와주곤 했다)에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게 좋을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자꾸만 뭔가 켕기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토니는 보다 못해 팔을 걷어부치고 직접 나서기로 했다. 


"헤이, 캡. 이렇게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으면 정말 곰팡이가 슬어버릴지도 몰라."

"...며칠 만에 얼굴 비추면서 하는 말이 그건가?"

"아니, 그건 아니지만 솔직히 당신 너무 두문불출하고 있잖아."


스티브는 얄미운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보이는 토니를 쳐다보다가, 책을 탁 덮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한테는 그럴 틈도 안 주는 사람이 있는 것 같은데."

"마음에 둔 사람이라도 있어? 누구야? 설마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니겠지."

"공교롭게도 자네가 아주 잘 아는 사람이지."


 기다렸다는 듯 냉큼 말을 받아치는 스티브를 보고 토니는 적잖이 당황했다. 팔짱을 낀 스티브는 평소와는 다르게 약간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고, 그건.. 제법 섹시했다. 수트를 입지 않은 면바지에 티셔츠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캡틴 아메리카였다. 토니는 곤두서려는 다른 쪽의 레이더를 애써 무시하며 머리를 팽팽 굴리기 시작했다. 스티브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토니를 가볍게 벽에 밀쳐 세웠다. 


"똑똑한 자네라면 알텐데."

"무슨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봐, 내가 천재라지만 그런 맥락없는 문장으로는-"


토니는 약간 발끈하며 스티브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거기엔 조금 전의 장난기 대신 무척 진지한 눈빛과 호감 가득한 잘생긴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몇 번을 봐도 참 어딘가의 왕자님 같은 외모란 말이지. 


"이렇게 하면 두근거린다고 요새 인터넷에 유행이던데, 어때? 토니."

".....흠. 제법 설레네. 그래서 지금.. 나 꼬시는 거야? 캡."

"스티브. 그리고 질문에 대한 답은, yes 야."


오. 토니는 소리 없이 감탄하며 입술을 오므렸다. 설마 그의 은둔(?)생활에 기여한 게 바로 자신이었다니,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살아있는 전설, 미국의 영웅인 그를 존경하고 좋아했지만 이런 식으로 감정을 가져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스티브의 말대로 벽에 밀쳐져서 팔 안에 갖힌, 어떻게 보면 남자로선 그닥 유쾌하지 못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가 않았다. 오히려 호기심이 일었다. 그와 조금 더 다른 시도를 해보고도 싶었다. 연애가 뭐 별건가. 아니, 아직 시작도 안 했지만 어쨌든간에. 


"좋아. 토니 스타크의 오후 스케줄은 전부 당신 거니까 지금부터 잘 생각해봐."

"드디어 시간을 내 주는 모양이로군. 우선 점심부터 같이 하겠나?"


스티브가 개구진 얼굴로 웃으며 둘러싼 팔을 풀고 손을 내밀었다. 토니는 순서가 바뀐것 같은데, 하고 꽁시랑거렸지만 이미 그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어쩌면 오늘부터 뭔가 달라질 것 같았다. 아주 많이. 더 좋은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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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트위터에서 봤던 '벽쿵을 당하면 두근거린대' 하는 귀여운 네칸만화를 보고... 스토니로 보고 싶어진 나머지

이렇게 전 기반으로 쓰게 되었습니다 하하 일을 벌렸구나!!! EMH랑 AA는 꾸준히 봤는데도 아직 해석이 제대로 안 된건지 적응이 안되서 그런건지 영 쓰면서도 불안했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스토니는 사랑입니다. 마이 라이프루이너!

by 치우타 2014. 10. 13. 23:20

트위터 백업썰. 급 생각나서 적어봤던 거.


산책을 나갔다가 세례자 스티브를 보고 한눈에 반한 살로메 토니가 처음으로 순수한 사랑의 감정에 가득차서 스티브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구애하며 애원하는데 세례자 스티브는 토니더러 부정하고 죄악이 많은 존재라고 모욕하면서 쫓아냄.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토니를 원했고 애걸하고 사랑을 갈구했지만 냉랭하게 뿌리쳤는데 정작 자신이 그런 꼴이 되자 토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음스티브가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고 믿음을 전파하는 곳에 수수한 옷을 입고 가서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든 스티브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필사적으로 따라다녔지만 스티브는 매몰차게 토니를 계속 거절했고결국 백 번째 거절을 듣고 나서 토니는 더 이상 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음을 알고 피눈물을 흘리며 성으로 돌아갔음.

 

그리고 제 아버지인 하워드에게 간곡히 청해서 손님들을 위한 춤을 추는 대신 스티브의 목을 잘라다 달라다 달라고 말했음처음에 하워드는 그건 안된다고 했지만 토니가 그게 아니면 싫다고 해서 결국 어쩔 수 없이 들어주게 됨토니는 베일의 춤을 추고 춤이 끝나자 막 잘린 스티브의 목이 은쟁반에 담겨져 토니에게 상으로 주어졌음토니는 매우 기뻐하며 소중히 그 목을 가지고 방으로 돌아가서 문을 걸어잠그고 이후 밖으로 거의 나오지 않았음식사할때나화장실에 갈 때를 제외하고.

 

그리고 어느날 밤 토니는 스티브의 목을 가지고 성을 빠져나와서 아무도 모르는 산속 깊숙한 동굴로 들어가 입구를 막고 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음온통 피로물든 웅덩이 속에서 토니는 스티브의 목을 안고 웃고 있었음.

 

숨겨진 뒷이야기사실 스티브도 토니의 진심에 감격해서 사랑하게 되었지만그가 맡은 소명을 거역할 수 없었고 이번 생에서 토니와 이루어질 수 없음도 알고 있었음그래서 일부러 매몰차게 내쫓았고어깨를 떨며 돌아서는 토니의 뒷모습에 마음 아파했음.

 

백 번째 거절의 날토니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르는 걸 보고 과연 스티브도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아 돌아서는 어깨를 잡으려 했지만 이미 토니는 저 멀리 성으로 달려가버린 뒤였음이후엔 잡혀가서 목이 잘리게 되는데 오히려 스티브는 다행이라고 생각함.

 

해서 토니는 스티브의 진심을 모른 채 그를 죽이고 그의 목을 소중하게 여기다가 결국 미쳐서 자살하는 그런..... 

꿈도 희망도 뭣도 없는 음침한 이야기.....

 

"스티브스티브내 사랑왜 나를 사랑하지 않아?" 빛이 바랜 금발을 쓰다듬으며 토니는 노래하듯 말했다그는 여전히 아름답고경건했으며눈이 부셨다비록 목 아래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by 치우타 2014. 9. 24.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