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는 괜히 맞닿은 운동화의 코끝을 문질렀다. 지금이 몇 시더라. 조금 전 확인한 시계가 제대로 가고 있다면 이제 겨우 오후 네 시였다. 토니와 약속한 시간은 다섯 시였으나, 스티브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서두르다가 그만 한 시간 전에 공원에 도착하고 만 것이다. 가죽 자켓에 브이넥 티셔츠, 청바지에 운동화라는 지극히 평범한 옷차림으로 서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니 여기저기서 시선이 날아와 꽂혔다. 눈에 띄나? 스티브는 제 덩치와 외양을 생각하며 슬그머니 숲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평일 오후시간대여서 그런지 아이들이 제법 있었지만 대부분 잔디가 깔린 앞뜰에서 놀고 있었다.


 [스티브, 내일 오후 시간 있어? 다섯 시쯤.]

 "괜찮은데. 무슨 일인가?"

 [날씨도 좋으니 데이트 신청하는 거야. 눈치없기는. 센트럴 파크에서 봐.]

 "센트럴 파크? 거긴 사람이 많을텐데.."

 [저녁엔 그렇지도 않아. 아무튼 내일 봐, 스위티.]


 보통은 스티브 쪽에서 비어있는 시간에 대해 물어보거나, 페퍼를 통해 토니의 스케줄을 듣고 미리 계획을 짜서 협의하는 정도였던 탓에 이런식으로 토니가 먼저 데이트를 요청해오는 것은 퍽 오랜만이었다. 덕분에 스티브는 전날 밤부터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기가 힘들었다. 뭘 입지, 꽃이라도 사가지고 갈까? 너무 시선을 끈다고 안 좋아하려나. 체크무늬 셔츠는 다 찢어버리겠다고 협박했었는데... 스티브는 거의 첫사랑과 데이트하는 소년 같았다. 그는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까지 했다. 벌써 진도는 다 뺀 연인 사이였지만 토니와 밖에서 만나는 건 언제고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


 숲길로 들어서자 조금씩 꽃망울을 수줍게 내민 색색의 꽃들이 보였다. 이제 여기에도 봄이 거의 다 왔군. 뉴욕은 겨울이 혹독하고 긴 편이라 점점 봄이 짧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봤었기에, 더욱 반가운 광경이었다. 스티브는 천천히 걸음을 늦추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무와, 꽃과, 바람의 내음이 폐 깊숙히까지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다. 


 "스티브?"


 순간 그는 우뚝 발을 멈췄다. 아직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인데. 생각하는 머리와는 다르게 이미 고개는 돌아가 상대를 쳐다보고 있었다. "...토니?" 놀라다 못해 거의 얼이 나간 스티브의 표정을 보고 토니가 씩 웃었다. 개구진 미소였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약속 시간은 아직 30분이나 남았는데.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러는.. 자네야말로. 어떻게, 여기.."

 "일이 조금 일찍 끝났거든. 변장할 시간이 없어서 일단 여기쯤 온 다음 연락하려고 했는데 익숙한 금발 글래머가...."

 

 토니는 히죽거리며 다가오더니 스티브의 팔이며 허리며 엉덩이(토니! 스티브가 작게 타박하곤 지지 않겠다는 듯 토니의 엉덩이를 만졌다)쪽을 쓰다듬었다. "와우, 탄탄해. 그리고 섹시해. 오늘 복장 정말 최고야. 고민 좀 했나봐?"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에는 장난기와 더불어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담겨져 있었다. 스티브는 그만 웃어버렸다.


 "자네가 체크무늬 셔츠를 찢겠다고 했잖아."

 "아주 좋아. 누가 쳐다보는 건 좀 질투나지만, 어쨌든 끝내줘."


 쪽 소리를 내며 부벼오는 입술에 응하며 스티브는 토니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내 얼굴이랑 몸만 목적인 모양인데.." 스티브가 짐짓 엄한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토니가 인상을 찌푸리며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물어 왔다.


"뭐? 내 목적은 당연히 스티브 로저스지, 노친네야. 빨리 키스나 마저 해." 

"밖에선 조심해야 한다고 말할 땐 언제고?"

"봄이잖아, 스티브. 나도 봄에는 설렌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앞에 둔 꽃띠 처녀처럼... 응? 빨리."


 칭얼거리는 몸을 더욱 세게 품에 가두면서, 스티브는 벅찬 마음으로 기쁘게 토니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두 사람의 호흡과 심장소리 너머로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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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팁토니 전력 60분, '봄' 주제 연성. 테마곡은 Beatles - Till there was you. 

노래에 맞는 연성을 하려고 했는데 너무 늘어지고 재미도 없길래 그냥 뽀뽀나 시켰습니다. 


by 치우타 2015. 3. 28. 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