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토니는 손가락으로 눈가를 문질렀다. 피곤할 때면 무심코 나오는 버릇이었다. 쓰러지지 않을 정도의 격무에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다 보니, 어느 정도의 피로는 충분히 다스릴 수 있었지만 그 토니 스타크조차도 수면부족을 이겨낼 순 없었다. 그것도 거의 일주일 가까이 하루 최소 세 시간 이상도 눈을 붙이지 못하면(게다가 그 중 반절은 악몽으로 설쳤다), 자기도 모르게 내려오는 무거운 눈꺼풀의 존재를 순간 순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면 안 되지.
아직 어벤져스 정기 회의는 끝나지 않았고, 무엇보다 토니의 옆자리에는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가 있었다. 평소에는 누구나가 스티브의 옆자리를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는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스티브의 오른쪽 자리가 비어있었다.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회의 시간에 도착한 토니는 꿀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지만, 채 십분도 안 되어 그 행운에 대해 맹렬하게 후회하게 되었다.
둘은 원래 비밀리에 연애 중이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결국 멤버들이 알아차리는 바람에 거의 공공연한 커플 취급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캡틴 아메리카의 팬보이들은 '니가 토니 스타크지만 회의 시간마저 옆자리에 앉을 순 없지' 하는 마음으로 절대 토니를 스티브 옆자리에 앉혀 주질 않았다. 마주보거나, 혹은 대각선, 때로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 앉은 적도 있었다. 토니는 눈에 띄게 아쉬워하며 농담을 날리곤 했지만 어차피 밤에는 스티브의 옆자리를 독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이 본심이었다.
이런게 승자의 여유지. 토니는 늘 그렇게 생각하며 자리다툼을 하는 멤버들을 비웃곤 했으나 오늘만큼은, 스티브의 옆자리가 너무 곤란했다. 악몽으로 잠을 설쳤다는 말이나 너무 바빠서 세 시간도 채 못잔다는 하소연 같은 건 한 마디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수면부족으로 슬슬 퀭해지는 눈가와 자기도 모르게 조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스티브는 필시 무섭게 추궁해올 것이 분명했다. 토니는 가능하면 스티브에게 비밀을 만들거나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사람이 어디 그렇게 쉽게 바뀌던가.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라는 말은 괜히 있는게 아니었다.
어쨌거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이한 토니는 어떻게든 잠을 쫓아내기 위해서 허벅지를 꼬집고 입 안쪽을 세게 깨물며 눈을 부릅뜨고 버텼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회의는 다행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토니의 의견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었기에 그는 오직 잠을 쫓는데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하늘이 무심하진 않았는지 드디어 눈꺼풀은 제 위치를 되찾기 시작했다. 이대로 회의가 끝나고, 침대에 들어가서.. 짧은 대화를 나누고 쓰러져 잠들면 스티브도 눈치채지는 못할 것이었다. 토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허벅지를 할퀴던 걸 그만두었다. 문득 옆에서 기척이 나더니 스티브가 토니의 손을 잡아왔다.
"그래, 이제 잠은 좀 깼나?"
나지막한 속삭임이 귓가를 타고 몸 안쪽까지 퍼졌다. 토니는 그 한 마디에, 정말로 잠이 확 깨는 진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놀란 나머지 자리에서 거의 뛰어오를 뻔한 토니를 누른 건 스티브였다.
"쉬이... 진정하게. 곧 끝날 것 같거든. 요새 거의 못 잔게 틀림없지? 변명은 침대에서 들려주게나."
진중하고 달콤한 목소리에 토니는 그만 덫에 걸린 사냥감처럼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오늘밤은 죽었구나.
뒷이야기 : 스티브는 토니가 악몽을 꾸느라, 격무와 연구를 병행하느라 잠을 설치고 거의 못 잤다는 사실을 낱낱이 밝혀내고는 이틀 정도를 푹 잠만 잘 수 있도록 토니를 좋은 쪽으로 혹사시켰다고 한다. 경사로세 경사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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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시는 글로님 트윗을 보고 즉석 연성한 616 스토니입니다. 옮기고 보니까 분량이 꽤 되네요 와.....
글로님을 센터에 놓고 616 스토니를 스위치! 스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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