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는 오른손 넷째 손가락에 끼워진, 투박한 금빛의 링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이걸 언제 받았더라. 벌써 희미해진 기억의 끄트머리를 애써 더듬으며, 토니는 괜시리 목을 조여오는 넥타이를 잡아당겨 느슨하게 했다. 숨이 트이는 느낌에 가볍게 공기를 들이마시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기가 폐부를 천천히 채워갔다. 조금 떨어진 키친에선 맛있는 커피의 향기가 솔솔 풍겨나오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도 토니는 데이트 장소를 쉽사리 바꾸자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자비스가 준비하는 최상의 드립 커피도, 이 낡은 집에서 마시는 커피보다는 못했다.



"오늘은 조금 진하게 내렸는데.. 어떨지 모르겠군."


"음, 향기 좋고. ....와우, 이 정도면 바리스타로 취직해도 되겠어. 끝내주네."



솔직하게 칭찬하자 금세 기쁨으로 얼굴을 물들이며 푸른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스티브의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스스로도 놀랄 만큼 설레어 버리고 말았기에 토니는 늘 진정할 수가 없었다. 최근엔 쉴드 일을 돕는답시고 여기저기 불려다녔는데 (물론 모든 임무는 닉의 뒤치닥거리였지만) 근육도 더 탄탄해지고, 머리를 조금 스포츠형으로 다듬어서인지 예전보다는 현대적인 인상이 되었다. 길을 가다 돌아보는 사람도 늘어났으며, 그에게 대놓고 데이트 비스무리한 제안을 해오는 이들도 많아졌다. 물론 토니는 요만큼도 그런 것들에 대해 신경쓰지 않았고- 대신 속으로 그들을 어떻게 응징할지에 대해 잠깐씩 고민했다가 치우곤 했다. (내가 이 나이먹고 뭐 하는 짓이야?)


그리고 사실 스티브는 이런 토니의 생각들을 다 꿰뚫고 있었다. 90살 넘은 할아버지 청년치고는 꽤 날카로운 직감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것도 다 모르는 사이 토니가 무방비하게 감정의 파편을 조금씩 흘리고 다녀준 덕분이었다는 것을, 스티브는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보통의 토니는 무척이나 유연하면서도 한 치의 틈도 없는 남자였다. 일견 가볍고, 때론 천박하게 느껴지는 표현도 거리낌없이 사용하는 '모두의' 셀러브러티였지만 그 자신의 진심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촘촘히 둘러싸여 있었다. 스티브는 그의 외모가 토니 취향에 완벽한 스트라이크에 들어갔다는 점이 토니 스타크의 '연인' 으로서의 자격 중 하나기도 했지만, 몇 번 토니와 감정적으로 (때로는 이성적으로도) 부딪치면서 그의 튼튼한 가드가 어떤 것에 강하고 약한지를 파악해낼 수 있었으므로 지금의 발전적인 관계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토니는 스티브의 부드러운 시선을 애써 피하며 머그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놀 만큼 놀아봤다는 플레이보이 토니 스타크가 실은 덩치 큰 연인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평범한 남자가 된다는 걸,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스티브는 숨길 수 없는 행복을 다시금 입가에 걸었다. 토니의 눈이 또 정처없이 허공을 헤매기 시작했다.



"토니."


"어? 왜, 커피 맛있다, 그런데 식으니까 좀 별로네. 응? 뭐라고?"


"사랑해."


"...누가 노친네 아니랄까봐 이런 말도 막 기습적으로 하고 그래, 좀 로맨틱하게-"


"키스하면서 할 수는 없잖나. 지금 할 거야."


"뭐? 잠깐, 이봐-"



항의의 말은 입술 안으로 먹혀들어갔다. 스티브는 조금 꿍꿍이 있는 웃음을 꾹 눌러담으며, 토니의 까칠한 입술에 제 입술을 부볐다. 여기에 열이 생겨나고, 점차 은밀한 방향으로 가는 건 시간 문제일 것이다. 스티브가 천천히 토니를 끌어들여 제 품 안에 가둔 것처럼, 사실은 모두 이렇게 연인이 된다. 토니 스타크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by 치우타 2014. 3. 29. 0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