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린, 지금 시간 있어요?"


잠시 서류에서 눈을 떼고 휴식을 취하던 그를 찾아온 것은 익숙한 방문객이었다. 저쪽에서 자기 일을 하고 있던 발린에게 인사를 건네고, 팔짱을 낀 채 버티고 서 있는 드왈린한테 씩 웃어보인 빌보는 조용한 걸음걸이로 다가와 소린의 바로 옆으로 섰다. 왠일로 조금은 서두르는 듯한 그 모습에 눈썹을 들어보이자 그는 몇 번 헛기침을 했다.


"무슨 일이지? 급한 용무라도 있나?"


"아뇨, 아뇨. 그런건 아니에요. 그냥.. 잠깐 숨 돌릴 여유가 있나 싶어서요. 안 되면 나중에 해도 돼요."


빌보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전혀 급한것도 아니고, 중차대한 일도 아니니까 당신이 시간 날 때 말해주면 될 것 같아요. 멋쩍은듯 뺨을 매만지며 빌보는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오전 중에 하루 업무 중 반 이상을 이미 끝내둔 소린의 눈에는 충분히 사랑스럽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동작이었다. 또한 일종의 누름쇠 같은 것이기도 했다.


"같이 가지. 안 그래도 쉬려던 참이었어. 발린?"


"오후 업무도 거의 남은 게 없으니 괜찮을 것 같군요. 다녀오시죠."


"호위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으면 하는데."


발린의 흔쾌한 동조에 이어 약간 거친 어조의 말이 따라왔다. 드왈린은 소린의 호위 담당이었기 때문에 사실은 에레보르 안을 다닐 때도 언제나 그림자처럼 소린의 근처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 하고 있었다. 빌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 혼자서도 문제 없었고.


"드왈린, 난 괜찮으니 발린과 함께 차라도 마셔."


"그렇다면야...."


소린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는 냉큼 저만치 떨어진 테이블로 성큼성큼 걸어가 와일드하게 의자의 강도를 시험하듯 앉았다. 발린이 혀를 차면서 나이를 생각하라고 핀잔을 줬지만 본인은 요만큼도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빌보가 푸스스 웃었다.


"가지. 어느 쪽이야?"


"날 따라오면 돼요. 중간에 이상한 데로 빠지지 말아요, 소린."


"....여긴 내- 아니. 우리 집이야. 이상한 데로 빠지다니 무슨 소릴."


"오.. 당신 은근히 길치잖아요. 구조는 다 알면서도 묘하게 틀린 곳으로 간다던지 하는 그런거요."


살짝 손을 맞잡아오며 빌보가 한쪽눈을 찡긋해보였다. 나랑 산책할 때 몇 번이나 길을 잃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나만 알고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소근소근 속삭여오는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장난기가 담겨 있는 것이 어쩐지 얄미워서, 소린은 집무실을 나서자마자 빌보를 품으로 끌어당겨 목덜미를 콱 깨물었다. 맙소사, 소린! 꽥 소리지르던 빌보는 근처를 지나던 드워프 몇몇이 그들에게 흥미를 보일락말락하는 태도로 서성이는 걸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후회할 걸요."


"제발 그렇게 해 줬으면 좋겠군. 빌보."


낮은 웃음소리가 빌보의 귓가에 닿았다가 떨어져나갔다. 가소롭다는 듯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띄운 드워프의 왕을 보며 그는 한 가지 다짐했다. 언젠가 꼭 한 번은 고의로 길을 잃게 만들어서 호빗 귀한 줄 알게 해줘야 겠다는 그런 걸 말이다. 게임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 



by 치우타 2014. 1. 15. 2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