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레보르 탈환을 위한 원정대의 길이 험난하지 않았던 적은 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지만, 날이 점점 추워지면서 가장 편안하게 휴식을 취해야 하는 잠자리조차 그 고난의 길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정말이지 괴로운 일이었다. 그나마 산과 바위에서 평생을 살아온 드워프들에게 차가운 땅은 그닥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따스하고 포근한 샤이어에서 평생을 지내온 빌보에게는 꽤나 힘겨운 밤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특히나 오늘 밤은 바람이 급작스레 차가워져서, 불가 근처가 아니고서는 잠은 커녕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이가 부딪칠 정도로 온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빌보의 우연과 운에 맡기는 검 실력으로는 밤의 파수꾼 역할에 적합하지 않았고- 그는 언제나 잠을 자는 쪽이었다. 평소엔 남들보다 조금 더 쉴 수 있음을 감사했으나 이렇게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밤에는 잠보다 불이 더욱 절실하게 그를 끌어당겼다. 결국 빌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포를 두르고 불가로 걸어갔다. 오늘의 불침번 담당은 원정대의 리더, 소린이었다.


"....잠이 안 오나?"


무뚝뚝하지만 나름 다정함이 엿보이는 목소리가 툭 하고 날아들어왔다. 빌보는 다른 드워프들을 깨우지 않도록 주의해서 빠져나온 다음 소린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으며 작게 대답했다.


"조금은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애매한 표현이군."


"사실 나도 잘 모르겠거든요. 왜 그러는지."


빌보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타닥타닥 조용히 타오르는 나무에 시선을 던졌다. 확실히 이렇게 불 앞에 앉으니 몸이 노곤하게 풀리는 것 같았다. 땅에서부터 올라오는 한기와 시린 바람에 잠은 커녕 감기에 걸릴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렸던 것에 비하면 정말 꿀처럼 달콤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그를 근심하게 만드는 것은 이대로 꾸벅꾸벅 졸다가 잠들어버릴 경우 그 무슨 망신이며 어설픈 변명(왜 잠이 안 오는지 모르겠다고 둘러댄)을 자랑하는 꼴이 될 것인지... 빌보는 애써 눈을 부릅뜨며 푸우 하고 숨을 내쉬었다.


"조금 더 가까이 와라."


".....뭐라구요?"


"내 옆으로 오라고 했다, 빌보."


아니, 그거 조금 전하고 말이 다른 것 같은데... 대답할 겨를도 없이 뻗어온 팔이 성큼 그를 끌어당겼다. 완전히 무방비하게 앉아있던 덕분에 빌보는 소린이 잡아끄는 대로 쭉 끌려갔고, 이내 따뜻하고 포근한 감촉이 몸을 덮는 것을 느꼈다. 어리둥절하여 올려다보자, 깊고 푸른 눈동자가 바로 지척에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뭘 말이지."


"....내가 추워서 못 자고 있었던 거요."


"이런, 추워하는 것만 알았는데 그것때문에 잠도 못 잔 거였다니."


"오 맙소사. 당신 일부러 그런 거죠?"


기가 막힌 얼굴로 반쯤 노려보자 소린은 삐뚜름하게 미소지으며 빌보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글쎄, 마음대로 생각해.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달콤해서, 조금만 정신을 놓았다간 일사천리로 잠들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깜박이는 그에게 재차 소린이 속삭여왔다.


"자라, 빌보. 아침 일찍 출발할 거니까."


".....모두가 일어나기 전에-"


"깨워주지."


I promise. 든든한 팔이 느릿하게 몸을 도닥여오자 한계까지 눌러 참았던 수마가 순식간에 밀어닥쳤다. 빌보는 원정을 떠난 이후 처음으로 완전한 안락과 평온함 속에 잠이 들 수 있었다. sweet dream, my dear hobbit. 자장가처럼 나직한 말이 그가 기억하는 그날 밤의 마지막이었다. 



by 치우타 2014. 1. 14. 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