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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언맨 수트를 입게 된 이후로 하늘은 토니에게 있어서 그닥 낭만적이거나 매력적인 대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아름다움이나, 별이 수없이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그런 광경이 다른 사람들처럼 경이롭게 다가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치밀한 계산과 전략을 통해 움직이고 순간순간 가장 효율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온 신경을 수트와 주변 상황에 집중하다 보니 일반적인 대상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탓이었다.
하늘은 그저 그의 무대와도 같은 곳이었으며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멀게 느껴지는 짝사랑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러고 있단 말이지."
토니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괜시리 다리께에 걸친 이불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그 작은 움직임이 전해졌는지, 등 뒤에서 빈틈없이 토니를 감싸고 있던 남자가 낮은 웃음을 흘렸다.
"담요가 불편하오?"
"아니. 그냥 장난친거야. 좀 심심해서."
"심심하다니, 저 하늘에 볼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별 밖에 더 있어? 까만 바탕에 흰.. 정확히는 희기만 한건 아니지만 어쨌든. 점들이잖아. 그게 뭐?"
심드렁한 목소리에는 약간 심술이 묻어 있었지만 그것은 오히려 어리광에 가까운 무엇이었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남자, 토르는 가만히 미소지으며 팔에 조금 더 힘을 주어 토니를 끌어당겼다.
"물론 그대에게는 저것들이 단순해보일 수 있겠지만, 별은 시간이라오. 각자 정해진 수명도 있고 나타나는 시기가 다르지."
"이봐, 데미갓. 적어도 지구의 천체학에 대해서는 내가 당신보다 더 잘 알고 있을걸? 당신이 말하는 건 그쪽 이야기 아니야?"
"비단 아스가르드만의 이야기는 아니오. 모든 세계의 별들은 다 시간을 태우며 반짝이고 있소."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반은 신이라는 토르의 진중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토니는 마치 옛날 이야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거기다 이런 식으로 요샌 아무도 하지 않는 밤의 별구경이라던가 하는 구식이다못해 화석이 될 지경인 데이트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랬다. 세간의 유명한 플레이보이인 토니 스타크가 애들도 안 하는 석기시대 연애를 하고 있다니, 누가 알기라도 하면 엄청난 특종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토니는 이 상황에 대해 그다지 태클을 걸거나 불만을 터트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정말이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리에 둘러진 든든한 팔, 등에 닿는 강인한 근육, 못 보던 사이에 자라나 목께를 간지럽히는 금발, 듣기 좋은 연극조의 목소리.
그냥 토르가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지구의 문화나 사회를 잘 모르는 그가 제안하는 투박하고 서투른 데이트도 풋풋한 느낌이 나서 귀엽게 느껴지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말 다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 순간 토니는 깨끗하게 백기를 들었다. 아 내가 망했구나. 그것도 하필이면 외계인한테.
토르는 토니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그 날 순수하게 기쁨에 차 미소지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소? 토니."
"아무것도 아냐. 그냥 뭐.... 당신 말을 듣고 보니 저 별들도 꽤 아름다운 것 같아서."
"그렇다니 다행이군. 다음엔 시간이 되면 직접 아스가르드로 초대하고 싶네만...."
"좋아 알았어. 벌써 열 번째나 요청하고 있으니 이쯤되면 나도 모르는 척 넘어가 줄 테니까 미리 이야기나 해 줘. 언제쯤이라고."
드디어 받아낸 토니의 수락에 토르는 몇 번이고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믿어도 되는 것인가? 토니, 내 눈을 보고 다시 말해보시오. 아 진짜래도! 갈게 간다고! 미리 말이나 해!
담요를 사이에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사람의 그림자는 이내 겹쳐졌고, 기분 좋은 웃음소리와 입술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여느때와 같은 연인들의 밤하늘 위로 별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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