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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니, 베이비캡과 동거를 시작하다.
페퍼는 헬리캐리어에서 돌아온 토니의 품에 안겨있는 금발의 푸른눈을 가진 캡을 보고 오 맙소사. 라고 한탄했음. 이제 드디어 애까지 데리고 온 거에요? 타블로이드지부터 방송까지 난리가 나겠네요. 대체 어디서 언제 누구랑... 하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그녀의 말에 대답한 건 베이비 캡이었음. 좋은 저녁이군요, 미스 포츠. 신체만 어려졌을 뿐 알맹이는 그대로라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넨 거임. 페퍼는 익숙한 인사법에 잠시 석상처럼 굳어있다가 이윽고 천천히 말했음. ...로저스 씨? 그제야 토니가 한숨을 쉬면서 맞장구를 쳤음. 나 이래뵈도 그런면에선 철저하게 굴었다고.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는데 앞으로 캡은 스타크 타워에서.. 아니, 내가 맡게 됐으니까 그렇게 알면 돼. 당분간 대외스케줄 없지? 잡지도 마. 복잡해지니까. 페퍼는 알겠다며 대답하고 피곤을 이유로 재빨리 퇴근했음. 그리고 토니와 베이비캡만 덩그마니 남고 나서야 토니는 아차했음. 캡을 오늘 당장 어디서 재울지 상의했어야 하는데... 그보다 지금 헬리캐리어부터 내내 캡을 품에 안고 왔다는 사실은 제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토니였음.
아 또 날렸어 정말 화가 난닼ㅋㅋㅋㅋㅋ 아무튼 타워에는 지금 아무도 없어서 캡을 두기엔 난감했고 결국 토니는 말리부로 돌아왔음. 이제 캡을 어디다 재운다.. 방은 둘째치고 옷을 사야될거고 먹는걸 챙기려면 요리사도 불러야 되고.. 이래저래 머리를 팽팽 돌리던 토니를 현실러 돌려놓은건 캡틴이었음. 토니, 이제 날 내려줘도 되지 않겠나?그제서야 토니는 자신이 내내 캡을 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음. 어쩐지 팔이 아프더라니... 다섯살짜리 캡을 안고 있어서 그런거였음. 오 이런, 불편했겠군. 나도 모르게 그만. 토니는 횡설수설하며 캡을 내려줬음. 자신의 두 발로 서서 주변을 둘러보자 현상황이 아주 피부로 느껴졌음. 올려다봐야하는 토니, 주변의 수많은 커다란 물건들. 너무 무거워서 손으로 들 수 없는 방패. 다행히도 토니는 캡을 생각해서인지 수트를 입은 채로 방패를 들고 와줬음. 그건 아주 얌전히 토니의 랩실에 놓여졌음. 어쩐지 씁쓸힌 기분을 느끼며 캡은 한숨을 내쉬었고, 토니는 장난스레 캡의 머릴 토닥이며 말했
음 작아졌으면서 그렇게 한숨 쉬면 더 작아져, 리틀 솔져. 일단 오늘은 내 방에서 자야될 것 같은데 괜찮지? 안 괜찮아도 할 수 없지만. 캡은 이미 이상태로도 토니에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고개를 끄덕였음. 그리고 둘 다 눈치채지 못한게 하나 있는데 그건 캡이 토니의 이름을 친근하게 불렀다는 것이었음.
지금 캡이 입고 있는 건 줄무늬 수트 하나였음. 그 전투용. 그걸 그대로 입힌채 재울수도 없는데다가 둘 다 오늘의 전투로 꽤 지쳐있었음. 토니는 캡이 맞은 빌런빔은 일단 수트를 통헤 조사하기로 생각하고 자비스를 시켜 가명으로 유아용 잠옷을 대충 구입하고 당장 근처로 배달시키도록 했음. 물건은 해피가 변장하고 수령한 다음 토니의 거실에 놔두고 퇴근했음. 그럼 이제 씻고 쉴 일만 남았군. 토니는 욕실 문을 열어제끼다가 고뇌에 빠진 캡을 돌아보았음. 뭐해? 설마 입은 채로 목욕하겠다는건 아니겠지? 난 세탁하는 취미는없는데다가 당신 수트는 분석해야되니까 다른거 묻으면 안 돼. 그랗게 쪼그만해선 혼자 샤워도 무리잖아. 빨리 오시죠 리틀 솔져씨? 아까부터 리틀을 강조하고 있는 토니였음. 어쩐지 골이 난 스티브는 수트를 벗어서 바닥에 내던지고는 상큼성큼 걸어서 먼저 욕실로 들어갔음. 토니는 위엄넘치는 꼬맹이 캡의 귀여운 뒤통수를 보고 혼자 피식 웃었음. 뭐야, 작아지니까 귀엽기는. 원래ㅜ애를 싫어하는 편이 아닌 토니였지만 묘하게 작아진 캡은 참 깜찍하게 보였음. 알맹이는 여전히 노친네인데.
먼저 욕실에 패기롭게 들어선 건 좋았지만 샤워기 호스는 커녕 수도꼭지에도 손이 닿질 않는 현실에 다시 한 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던 스티브였음. 고개를 푹 수그리며 어깨를 늘어뜨리는 캡을 보거 토니는 뒤에서 숨죽여 웃느라 혼났음. 욕조에 받은 물이 적당히 따뜻한지, 너무 깊지는 않은지 꼼꼼하게 체크한 다음 토니는 시무룩한 베이비 캡을 뒤에서 번쩍 들어올렸음. ?!?!뭐하는 건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인 캡은 이윽고 따스한 물 속에 안착했음. 샤워기 수압은 세서 힘들테니 이쪽을 쓰는게 좋을거야. 샴푸랑 바디워시는 여기있고, 혹시 팔이 안 닿거나 하면 말해. 도와줄테니까. 토니는 명백히 즐거워하고 있었음. 가운을 걸친 채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웃는 토니의 얼굴에 발끈한 캡은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군, 고맙네. 하고 쌩하니 대답한 다음 세수부터 시작했음. 아이구 그러세요? 토니는 녜녜하며 샤워부스에 들어가 가운을 벗고 씻기 시작했음. 샤워기 물 소리가 들려오자 캡은 잠시 토니쪽을 보았음. 늘씬하게 근육이 잘 잡힌 뒷모습이 상당히 섹시했음. 섹시? 스티브는 황급히 고개를 젓고 샴푸를 짜내 머리에 바르고는 마구 거품을 냈음.
저거 바디워시인데 어려지면서 눈이라도 나빠졌나? 토니는 혀를 쯧쯧 차며 몸의 거품을 씻어내렸음. 완전히 잘못 씻고있다는 것도 모른 채 스티브는 온통 머리도 몸도 거품 투성이였음. 늘 위엄있고 곧은 신념에 빛나는 수퍼솔져가, 어벤져스의 리더가 저렇게 쪼그만해져서 바보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걸 보고 있으니 기분이 참 뭐시기했음. 귀여운 것도 같고 으이구 한심.. 싶기도 하고. 일단 저 상태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싶었던 토니는 대충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나와 스티브에게 다가갔음. 눈 감아, 캡틴. 반사적으로 명령조에 눈을 꾹 감은 스티브의 머리 위로 물이 훅 끼얹어졌음. 눈을 다시 뜨기 전에 조금 투박하지만 섬세한 손가락이 다가와 머리를 매만지기 시작하자, 그제서야 말문이 트였음. 뭐하는 건가? 샴푸라면 방금.. 당신이 쓴 거 바디워시야. 완전 거꾸로였다고. 반쯤 심드렁하지만 장난기가 가득 담긴 목소리로 토니가 대답했음. 머리통이 작아 금방 샴푸를 끝내고 물을 재차 끼얹은 다음 솜씨 좋게 스펀지로 바디워시까지 스티브에게 뒤집어 씌우는 걸 성공한 토니는 금세 목욕을 끝마쳐주었음. 이게 뭔가 싶어서 멍때리는 사이에 다 끝나고 보송한 수건에 감싸인 채로 토니와 걸어나온 이후에야 스티브는 푸 하고 숨을 내쉬었음.
자비스를 시켜 구입한 유아용 잠옷은 푸른색의 곰 디자인이었음. 스티브는 그 잠옷을 보고 미간을 팍 찌푸렸지만, 토니는 의외로 신나하며 그닥 내켜하지 않는 스티브를 어르고 달래서 재빨리 입히는 데에 성공했음.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울 속에 보이는 곰돌이 잠옷의 내모습... 을 발견한 스티브는 멘탈붕괴가 올 것 같았음. 내가 어쩌다가 이런 처지가 됐지? 현실에 대해 그닥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쳐야겠다고 결심했음. 속알맹이(어른캡)와 겉모습(다섯살 애기)의 갭에 정체성 혼돈 및 자아성찰의 타임이 온 스티브에 대해선 아랑곳않고 토니는 자비스를 시켜 몰래 사진도 찍었음. 나중에 돌아오면 놀려줘야지 싶은 마음이 9할이었음, 물론. 1할은 뭐야 귀엽잖아 캡틴주제에.. 노친네 주제에.. 흐 흥 별로 좋아서 찍는건 아니니까! 남겨두고싶은 건 아니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음. 당연히 쉴드는 절대 해킹 못하도록 퍼스널 폴더에 잠금을 몇겹으로 걸어둘 예정이었음. 이런건 나만 볼거야. 거기 은근한 독점욕이 있다는 사실은 알아채지도 못한 채 토니는 스티브에게 손을 내밀었음. 실시간 멘붕중이던 스티브가 ?? 하는 표정을 지으며 올려다보자, 토니가 씩 웃었음. 착한 베이비는 일찍 자야지. 그래야 쑥쑥 크거든. 특별히 오늘은 내가 손 잡고 같이 자 줄게. 선심쓰듯 살짝 턱을 치켜들고 있는 토니를 보며 스티브는 잠시 눈 앞의 손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따끈한 목욕과 피로 탓에 몸은 수면을 원하고 있었음.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자 토니의 미소가 조금 더 깊어졌음. Good boy. 속삭여오는 목소리가 어쩐지 다정한 것 같아 스티브는 간질간질한 기분이 되었음.
토니의 침대는 킹사이즈라 어른 셋 정도는 무리없이 누워서 자고도 남을 것 같았음. 스티브는 일단 그 규모에 놀라고, 부드러운 시트와 폭신한 매트리스에 한번 더 놀랐으며, 토니의 잠옷이 나시티에 편한 트레이닝 바지라는 사실에 또 놀랐음. 앞의 두개야 서민적이고 평범한 생활을 하던 스티브에게는 낯선 체험이었으니 그럴만하지만 세번째는 정말 의외였기 때문에 더욱 신선하게 다가왔음. 월드급 셀러브러티에, 어벤져스의 홍보를 책임지는 간판 히어로인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침대에서는 소박하고 편한 옷차림을 할 줄 누가 알았겠음. 실크 파자마라던가 벨벳이라던가 여하튼 섹시계 혹은 파격계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게 아니라는 점에서 정말 놀랍기 짝이 없었음. 뭘 봐? 새삼 반했어? 얼마나 쳐다보고 있었는지 토니가 놀리듯 말하며 스티브의 볼을 쭉 잡아당겼다가 놔주었음. 애기라서 통통하니 감촉도 괜찮네. 날 자꾸 애취급하지 말았으면 하네만. 알맹이는 당신 그대로여도 겉모습이 베이비잖아. 나도 모르게 자꾸 그렇게 되는걸 어떡해? 시원하게 합리화해버리는 발언에 스티브는 한숨을 쉬며 뭐라고 반박하려던 찰나 팔이 끌어당겨져 침대에 푹 엎어지고 말았음. 시간 늦었으니까 빨리 자. 아니면 자장가라도 불러줘? 저놈의 입은 쉬지도 않고 사람을 이리흔들고 저리흔들고 아주 난리임. 평소같았다면 여러가지로 대답도 하고 의견도 말했겠지만 작아진 몸은 금방 환경에 적응했는지 눈꺼풀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워져서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음. 스티브는 입술을 몇 번 움직이다가 이내 잠에 빠져들었고, 토니는 시트를 끌어올려 덮으며 잠든 스티브를 토닥토닥했음. 이거 앞으로 꽤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자비스, 불 꺼.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는 따끈한 체온에 토니도 금방 잠이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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