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네가 해봐."


에릭은 충동적으로 내뱉았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에도 물론 스크래치가 생겼지만, 그보다는 묘한 오기가 생겼다는 쪽이 더 맞았다. 환자건 가족이건, 가벼운 관계건간에 누군가를 상대할 때 감정적으로 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그였지만 이상하게도 찰스를 앞에 두고 있을 때는 그런 것을 잊어버리곤 했다. 찰스는 잠깐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이윽고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띄웠다.


"괜찮겠어요?"
"뭐가."
"나, 키스 끝내주게 잘 하는데."
"그래서?"
"키스하면 섹스 생각이 날 것 같아서요."


자신만만한 어투로 말하며 생글생글 웃는 찰스를 보고 에릭은 마음 속 어딘가의 스위치가 탁, 하고 소리를 내며 켜지는 것을 들었다.  그의 눈빛이 아주 잠깐동안 형형하게 빛났다.


"해봐. 할 수 있으면."
"난 분명 말했어요."
"잔말 말고 해, 컨설턴트 씨."


에릭이 픽 웃으며 도발하듯 던지자 찰스는 천천히 에릭의 뺨을 양 손으로 감쌌다. 바다를 연상케 하는 푸른 눈동자에 잠시 넋을 잃은 사이에 색이 선명한 입술이 겹쳐져 왔다. 말캉한 혀가 느릿하게 입술을 쓰다듬고, 달래듯이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치열을 핥다가 윗잇몸을 쓱 쓸자 에릭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벌렸다. 그 틈으로 기다렸다는 듯이 찰스의 혀가 파고들어와 천정을 더듬고, 아래로 내려와 에릭의 혀를 슬슬 건드리더니 그대로 끌어당겨 깊게 빨아들였다. 순간 에릭은 등줄기에 찌릿한 감각이 내달리는 걸 느꼈다. 

이게 키스라고?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이런 식의 키스를 해 본 적이 없었기에 무척이나 낯설고 생소했다. 그렇지만 얽었던 혀를 당겼다가 풀었다가 하며 입 안의 다른 곳을 돌아다니는 요망한 움직임에 이쪽이 애가 탈 지경이었다. 결국 에릭이 찰스를 쫓아가 확 빨아들이며 깊게 얽혔다. 어느새 둘은 바짝 밀착해서 끌어안은 상태였고, 에릭은 정신없이 찰스와 키스를 나누며 온 몸에 기분 좋은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특히 하반신 쪽이 슬슬 위험한 느낌으로 달아올라서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쳤군, 키스 하나로 이렇게 흥분하다니.

얼마나 그렇게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끈적하게 붙어있던 둘은 찰스가 먼저 입술을 뗌으로서 간신히 기나긴 키스를 끝냈다. 가볍게 숨을 헐떡이던 찰스의 눈썹이 호를 그리며 휘어졌다.


"거봐요, 내 말이.... 맞죠?"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들어 보니 둘 다 침대 위에 올라와 있었다. 거기다 에릭은 찰스 위에 올라타서 당장이라도 뭔가를 시작할 기세였다. 언제 이렇게 된 거지. 에릭은 혼란에 빠졌다. 찰스는 멍한 얼굴로 패닉 상태가 된 에릭을 보며 픽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내 키스가 끝내준다는 걸 확인도 했으니까 이제 키스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면 좋겠네요."


그대로 침대에서 빠져나가려는 찰스의 어깨를 갑자기 에릭이 꾹 잡아 눌렀다. 찰스는 돌발상황에 눈을 몇 번 깜박이더니, 여전히 태평한 말투로 툭 내뱉았다.


"음, 에릭. 지금 뭐하는 거죠?"
"뭘 하는 것 같아?"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는 건 반칙인데."
"답을 뻔히 알면서 물어보는 것도 마찬가지지."


에릭의 목소리는 아까와 달리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올려다본 옅은 회청색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찰스는 속으로 혀를 차면서도 그 시선에 허리 부근이 찌르르하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가 자기 때문에 흐트러지거나 흥분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꽤 기분이 좋았지만, 스트레이트에 가까운 에릭이(정보에 의하면) 자신에게 이런 식으로 욕정하는 게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던 탓이었다. 아무래도 정신이 나간 모양이야. 찰스는 그렇게 생각하며 몸의 힘을 뺐다. 말없이 긍정의 사인을 보낸 찰스의 행동을 보고 에릭은 이를 드러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키스가 시작되었다.



by 치우타 2011. 11. 28. 01:31
| 1 |